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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 - 오음으로 장기 균형 맞춘다 

건강의 달인⑥ 

글 고종관 중앙일보 헬스미디어 대표 사진 이원근 객원기자
이승현 서울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음악치료센터장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한방음악으로 치료를 한다. 전통음악을 한의학의 원리인 음양과 오행으로 분류했다. 예컨대 간의 기능이 떨어졌을 때는 목(木)의 기운을 가진 음악을 듣는 게 효과적이다.

▎서울 강동구 상일동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의료센터에서 만난 이승현 교수. 곁에 알록달록한 피아노 건반이 눈에 띈다. 한방음악치료 중 하나인 ‘색건반요법’으로 누구나 쉽게 색깔 악보를 보며 연주할 수 있다. 직접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



자신의 의지대로 세상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파도에 쓸려가듯 운명에 이끌리다보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참 얄궂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법도 하다. 때론 피나는 노력이 한순간 물거품이 되기도 하고, 작은 돌부리가 인생을 유턴시킨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음악치료센터 이승현 교수가 그런 사람이다. 이화여대 성악과 3학년 시절, 그녀는 독일문화원을 다니며 유학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작은 돌부리가 앞만 보고 달려가던 그를 바닥에 꼬꾸라지게 했다. 돌부리는 바로 목에 생긴 결절이었다. 성악을 전공하는 사람에겐 치명타였다.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생각에 몇날 며칠 식음을 전폐하던 그녀는 결국 진로를 바꿨다. 무대가 아닌 강단에 서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음악교육을 전공하기로 한 것이다. 교육대학원은 경희대학을 택했다. 수석입학으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매력이 그를 이끌었다.

이듬해인 1990년 초 그녀는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한의대 대학원 행정조교를 맡지 않겠느냐는 제의였다. 한의대생 대부분이 대학에 남기보다 개원을 하다보니 조교 자리가 그녀에게 굴러 들어온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평생 한의학과 인연을 맺으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한 통의 전화는 인생만 바꿔놓은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뿐아니라 세계에도 유례없는 한방음악치료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한 계기가 됐다.

“당시 학과장님이 우리나라 원전(原典)학의 대가였던 고 홍원식 교수님이었어요. 어느 날 ‘심심하면 읽어 봐’하며 내민 책이 당신이 번역한 『황제내경』이었습니다.” 중국 최고의 의서로 손꼽는 『황제내경』하면 한의학의 ‘바이블’이 아닌가. 번역을 했다고는 하지만 한자용어 투성이의 한방전공서적을 이해할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음악전공은 속일 수 없었다. 황제내경 중에 목화토금수와 각치궁상우라는 용어를 찾아낸 것이다.

“학부 시절에 부전공으로 가야금을 했어요. 국악에 대한 상식을 가지고 들여다보니 목화토금수와 각치궁상우가 눈에 띄었는데 배열이 바뀌어 있어 실수인 줄 알았지요.” 하지만 그의 의문은 그때 뿐이었다. 그는 ‘독일과 한국 전통 가곡의 음악적 표현 방법 비교 연구’라는 평범한 석사학위 논문을 쓰고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리고 삼육대학에서 서양 음악사와 국악개론 강의를 시작했다. 이것으로 음악과 한방의 접목은 끝나는가 싶었다.

운명은 다시 그를 방문했다. 우연한 기회에 한국음악학회에서 개최한 음악치료 세미나에 참석했다. “음악이 치료에 활용된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런데 주제 발표가 끝난 뒤 의문이 생겨 ‘발달장애 환자에겐 어떤 음악을 들려줘야 하느냐’고 질문을 던졌죠. 그런데 아무도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황제내경 음악치료 현대에 구현

단지 ‘좋은 음악’ ‘안정과 편안함을 주는 음악’이면 된다는 식의 답변으로는 궁금증을 해소할 수 없었다. 그때 그의 머리를 스쳐간 것이 황제내경에 있던 ‘오음’이었다.

