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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배터리를 ‘연료통’으로 본 국토부] 리콜 승인 과정에서 차주 ‘경제적 보상’ 막아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전기차 경쟁력은 ‘전비’ 아닌 ‘주행거리’… 전기차 차주 집단소송 확대될 듯

▎지난 10월 4일 대구시 달성군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충전 중이던 전기차 1대가 전소했다. / 사진:달성소방서
잇따른 전기차 화재 사태에서 전기자동차 차주가 사실상 유일한 피해자가 됐다. 완성차업체가 전기차 화재 원인 규명을 이유로 급히 내놓은 ‘충전량 제한’ 임시 리콜을 정부 당국이 용인해주면서다. 완성차업체는 배터리 완충 시 반복됐던 화재를 줄일 수 있는 방편을 얻었지만, 차주는 되레 주행거리 감소 부담을 떠안게 됐다. 전기차 리콜 통보를 받은 한 차주는 “1회 충전으로 400㎞ 넘게 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전기차를 샀는데, 리콜로 주행거리가 줄었다”며 “전기차 화재 피해 부담을 차주에게 전가한 격”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지난 10월 현대자동차가 낸 코나EV 배터리감시시스템(BMS) 업데이트 방안과 지난 11월 한국GM이 제출한 볼트EV 충전량 제한(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리콜 방안을 각 완성차업체의 자발적 리콜로 즉각 승인했다. 특히 한국GM은 볼트EV 화재가 고전압 배터리 완충 및 최대 충전량 근접 시 발생했다는 점을 들어 충전량을 90%로 제한하는 리콜안을 제출했음에도 국토교통부에 의해 승인됐다. 현대차는 배터리 충전량이 80%·90%를 넘어설 시 각 10분의 점검을 추가하는 충전 지연을 통한 충전량 제한을 택했다.

경제적 보상 검토 안 한 국토교통부


문제는 완성차업체의 리콜에 소비자 배상 방안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자동차 리콜과 관련한 현행법 자동차관리법은 제31조에서 ‘연료소비율의 과다 표시’, ‘원동기 출력의 과다 표시’에는 시정조치를 갈음해 국토교통부에 경제적 보상 계획을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와 한국GM은 전기차 화재 리콜 계획을 제출하면서 소비자 보상 계획을 뺐고,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리콜 계획을 승인했다. 예컨대 한국GM 볼트EV의 공인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414㎞지만, 충전량을 90%로 제한할 경우 주행거리는 40㎞ 넘게 줄어든다.

국토교통부는 충전량 제한 시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줄어들 수 있지만, 전기차의 연비 개념인 ‘전비’는 줄어들지 않는 것으로 봤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연료소비율의 과다 표시는 결국 연비가 줄어드느냐 줄어들지 않느냐가 기준”이라면서 “전기차의 연비인 전비의 경우 충전량 제한에도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50ℓ 기름이 들어가는 내연기관차의 연료통을 40ℓ로 줄인다고 해도 연비 기준인 ℓ당 ㎞는 줄어들지 않는 것과 같아 보상은 검토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자동차업계 전문가들은 국토교통부가 전기차의 배터리를 내연기관차의 연료통과 동일 비교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연비가 경쟁력인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는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가 핵심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학과)는 “전기차 경쟁력의 핵심은 같은 배터리 용량을 가지고 얼마나 더 높은 효율을 내느냐 하는 전비 싸움이 아니라 한번 충전으로 얼마나 많이 달릴 수 있느냐가 판가름”이라며 “전기차 세대교체 과정도 더 많은 배터리를 싣고 더 많이 달리는 전기차의 등장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실제 전기차는 공인 인증에서 1회 충전 시 주행가능거리를 배터리 용량으로 나눈 전비보다 얼마나 많은 거리를 달릴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주행거리 인증을 담당하는 환경부에 따르면 전기차는 완충 후 배터리 방전까지 주행을 기준으로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를 인증하고 있다. 일정 구간(수십㎞) 주행 후 ㎞/ℓ 방식으로 인증되는 내연기관차 연비 인증과 대조된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전비는 전기차를 제조한 완성차업체가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에 대한 부수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할 뿐 전기차와 관련한 공식 인증에는 쓰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전비는 전기차 보조금 산정에서도 부수적인 역할에 그치고 있다. 전기차 성능별 차등 보조금 정책이 처음 시작됐던 2018년 국고보조금 책정 현황에 따르면 보조금은 전비보다 주행가능거리에 초점이 맞춰졌다. 당시 테슬라 모델S 전비는 ㎾h당 4.4㎞로 1㎾h로 7㎞를 넘게 갈 수 있는 현대차 아이오닉보다 효율이 떨어졌지만, 모델S에 최대 보조금이 책정됐다.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에서 모델S 성능이 아이오닉보다 2배로 좋았기 때문이다. 자동차관리법 전문 하종선 변호사는 “전기차는 주행가능거리가 핵심”이라며 “국토교통부가 전비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리콜 시 경제적 보상을 검토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전기차 화재 사태 속에서 차주들의 피해는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전기차 화재 우려에 따른 리콜이 현대차나 한국GM을 넘어 글로벌 주요 완성차업체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해외에선 LG화학 배터리가 장착된 코나 EV나 볼트EV뿐만 아니라 삼성SDI 배터리가 장착된 BMW, 포드의 전기차 모델에서도 화재 가능성이 발견, 리콜이 진행중이다. 하종선 변호사는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해외 리콜 결정 후 판매국 전반으로 리콜을 확대한다”면서 “그러나 국토교통부가 전비 기준을 변경하지 않는 한 소비자 보상은 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성능 줄었다” 소송 통한 자력구제 나선 차주들

국토교통부의 이 같은 대응은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의 대응과도 배치된다. 지난 10월 국토교통부는 현대차가 낸 배터리셀 불량에 따른 화재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BMS 소프웨어를 업데이트하겠다는 리콜 계획을 승인했다. 반면 NHTSA는 “배터리셀 불량은 하드웨어인데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는 이유를 제시하라”는 입장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현대차는 NHTSA에 제출한 리콜 보고서에 배터리셀 내부 손상 가능성에 더해 “배터리관리시스템(BMS) 제어 소프트웨어와 같은 전기적 결함도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을 언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차주들은 집단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국토교통부의 완성차업체 비호로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소송을 통한 자력구제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현대차 코나EV 차주 173명은 지난 11월 12일 현대차의 경제적 보상을 청구하는 소장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접수했다.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정세 이준호 변호사는 “현재의 전기차 리콜은 배터리 안전성을 높이는 조치가 아니라 화재만 막는 임시 조치”라며 “화재를 근본적으로 예방할 수 없는데다 차주는 구매 당시와 다른 성능의 차량을 타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기차 차주들은 차량 가치 하락은 물론 사용상의 불편에 따른 손해를 배상받아야 한다”면서 “전기차 화재 관련 부실 리콜에 대한 집단소송을 한국GM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1563호 (202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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