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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사색에서 나온 깊은 통찰력 애플 넘어선다 

대한민국 대표 CEO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글 이용성 기자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이끈 기여한 이건희 회장이 2011년 7월 11일 서울 서초동 사옥에서 임직원들의 환영을 받고있다.



지난해 9월 12일 팀 쿡 애플 CEO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예르바 부에나 예술센터에서 아이폰5를 공개했다. 같은 시각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약 650km 떨어진 로스앤젤레스의 볼프강 푹(Wolfgang Puck) 레스토랑에는 삼성전자 마케팅 담당 임원들이 TV 앞에 모여 아이폰5의 기능을 면밀히 살폈다. 이와 함께 블로그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경쟁사 신제품에 대한 전세계 소비자들의 반응을 주시했다.


여기서 논의된 내용은 곧바로 광고팀 크리에이티브 담당자들에게 전달됐다. 이를 바탕으로 종이매체와 방송용 광고 초안이 나오는데 걸린 시간은 2시간 남짓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90초짜리 갤럭시S3 광고(애플 매장 앞에서 아이폰5를 사려고 줄을 선 사람들을 비꼬는 내용)는 온라인에서 7000만 뷰를 넘어서며 화제를 모았다. 광고 효과는 엄청났다. 아이폰5가 출시된 이후 몇 주 동안 갤럭시S3는 최대 판매 기록을 갈아치우며 삼성전자의 2012년 3분기 호실적을 이끌었다.

NYT가 인정한 애플의 경쟁기업

전 세계가 주목한 ‘경쟁사의 잔치’를 오히려 반전의 기회로 삼은 창조적 마케팅의 원동력은 뭘까. 거슬러 올라가면 ‘자식과 마누라 빼고는 다 바꾸자’던 1993년 독일 프랑크프루트 ‘신경영 선언’,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하는 창조적 경영을 해야 한다는 2006년 ‘역발상 경영 선언’ 등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철학과 맞닿는다.

그는 1987년 그룹 회장 취임식에서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현재 당시 10조원이 채 못되던 삼성그룹 매출은 383조원으로 38배로 늘어났고,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03조원으로 300배 넘게 커졌다.

덩치만 커진 게 아니다. 92년부터 줄곧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는 D램 반도체, 2006년 이후 7년 연속 1위인 TV와 LCD모니터, 판매대수 기준 점유율 30.4%로 세계 시장 1위인 스마트폰 등 총 19개 분야에서 선두를 달린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직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2억1300만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해 1억3500대를 판매한 애플과의 격차를 벌렸다. 동유럽에서는 50% 넘는 점유율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러한 성장을 발판으로 삼성전자 브랜드 가치는 2002년 83억1000만 달러에서 2012년 328억9000만 달러로 10년 새 네 배 가까이로 늘었다.

삼성의 거침없는 질주에 미국 언론들도 애플의 최대 경쟁자로 삼성을 지목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월 10일(현지시간) ‘삼성이 쿨한 애플의 유력한 라이벌로 떠올랐다(Samsung Emerges as a Potent Rival to Apple’s Cool)’는 기사에서 ‘삼성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시장에서 델·휴렛팩커드(HP)·노키아·블랙베리도 애플의 경쟁자가 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눈부신 성장을 가능하게 한 신속하고 선제적인 시장 대응력은 이 회장 특유의 ‘위기경영’ 리더십에서 나온다. 그는 삼성그룹 임직원 교육 자료에서 “회장에 취임한 이후 세기말적 변화에 대한 기대와 위기감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위기는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빼앗아가 버리는 종말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며 위기의 양면적 속성에 대한 남다른 통찰력을 보였다. 무리하게 무선전화기 생산을 추진했던 삼성전자는 1994년 불량률이 11.8%까지 올라갔다. 일부 모델 생산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불량은 암이다. 자꾸 옮아가면 결국 망하게 된다’고 생각한 이 회장은 시중에 나온 불량제품을 모조리 회수해 공장 사람들 앞에서 태워 없애라고 지시했다.

그 해 3월 2000여명 임직원이 모인 가운데 경북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500억원 상당의 휴대전화와 키폰(업무용 전화기) ‘화형식’이 열렸다. 당시 국내 시장점유율 4위에 머물던 삼성전자의 휴대전화는 이듬해인 1995년 1위 로 올라섰다. 같은 해 국내 기업 최초로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했다.


이 회장은 2007년 중국이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 나가는 틈바구니임을 강조해 ‘샌드위치 위기론’을 설파했다. 2010년 3월 경영에 복귀한 후 이듬해 신년사에서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이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고 독려했다. 이후 삼성 주력 계열사들은 신발 끈을 다시 졸라맸고 삼성전자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데 역량을 집중했다.

