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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 중저가 주류는 고전, 프리미엄은 축배! 

 

주류시장의 전반적인 침체 속에서 브랜드 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소비 욕구의 다양화·고급화 추세 속에 프리미엄 시장이 뜨자 브랜드 경쟁 또한 뜨겁다.

▎서울 이태원의 수입 주류 전문 바 ‘라일리스 탭하우스’ 전경. 수입맥주·와인·샴페인·싱글몰트 위스키 등에서 프리미엄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지난 8월말 서울 강남 학동사거리 인근 맥주펍 ‘써스티 몽크(Thirsty Monk)’. 술 마시기엔 다소 이른 오후 6시지만 매장에는 빈자리가 드물었다. 독일 맥주기업 바이엔슈테판이 직영하는 이 펍은 지난 6월 문을 연 이후 서울 강남 일대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손님 연령층은 주로 30~40대. 무역업을 한다는 한 손님은 “평소 바이엔슈테판 맥주를 즐기던 차에 회사 가까운 곳에 펍이 생겨 자주 찾고 있다”며 “함께 온 지인들 모두 깊은 맛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1040년 양조장을 세운 바이엔슈테판은 기네스북에 오른 가장 오래된 맥주회사다. 밀·보리·물 이외에 첨가물을 넣지 않은 수제맥주(크래프트맥주)를 생산한다. ‘맥주계의 샴페인’이라 불릴 정도로 섬세한 스파클링과 풍부한 과일향이 특징이다. 한국총판을 맡은 베스트바이앤베버리지 김승학 대표는 “강남의 고급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알릴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다”며 “맥주 매니어로 소문난 한 대기업 총수도 일주일에 한두번 이른 시간에 찾아와 햄버거에 생맥주 한두 잔을 즐기고 간다”고 말했다.

4년 전 바이엔슈테판을 국내에 들여온 김 대표는 ‘4병에 만원’식의 덤핑 판매 대신 전용잔 증정 이벤트를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지난 여름 서울 반포동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는 바이엔슈테판 오리지널 맥주 1병(500㎖)을 4700원에 판매했다. 김 대표는 “소비자 기호는 세분화·고급화되는데 국내 맥주는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며 “10년 전부터 수입맥주가 속속 국내 시장에 들어오면서 ‘맥주계의 샤넬’ ‘맥주계의 에르메스’를 찾는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수입맥주 시장 커지며 고급화 바람

장기불황의 여파로 국내 알코올 소비량이 점차 줄고 있다. 한국주류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15세 이상 인구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은 2008년 9.67ℓ로 정점을 찍은 후 2009년 9.1ℓ, 2010년 9.2ℓ로 장기적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발표된 2011년 통계치도 9.18ℓ다. 특히 저도주 바람이 불면서 소주·위스키 소비량은 2008년 6.87ℓ에서 2011년 6.06ℓ로 감소했다.

하지만 맥주·와인·사케 같은 저도수 술 소비는 늘고 있다. 특히 에일 맥주 등 고급맥주와 싱글몰트 위스키 소비가 늘어나는 등 프리미엄 시장이 뚜렷하게 형성되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수입맥주 열풍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맥주 수입액은 3951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3259만 달러)보다 21% 늘었다. 수입 대상국도 38개국에서 올해 43개국으로 다양해졌다.

수입맥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프리미엄 맥주 시장도 커지고 있다. 국내 맥주시장에서 글로벌(국내외 브랜드 포함) 프리미엄 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출고량 기준 5.3% 정도다. 카프리·버드와이저·벡스 등을 수입 판매하는 오비맥주의 이은아 차장은 “오비맥주 전체 판매량 중 프리미엄 수입맥주의 비중은 10%”라며 “매출액 기준으로 하면 프리미엄 맥주의 단가가 비싸서 그 비중이 조금 더 커진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수입맥주는 ‘맛’을 앞세워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원료부터 제조공법까지 국내산과 달라 깊은 맛을 원하는 소비자층에 빠르게 파고들고 있는 것. 맥주는 기본 원료인 맥아의 함량에 따라 맛이 좌우된다. 맥아는 보리에 적당한 온도의 물을 붓고 약 3일간 발아시킨 것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맥아 함량이 최하 66.7%가 돼야 맥주로 인정받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주세법상 맥아 함량이 10%만 넘어도 맥주로 인정한다. 이 차장은 “올 1분기 프리미엄 맥주의 성장을 견인한 것은 메이저 브랜드인 버드와이저·아사히·하이네켄이 아닌 다양한 군소 브랜드였다”며 “소비자의 입맛이 점점 다양화되는 추세라 신규 중소 브랜드의 점유율이 증가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수입 맥주회사들의 마케팅도 공격적이다. 특히 팝업스토어(브랜드 홍보를 위해 일시적으로 운영하는 매장)를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맛을 선보인다. 하이트 진로와 기린은 지난 6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과 부산 중동 해운대에 팝업스토어 ‘기린 이치방 가든’을 열어 고객 선점에 나섰다. 롯데아사히주류도 지난 8월부터 서울 강남역 인근에 ‘아사히 수퍼드라이 엑스트라 콜드바’를 운영한다. 아사히맥주의 해외 첫 팝업스토어다.

