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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 달인⑦ - “이 순간 내 마음을 알아차려라” 

 

글 고종관 중앙일보 헬스미디어 대표 사진 지미연 기자
마음 속 화를 자비로 바꾸는 자비명상을 세상에 전파하는 마가 스님. 조용한 숲길을 걸으며 화두를 떠올리는 걷기 명상법을 추천했다. 명상할수록 스트레스는 줄어들고 긍정 호르몬 도파민 수치는 높아진다.

▎서울 필동3가 동국대 내정각원 산책길을 따라 명상을 하는 마가 스님. 출렁거리는 마음이 고요해지며 참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옛날 얘기다. 한 스님이 산길을 걷는데 벼랑아래서 ‘사람 살려’라는 외침이 들린다. 내려다보니 장님이 나뭇가지를 붙들고 간신히 버티고 있다. 그가 매달린 위치는 바닥 가까운 곳이다. 스님은 웃으며 “손을 놓으면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장님은 두려움에 떨며 그저 ‘살려 달라’고 외친다.

‘방하착(放下着).’ ‘내려놓다’ 또는 ‘마음을 비우라’는 뜻이다. 불가(佛家)에선 집착에 이끌려 열반의 경지로 가지 못하는 사람에게 던지는 화두다. 동국대 정각원 교법사인 마가스님((54)의 얼굴엔 웃음 주름이 밉지 않게 만개했다. 귀에 장미를 꽂고 “부처님, 나 이뻐요?” 할 때면 천진난만한 소녀 같다. 그의 자비명상 강연은 이렇게 청중의 웃음을 불러오면서 시작된다.

그는 요즘 불교계를 대표하는 힐링 멘토다. 한 시간의 강연은 웃음과 공감, 그리고 치유로 이어진다. 대중은 행복이라는 한 아름의 선물을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시계를 30여 년 전으로 돌려본다. 스님의 나이 21살. 그는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인근 숲 속에 있었다. 그것도 다량의 수면제를 먹은 상태다. 눈앞이 뿌연 실루엣으로 변하면서 고통이 밀려왔다. 의식을 잃었다. 온몸에 남은 흉터가 30여 년 전 그날의 절박함을 보여준다.

그는 며칠 뒤 월정사에서 깨어났다. “너는 세상에 다시 태어났다”는 노(老)스님의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불가에 귀의함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딱히 갈 데도 없었다. 종교에 의지하는 게 그나마 버팀목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를 죽음에 몰아넣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분노’였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다른 여자를 취했어요. 그렇게 홀어머니 밑에서 살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아버지가 있는 광주로 갔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번뇌·갈등이 마음 속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아버지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아버지가 학교로, 경찰서로 불려다닐 때마다 쾌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생각으로는 이해하고, 용서했지만 행동은 엇나갔다. 그는 “교회마저 다니지 않았다면 아버지를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마가 스님은 현대인의 힐링 멘토로 나섰다.
방하착, 비워야 살 수 있다

당시 광주는 민주화 투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었다. 고등학생들도 항쟁의 대열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동물보다 못한 인간의 본성을 봤어요. 죽음의 경계에서 삶이 덧없게 느껴졌지요.” 억제할 수 없는 분노, 삶의 덧없음, 불안한 미래가 그를 오대산으로 이끌었다.

‘다시 태어난’ 그는 월정사에서 북한산 도선사로 옮겨 행자생활을 했다. 그리고 1982년 출가를 결행했다. 당시 조실(절에서 가장 큰 스님)인 현성스님이 은사다. 하지만 그는 외형만 중이었다. 중앙승가대학을 나와 경전을 공부하고, 선원에서 다섯 번의 계절을 보내며 수행을 했지만 증오의 뿌리는 깊었다. 경전을 읽고, 선방에서 화두를 붙잡아도 어느새 분노는 스멀스멀 밑바닥에서 기어올라 왔다.

그렇게 불가에 입문한지 10년, 자신을 바꾸는 계기가 찾아온다. 두 명의 도반(도를 함께 닦는 벗)과 함께 인도 성지를 여행했다. 그런데 게스트 하우스에서 벼락처럼 공포가 찾아왔다. 도반과 헤어져 혼자 남게 된 직후였다. “심장이 말라붙는 듯한 두려움”을 느끼며 꼼짝달싹 못한 채 식음을 전폐했다. 그러기를 일주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봤다. 거기에 증오심이 있었고, 그 뒤에 죽음이 입을 벌리고 그를 비웃었다. 평정심으로 속을 들여다보니 혜안이 생겼다.

그렇지, 내려놓아야 한다. 비우면 살 수 있는 길이 보이는 걸.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 백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서 한 발을 내디딤)였다. 사지에서 돌아온 그에게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밝은 웃음이 햇살처럼 비쳤다. “세상이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자신을 바꾸니 세상이 변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처음으로 아버지와 화해했다. 깨달음의 길을 가게 해준 아버지에게 진정 ‘고맙다’고 했다. 그 뒤로 그는 6개월 여 맨발로 성지를 순례했다. “만행(여러 곳을 다니며 도를 구함)을 하며 내가 먼저 활짝 웃으며 인사하는 것이 최고의 공덕이고, 수행임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그의 자비명상은 아버지와의 화해를 거쳐 나온 것이다.

“경전에선 자비를 가르치지만 마음속엔 항상 동물적인 무자비가 자리 잡고 있어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문제의 실상을 아는 과정이 명상입니다.” 명상은 출렁거리는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내가 나를 보고, 나를 만날 수 있다. “염불의 염(念)은 ‘지금(今)의 마음(心)’이죠.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염이고 명상입니다”. 자비명상을 하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얻는다. 건강에 치명적인 큰 위해요인은 ‘화(火)’이며 스트레스다.

