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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3) 홍성민 에스에너지그룹 회장] 삼성의 ‘신경영’ 같은 ‘뉴 스타트’ 비전 제시 계획 

 

발표 진지하게 경청하던 고 이건희 회장 기억… 에스에너지그룹 목표는 ‘에너지 민주화’

▎11월 초 경기도 판교에 있는 에스에너지 본사에서 만난 홍성민 회장은 “20여 년 동안 기업을 경영하면서 고 이건희 회장님의 경영 능력을 매번 새삼스레 느껴왔다”고 말했다. / 사진:신인섭 기자
“성장과 부침을 겪으면서 20년을 잡초처럼 생존했습니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고 이건희 회장의 경영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매번 새삼스레 느끼게 됩니다.”

삼성전자 출신 창업가인 에스에너지그룹 홍성민(60) 회장의 말이다. 홍 회장은 1983년 말 삼성전자에 석사 출신 공채 1기로 입사했다. 그가 “삼성전자에 입사했을 때 가전제품 분야만 경쟁력이 있었다”고 회상할 정도로 당시 삼성전자는 국내 기업에 불과했다. 심지어 삼성전자의 가전 부문 구호가 ‘타도 금성(현 LG전자)’이었다고 하니 가전 분야에서도 국내 1위를 하지 못했던 때다.

하지만 홍 회장은 1990년대 반도체에서 시작해 모바일로 이어지는 삼성의 글로벌화를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삼성의 경험을 에스에너지그룹 경영에 접목하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분사해 에스에너지 설립


에스에너지그룹은 2001년 삼성전자에서 분사한 에스에너지를 모태로 한다. 홍 회장은 삼성전자에 입사해 당시 가장 잘나갔던 가전 부문에 배치됐다. 1개월 만에 삼성전자가 에너지 분야에 뛰어들기 위해 신설한 태양광발전사업팀 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입사 1개월 만에 팀장을 맡은 것은 사내에 이슈가 될 정도로 빠른 승진이었다.

삼성에서 임원이 되려면 거쳐야 하는 관문들이 있다. 신입사원 교육을 담당하는 지도 선배, 신입사원 공채시험 출제위원, 면접위원 등이다. 홍 회장은 여기에 모두 참여했다고 하니 회사 내 평가는 상당히 좋았을 것이다. 홍 회장은 “내가 임원 코스를 밟았다는 것은 잘 모르겠고, 회사에서 하라고 했으니 했을 뿐”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삼성전자에서 임원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2001년 태양광발전사업팀의 분사가 결정됐기 때문이다. 이 팀을 이끌던 홍 회장은 함께 일했던 4명의 전문가와 독립을 결정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20여 년 동안 태양광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했다곤 하지만 당시 한국에는 변변한 태양광 에너지 관련 기업이나 시설이 없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만 하는 허허벌판에 서게 된 것이다. 홍 회장이 “당시 에스에너지는 보따리 장사에 불과했다”고 웃을 정도다.

에스에너지는 태양광 모듈 제조 판매에 집중했다. 모듈 설치 의뢰가 오면 무인도든 어디든 달려갔다. 선박 접안이 안 되는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에 태양광 모듈을 설치하기도 했다. A/S 의뢰가 오면 헬기를 띄워서라도 이어도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렇게 국내에서 실적을 하나둘씩 쌓으면서 관급 공사를 늘려갔다. 설립 3년 만에 매출 100억원을 올렸다.

호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태양광 시장이 부상하면서 많은 기업이 이 시장에 뛰어든 것. 홍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R&D에 투자했다. 2005년 국내 최초로 BIPV(건물일체형 태양광 발전시스템) 모듈을 개발해 청와대 여민관에 설치했다. 건물을 지을 때 태양광 모듈을 마치 건설자재처럼 사용해 건물에 태양광 모듈을 적용할 수 있게 됐다.

제품에 자신이 생겼고 이후 수출에 도전했다. 하지만 국내의 조그마한 기업을 믿어줄 해외 기업은 전무했다. 제품 설명서를 들고 해외 바이어를 찾아다녔다. “우리 제품 한번 써달라”라는 읍소까지 했다. 그렇게 2008년 독일 뮌헨에 있는 태양광 모듈 설치기업에 컨테이너 한 대 분량의 모듈을 수출했다. 수출액은 단지 3억원으로 미미한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후 에스에너지는 매출액의 70~80%를 수출하는 수출 기업으로 변모했다.

