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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오피스 거래의 불편한 진실] 도심 오피스 큰 장 섰지만 가격 거품 논란 

 

코로나 사태로 안전자산으로 떠올라... 매도자·자산운용사 저울질로 거래가 상승세

▎서울 강남 논현동에 있는 더피나클타워 / 사진:박정식 기자
서울 도심권 대형 오피스(업무용) 빌딩 거래에 불이 붙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매매 단가 기록을 연달아 갱신하는 ‘빅딜’이 계속 이어져 오피스시장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대거 뛰어들며 입찰 경쟁도 뜨겁다. 대형 오피스 매물들이 서울 도심의 핵심 업무지구에 위치한데다, 임차인이 우량 대기업들로 대거 채워져 공실과 수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 때문이다.

투자가 몰리는 이유는 저성장과 저금리가 장기간 지속되고 경기 부진, 유가 하락 등이 겹친 데다 코로나 사태까지 발발해서다. 기업 입장에선 구조 조정, 재원 조달 등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산으로 갖고 있던 오피스 빌딩을 내놓고 있다. 증권사·자산운용사 등은 초저금리 상황을 이용해 수익을 늘리고 시세차익을 챙기고자 매각·인수에 적극적이다. 저성장과 코로나 사태가 어떤 기업에게는 위기를 극복해야 할 인내의 시간이지만, 또 다른 기업에겐 최소비용에 최대 효과를 실현할 기회가 되고 있다.

매매가가 5000억원을 넘는 대형 오피스 거래는 봄부터 시작됐다. 2월, 서울 중구 충무로에 있는 남산스퀘어가 5050억원에 한국투자신탁에서 이지스자산운용·KKR·SK D&D 컨소시엄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5월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영시티의 주인이 액티스(Actis LLP, 영국계 사모펀드운용사)에서 D&D인베스트먼트(자산관리업무위탁사)로 바뀌었다. 거래가는 5458억원. 액티스는 공실을 해소하고 몸값을 올린 덕분에 약 2800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오피스 매물 거래 때마다 평당 매매가 갱신

거래 때마다 매매 단가도 기록을 갱신 중이다. 5월 서울 중구 을지로 두산타워(건물 연면적 12만2630㎡)가 마스턴투자운용사를 예비주인으로 맞았다. 두산그룹이 최근 구조조정을 위해 처분하고 있는 자산 중 하나다. 마스턴투자운용사가 제시한 매매가는 7000억~800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거래 단가가 3.3㎡당 약 2100만원 수준이다.

이 기록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6월 거래대상자로 선정된 코람코자산운용이 서울 중구 을지로 파인애비뉴(연면적 약 6만4000㎡) B동 빌딩 인수를 추진하면서다. 매매가는 약 5800억원으로 3.3㎡당 3000만원 수준이다. 파인애비뉴는 2013년에 3.3㎡당 2450만원으로 4760억원에 거래됐었다. 몸값이 7년 동안 1040억원 오른 것이다. 파인애비뉴가 서울 강북의 핵심 업무지구에 속한 것이 시세 평가에서 유리하게 작용했고, 여기에 한솔제지·한화시스템 등 대기업들이 임차인으로 입주해 있는 점을 높게 평가 받았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3일천하였다. 서울 강남 테헤란로 현대해상 빌딩(연면적 3만4983㎡)이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 5월 10여개 업체들이 뛰어든 경쟁 입찰에서 우선협상자가 선정됐다. 매매가 약 3605억원으로, 단가는 3.3㎡당 약 3407만원으로 알려졌다. 동부건설을 비롯해 KB증권·신한캐피탈·한국토지신탁등이 투자자로 참여했다.

그런데 이 기록도 조만간 깨질 전망이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지하철 7호선 강남구청역 출구 앞 더피나클타워(연면적 4만5348㎡)의 매매가가 경쟁입찰 최고가인 3.3㎡당 3400만원대에서 논의되고 있다. 매각을 추진 중인 홍콩계 사모펀드 퍼시픽얼라이언스그룹(PAG)은 랄프로렌·볼보코리아·퀄컴 등 우량 외국계 기업들이 들어서 있어 높은 매매가를 자신하고 있다.

