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이종우 증시 맥짚기] 올해 기업이익 늘겠지만 주가 상승 부담 무거워져 

 

새 플래그십 찾기 어려워지자 예탁금 급감 순환매 우려

▎기업들의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가 이어지면서 증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 사진:연합뉴스
1월 마지막 주부터 기업들의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가 본격화됐다. 지금까지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코로나19에 대응해 기업들이 비용을 통제하고 재고를 줄이는 대응에 나섰는데 그 효과가 4분기에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미국 기업도 사정이 비슷하다. 최근 미국 금융기업들이 시장 예상을 훨씬 웃도는 이익을 발표했다. 이미 실적 발표를 마친 스탠다스앤푸어스(S&P)500 기업 중 90% 정도가 시장의 예상보다 많은 이익을 내놓았다.

당분간 기업 이익이 시장의 기대에 못 미쳐도 주가가 하락하지 않는 대신 이익이 기대 정도이거나 그 이상일 경우 주가가 크게 오르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 걸로 보인다. 이익이 대폭 감소하지 않는 이상 실적 때문에 주가가 떨어지는 일은 없다는 의미인데 삼성전자가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4분기 영업이익이 9조3000억원 정도 될 걸로 봤지만 결과는 기대에 못 미치는 9조원에 그쳤다. 그런데도 주가는 발표 당일을 포함해 3일간 18%나 상승했다. 4분기가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2021년은 반도체 빅사이클로 인해 이익이 크게 개선될 거란 기대가 작용한 것이다.

시장 전체적으로도 비슷한 그림이 만들어졌다. 지난해 11월 이후 코로나19 재확산과 일회성 비용의 증가로 4분기 영업이익 기대치가 완만하게 줄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에 관심을 가진 투자자는 많지 않았다. 그보다 올해 영업이익 전망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코로나19로 기업이익이 줄어든 데 따른 기저효과와 경기 회복에 따른 이익 증가 기대가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주가가 오르면 악재가 호재로 바뀐다. 실적도 예외가 아닌데 지금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남은 과제는 시장이 어디 정도까지 상승을 용인할 것인가이다. 시간이 갈수록 주식시장에서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한 달 사이에 LG전자 주가가 80% 상승했고, 현대차 역시 ‘애플 카’를 재료로 이틀간 40% 넘게 급등했다. 시가총액 규모가 10위 안에 있는 기업이 이렇게 단기에 급등하는 건 좀처럼 보기 힘든 현상이다. 그 영향으로 LG전자의 올해 순이익이 2조2000억원으로 늘어도 주가순이익배율(PER)이 13배가 될 정도로 평가가 높아졌다. 현대차 역시 순이익이 5배 늘어도 해당 수치가 13배다.

이익 증가의 상당 부분이 주가에 반영된 상태

최근 경제 여건도 이익 개선에 도움을 줬다.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빠르게 줄면서 내수 경기 호전에 도움이 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수출은 코로나19로 인한 기저효과 없이도 두 자릿수 증가를 기록했다. 반도체와 자동차, 무선통신기기 수출이 특히 강했는데, 수출이 이렇게 늘어난 건 미국과 중국의 제조업 경기가 회복한 덕분이다.

우리 수출과 높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미국 공급관리협회(ISM) 제조업지수가 2017~2018년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2017~2018년에 우리 수출 증가율이 40%에 육박했고, 기업이익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앞으로 수출 증가도 기대해 볼만하다. 중국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역시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는 확장을 계속하고 있다. 상반기 세계 경제는 코로나19로 인한 기저효과 덕분에 많은 나라에서 강한 반등이 나타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전에 1조9000억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대책을 발표했다. 의회 협상 과정에서 부양책 규모가 줄어드는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민간 수요 회복에 상당한 힘이 될 것이다. 중국도 오는 3월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의미하는 연례 정치 행사)에서 소비 부양 조치를 발표할 걸로 보인다. 기저효과로 인한 경제 지표 회복과 추가 부양책 그리고 백신 효과를 감안할 때 이익 증가 기대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주가인데 많은 기업의 이익 증가가 이미 주가에 충분히 반영됐다. 주식시장에 공짜는 없다. 미래 가치가 주가에 앞당겨 반영됐다면 나중에 그 값을 치러야 한다. 이익이 늘어나도 주가가 오르지 못하든지, 주가가 떨어져 이익 수준에 맞추든지 둘 중 하나가 벌어질 수 있다. 이를 넘는 방법은 LG전자나 현대차 같이 시장에 영향력이 크면서 이익도 크게 증가하는 다른 주식이 나오는 것이다.

시장은 새로운 개념의 대형 주도주를 원해

미국에서 애플·구글 등 빅테크 기업의 주가가 급등하자 우리시장에서도 반응이 나타났다. 작년에 주가 상승을 이끌었던 성장주가 다시 주목을 받았다. 물론 이전과 똑같은 형태는 아니었다. 네이버·다음 등 인터넷 관련주와 2차 전지가 상승에 참여한 반면, 상승의 또 한 축이었던 바이오는 대열에서 탈락했다. 바이오가 상승에서 제외된 건 백신 접종으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란 재료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2차 전지는 미래 산업이라는 인식이 강해 주가가 꾸준히 올랐다.

반면, 인터넷 관련주는 한동안 주가가 지지부진했었다. 네이버 주가가 30만원에 도달한 건 작년 8월이다. 이후 코스피(KOSPI)가 급등했지만 네이버는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다른 기업과 주가 상승률이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고 미국 빅테크 기업 주가 상승을 계기로 격차를 줄이는 과정이 시작됐다. 키 맞추기는 주가 차이가 줄어들면 상승이 약해지는 단점이 있다. 자력보다는 외부의 힘에 의해 주가가 오르기 때문인데 조만간 인터넷 관련주가 벽에 부딪칠 가능성이 있다.

시장은 성장주와 업종 대표주를 뛰어넘는 새로운 주식을 원하고 있다. 아직 그 대상이 나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시장이 하나의 주도주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보다 상승 종목이 계속 바뀌고, 재료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지는 형태로 움직이고 있다. 이 상황이 빨리 바뀌지 않으면 순환매를 이어가다 중소형주처럼 전혀 다른 개념의 주식으로 주도권이 넘어갈 수 있다. 투자자입장에서 달갑지 않은 변화다. 주도주가 시장을 끌고 갈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이 높아졌다는 사실이 매매를 통해 증명된 것이기 때문이다. 증가하던 고객 예탁금이 74조원을 정점으로 10% 가까이 줄었다. 눈에 보이는 대안이 없다는 사실이 발 빠른 투자자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는 모양새다.

※ 필자는 경제 및 주식시장 전문 칼럼니스트로, 오랜 기간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해당 분석 업무를 담당했다. 자본시장이 모두에게 유익한 곳이 될 수 있도록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기본에 충실한 주식투자의 원칙] 등 주식분석 기본서를 썼다.

1571호 (2021.02.01)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