최근엔 국내 맥주 맛이 ‘심심하다’는 비판이 늘면서 맥주 매니어 사이에서 진한 풍미의 에일(Ale) 맥주가 각광받고 있다. 하이트진로가 국내 업계 최초로 9월초 에일맥주‘퀸즈에일’을 선보였고, 오비맥주도 곧 에일맥주를 생산할 방침이다. 효모를 발효시설 위쪽에서 발효시키는 에일맥주는 알코올 도수가 높고 묵직한 맛이 특징이다. 기네스(아일랜드), 호가든(벨기에), 에딩거·바이엔슈테판(독일) 등이있다.

반면 라거맥주는 발효시설 아래쪽에서 낮은 온도로 발효시킨다. 카스·하이트와 버드와이저(미국), 하이네켄(네덜란드), 아사히(일본) 등이 대표적이다. 세계 맥주시장에서 라거맥주와 에일맥주의 점유율은 각각 70%와 30%. 국내 시장은 95%와 5%로 라거맥주가 압도적이다. 에일맥주는 라거맥주에 비해 가격이 두 배 정도 비싸다.


▎서울 이태원의 수입 주류 전문 바 ‘라일리스 탭하우스’ 전경. 수입맥주·와인·샴페인·싱글몰트 위스키 등에서 프리미엄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주류시장의 샤넬’ 수요 늘었다

위스키 시장의 양극화도 뚜렷하다. 위스키 전체 판매량이 크게 감소했지만 싱글몰트 등 프리미엄 위스키 소비는 오히려 늘고 있다.

한국주류산업협회·시장조사업체 닐슨의 자료를 종합해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위스키 총 판매량은 91만5667상자(한 상자 9ℓ)로,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13.9% 정도 줄었다.

그러나 싱글몰트 위스키 판매량은 지난해 2만6789상자에서 올해 2만8926상자로 8% 늘었다. 전체 위스키 시장의 3% 수준이지만 블렌디드 위스키에 비해 가격이 30% 정도 높은 싱글몰트 위스키의 성장세는 눈 여겨볼만 하다.

싱글몰트 위스키의 인기는 개인 취향에 따라 골라 마시는 주류 문화의 변화 때문으로 분석된다.

글렌피딕·발베니 등을 수입하는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의 강윤수 홍보대사는 “맥아 100%의 싱글몰트 위스키는 최근 2~3년 사이 개성 있는 맛과 향을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나홀로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첨가물이 없고 생산지와 증류 방식, 그리고 숙성하는 오크통 등의 차이로 색다른 맛과 향을 내기 때문에 블렌디드 위스키보다 고가에 거래된다.”

특이한 것은 기존 와인 매니어의 이동이다. 싱글몰트가 생산방법과 생산지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는 술인 만큼 기존 와인을 즐기던 마니아 계층이 싱글몰트 위스키로 넘어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강 홍보대사는 “국내에 와인이 유행한 이후 술을 음용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질적인 음주’ 패턴이 생겼는데 이것이 싱글몰트 위스키 음용법과 닮았다”며 “해외에서도 음주 문화의 이동과정을 보면 와인에서 싱글몰트로 넘어가는 시기가 있었고, 국내에서도 이런 추세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찌감치 대중화된 와인도 최근엔 고급 취향이 늘고 있다. 한국주류산업협회·시장조사업체 닐슨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된 와인은 약 290만 상자로 전년 대비 10% 정도 늘었다. 올해는 지난해 대비 5% 성장을 예측한다.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와인에 붙던 관세(15%)가 철폐되면서 수입 원가가 떨어진 때문이다.