2010년대 중반 에스에너지는 3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호시절을 맛봤다. 그런데 홍 회장은 “그때가 우리에게 위기였다”고 말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기자를 보고 홍 회장은 말을 이어갔다.

“회사는 급성장했지만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내실은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죠. 제품의 클레임부터 회사 내부의 문제까지 다양한 이슈가 터져 나왔고, 그 문제를 지금도 해결하고 있어요.” 기업의 성장에만 집중한 결과였다는 설명이다.

홍 회장은 미래에 대한 대비, 즉 기업의 발전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4년 1월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운영 기업 에스파워를 설립했고, 같은 해 2월 수소연료전지 시스템 설계 및 판매를 하는 에스퓨얼셀을 연달아 설립했다.

특히 에스퓨얼셀의 설립과 성장은 놀랍다. 에스퓨얼셀은 GS칼텍스 연구소의 연료전지 개발 인력을 흡수해 설립한 기업이다. 홍 회장은 “GS칼텍스가 수소연료전지 개발을 포기하면서 이 연구소를 매물로 내놓았고, 우리가 인수했다. 당시 연구팀이 30명 정도 됐는데, 그중 7명을 데려와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소에 불과했던 에스퓨얼셀은 설립 4년 만에 상장에 성공했다. 지금은 한해 40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에스에너지는 두 계열사와 시너지를 만들면서 매해 2000억~3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중남미 태양광 시장에도 진출 성공

그룹의 모태인 에스에너지는 기술개발과 리스크 관리 등을 해오면서 수출 실적을 계속 늘려가고 있다. 유럽과 미국뿐만 아니라 2017년부터 중남미 태양광 시장 진출에 성공했다. 지난 9월에는 칠레에 100억원 규모의 6.6MW 태양광발전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성과를 냈다. 특히 에스에너지 해외 진출 프로젝트는 한국수력원자력과 남부발전 등 기관의 지원을 받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홍 회장은 현재의 에스에너지그룹이 가능한 이유를 “기업은 성장과 발전이라는 두 축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라고 설명한다.

홍 회장이 말한 기업의 발전은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다. 홍 회장은 “기업의 성장은 전문경영인 체제로도 가능하지만, 미래에 대한 대비는 오너 즉 창업가가 아니면 어렵다”면서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도 고 이건희 회장의 전략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태양광 관련 기업이 수소연료전지 기업까지 운영하는 사례는 국내외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독특한 도전이고 선례가 없는 전략이다. 그런데도 홍 회장은 오히려 ‘배포’가 커졌다. “에너지 민주화를 이루는 게 꿈이다”라는 말을 할 정도다.

에스에너지와 에스퓨얼셀을 통해 에너지원을 화석연료에서 독립하겠다는 포부다. 낮에 태양광 에너지를 사용하고, 밤에는 저장한 태양광 에너지를 통해 수소에너지를 생산한다는 전략이다. 24시간 동안 신재생에너지로만 생활할 수 있는 에너지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꿈이다.

2021년이면 에스에너지 설립 20주년이다. 홍 회장은 ‘뉴 스타트’라는 비전을 발표할 계획이다. 1993년 6월 고 이건희 회장이 독일 프랑크프르트에서 강조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신경영 선언’과 맞닿아 있다.

삼성 출신 창업가로서 에스에너지그룹에 이식하고 싶은 삼성 문화는 ‘조직 관리’와 ‘인사 관리 시스템’이다. 이를 도입해 그룹의 질적인 변화를 이룰 계획이다. 홍 회장은 “에스에너지그룹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삼성에서 배운 것을 이식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고 이건희 회장에 대한 추억을 물어봤다. 홍 회장은 “과장 시절에 신사업 발표 자리에서 딱 한 번 직접 뵈었다. 발표자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하는 모습이 인상에 남았다”고 말했다. 홍 회장도 회사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조용하지만 빠르게 결단하고 실행 중이다.



- 최영진 기자 choi.youngjin@joongang.co.kr

1559호 (202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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