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멤버십

Issue

부자의 품격⑤ CEO를 위한 품격 - “기부 문화 이끌 영웅 필요하다” 

2013 FORBES KOREA AGENDA 

글 염지현 포브스코리아 기자 사진 전민규 기자
이동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은 선친 이원갑 부방 회장에게 경영과 나눔 정신을 물려받았다.

나눔으로 ‘사랑의 열매’ 키우는 이동건 회장. 그의 뒤로 기부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사랑의 열매 원판이 보인다.


“신세 많이 지고 먼저 갑니다. 이 문구는 동화 작가 마해송 선생이 남긴 유서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세상에 진 빚을 갚지 못해요. 경쟁 사회에서 승자가 있다면 패자가 있게 마련이에요. 성공은 경쟁 과정에서 누군가를 이겼거나 도움을 받아 이룰 수 있습니다. 혼자 성공할 수 없어요. 사회에 진 빚을 갚기 위해 기부를 하는 겁니다.”

기부 전도사 이동건(75)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의 얘기다. 국내 유일의 법정모금기관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상징은 ‘세 개의 빨간 열매’로 불리는 사랑의 열매다. 사랑의 열매가 2010년 가을에 상처를 입었다. 각종 비리가 적발되면서 1998년 기관 설립 이래 큰 위기를 맞았다. 그동안 쌓은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구원투수로 나선 이가 이동건 회장이다. 모금회장은 비상근 무보수직이다. 하지만 그는 매일같이 출근하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시스템을 개선했다.

기부정보확인시스템으로 자금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했다. 기부자는 본인이 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 지를 확인할 수 있다. 성금이 편중되지 않고 공평하게 쓰일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 사회통합관리망과 연계시스템(행복e음)을 만들었다. 외부 감시 시스템도 만들었다. 다양한 외부인사를 뽑아 시민감시위원회를 만들고 사이버 신문고제도를 운영한다. 이런 노력 덕분에 지난해 모금액 4159억원을 달성했다. 1999년 이후 모금액 중 최고 금액이다.

그가 운영하는 부방은 아버지 이원갑 회장이 창업한 회사다. 부산방직을 기반으로 밥솥으로 유명한 생활가전업체 부방테크론(현 리홈쿠첸)을 키웠다. 연간 매출은 4000여 억원에 이른다.

이 회장이 기부에 관심이 큰 것도 아버지 영향이 지대하다. 이원갑 회장은 부산 로타리 지구 총재를 지냈다. 로타리 클럽은 세계 자원봉사자 네트워크다. 열심히 봉사활동을 다니는 아버지를 보며 그 역시 로타리 회원을 꿈꿨다. 1995년 서울지역 3650지구 총재가 된 이 회장은 회사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본격적으로 로타리 활동에 나섰다.

1996년에는 10개월 동안 32개 클럽을 만들고, 회원 1783명을 영입해 최단기 세계 기록을 세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08년엔 한국인 처음으로 국제로타리 회장이 됐다. 각국 로타리클럽 회원들은 주요 회의 때 회장국의 국기와 국가를 사용한다. 당시 122만 명 세계 회원이 한국의 태극 무늬가 디자인된 재킷과 넥타이를 착용했다. 그는 전 세계 곳곳을 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고 민간 외교를 펼쳤다.

CEO의 품격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한 마디로 배려와 휴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롯이 이윤 추구에만 매달려 앞만 보고 달려가는 CEO는 ‘반쪽 CEO’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는 경제적으로 개발시대를 넘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책임이나 도덕성을 도외시하는 기업이나 CEO는 한계에 부닥칠 겁니다. CEO라면 직원과 사회를 돌봐야 합니다. 저는 항상 로타리 4가지 정신을 판단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것은 진실한가’ ‘모두에게 공평한가’ ‘선의와 우정을 더하게 하는가’ ‘모두에게 유익한가’를 늘 자문합니다.

경영자들이 나눔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우리 사회는 아직 기부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되지 않은게 가장 큰 원인이에요. 기부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한번 기부를 시작하면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보람과 뿌듯함을 알게 됩니다. 그때부터 기부의 길을 걷는 분이 많아요. 일단 기부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해요. 무엇보다 기부에 적극 동참할 수 있는 문화가 마련돼야 합니다. 그러려면 제2의 빌게이츠가 등장해야 해요.

그는 전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내놓기로 약속했잖아요. 세계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 역시 빌 게이츠의 기부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2006년 6월에 버핏은 버크셔 주식 85%(약 370억 달러)를 재단에 기부했고요. 이 중 80%를 빌 게이츠 재단에 넘겼습니다. 이들처럼 한국에도 기부문화를 이끌 영웅이 나와야 합니다.

CEO가 기부 활동을 할 수 있게 도울 방법은 뭘까요.

기부 캠페인을 일으키는 겁니다. 기부에 관심을 갖고 동참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거에요. 요즘 기부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CEO 수입의 1%를 기부하자’는 캠페인을 진행하는 거에요. 기부 목표도 중요합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금모으기 운동이 가능했던 것은 국민이 한마음으로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해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현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는 국내 최초의 고액기부자 모임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를 만들었습니다. 부자들은 정보 네트워크 모임을 선호한다는 점을 고려했는데 반응이 좋습니다. 서울 정동 사랑의 열매 회관 1층에 300여명 아너 회원을 위한 명예의 전당을 세웠습니다. 회원들의 핸드 프린팅과 사진, 나눔 철학을 담은 문구 등을 전시한 공간이에요. 훗날 손주에게 이곳을 구경시켜주면 보람을 느낄 겁니다.

이 회장은 기부 교육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영국 등 기부 선진국은 정규 교과과정으로 기부와 자원봉사를 가르친다. 국내에서는 나눔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교육이 부족한 편이다. 대부분 민간 차원에서 모금 기관들이 별도로 실시한다.

현재 서울복지공동모금회는 서울시 교육청과 함께 어린이·청소년 나눔 교육에 필요한 교사용 지도 자료를 개발하고 보급한다. 부모 교육도 중요하다. 그가 시골에서 자랐을 때 멀리서 손님이 오면 할머니는 여비를 챙겨서 보냈다. 사정이 어려운 친척이 오면 돈을 빌려서라도 챙겼다. 그 시절의 나눔 활동인 셈이다. 베품을 보고 자란 이 회장에게 기부는 당연한 의무다. 이 회장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CEO들이 나눔에 관심을 갖고 점차 기부 문화를 이끌어가길 바란다”고 했다.

/images/sph164x220.jpg
201307호 (2013.06.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