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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명이 즐겁게 달리는 축제 

SPORT|스탠다드차타드 싱가포르 마라톤 

지난 12월 7일 오전 8시10분. ‘스탠다드차타드 싱가포르 마라톤 2008’의 10km 여자 마라톤 경기 출발 시각이 5분 남아있었다. 출발 지점에 모인 1000여 명의 여성 참가자들은 긴장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오히려 행사 진행자의 구호에 맞춰 여러 명이 춤을 췄다.

진행자가 “Can we do it(할 수 있습니까)?”이라고 묻자 참가자들은 “Yeah(네)!”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까만 눈썹을 붙이고 우스꽝스런 모자를 쓴 몇몇 여학생들은 까르르 웃었다. 스탠다드차타드 싱가포르 마라톤대회는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 중 참가자가 가장 많다.

정부기구인 싱가포르 스포츠협의회와 싱가포르 체육협회가 이 대회를 주최한다. 1980년대 후반 시작된 싱가포르 마라톤대회는 2002년부터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후원하면서 참가자 수가 꾸준하게 늘었다. 2002년 6300명이던 참가자 수가 2008년엔 5만 명으로 증가했다. 이 중 2700명은 말레이시아, 홍콩, 필리핀 등 62개 국가에서 온 외국인 참가자였다.

이 마라톤대회가 국제적인 인기를 끄는 비결은 뭘까. 영국 런던에서 이번 경기를 취재하러 온 마라톤 전문 프리랜서 기자 부처 패트는 “뛰는 거리를 조절해 종목을 다양하게 구성한 게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스탠다드차타드 싱가포르 마라톤대회에는 풀코스 외에도 하프, 10km, 어린이 대상 750m, 장애인 대상 10km 휠체어 경기가 있다.

이번 10km 경기 참가자는 2만262명으로 전체 참가자 수의 40%를 차지했다. 이밖에 하프 1만2254명, 어린이 2068명이 달렸다. 풀코스 참가자 수는 1만5429명이었다. 평소에 수영만 한다는 림쳉택(49) 싱가포르 스탠다드차타드은행 대표는 이날 10km를 완주했다. 경기를 마치고 결승선이 있는 파당 지역에서 만난 그는 “주로 아시아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고객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대회를 후원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함께 뛰는 가족도 눈에 띄었다. 브루나이에 거주하는 미국인 브리팅햄 린다는 10km 여자 경기에 딸 케이트(15)와 참가했다. 출발선에서 만난 그는 “2007년엔 하프 마라톤 경기에 혼자 뛰었는데 이번엔 딸에 맞춰 10km를 선택해 함께 달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마라톤 코스 근처에는 공원, 해변이 있다.

출발선은 싱가포르의 금융회사들이 모여 있는 중심가에 있다. 풀코스 경주로는 이후 강가에 있는 공원을 지나 바닷가 공원으로 이어진다. 하프 마라톤 경기에서 3위를 차지한 김용택(30) 씨는 “경치가 좋아 달리는 동안 신이 났다” 며 “국내 경기와 달리 기록보다 참여에 의미를 두고 즐겁게 달리는 참가자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지난 10월 국내 ‘2008 아디다스 킹 오브 더 로드’ 마라톤대회 10km 경기에서 우승해 이번 대회에 초청받았다. 그를 포함해 한국인 27명이 이번 대회에 참가했다. 참가자를 배려하는 여러 제도는 스탠다드차타드 싱가포르 마라톤대회의 특징이다. 예컨대 마지막 주자가 결승선에 들어올 때까지 도로 교통을 통제한다.

새벽 1시부터 정오까지 모든 경주로를 대상으로, 그 이후에는 주자 주변 도로의 교통을 통제한다. 경기 시작 전날 저녁에는 참가자를 대상으로 파스타 파티를 연다. 대회 당일 결승선 부근에서는 비닐 공 안에 서서 달리는 기구 등 어린이가 즐길 수 있는 놀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싱가포르는 12월에도 최저 온도가 섭씨 25도를 넘을 정도로 덥다. 습도도 높다. 싱가포르 스포츠협의회는 참가자들이 더위를 덜 타도록 모든 종목의 출발 시각을 이른 아침으로 당겼다. 풀코스는 새벽 5시30분에 출발했다. 또 출발선에서 3km가 지나서는 1.5km마다 급수대를 설치했다. 싱가포르 스포츠협의회의 온진텍(溫仁德·46) 대표는 “무척 덥지만 뛸 만하다”며 “오히려 더운 날씨가 도전정신을 불러 일으킨다”고 말했다.

이날 풀코스에서 1위를 차지한 케냐의 키베 루크(26) 선수는 2시간 13분 1초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정오가 지난 시각에도 주자가 결승선으로 들어왔다. 대회의 모토인 ‘Run your own race(당신의 속도로 달리세요)’에 맞게 천천히 경기를 완주한 사람들은 더운 날씨에 6시간 이상 달렸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힘찬 모습이었다.

이날 하프 마라톤 경기에 참가한 말레이시아 민영 방송사 애스트로 올 아시아 네트워크의 오레건 안토니(42) 최고운영책임자는 “2009년에 다시 싱가포르를 찾겠다”며 “더웠지만 기분은 참 좋았습니다. 한번 참가해보세요” 라고 말했다.

‘스포츠 도시’로 뛰는 싱가포르


싱가포르 스포츠협의회는 2008년 스탠다드차타드 싱가포르 마라톤대회 외에도 여러 굵직한 스포츠 대회를 개최했다. 금융과 무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싱가포르가 스포츠 산업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뭘까. 마라톤대회 결승선 부근에서 싱가포르 스포츠협의회의 온진텍 대표를 만나서 물었다.

2008년엔 어떤 스포츠 대회를 개최했나.
국제자동차연맹(FIA)에서 주관한 자동차 경주인 2008 포뮬러 원(F1) 싱텔 그랑프리, 요트대회인 볼보 오션 레이스, 아시아프로골프투어 바클레이스 싱가포르 오픈을 유치했다.

이 같은 대회를 적극 유치한 이유는.
스포츠 대회 개최는 지역 경제 발전을 돕는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대회와 관련해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많은 일자리가 창출된다. 마라톤대회 같은 경기는 시민들이 건강한 생활을 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현재 싱가포르 인구가 약 460만 명인데, 이 중 1% 정도가 마라톤대회에 참가한다. 여러 행사에 참가하며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2001년에 스포츠 산업 발전 계획을 세워 다각도로 사업을 벌여 왔다.

경제 위기가 스포츠 산업 육성을 방해하진 않나.
경제 위기가 스포츠 산업을 키우는 데 어느 정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기업의 후원을 받는 프로젝트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젝트 운영비의 대부분은 정부 지원금이니 경기 침체의 영향을 크게 받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한편 이런 상황에서도 싱가포르의 DBS은행과 OCBC은행이 2008년부터 3년 동안 매년 100만 싱가포르달러를 후원하기로 했다.

앞으로 어떤 대회를 열 계획인가.
2009년에는 젊은 선수들이 참가해 다양한 스포츠 경기를 하는 제1회 아시안 유스 게임을 싱가포르 교육부와 함께 개최할 계획이다. 이밖에 2010년에는 제1회 유스 올림픽, 2011년에는 월드 네트볼(농구와 비슷한 구기종목) 챔피언십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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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호 (2008.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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