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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대 주택수요, 구로로 몰려든 까닭] “구로행 부동산 티켓을 잡아라” 

 

‘서울 벗어나긴 그렇고’… 30~50대 첫 내집 마련, 강서·송파·은평→구로

▎서울 구로구 오류동역 주변 전경. / 사진:구로구
30대 중반의 김정환씨는 지난해 가족과 서울 구로구 오류역 인근에 둥지를 틀었다. 세입자로 떠돌던 그는 구로에 첫 내 집을 마련하면서 안착했다. 집에서 구로디지털단지에 있는 회사까지 지하철이나 자동차로 느긋하게 가도 20분이면 도착한다. 지하철 1·7호선과 경인로(오류IC)를 타면 강북·강남은 물론 서울 안팎을 한달음에 오갈 수 있다. 이 덕에 외근 갔다 귀가하기에도 편해졌다. 자녀 교육문제도 한시름 놨다. 집 주변에 10여개 초·중·고가 몰려 있고 특목고도 있어 맹모삼천지교 부담도 덜었다.

그는 결혼 전엔 값싼 전·월세 집을 찾아다녔다. 결혼한 뒤에도 셋집살이는 여전했다. 게다가 임대차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임대료가 가파르게 올라 전전긍긍했다. 아파트 분양에도 기웃거렸지만 청약가점이 부족한 그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이런 고민을 동네 부동산중개소에 하소연하면 갭투자(세를 끼고 집을 매수하는 방법)를 유도하는 대답뿐이었다.

머뭇거리는 사이 서울 집값은 정부의 규제 강화에도 하루가 다르게 뛰었다. 그는 아내와 논의 끝에 지난해 봄에 20여 년 된 소형 아파트를 3억원 정도에 샀다. 그의 마음을 바꾼 것은 구로지역 집값이었다. 이 역시 비싸게 느껴졌지만 인접 지역에 비하면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서울 탈출 대신 집값 가장 낮은 곳으로 몰려


KB국민은행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강서지역의 경우 아파트 3.3㎡당 평균 매매가는 2015년 12월 약 1708만원에서 2019년 12월 약 2737만원으로 올랐다. 올해 8월엔 약 3030만원으로 3000만원 선을 넘었다. 젊은층이 많이 사는 관악은 같은 기간 1657만→2404만→2794만원으로 올랐다. 학군수요가 많은 양천은 2167만→3500만→3985만원으로, 영등포도 2002만→3492만→3953만원으로 모두 4000만원에 육박하고 있다.

구로도 이런 분위기에 동승해 같은 기간 1541만원→2309만원→2694만원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이는 한강 이남 11개 자치구 중 금천(1316→1983→2258만원)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집값이나 상승폭이 여전히 주변 지역보다 낮은 편이며 강남의 절반도 안된다.

김씨 같은 내 집 마련 수요가 구로로 몰려들자 구로지역 아파트값 상승세는 최근 가파르게 바뀌고 있다. 김씨가 구입한 아파트의 전용 59㎡는 올해 3분기 4억7000만원에 거래됐다. 같은 아파트 전용 84㎡는 지난해 3분기 4억3000만원에서 올해 3분기 4억7500만원으로, 전용 105㎡는 같은 기간 4억원에서 5억7500만원으로 신고됐다. 김씨가 아파트 구입 시기를 올해로 미뤘다면 1억7000만원의 웃돈을 더 줬어야 했다.

하나금융경연연구소가 지난 10년간의 법원 등기 정보를 활용해 국내 부동산 거래 변화 추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2019년에 생애 첫 집합건물(아파트·다세대주택·연립주택·오피스텔 등) 매수한 인기 지역으로 30·40·50대 모두에게서 구로가 1위로 나타났다. 예전엔 강서·송파·은평이 인기 지역이었다. 서울 집값이 전체적으로 치솟으면서 주요 지역의 진입문턱이 높아지자 자금력이 부족한 수요자들이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구로로 몰려간 것으로 추정된다.

수요자들이 많이 검색하는 서울 주요 아파트 25곳을 표본 삼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서울 자치구별 가격 상승률을 살펴봤다. 그 결과 마포·강동·광진은 87~89%, 강남·영등포 등 18곳은 50~73% 오른 반면, 강북·강서·구로·금천은 50%를 밑돌았다.

이에 대해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구로지역 쏠림은 갭투자라기보다는 실수요”라며 “집값 폭등에 따른 젊은층의 패닉바잉(가격에 상관없이 사재기), 서울 안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집값, 적은 자본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중저가 주택, 산업단지 가까운 대규모 직주근접 수요 등이 맞물려 생겨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젊은층, 보다 저렴하고 일자리 많은 곳으로

이는 달리 생각하면 집값 폭등이 실수요자들을 떼민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자금력이 부족한 실수요자의 선택 범위를 좁히고, 이들을 값싼 지역으로 자의반 타의반 밀어낸 것이다. 서울 구로동 R부동산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구로 지역은 기업이 밀집해 있어 그동안 주거지로 적당치 않았다. 구로에 직장이 있어도 집은 양천·강서·영등포·관악·부천·광명 등에서 구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들 지역 집값이 뛰면서 상승폭이 적은 구로로 몰려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4년 뒤 개통 예정인 신안산선(안산·시흥~구로~여의도를 잇는 복선전철) 수혜도 구로 주택시장에 기대감을 불어넣어 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통계청 인구이동통계를 보면 집값과 전세 값이 치솟던 2013~2015년, 관악·강동·노원·동작·성북 등지에서 수도권으로 빠져나간 수치가 높았다.

구로구 쏠림엔 산업단지도 영향을 미쳤다. 장기간 경기부진으로 취업난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자리가 많은 곳으로 발길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서울 디지털산업단지(가산·구로)에 입주한 기업 수는 2015년 7월 9616개에서 올해 7월 1만1896개로 증가했다. 제조업 가동업체 수도 3100개에서 3453개로 늘었다. 고용인원은 약 14만6800명에 이른다. 이곳 기업들의 업종도 과거 제조 위주에서 정보통신·소프트웨어·유통·서비스 등 정보지식산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신기술을 쫓는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원동력이다. 아파트형 공장을 현대적 업무환경을 갖춘 지식산업센터로 바꾸고 있는 점도 한 몫 한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내 지식산업센터 수는 현재 약 140개에 이른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서울 안에서 젊은층 일자리가 많고 중저가 주택이 많은 지역이 구로와 금천”이라며 “주거환경은 우수한 편은 아니지만 그동안 서울권 집값이 크게 오르자 그 반대작용으로 상대적 저평가 지역, 신안 산선 등 교통망 개선 수혜가 기대되는 곳, 접근 가능한 중저가 아파트 등이 수요를 불러들인 매력이 됐다”고 말했다.

-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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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5호 (202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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