“경전에 전해오는 설화입니다. 하녀가 자신이 힘들게 볶던 콩을 염소가 날름 먹자 옆구리를 걷어찼습니다. 그러자 염소가 하녀를 받았고, 다시 하녀는 염소를 불구덩이에 쳐 넣었습니다. 염소는 불덩이가 털에 붙자 길길이 날뛰며 동네를 불태웠고, 하녀마저도 태워 죽였습니다. 부처님이 ‘화는 이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화는 왜 생길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화가 난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자기 뜻대로 모든 것을 바꾸려고 한다. 문제는 내 뜻대로 되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 결국 나를 바꾸지 않고는 영원히 분노·갈등·원망 속에 살아야 한다. “명상을 통해 내 안에 있는 화를 보고, 자비로 바꿔야 합니다. 마음공부는 마음속의 부정적인 것을 긍정으로 바꾸는 것이지요.”

그에게 3개월 시한부 암환자가 찾아왔다고 한다. 죽기 전에 마음의 정리를 위해서라고 했다. 스님은 그에게 유서를 쓰게 했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고마웠던 사람과 미워했던 사람을 모두 찾아가 감사의 말을 전하고, 행복을 축원해 주라고 권했다.

“한(恨)을 가져가면 업(業)이 되니 금생에 풀어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자비심으로 상대방과 화해하고, 행복을 기원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원망하는 마음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뀌자 환자의 얼굴에 변화가 찾아왔다. 얼굴 표정이 밝아지면서 건강이 회복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지금 12년째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명상을 일정한 틀 속에 가둬두는 것을 반대한다. 체질과 특성에 따라 개인의 수행법도 달라야 한다는 것. “좌불하고 있어도 망상에 빠져 있으면 오랜 시간 명상을 해도 의미가 없지요. 기왓장을 오래 간다고 거울이 되는 게 아니잖아요.” 예컨대 과거 좌식생활을 할 때는 당연히 좌선이 정석이었다. 하지만 요즘 의자생활이 몸에 밴 젊은 사람에겐 결가부좌는 고통이라는 것이다.

그는 걷기 명상을 권한다. 조용한 숲길을 걸으면서도 화두를 놓치지 않고, 집중할 수 있다. 그는 화가 날 때 어떻게 하라는 처방도 알려준다. 그것은 “알아차림”이다. 자신을 객관화하라는 뜻이다. ‘네가 화가 나서 흥분하는구나’ ‘짜증을 내는구나’ ‘말을 막 하는구나’ 하는 식으로 내가 하는 말·표정·행동을 마치 중계방송하듯 남의 시각으로 보라는 것이다.

“자신을 객관화하면 올바르게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어요. 마음의 노예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명상은 심리적인 안정 뿐 아니라 긍정의 힘을 준다. 한국뇌과학연구원과 서울대병원이 공동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명상그룹(평균 3년 6개월 명상)은 스트레스 지수가 낮을 뿐아니라 긍정적인 호르몬인 도파민 수치가 더 높았다. 하지만 명상을 위한 집중력은 쉽지 않다. 망상(생각)이 죽 끓듯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숫자화두가 도움이 된다. “아이들이 발을 맞춰 행진할 때 선생님이 하나, 둘 하면 셋, 넷하고 화답하잖아요. 이렇게 숫자에 집중하면 돌아다니는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어요.” 출렁거리는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것이 화두요, 화두는 명상의 기초가 된다.

마가스님은 요즘 자비명상을 전파하기 위해 부산하다. 기업 임직원을 위한 강의는 물론 경영 포럼이나 독서포럼, 언론인 최고위과정, 백화점 VIP고객 대상 강의도 나간다. 사단법인 자비명상을 세워 지도자 과정도 만들었다. 현재까지 130여 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일반인 과정을 위한 한국마음치유협회도 발족해 심리·상담 전문가들과 함께 상·하반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들은 앞으로 학교 방과후 교실·복지관 등에서 카운슬러로 활동한다.

100일 명상 수행법 전파

곧 출판될 저서의 마무리 작업도 한창이다. 내용은 흥미롭게 경영서적을 빼 닮았다. 제목도 ‘100일 변화 프로젝트(가제)’다. “현대인은 변하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죠. 그래서 100일 수행법을 가르쳐 주고, 매일매일 체크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자신을 점검하며 변화하도록 도와주는 실천적인 과정을 담고 있죠.”

수행법도 개인 맞춤형을 제시한다. ‘화를 잘 내십니까’ ‘우울에 빠져 있습니까’ ‘상처를 오래 간직합니까’ 등의 질문을 던지면 ‘예’ ‘아니오’로 답하고, 이를 사다리 타기처럼 따라가다 보면 자신에게 맞는 수행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성격유형과 수행 능력이 다르니 방법도 달리해야 합니다. 수행법은 간화선, 위빠사나, 봉사활동 등 8가지를 제시합니다.”

그가 인터뷰 마지막으로 던진 힐링 멘토링.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세요. 오늘은 내 남은 날의 첫 번째 날이고, 남은 삶의 가장 젊은 날이며, 어제 죽어간 사람이 하루 더 살고 싶어 하는 바로 그날입니다. 이 귀한 날 복의 씨앗을 뿌리세요. 가장 쉬운 수행법은 바로 내가 먼저 웃는 것입니다.”

201309호 (201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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