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th

사진 속 의사들 

 

긴 눈으로 보면 기초의학이 튼튼하지 않은 의학은 사상누각일 뿐입니다. 기초의학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만든 상이 바로 분쉬 의학상입니다

▎권성원 한국전립선관리협회 회장

지난달 어느 주말 손자들을 데리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전을 보러 갔습니다. 예술의전당 지하 갤러리 앞을 지나는데 낯익은 이름이 붙은 사진전 간판을 봅니다. 김중만이 만난 ‘한국을 빛낸 20인의 의사들’, 그 위에 ‘분쉬 의학상 20주년 기념’이라는 작은 글씨가 보입니다. 우선 분쉬 의학상을 소개합니다. 1901년 조선의 운명이 풍전등화이던 시기에, 고종의 시의(侍醫)로 한국에 온 독일인 리하르트 분쉬(Richard Wunsch)란 의사가 계십니다.

분쉬 의학상은 이 분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1990년 대한의학회가 독일 제약기업 한국 베링거 인겔하임과 함께 탁월한 연구업적을 쌓은 의학자들에게 주는 큰 상입니다. 기초의학을 주로 하며 순수하게 학문적 기여를 한 선생님들에게 주는 상이죠. 재미있는 것은 김중만이라는 사진작가 눈을 통해 그동안의 수상자 20인의 모습을 예술적으로 조명한 것입니다. 솔잎만 먹는 송충이처럼 그저 의학 연구라는 한 우물만 파는 분들의 학문적 고집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사진들입니다. 선배, 동료, 후배인 선생님들의 면면을 보면 진실로 그들은 열악한 연구 환경 속에서도 오늘의 의료선진 한국을 끌고 달려온 기관사들입니다.

사실 분쉬상의 배경에는 쓰디쓴 의료계의 현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의학이 발전하려면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생화학, 예방의학 등 기초의학 연구가 활발해야 합니다.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 위주의 삶이 보편화하다 보니 모든 의사가 윤택한 삶이 보이는 임상의학 쪽으로만 줄을 섭니다. 연구 업적이 금방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길고 긴 세월을 춥고 배고픔을 참아야 하는 기초의학 줄에는 서는 사람이 점점 줄어듭니다. 긴 눈으로 보면 기초의학이 튼튼하지 않은 의학은 사상누각일 뿐입니다. 그래서 기초의학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이 바로 분쉬 의학상입니다.

분쉬 선생을 돌이켜봅니다. 그가 조선에 왔을 때 가장 놀란 것은 새벽녘에 많은 사람이 길이나 논밭에서 대변을 누면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었습니다. 골목마다 널린 대변 속 세균은 지하수로, 우물로, 음식으로 전파됩니다. 콜레라, 이질이 창궐하고 떼죽음을 당해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이 무렵 많은 선교사가 서양의학을 이 나라에 들여오고 현대적인 질병 치료법을 선보였습니다. 고종의 주치의였던 분쉬 선생의 업적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오물이나 분뇨 수거, 거리 청소, 식품위생 등을 체계화하고 석회를 보급해 전염병 예방사업까지 벌인 것입니다. 바로 현대적인 보건정책의 기틀을 마련한 것입니다. 당시로서는 진실로 획기적인 기여를 한 것입니다. 수많은 백성을 전염병으로부터 살려낸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을사늑약이 맺어지고 고종이 쫓겨나게 될 무렵인 1905년 일본인들에 의해 추방됩니다. 그 후 105년이 지난 오늘의 한국 의학계를 돌아봅니다. 36년간의 식민지를 견딘 나라로써, 온 국토가 초토화된 전쟁을 치르면서도 의료 선진국으로 우뚝 섭니다. 어린아이들을 못살게 굴던 홍역·디프테리아·소아마비, 한여름에도 덜덜 떨어야 하는 학질, 수많은 청춘남녀가 애먹이던 성병, 결핵과 같은 못된 병들을 이 땅에서 몰아낸 것입니다.

최근에는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신종플루와 전투에서도 대승을 거둡니다. 그뿐입니까? 암 질환 치료, 째고 꿰매지 않은 내시경 수술, 로봇 수술은 G20 중에서도 상위권 입니다. 어느 분야는 선진국 의사들까지 배우러 옵니다.

지하의 독토르 분쉬가 오늘의 한국 의학계를 볼 수 있다면 그는 분명히 “분더바 코레아!(한국, 대단하다!)”라고 파안대소할 것입니다. 누가 이런 엄청난 일을 해냈겠습니까? 이 나라의 의사들 괜찮은 선생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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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호 (201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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