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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 달인 ⑧ - “흔들어야 영양가 높은 약주” 

 

글 고종관 중앙일보 헬스미디어 대표 사진 지미연 기자
막걸리에는 단백질은 물론 필수아미노산이 있고, 암 예방 효능도 있다. ‘막걸리 학교’의 허시명 교장은 “침전물인 지게미에 효능이 있다”고 했다.

▎서울 사간동 ‘막걸리 학교’의 허시명 교장. 학교 실내 벽면에는 지역별 막걸리 300여종이 전시돼 있다.



막걸리학교는 경복궁 뜰이 내려다보이는 삼청동 초입에 있다. 학교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Hand made 막걸리’ 표지판이 다소곳이 걸려있다. 막걸리의 문화 콘텐트를 만들어내는 산실이다. 교실 벽면에 진열된 600여 종 막걸리 병이 인상적이다. 허시명(53) 막걸리학교장에게 우리나라 막걸리가 몇 종이나 되는지 물었다. “글쎄요, 시판되는 것만 2000~3000종은 되지 않겠어요. 전국에 막걸리 양조장이 850여 곳 되는데 한 곳에서 많으면 20여 종까지 만들어내니까요.”

허시명 교장은 원래 작가며 기자다.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1989년부터 ‘샘이 깊은 물’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역사·문학·여행·음식 등 다양한 주제를 섭렵했다. 출판사가 문을 닫은 이후에도 그는 업을 놓지 않았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주요 일간지와 잡지에 꾸준히 자신의 세계를 넓혀갔다. 막걸리와의 인연도 취재를 통해 이뤄졌다. 그런데 다양한 주제 중에 왜 하필 막걸리일까.

“술 빚는 사람은 자부심과 열정이 대단해요. 술은 정성과 몰입의 산물이지요. 그러다 보니 한번 빠지면 다른 업으로 쉽게 전환하질 않아요. 자신의 레서피가 있어 쉽게 양조장 문을 열지도 않습니다.”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우면서 기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분야라는 뜻일 게다.

그에게 우리 술 취재는 동화 속 10살 소녀인 메리 레녹스가 발견한 ‘비밀의 화원’이었다. 그야말로 창고에 쌓아둔 콘텐트의 보고였다. 그의 첫 저서 『풍경이 있는 우리술 기행』은 예상대로 서점가의 파장을 일으켰다. 막걸리를 비롯한 우리 술에 문화의 옷을 입힌 희귀 대중서가 나온 것이다. 이후 그는 『술의 여행』 『비주』 『막걸리 넌 누구냐』 와 같은 책을 잇달아 내면서 술평론가로 자리매김했다.

“막걸리는 노인에게는 세월을 위로하는 술이요, 농군에게는 고단함을 덜어주는 노동주죠. 가난한 시인에게는 예술적 심성을 일깨우는 풍류주고요.” 그렇게 서민의 정서를 대변하던 막걸리는 1980년대 중후반 위기를 맞는다. 산업화로 경제 부흥기를 맞으면서 대중의 입맛이 바뀌기 시작했다. 도시 집중화, 사무직 노동자의 증가, 수입 자유화와 해외여행 붐을 타고 기호 주류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심지어 논두렁에서도 맥주와 커피를 마시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막걸리는 끝없이 추락을 거듭한 것이다.

“막걸리는 낡은 것, 맥주는 신세대의 술로 인식됐죠. 게다가 지역독점판매에 안주한 양조장들이 소비자의 입맛이 변하는데도 새로운 술을 개발하는데 게을렀습니다.” 막걸리는 막 거른 술이라는 뜻이다. 탁주의 범주에 속하지만 혼탁도(단위 ebc)는 그 이상이다. 탁도계로 측정했을 때 350ebc면 탁주, 막걸리는 1500ebc이다. 이에 비해 청주의 탁도는 18ebc에 불과하다.

막걸리가 건강술로 꼽히는 첫 번째 이유는 발효주이기 때문이다. 소주 같은 증류주나 청주·와인처럼 살균 유통되는 술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유산균이 풍부하다. “생막걸리 100㎖에는 유산균이 적게는 1억~100억 마리가 들어있습니다. 유산균을 집중 배양한 요구르트에 들어있는 양과 비슷하거나 많지요.” 막걸리를 먹고 황금색 변을 보았다는 사람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발효가 끝난 술은 맑은 층과 지게미 층으로 분리된다. 맑은 부분은 청주가 되고, 지게미층을 거르면 막걸리가 된다. 지게미의 영양성분을 보자. 같은 100g에 칼로리는 비슷하면서 단백질과 지방함량은 우수하다. “막걸리에 들어있는 단백질 함량은 1.6~1.9%에요. 우유의 단백질 함량 3%와 비교하면 상당한 양이 아닐 수 없죠.”참고로 소주는 0%, 맥주 0.4%, 청주 0.5% 수준이다.

