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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의 IT 사회학] 전력 반도체 시장을 선점하라 

 

전력 반도체 업계 실리콘 대체 웨이퍼 소재 개발 분주… 한국 기업 존재감 키울 방안 찾아야

▎10월 6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전기자동차 등에 쓰이는 질화갈륨(GaN) 전력 반도체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 사진:연합뉴스
반도체라고 하면 속도와 용량을 먼저 떠올린다. 더 빠르고 더 저장 공간이 넓어야 고사양 고스펙이라고 여긴다. 그렇지만 성능에는 대가가 있다. 바로 전기라는 비용과 열이라는 부산물이다.

이미 반도체 전쟁의 최전선은 발열이라는 적을 어떻게 잡느냐에 있다. 5 나노미터까지 치고 내려간 미세공정은 발열을 줄인다. 선이 얇아져 흐르는 전기의 양이 줄어드니 자연스레 열이 주는 원리다.

그런데 첨단 공정의 이유가 최대한 집적도를 높이기 위함이라 단위면적당 트랜지스터 수는 덩달아 늘어나 마찬가지가 된다. 열은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또 밀도가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높아지게 되면 소자 간격이 좁아지면서 열이 갇히는 현상마저 벌어진다.

열은 첨단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무어의 법칙으로 CPU의 속도는 금방 10GHz에 다다를 것만 같았지만, 5GHz의 벽에 머물러 있다. 이유는 바로 열과 전력 소모 때문이다. 클럭이 더는 안 올라가기에 코어의 개수를 늘리는 전략으로 넘어가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최신 사양의 게임 PC는 본체가 큼지막하다. 플레이스테이션 5나 엑스박스 시리즈 X와 같이 올해 등장한 최신 게임기들은 거실에 어울려야 함에도 그 동체가 큼직하다 못해 육중하다.

전력 반도체…직류·교류 상호 전환과 전압 조절 역할

게임 PC에서 최고 수준의 체험을 재현하려면 가지고 있는 모든 성능을 한 방울이라도 짜내야 한다. 전원이 들어 온 이상 잠시도 쉬는 일이 없다. 땀나도록 일하는 만큼 열은 줄기차게 발생한다. 열을 밀집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외모를 희생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최신작 플스5의 내부를 살펴보면 거대한 냉각팬이 2기나 장착되어 있다. 냉각팬은 크면 클수록 좋다. 팬이 커야지 돌아가는 속도가 느려지고 소음이 줄기 때문이다.

이처럼 최신 장비가 큼지막한 이유는 첨단의 칩이 내는 열 때문이다. 클라우드 데이터 센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수랭, 공랭, 기화식 등 첨단 냉각 설비는 반도체만큼이나 중요하다. 외모에 집착하고 싶다면 성능을 희생하여 열을 잡는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처럼 얇고 가벼워야 하는 것이 지상과제인 제품에서 냉각팬을 돌릴 수는 없다. 냉각 시스템 자체도 전기를 먹는 일이니, 1%의 배터리도 아껴야 하는 단말에 탑재될 리 없다. 전력 소모도 아깝지만, 최대한 움직이는 부품을 줄이는 편이 고장에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름의 고충이 있다. 팬리스(fanless, 냉각팬이 없는) 형 노트북의 경우 CPU의 열을 히트 싱크를 통해 알루미늄 본체로 발산하곤 하는데, 컴퓨터용 CPU는 열이 많다. 여름에 힘겨워지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그 열이 본체에 접착되어 있던 배터리에 전해진다. 리튬 배터리는 열과 상극이니, 배터리가 유난히 빨리 노후화되는 일이 반복된다. 애플이 자사의 컴퓨터 라인에서 인텔의 PC용 CPU를 버리고 아이폰용 CPU를 쓰기로 한 이유에는 이러한 배경도 있다.

PC를 뜯어 보면 가장 부피가 큰 부품이 바로 전원이다. 가벼운 노트북을 샀어도 어댑터의 부피와 무게에 놀라곤 하기도 한다. 반도체에 양질의 전력을 정제해서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 따라서 컴퓨터 조립을 할 때 전원부에 돈을 아껴서는 안 된다는 잠언도 있다.