시장 확대와 함께 고가 와인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 와인 전문업체 와인나라에 따르면 샤토 라투르와 샤토 무통 로칠드 등 병당 150만원대 초특급 와인의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1년 동안 13병 밖에 팔리지 않았던 샤토 라투르는 올 들어 7월까지 25병이 팔렸다. 지난해 25병 판매에 그쳤던 샤토 무통 로칠드는 올 7월까지 37병이 판매됐다.

지난 8월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이 발표한 자료도 프리미엄 시장 형성을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올 1∼7월 와인 매출을 분석한 결과 3만원 미만의 저가 실속형 와인의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5%, 20만원 이상의 고가 와인은 40% 급증했다. 반면 3만원 이상 20만원 미만의 중간 가격대 와인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7% 감소했다. 가격이 아주 싸거나 비싼 제품만 잘 팔린다는 얘기다.

지난해 샴페인 시장도 2011년 대비 20% 이상 성장했다. 특히 모엣&샹동, 뵈브 클리코와 같은 프리미엄 퀴베(일반적으로 백화점 가격 기준 20만원대)의 성장률은 30%를 넘었다. 김건희 모엣&샹동 마케팅부장은 “국내 샴페인 시장은 인지도를 높이고 새로운 소비자를 창출하는 것이 여전히 숙제다. 최근 클럽·라운지 등에서 프리미엄 샴페인 수요가 크게 늘고 있으며 레스토랑·호텔 매출도 꾸준하다”고 말했다.

리미티드 에디션도 프리미엄 시장을 형성하는데 한몫한다. 고객의 시선을 끌기 위한 ‘나만의 술’을 앞다퉈 내놓으면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는 것. 특히 고가의 한정제품은 소장가치가 높은 만큼 재테크로 이어질 수 있어 고객이 선호한다. 글렌피딕은 빈티지 위스키 ‘글렌피딕 50년 2nd Edition’을 내놓았다. 국내에 단 3병만 출시했는데 한 병에 2700만원이다.

싱글몰트 위스키 맥캘란은 ‘M디캔터’ 1750병을 한정 출시했다. 그중 20병을 지난 7월 말 국내에서 선보였다. 각 디캔터에는 고유 번호가 새겨져 소유가치를 높였다. 가격은 650만원. 임페리얼은 특정 지역에서만 판매하는 제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해 오고 있다. 최근에는 부산 지역에서만 한정 판매하는 ‘임페리얼 17년 장동건 리미티드 에디션’을 출시했다.

프리미엄 브랜드를 잡아라

위스키의 전반적인 매출 약세 속에서 주류업계는 그동안 마이너로 인식되던 화이트 스피릿(White Spirit)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위스키·맥주와 구분되는 무색의 투명한 술 보드카·럼·진·데킬라 등이 여기에 속한다. 주류산업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화이트 스피릿의 판매량은 지난해 상반기 대비 약 64% 가량 상승했다. 클럽이나 파티 등에서 칵테일용으로 쓰인다. 화이트 스피릿에서도 고급 주류가 인기다.

프리미엄 진으로 유명한 핸드릭스 진은 강렬한 장미향과 오이 맛으로 올 상반기 전년 동기 대비 107%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프리미엄 보드카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롯데주류는 스웨덴산 프리미엄 보드카 ‘스베드카’, 디아지오코리아는 ‘스미노프 피치’, 아영FBC는 러시아의 프리미엄 보드카 ‘벨루가’를 출시했다.

글로벌 브랜드를 잡기 위한 국내 주류업계의 경쟁도 뜨겁다. 특히 와인·보드카·테킬라 등을 중심으로 인기 브랜드 유치전이 치열하다. 신세계L&B는 프랑스 론 지방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와인 브랜드 이기갈의 국내 판매권을 확보했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애호하는 와인으로 유명한 이기갈은 연초까지만 해도 신동와인이 수입했다.

프리미엄 테킬라 ‘1800’ 수입사 포제이스리쿼코리아는 지난 7월 글로벌 1위 테킬라 브랜드 호세쿠엘보의 국내 유통권을 따냈다. 이전에는 위스키 임페리얼을 수입하는 페르노리카코리아가 유통했었다. 위스키 업계 관계자는 “주류시장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이에 맞는 브랜드를 유치하려는 수입업체의 경쟁이 뜨겁다”며 “국내 주류시장이 전반적으로 축소되는 가운데 실속형과 프리미엄이라는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201310호 (201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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