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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 BLUE BLOOD] 인도 정치 명문 네루 - 간디 가문 

교육으로 얻은 정치철학 무기로
민주주의 왕조 이루다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사진 중앙포토

현대 명문가를 살펴보면서 거대 아대륙(亞大陸)이자 세계 경제 성장의 견인차인 인도의 유력 가문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가문의 탄생 배경을 알기 위해 먼저 인도라는 나라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인도는 중국·러시아·브라질과 함께 브릭스(BRICs)의 한 축을 이루는 고성장 국가다. 2011년 명목가격 기준 GDP(국민총생산)가 1조8460억 달러로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다. 구매력 기준으로는 세계 3위(4조4700억 달러)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중국과 더불어 초고속 성장 국가의 하나다. 2010 회계연도(2010년 4월~2011년 3월) 경제성장률은 8.5%였고 2011 회계연도는 7.5~8%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2010년 추정치로 2256억 달러를 수출한 세계 17위의 수출 대국이기도 하다. 수입은 세계 11위로 3577억 달러나 된다. 거대한 시장이다. 인구 12억 명의 대국으로 2010년 기준 노동 인구가 4억7800명에 이른다.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노동 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거대 노동 시장과 함께 탄탄한 중산층을 바탕으로 한 내수시장, 그리고 영국식의 체계적 교육 시스템이 인도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인도에 해외 투자가 몰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인도의 민주주의 체제다.

인도는 극우 민족주의 정당부터 공산당까지 다양한 정당이 공존하며 선거로 정권교체가 수시로 일어나는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민주주의 국가가 인도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12억 인구를 먹여 살리고 경제 성장을 이루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나라다. 인구와 경제를 위해선 민주주의를 유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독재 국가를 무색하게 한다.

이런 인도에서 1947년 독립 이후 65년 동안 거의 왕조처럼 군림하고 있는 정치 명문가가 있다. 이 가문을 모르면 인도 현대 역사와 정치는 물론 사회 구조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1889~1964)와 그 외동딸인 최초 여성 총리 인디라 간디(1917~1984), 그리고 그 외손자인 8대 총리 라지브 간디(1944~1991)를 배출한 네루-간디 가문이다. 우리 기업들이 인도에 진출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인도의 명문가다. 그 나라의 정치체제와 이를 이끄는 그룹을 파악하지 못하고선 큰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 특히 인도와 같은 나라는 소수에 집중된 정치권력의 힘이 세다.

네루는 1947~1964년에 총리를 지냈다. 인디라 간디는 1966~1977년에 총리를 지내다 총선에서 정권을 잃고 야당 생활을 하다 권좌에 복귀해 1980~1984년에 다시 총리를 지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직후 자리를 이어받은 라지브는 1984~1989년에 총리를 지냈다. 인도 최대 정당인 인도국민회의를 이끌고 있는 이 가문의 수장이 인도의 실질적 최고 지도자인 총리로 나라를 다스린 기간이 36년이나 된다. 올해로 독립 65주년을 맞는 인도에서 현대 정치사의 절반 이상을 한 가문이 이끈 것이다.

반세기 동안 막전막후에서 인도 지배

네루-간디 가문 출신 총리인 네루와 인디라 간디, 라지브 간디 모두 현직 총리로 재직 중 사망해 국장을 치렀다. 이 가운데 인디라와 라지브는 암살 당했다. 인디라는 인도 최고 종파인 힌두교도와 갈등을 빚고 있던 시크족 경호원들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라지브는 선거 운동 중 타밀 민족주의자들의 폭탄 테러로 숨졌다.


라지브가 숨진 직후 치러진 선거에서 정권은 잠시 야당으로 넘어갔지만 국민회의당은 1991년 정권을 재탈환해 1991~1996년에 나라시마 라울이 총리를 맡았다. 네루-간디 가문에 마땅한 정치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1996년 선거에 패해 다시 정권을 야당에 넘긴 국민회의 2004년 다시 선거에서 승리해 지금까지 집권하고 있다. 국민회의 인도를 통치한 기간은 반세기에 이른다. 하지만 라지브 이후 아직 네루-간디 가문에선 총리를 배출하지 못했다. 때를 기다라고 있는 것이다.