매물 적고 수요 많아 매입경쟁이 가격 상승 부채질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현대해상 빌딩 / 사진:박정식 기자
이처럼 오피스 사냥 경쟁이 과열되는 이유는 오피스가 안전자산으로 떠올라서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마트·백화점·호텔 등 리테일로 불리는 상업용 건물이 투자대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상황이 뒤집어졌다. 리테일 부동산은 방문객들이 붐비고 입점 업체들이 장사가 잘 돼야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돌려줄 수 있다. 그런데 코로나 탓에 존립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반해 대형 오피스는 코로나 타격에서 살짝 비켜갔다. 기업들이 재택근무로 전환할 뿐 임대계약 해지, 임대면적 축소, 임대료 인하 등을 요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광화문·강남·여의도 등 서울 도심권 대형 오피스는 우량 기업들이 임차하고 있고, 기업 임대계약이 5~10년이어서 투자업체나 임대업체 입장에선 장기간 안정된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오피스 투자업체 관계자는 “입주업체가 대부분 영세 소상공인이어서 임대료 인하 캠페인이 일어나는 중소형 빌딩과 달리, 대형 기업들이 입주한 서울 도심권 대형 오피스는 매물이 귀해 매입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정현 백경비엠에스 투자자문컨설팅 팀장은 “대형 오피스는 물량이 많지 않아 한 매물이 높게 팔리면 다른 매물 매매가도 그 가격을 따라가거나 더 높게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며 “임대수익은 주변 시세에 맞춰지는데 매매가가 상승하다 보니 실제 수익률이 하락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오피스 매입 경쟁이 치열해진 데엔 매도자(파는 업체)의 저울질도 한 몫 한다. 예전엔 값만 높으면 무조건 팔다시피했다. 하지만 최근엔 재원 조달이 우수한 매수자(사는 업체)를 고르는 경향이 강해졌다. 경기부진이 계속되자 매매 계약을 체결했어도 잔금을 완납하지 못하는 매수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매도자는 증권사를 선호한다. 연기금 같은 기관투자자는 공동 투자자를 모으거나 대출을 끌어오다 보니 잔금을 치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증권사는 현금을 갖고 있어 단기간에 완납할 수 있어서다.

자산운용사가 늘어난 것도 오피스 매매가 상승의 동력으로 꼽힌다. 5년 전 금융위원회가 자산운용사 설립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완화하고, 자본금 요건을 60억원에서 10억원으로 하향 조정해 진입장벽을 낮췄다. 법 규정도 운용인력이 3명 이상이면 설립이 가능토록 했다. 2015년 19곳이던 자산운용사가 2016년 91곳, 2019년 200여 곳으로 늘어난 이유다. 이 과정에서 라임자산운용, 알펜루트자산운용 등 부실 자산운용사가 나오기도 했다.

자산운용사 급증, 보험사지급제도 개편으로 변화 가속

대형 오피스 거래의 대부분을 자산운용사들이 진두지휘하는 점도 예전과 달라진 변화다. 투자자들이 부동산 관련 펀드나 리츠 등을 통해 오피스 매입에 투자하는 구조다. 투자자는 대부분 연기금·증권사·신탁사 등이다. 자산운용사들 마다 오피스 건물주에게 경쟁사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할 매수자를 데리고 오겠다며 앞다퉈 제안한다. 게다가 자산운용사는 속성이 캐피털 계열 업체여서 오늘 사서 내일 되팔아 하루빨리 시세차익을 챙겨야 하는 입장이다. 매도자는 입찰 경쟁을 통해 높은 제시가격만 고르면 되는 셈이다. 부동산 투자운용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탓에 해외시장 진출이 막히자 운용사들이 국내 부동산으로 쏠리면서 가격 경쟁과 상승을 부추겨 거품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지급여력(RBC)비율 제도 개편은 오피스 시장의 대형 매물 흐름을 더욱 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해 RBC 제도의 전면 개편을 예고했다. 초저금리가 계속되면 자산보다 부채가 더 커져 보험사들의 자본이 줄고 금리 위험이 커지며 RBC 비율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2023년에 새 국제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가 도입되면 시가 기준으로 부채를 측정하게 돼 부채 규모가 더욱 커지게 된다. 이에 따라 보험사들이 이를 대비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오피스 빌딩 자산 처분에 나서고 있는 추세다.

최근 대형 오피스 빅딜을 주관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현재 국내 오피스 거래의 절반 이상은 부동산 자산운용사가 차지한다”며 “국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선진국처럼 기업의 자체 소유가 줄고 운용사들이 기관투자자나 공모자금을 통해 투자하는 방향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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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0호 (20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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