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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Chefs - 스시에 인생 걸다 

 

사진 오상민 기자
공무원에서 스시 장인으로 변신한 서울 임피리얼팰리스 호텔의 권오준 일식당 만요 총괄 셰프. 일본 110년 전통의 일식 레스토랑 스시하츠에서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부주방장까지 됐다. 이후 스시 레스토랑 스시 잔마이에서 요리사 양성 교육을 맡았다. 일본 일류 음식점에서 외국인이 스시 교육을 책임진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일본 정원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서울 논현동 임피리얼팰리스 호텔의 일식당 만요. 홀 중앙에는 꽃과 나무가 있다. 바위틈 폭포수가 연못으로 흐른다. 정원 한 켠에 방이 하나 있다. 기다란 나무 테이블과 5개의 의자가 전부다. 만요의 VIP룸이다.

그룹 오너 부부와 정치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저녁 식사는 적어도 2~3주 전에 예약해야 가능하다. 테이블을 자세히 보면 바닥에 깔린 하얀 조약돌 위로 물이 흐른다. 만요에선 물로 깨끗이 씻은 맨손으로 스시(초밥)를 먹는다. 일본 정통 일식 요리인 에도마에(江戶前·도쿄식) 스시를 맛보는 방법이다.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어요. 손으로 집어야 만든 사람의 정성과 재료 본연의 질감이 느껴져 풍성한 맛을 느낄 수 있어요. 무사계급이 최고 권력을 누리던 일본 에도시대부터 맨손으로 먹는 걸 예의라고 여겼어요. 요리사가 정성껏 만들어준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먹겠다는 표현입니다.”

일본에서 17년간 에도마에 스시를 배우고 2010년 귀국한 권오준(49) 만요 총괄 셰프의 얘기다. 만요의 독립된 코너도 그만을 위한 공간이다. 그가 즉석에서 전어 스시를 만들어 테이블 대리석 위에 올려 놓았다. 맨손으로 집자 보드라운 밥알들이 손끝에 느껴진다. 소금과 식초에 절인 전어는 등푸른 생선 특유의 비릿한 맛이 없다. 오롯이 전어의 식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전어에 살포시 얹은 다진 파와 생강은 달콤한 여운을 남겼다.

권 셰프의 삶은 스시로 확 바뀌었다.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한 그는 9급 공무원이 됐다. 박봉이지만 안정된 삶이었다. 우연히 한 부산 호텔에서 스시를 맛본 후 모험을 시작했다. “스시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더군요. 그 순간 요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어요. 정말 맛있었어요. 이왕 배울거면 스시의 본고장 일본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1994년 9월, 그는 나이 서른에 일본으로 떠났다. 곁에는 그해 5월에 결혼한 아내가 있었다. 언뜻 봐도 무모했다. 요리의 기초는 고사하고 일본어 한마디도 몰랐다. 무작정 일본 아사쿠사에서 에도마에 스시로 유명한 식당 스시하츠를 찾았다. 3대째 전통을 잇고 있는 시노하라 후미꼬 사장이 경영을 했다. 세 번을 찾아갔지만 번번히 퇴짜를 맞았다. 네 번째 문을 두드렸을 때 시노하라 사장의 마음이 움직였다. 특히 자필로 정성스럽게 쓴 이력서가 한몫했다. 사장은 손글씨가 예쁜 사람이 요리를 잘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고난의 시작이었다. 가장 먼저 출근해서 식당 문을 열고 청소했다. 온갖 허드렛일은 그의 몫이었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일했다. 힘들어도 이를 악물었다. 그는 ‘열심히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한참 지난 후에 주방장이 새벽 시장에 그를 데려갔다. 매일 새벽 4시에 찾은 곳은 일본 최대 수산시장인 도쿄의 츠키지 어시장이다. 권 셰프는 주방장 어깨 너머로 생선 이름과 특징을 익혔다. 이때부터 서빙을 맡았다. 손님을 맞이하고 음식을 나르는 일이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일본에선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서비스하도록 교육합니다. 예컨대 고객이 테이블에 앉으면 공손하게 테이블 냅킨을 무릎에 덮어드려요. 화장실을 다녀오면 기다렸다가 다시 해줍니다. 세세한 부분을 신경쓰다보니 눈썰미가 생겼어요. 이제 손님의 찻잔 안을 보지 않고도 녹차가 비어있는지 알 수 있어요. 녹차가 줄수록 찻잔의 기울기가 커집니다. 항상 녹차가 비기 전에 새 찻잔에 따라줍니다. 단골 고객의 식성은 줄줄이 꿰고 있어요. 고객과 대화하면서 그날 날씨나 몸 상태에 따라 스시를 만들기도 하고요.”