라지브의 부인인 소냐가 현재 집권당인 중도좌파 정당 국민회의 의장으로 가문과 정당을 이끌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인 소냐는 국민회의가 다시 집권했음에도 외국 출신에 대한 일부 국민의 거부감을 우려해 직접 총리를 맡는 대신 경제 전문가이자 소수 민족인 시크족 출신인 만모한 싱을 총리로 내세워 간접적으로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 만모한 싱 총리는 해외 언론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정치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을 하지 않고 경제에 대한 것만 발언하는 등 철저히 경제 총리로 활동하고 있다. 네루-간디 가문과의 관계를 염두에 둔 처신이다.

라지브와 소냐의 아들인 라훌은 42세로 현재 국민회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BBC는 연초 그를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할 젊은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지목했다. 가문에서 4대 총리를 노리고 본격적으로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다음 선거에서 총리 후보로 나설지를 두고 저울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은 나이가 어리고 별다른 공적이 없지만 인도 정치의 막후 실력자인 어머니 소냐, 그리고 가문에 충직한 수많은 대중 정치인의 지원을 받고 있다. 가문의 후광이 있음은 물론이다.

특이한 것은 네루-간디 가문의 구성원 모두가 국민회의에서 활동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디라 간디의 장남으로 정치 기대주였던 산자이 간디(1946~1980)의 부인인 라네카와 그 아들 바룬은 힌두민족주의 정당인 BJP 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산자이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숨진 뒤 시어머니인 인디라와 사이가 틀어지자 의절하고 반대 정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때 집권해 인도 경제 성장의 시동을 걸었던 힌두민족정당 BJP는 현재 야당이지만 재집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네루-간디 가문의 모든 정치적 영광이 선거를 통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독재도, 세습도 없이 오로지 국민의 표로 권력을 유지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네루-간디 가문은 민주주의가 만든 왕조다.

힌두-조로아스터교 가문의 결합

네루-간디 가문이 명문으로 등장한 것은 자와할랄 네루의 할아버지가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한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네루의 증조부인 락시미 나라얀은 카슈미르에서 델리로 이주한 힌두교도다. 그는 법률을 공부해 영국령 인도에서 동인도회사 소속의 첫 인도인 변호사로 활동했다. 네루의 조부인 강가드하르는 델리의 경찰관이었다. 영국이 지배하던 시기에 지배의 첨병이던 동인도 회사 소속 변호사와 경찰관으로 일했지만 이를 문제 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지식인들이 나중에 인도 독립에 앞장섰고 독립을 이루는 주역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네루의 부친인 모틸랄 네루(1861~1931)가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유학한 변호사로 초기 힌두계 독립운동가로 이름을 날렸다. 인도 국민회의 지도자로 두 차례에 걸쳐 의장을 지냈다. 인도 국민회의는 원래 1885년 인도인 지식인, 지주, 상인 등이 영국의 인도 통치를 개선할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다. 영국 통치에 협조하면서 인도인에게 필요한 개혁을 요구하는 단체였는데 1905년 영국이 반 영국 성향이 강한 벵골을 동서로 분할해 통치하려는 시도를 계기로 독립운동단체로 변했다. 1920년대 마하트마 간디 등이 활동하면서 인도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됐다.


독립 이전부터 이 단체를 이끌던 네루는 1947년 독립부터 1964년 세상을 뜰 때까지 국민회의 의장이자 총리로서 나라를 이끌었다. 네루의 여동생인 비자야 락시미 판디트(1900~1990)는 외교관으로서 주 소련 대사, 주 영국 대사, 유엔총회의장을 지내며 비동맹 외교를 이끌었다.