전기를 다루는 일도 실은 모두 반도체가 처리하고 있다. 전력 반도체, 파워 반도체라고 불리는 반도체들이다. 직류·교류를 상호 전환하거나, 전압이나 주파수 등을 조절하는 제어 처리를 한다.

전력 반도체 업계에 실리콘이 아닌 새로운 웨이퍼 소재가 떠오르고 있다. 손실이 적은 데다가 발열도 더 적은 탄화규소(SiC, 실리콘 카바이드)나 질화갈륨(GaN, 갈륨 나이트라이드) 전력 반도체 시장이 뜨겁다. SiC는 전력을 모터 구동용으로 변환하는데 효율이 높아서 전력소비량을 10~20%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 10년 내 5배의 급성장을 보일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태양광 발전과 전기 자동차의 산업적 의미가 커지면서 이 분야는 뜨거워지고 있다. 예컨대 전기자동차의 모터는 교류로 구동되므로 이를 배터리의 직류 전원으로부터 변환해야 한다.

전자기기 전력 공급 제어를 위한 전력 반도체의 실력이란 얼마나 전력 손실 없이 변환하는지에 달려 있다. 그런데 극한 환경 속에서 실리콘 기반 반도체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반도체는 150도가 넘어가면 도체가 되어 버리는데, 반도체가 각종 산업 현장에 파고들면서 그 환경의 가혹함은 실내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수준을 넘어선다. 종래의 전력 반도체는 일반 메모리 반도체에서 널리 쓰이는 Si(규소) 웨이퍼를 그대로 쓴 것이 90%다. 규소는 지각에서 산소 다음으로 풍부하지만, 그 물질 특성의 한계는 명확하다.

기존 전기자동차용 실리콘 전력 반도체의 경우 수랭식으로 열을 식혀주곤 했지만, SiC로는 500도까지 올라가도 태연하다. 또 에너지 효율도 좋고 전기저항이 매우 낮아 칩 크기를 줄일 수도 있다. 발열이 적으니 냉각 기구도 줄일 수 있어 모듈이 반 이상 크기가 준다. 더 높은 전압과 높은 전류를 다룰 수 있어 시스템 효율도 향상된다. SiC 전력 반도체를 탑재하면 이처럼 크기가 줄고 고온 등 가혹한 운용 환경에서도 가동이 가능해져 전기 자동차용 고효율 SiC 인버터(직류를 교류로 바꾸는 부품, 직류로 바꾸거나 전압을 바꾸면 컨버터)로 각광을 받고 있다. 또한 태양광 인버터 등에도 활용되는 등 그 수요는 점점 늘고 있다.

이렇게 물건이 좋다 보니 전력 반도체의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기차, 자동차, 심지어 자전거나 스쿠터까지 바퀴 달린 모든 것에 모터가 들어가면서 수요는 늘고 있다. 독일 인피니언 테크놀로지, 미국 온세미컨덕터,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일본의 미츠비시전기 등이 유명하지만 반도체 강국 한국은 이 분야에 존재감이 약하다. 다행히 아직 여명기다.

SiC가 좋긴 좋지만 만들기가 어렵다. 현재 원자재 자체 및 가공 단가가 워낙 비싼 데다가, 난도가 높다. 혁신의 여지가 많은 분야다. 오히려 소비자에게는 SiC보다는 GaN이 더 익숙할 수 있는데, 민생용 초경량 어댑터에 적용되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게가 확실히 가벼워지고 열도 나지 않으니 가방 무게를 줄일 수 있다. 고급 멀티 어댑터에 GaN 마크가 자랑처럼 붙기 시작했다. GaN은 비교적 저전압 제품에 널리 활용되기에, 전기자동차 급속 충전기용으로도 적합하지만, 그 제조는 SiC와 마찬가지로 쉽지는 않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산화갈륨(Ga2O3)을 쓴 전력 반도체가 진짜배기라는 풍문이다. 사실인 듯 전력 반도체를 선점하려는 중국과 일본 기업들의 발걸음이 이 분야에서 유난히 빠르다. 국내도 이에 질세라 연구회 등이 설립되어 분주한 모습이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IT레볼루션] [오프라인의 귀환] [우리에게 IT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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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6호 (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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