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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라잇루트 신민정 대표] 2차전지 분리막으로 옷을 만든다고요? 

 

분리막의 고기능성, 고어텍스 못지않아… 의상 상용화 가능성 높아

▎신민정 라잇루트 대표가 원단 제조에 사용된 2차전지 분리막을 설명하고 있다. 신 대표 뒤에 분리막을 사용해 만든 울 코트 시제품이 걸려 있다. / 사진:임익순 객원기자
2019년 11월 즈음, 한 해 매출 1000억원이 넘는 중견기업 대표와 패션 관련 사회적기업의 20대 창업가가 만났다. 2005년 설립된 이 중견기업은 리튬이온 2차전지의 분리막 전문 제조기업이다. 2차전지 분리막 제조 기업과 패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은 이 자리에서 함께하자고 의기투합했다. 2차전지 중요 소재인 분리막으로 의상을 만든다는 황당한(?) 도전이었다

두 사람이 만난 지 1년 후, 젊은 창업가는 분리막을 이용한 고기능성 옷 제작 상용화 막바지 단계를 밟고 있다. 폐배터리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2차전지 제조업체에 하나의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사회적기업 라잇루트 창업가 신민정 대표 이야기다. SK이노베이션은 2020년 말 진행한 ‘환경 분야 소셜 비즈니스 발굴 공모전’에서 라잇루트를 대상으로 선정해 2억원의 성장지원금을 수여 했다. 분리막을 이용한 의상 원단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신 대표에게 분리막의 기능성을 알려주고 분리막을 제공해주고 있는 중견기업가는 더블유스코프코리아 최원근 대표다.



분리막 제조기업 대표 만난 후 도전 결정

지난해 12월 17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디자인지원센터에서 만난 신 대표는 “최 대표님을 통해 2차전지 분리막이 고어텍스만큼의 고기능성 필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도전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2차전지는 쉽게 말해 충전으로 반복 사용이 가능한 배터리다. 휴대전화, 노트북, 태블릿 PC, 등 휴대용 전자기기부터 하이브리드·전기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된다. 2025년이면 2200만대까지 늘어나는 전기차 시장은 2차전지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올 전망이다.

그러나 문제가 존재한다. 폐배터리 처리 솔루션이 제대로 없다는 것. 전기차에 사용되는 2차전지는 500회 정도 충전을 하면 효율이 떨어져 교체해야 하는데, 이 때 폐배터리는 에너지저장장치(ESS)용으로 재사용되거나 이를 분해해 리튬과 코발트 등의 희귀금속을 추출한다. 희귀금속 추출의 단점은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것. 게다가 리튬 2차전지에 사용되는 주요 광물인 리튬 코발트, 니켈, 망간 등은 유독 물질이다. 각 나라와 기업들이 폐배터리 처리 솔루션을 찾는 데 집중투자를 하는 이유다.

리튬 2차전지의 4대 소재는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이다. 양극재와 음극재가 직접 만나면 화재 위험성이 커지는데, 이 때 폴리에틸렌 또는 폴리프로필렌 소재의 분리막이 양극재·음극재의 물리적 접촉을 차단한다. 분리막 내부에 있는 미세기공은 리튬이온이 두 전극 사이를 이동하는 통로다. 방수와 투습 등의 기능이 있는 고어텍스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신 대표는 “분리막은 고어텍스의 방수, 방풍 등의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고기능성 필름”이라고 설명했다.

분리막을 원단 소재로 사용하려면 몇 단계를 거쳐야 한다. 분리막 안과 밖에 울 같은 의류 소재를 덧대려면 접착제를 사용해야 한다. 접착 과정에서 분리막의 미세한 구멍을 막는 게 문제점이다. 또 접착 후 열을 쐬고 압력을 줘서 의류 소재를 단단히 붙여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분리막의 경화(굳어지는 것)가 진행되고, 그 결과 원단 자체가 딱딱해져 버린다. 분리막의 경화를 막는 온도와 압력 수치 및 속도를 찾아야 했다.

신 대표가 찾은 방법은?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케미컬 공장과 연구소를 찾아다녔다. 분리막의 미세 구멍을 막지 않는 접착제, 각각의 원단 소재를 분리막과 접착이 잘되게 하는 방법, 분리막이 경화되지 않는 온도와 압력을 찾아야 했다.

신 대표와 인터뷰 하던 날 분리막을 사용한 울 코트 시제품이 사무실에 도착했다. 일반 코트처럼 보였다. 원단을 만져보니 안에 분리막 필름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느끼기 어려웠다.

여기서 궁금증 하나. 화학 물질로 되어 있는 분리막을 사용하는데 피부에 유해하지 않을까. 신 대표는 “물론 유해성 테스트도 거쳤다. 납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유해물질 성분 분석을 했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분리막의 유해물질은 휘발성으로 제조할 때 사라진다는 설명이다.

분리막을 이용한 고기능성 원단은 고어텍스보다 가격 경쟁력이 좋다. 분리막은 현재 재활용이 어려워서 기업마다 처치 곤란이라 고어텍스 필름보다 수십 배 저렴한 가격으로 원재료를 얻을 수 있다. 신 대표는 “우리는 고어텍스보다 훨씬 저렴한 고기능성 원단을 만들고, 폐배터리 처리 방법에 하나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회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아웃도어 의류 업체는 고어텍스를 대체할 수 있는 대체 소재를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고어텍스 원단 가격이 모두 해외에서 수입되어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라잇루트가 ‘생뚱맞은(?)’ 도전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상용화 설비 구축 위해 투자 유치 계획

향후 신 대표가 주력하는 것은 원단을 만들 공장 설비 구축이다. 이를 위해 창업 이후 처음으로 투자 유치를 계획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진행한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후 다양한 투자사에서 연락을 해왔다. 신 대표는 “우리가 사업을 하는 이유, 가치를 알아주는 곳과 손잡으려 한다”고 강조했다. 투자 유치를 통해 공장 인프라를 마련, 2021년 후반기에 분리막을 이용한 의류 원단을 상용화할 계획이다.

라잇루트는 디자이너 지망생에게 실무교육을 제공하는 ‘디자이너 프로젝트’로 유명하다. 참가비 15만원을 내면 3~4개월 동안 패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을 마치면 직접 옷을 제작하고, 이는 편집숍과 무신사 같은 이커머스를 통해 판매할 수 있다. 이런 시도가 알려지면서 유재석·슈퍼주니어·몬스타엑스·세븐틴 등 연예인뿐 아니라 코레일·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정부기관의 디자인 의뢰를 해와 단체복 등을 제작하면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신민정 대표는 “예전에는 사회적기업으로서 진정성만 고민했지만, 요즘은 라잇루트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최영진 기자 choi.youngjin@joongang.co.kr

1567호 (202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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