네루의 외동딸 인디라 간디는 페로즈 간디(1912~1960)와 결혼했다. 페로즈 간디의 가문은 인도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와 성만 같을 뿐 아무 관계가 없다. 심지어 종교도 다르다. 페로즈 간디의 가문은 인도에 11만 명밖에 없는 조로아스터교 신자다. 17세기 이란에서 종교 박해를 피해 인도로 이주한 가문이다. 페르시아라는 뜻의 파르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민자의 후손이다. 네루 가문은 힌두 가문이지만 네루 때는 일시 무신론적 불가지론자로 돌아서 있었다. 네루-간디 가문은 인디라 이후 다시 힌두교로 돌아섰다.

대 이은 교육으로 지식·리더십 전수

그렇다면 네루-간디 가문은 어떻게 국민으로부터 몇 대에 걸쳐 지지를 받고 인도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을까. 이 가문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필요한 재력은 없다. 토지도 없고, 기업을 소유하지도 않았다. 물론 가식적으로 가난한 척하지도 않는다. 그저 품위 있게 살 정도의 재산과 수입을 유지할 뿐이다.

이 가문의 소속원들이 대대손손 선거에서 국민의 표를 얻어 권력을 잡는 데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한 무기는 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리더십·헌신의 정치철학이다. 가문의 역사에서 보듯 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은 소속원들이 가진 최고의 힘이다.

자와할랄 네루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공부했다. 당시 인도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그가 보여준 사회주의적인 경제체제, 비동맹 외교 같은 정치적 아이디어와 국내의 복잡한 종교와 민족 문제 처리와 관련한 노련한 외교술은 모두 교육을 통한 지식에서 나온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물론 인도에서 배운 대로만 살지 않았다. 그는 배운 지식에 자신의 경험과 통찰을 더해 인도 식으로 새롭게 버무려냈다. 자녀 교육을 통해 당대 최고의 지식인으로 만들고 리더십을 가르쳐 정계에 내보내는 전통은 그 이후 이어졌다.

인디라 간디도 영국 옥스퍼드대 소머빌 칼리지에서 공부했다. 이 가문의 또 다른 강점은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능력 순으로 중요한 일을 맡긴다는 것이다. 네루는 정치 활동과 투옥 등으로 딸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직접 교육하지 못한 아쉬움을 ‘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대역사서 저술로 대신했다.

실제 그는 감옥에서 딸에게 편지를 보내 세계사를 학습시키고 리더십을 가르쳤다. 이 책은 지금도 청소년 필독서로 꼽힌다.

인디라의 아들 라지브 간디는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 칼리지에 진학해 공학을 공부했다. 인도가 산업화하는 데 공학이 중요할 것으로 생각해 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라지브는 졸업을 못했다. 나중에 런던대 임페리얼 칼리지로 옮겼으나 끝내 학위를 받지 못했다. 대신 그 동안 배운 공학 지식을 살려 비행학교를 마친 뒤 인도항공 비행사로 근무하다 정계로 자리를 옮겼다.

라지브는 영어를 배우러 영국에 와있던 이탈리아 출신 부인 소냐를 만나 결혼했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라훌 간디는 미국 하버드대에 다니다 아버지의 암살 직후 신변 불안을 느껴 플로리다주 롤린스 칼리지를 졸업하고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석사를 마쳤다.

이와 함께 이 집안에 흐르는 명문 DNA의 하나가 용기와 헌신이다. 인디라 간디는 시크교도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소요를 일으키던 시크교도를 진압했다. 라지브는 자국 내 소수민족인 타미족과 내전을 벌이고 있던 스리랑카 정부와 과감하게 조약을 체결해 인도 내 타밀족이 스리랑카의 동족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두 사람 모두 생명에 대한 위협에 굴하지 않고 옳다고 생각한 일을 용기 있게 행했다. 그 결과는 자신의 생명을 잃었지만, 그런 과감함과 헌신은 네루-간디 가문이 오늘날에도 인도를 지배하는 힘이 되고 있다. “배우고 베풀라. 용기 있게 옳은 일을 하라.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이것이 네루-간디 가문의 가르침을 요약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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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호 (2012.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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