‘메기론’을 실천한 출근경영

이 회장의 ‘위기경영’ 리더십은 일찌감치 해외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미국 뉴스위크는 2003년 11월24일자 커버스토리에서 “이 회장의 1993년 신경영 선언 덕분에 삼성은 아시아 금융위기를 피해간 기업이 됐다”고 분석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에서 발행하는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06년 “재벌 형태를 유지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응하는 대표적 한국 기업은 삼성이며 이 같은 도약의 원동력은 이 회장의 리더십”이라고 평가했다.

이 회장의 위기경영 리더십은 삼성전자가 정보기술(IT) 분야 최강 기업이 된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는 올해 초 신년하례식에 모인 1000여명의 그룹 임원들에게 “지난 성공은 잊고 새롭게 시작하자”며 “도전하고 또 도전해 새로운 성장의 길을 개척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올해 삼성의 앞길은 순탄하지 않으며 험난하고 버거운 싸움이 계속될 것”이라며 “불황기에는 기업 경쟁력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며 강한 자만이 살아남 는다”고 덧붙였다.

삼성은 이 회장의 주문대로 주력 사업 경쟁력을 높이는데 힘쓰고 있다. 최대 수익 창출원인 휴대폰 분야에서는 신제품 출시로 애플과의 격차를 벌리는 한편 LED(발광다이오드) TV에 이은 차세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도 올해 본격적 양산할 계획이다. 모바일 AP(단일 칩) 분야에서 73.7% 점유율로 독보적인 1위인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용 모바일AP 분야에서도 점유율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조직에 끊임없이 긴장감과 혁신을 불러일으키는 위기 경영에 대한 이 회장의 철학은 ‘메기론’에서 잘 드러난다. 1991년 국내 한 기고에서 그는 “최고 경영자는 좋은 의미에서 메기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미꾸라지가 있는 연못에 메기를 풀어놓으면, 미꾸라지들은 살아남기 위해 더 열심히 움직임으로써 튼튼해진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요즘 서울 서초동 사옥 ‘출근경영’을 통해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지난 2003년 뉴스위크 아시아판은 커버스토리에서 이건희 회장을 ‘은둔의 제왕’(The Hermit King)이라고 표현했다. 서울 한남동 자택 승지원에 칩거하면서 삼성이라는 거대 그룹을 경영한다는 점을 비유한 것이다. 그랬던 그가 70대의 나이에 일주일에 두 차례 정도 사무실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삼성전자 DNA를 푸는 열쇠

삼성그룹 관계자는 “회장이 정기적으로 출근하며 경영을 직접 챙기기 때문에 그룹 전반의 긴장감이 한층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사장단·임원·사원들과 오찬을 하면서 여러 얘기를 귀담아 듣는다고 한다. 특히 생산직·여직원 등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을 즐긴다.

이 회장은 2011년 7월 경기도 수원사업장을 찾아 생산직 사원들과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현장 목소리를 들었다. 그해 8월에는 여성 임원들과 오찬을 하며 여성 인재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특히 서초 사옥 1층에 마련된 어린이집을 둘러본 자리에서 바로 시설 확장을 주문하기도 했다.

올해 신년사에서 이 회장은 지난해 말부터 불어온 메모리반도체 시장 불황을 ‘거센 파도’로 표현했다. 문제는 앞으로 몰아 닥칠 위기가 ‘태풍’ 수준이라는 점이다. 눈앞의 큰 위협은 애플을 비롯한 글로벌 거대 기업들의 견제다. 애플은 여러 건의 특허소송으로 삼성전자의 발목을 묶으려 하고 있다.

메모리와 모바일AP 구매처도 다른 업체로 바꿨다. 애플이 늘어난 재고와 아이폰5에 대한 시장의 시장의 냉담한 반응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더 집요하게 견제구를 날릴 것으로 보인다. 새롭게 진출을 예고한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에서는 반도체 업계의 강자인 인텔과의 정면대결을 피할 수 없다.

이 회장은 이 같은 상황을 누구보다 심각하게 여긴다. 그는 인재와 혁신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그래서 인재 확보와 양성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 임직원들이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물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지역전문가, 글로벌 MBA 제도를 도입해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회장은 임직원 중 4분의 1이 연구·개발 (R&D) 업무를 담당할 만큼 신기술 개발에 공을 들인다. 지난해 사상 최대인 47조8000억원을 시설 및 R&D에 투자한 삼성은 올해도 50조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경제평론가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와세다대 교수가 『일본의 몰락』이라는 저서에서 언급했듯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은 삼성전자의 DNA를 푸는 열쇠’다. 삼성의 일등상품들이 2020년에는 사라질 것이라는 이 회장의 경고가 또 어떤 혁신을 불러올지 주목된다.

201303호 (201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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