그는 다시 경희대한의대를 찾았다. “당시 주임교수는 고 박창국 교수님이었어요. 그분에게 대뜸 황제내경을 예로 들며 ‘한방에 음악치료가 있지 않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교수님이 깜짝 놀라며 자신이 예과시절 그런 의문을 품고 서울음대 국악과와 국립국악원을 찾아가 물어봤지만 속 시원한 해답을 듣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박 교수는 ‘오음은 인체 장부다. 따라서 오음으로 장부의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 바로 한방음악 치료의 원리’라는 결론만을 내리고 궁금증을 닫았던 것이다.

그는 박 교수를 졸라 한의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보답으로 그는 박 교수에게 국악을 지도했다. 갈증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다시 예과 1학년에 들어가 4년을 학부학생들 틈에서 한자와 씨름했다.

한방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생기자 그는 전통음악을 한의학의 원리인 음양과 오행으로 분류했다. 목기(木氣)·화기(火氣)·수기(水氣)·금기(金氣)·토기(土氣)음악이 그것이다. 한방에서 목은 간(肝), 화는 심(心), 수는 비(脾), 금은 폐(肺), 토는 신(腎)을 뜻한다.

예컨대 목의 기운을 가진 음악은 밝고 경쾌하다. 봄에 싹을 틔우듯 만물을 소생시키고, 촉동하는 리듬을 사용한다. 자진모리나 휘모리 장단 같은 빠른 가락과 밝은 음색의 곡이다. 장부로 말하면 목은 간을 뜻하는 것으로 간의 기능이 떨어졌을 때 이런 음악이 효과가 있다. 반면 겨울의 기운을 보여주는 수기음악은 진양조 같은 느리고 무거운 음색의 곡을 선별해 사용한다.

두세 가지 음악을 병용하기도 한다.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에겐 간의 화기를 빼 주면서 머리를 맑게 하고(청열), 기를 흩어지게 하는 포산음악을 시행케 한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검증 없는 가설일 뿐이다. 이 교수는 삼육대 원예학과 한상경 교수를 찾아갔다.

한 교수는 한국 정원을 대표하는 ‘아침고요 수목원’을 만든 인물이다. 그의 원예실험실에서 발아시험이 시작됐다. 같은 씨를 뿌리고 오행에 따라 서로 다른 음악을 들려준 것이다. 흥미롭게도 결과는 매우 고무적이었다. “목기 음악을 들려준 씨앗이 가장 빨리 발아했어요. 그리고 화기 음악을 들려준 씨앗은 잎이 무성하게 자랐고요.” 가설이 입증되자 그는 욕심을 냈다.

이번에는 누에를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한 것이다.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목의 음악에 노출된 누에알은 빠르게 부화했고, 토의 음악을 들은 누에군은 가장 무거운 체중을, 수의 음악에 심취(?)한 누에군은 고치 무게가 가장 무거웠다. 그는 이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그는 환자에게 이를 적용했다. 혈액암·뇌경색·비만·주의력 결핍·과잉행동장애·발달장애 환자에 적용한 결과가 논문으로 쏟아져 나왔다. 한방음악치료의 가능성을 여는 세계 초유의 연구결과인 것이다.

그는 2006년부터 서울 강동경희대병원에서 한방음악치료센터를 운영한다. 환자는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다. 중풍이나 암 환자는 물론 수술 회복 중에 있는 환자·소화장애·아토피 피부염 등 환자 층도 두텁다. 치료 시간이 1시간 가까이 되다보니 환자 예약은 항상 밀려 있다.

“현대인은 경제적·사회적으로 얽힌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가 발생하고, 이로 인한 장부의 불균형으로 질병에 걸립니다. 실타래처럼 엉킨 감정을 풀어주고 장부를 조화롭게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 한방음악치료라고 할 수 있지요. 한방에서 침·구·약으로 환자를 치료하듯 음악도 엄연히 치료법 중에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황제내경의 한방음악치료를 현대에 구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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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호 (201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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