1년이 지난 후에야 주방에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처음 배운 게 밥 짓는 일이다. 스시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밥이다. “밥 알 하나하나가 살아있어야 해요. 그래야만 그 틈새로 양념 맛이 골고루 스며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맛있게 밥 짓는 일 뿐 아니라 밥에 양념을 섞어 초밥을 만드는 일도 중요합니다. 부채질을 하면서 밥알이 다치지 않도록 팔의 힘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해요.”

6개월 동안 초밥을 만든 후 칼을 잡았다. 본격적으로 에도마에 스시를 전수받게 됐다. 밑바닥부터 성실하게 배워온 그를 바라보는 사장의 시선도 달라졌다. 그는 자신의 외동딸과 동갑인 권 셰프를 아들처럼 챙겼다. 7년의 시간이 흐른 후 권 셰프는 스시하츠의 부주방장이 됐다. 일본의 유명 스시집에서 10년 안에, 더욱이 외국인이 부주방까지 오른 경우는 거의 없다.

맨손으로 즐기는 에도마에 스시

이후 권 셰프는 시노하라 사장의 추천으로 ‘스시쇼우 사이토우’로 옮겼다. 미슐랭 별 두개를 받은 이곳은 스시 가이세키(코스 요리)가 3만엔(약 40만원)부터 시작하는 고급 일식집이다. 이곳에서 다양한 스시 가이셰키를 배웠다. 충분히 요리 경험을 쌓은 그는 오랜 꿈인 자신만의 가게를 열었다. 처음엔 일본 정통 스시를 한국인이 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지 못했다. 10년 넘게 제대로 익힌 그의 솜씨는 점차 입소문이 났다. 한번이라도 그의 스시를 맛본 손님은 단골이 됐다.

하지만 3년 후 가게 문을 닫았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요리를 하다보니 체력적으로 힘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요리에만 매진하기로 했다. 2009년 일본 최대 규모의 스시 레스토랑 ‘스시 잔마이’의 수석 조리장이 됐다. 이곳에서 그는 제자 양성도 맡았다. 외국인이 일본에서 스시 교육을 한다는 자체가 이슈였다. 스시 업계에서도 그의 솜씨를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이 소문이 한국까지 났다.

2010년 말 임피리얼팰리스 총주방장이 그를 한국으로 스카우트했다. 그 역시 나이가 들면서 고국이 그리웠다. “그 무렵 향수병이 생겼어요.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20년 가까이 익힌 정통 스시가 한국에서도 통할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권 셰프의 스시는 남다르다. 스시에 진한 향이 배어있다. 근대화되기 전의 정통 에도마에 스시를 고수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냉장 시설이 없어 생선을 자연 숙성해 스시를 만들었다. 그 역시 날생선보다 소금이나 식초에 절인 스시를 선호한다. 다시마에 절여 감칠맛을 내기도 한다. 권 셰프는 “숙성 생선이 활어보다 독성이 적고, 자체적으로 뿜어내는 영양이 더 많다”고 들려줬다.

스시에 고추냉이를 넣지 않을 때도 있다. 말린 유자를 갈아 고추냉이를 대신하는 조미료를 만든다. 유자의 달콤한 맛과 함께 매콤하면서 신맛이 난다. 그 맛의 비결은 권 셰프만의 노하우다. 특히 손님이 바로 집어먹을 수 있게 스시에 간장을 발라 내놓는다. 신기하게도 손으로 스시를 잡아도 밥알이 떨어지지 않는다.

권 셰프는 “고객들이 스시를 맛있게 먹을때가 행복하다”고 했다. “등푸른 생선은 비린내 난다고 안 먹던 고객에게 전어 스시를 권했어요. 재차 권하니 찡그리며 억지로 먹더군요. 갑자기 고객의 눈이 커지는 거에요. 비린 맛도 없고 맛있다는거에요. 기쁘더라고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도 일본 정통 에도마에 스시를 잇는 제자를 키우고 싶습니다.”




CEO를 위한 가을 요리 권오준 셰프는 유메스시(꿈의 스시)를 선보였다. 가을철 환절기 건강에 도움을 주는 콘셉트로 창작한 것이다. 사진 왼쪽부터 스시에 곁들이면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어주는 오이와 초생강, 시소와 생강을 갈아 얹은 피조개 스시, 함초를 올린 도미 스시, 대파와 생강으로 맛을 낸 학꽁치 스시다. 피조개·도미·학꽁치는 모두 가을에 가장 맛있는 해산물이다. 특히 함초는 ‘바다의 인삼’이라고 불릴만큼 타우린 함량이 많다. 여기에 소화를 돕는 생강과 상큼한 맛이 나는 시소로 맛을 더 했다.

201310호 (201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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