유산균 100억 마리 살아있는 건강식품

성인이 필요로 하는 필수 아미노산(체내에서 만들어지지 않아 음식으로 섭취해야 하는 단백질의 구성단위)이 풍부하다는 것도 흥미를 끈다. 곡물과 누룩에 들어 있는 단백질이 발효과정에서 다양한 아미노산으로 분리된다. 필수 아미노산 8가지 중 류신·이소류신·메티오닌·리신 등 7종이 막걸리에 들어있다.

암을 예방하는 효능도 있다. 한국식품영양과학회는 낮은 농도의 막걸리 농축액일지라도 괄목할 만할 정도로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심장병과 고혈압·당뇨를 예방하는 논문도 나온다. 막걸리 성분이 혈중지질 농도를 감소시키고, 혈압을 떨어뜨리는 기능도 있다. 특히 한국식생활문화학회에선 막걸리의 주박(술지게미)이 식후 혈당을 떨어뜨린다는 논문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특이한 것은 막걸리의 효능이 침전물인 지게미에 풍부하다는 거죠. 그러니 막걸리를 흔들어 마시지 않으면 금광에 들어가 동굴만 구경하고 나오는 격입니다.” 조강지처란 술지게미(糟)와 쌀겨(糠)를 함께 먹으며 가난한 삶을 견뎌온 아내를 말한다. 하지만 지게미에 이렇게 영양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선인들이 알았다면 이 같은 사자성어도 나오지 않았을 법도 하다. 그렇다고 애주가들이 영양섭취를 위해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지게미가 많으면 아미노산 등 영양성분은 풍부할지 모르지만 자칫 술맛이 무겁고 깔끔한 뒷맛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막걸리를 마실 때는 맑은 부분(싱겁지만 깔끔하다), 지게미가 가라앉은 걸쭉한 부분(탁하지만 영양덩어리), 그리고 흔들어서 섞어 마셔 보요. 이렇게 세 가지 방식으로 맛을 본 뒤 자신의 취향에 맞게 마시면 됩니다.”

막걸리 알코올 도수는 대부분 6%다. 우리 민족이 통상 즐기는 술 중에 가장 도수가 낮다. 일하면서 한두 잔 마셔도 지치지 않고, 탐닉하게 만들지 않는다. “1982년에 막걸리 도수를 일률적으로 8%로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공사장에서 안전사고가 빈발했어요. 막걸리는 혈액순환을 도와 활력을 주지만 8% 이상은 운동 신경을 둔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막걸리의 열량은 100㎖에 46~63.9㎉. 안주 없이 마실 경우 두 사발(300㎖ 기준 300~360㎉)이면 밥 한공기의 열량을 섭취할 수 있다.

막걸리가 다시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다. 한류가 뜨면서 전통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데다 웰빙바람이 불어 막걸리가 건강술로 주목 받았다. “당시 막걸리 열풍은 마치 해일 같았습니다. 전국에는 ‘탁사발’ ‘뚝딱’과 같은 막걸리 체인점이 속속 개장했습니. 막걸리학교 수강생을 모집하면 5분 만에 매진될 정도였어요. 일본·미국은 물론 중동에서까지 오고, 출신도 교수·대학원생·농부·요리연구가·은행원 등 각양각색이었습니다.”

2009년 시작한 막걸리학교는 19기 신입생을 받았고, 동문은 800명이 넘는다. 여세를 몰아 부산에서도 학교를 개설해 이번에 2기 수업이 시작됐다. 또 매달 마지막 주에는 막걸리콘서트를 연다. 술과 안주를 준비하고, 술과 접목된 문화강좌를 들으며 정보를 공유하고, 담소하는 자리다. 월 1회 전국에 산재된 양조장을 탐방하는 기행도 한다.

그에게 좋은 막걸리를 고르는 요령을 물었다. “건강을 돕는 술은 좋은 재료로 빚어야 하지요. 좋은 쌀을 써야합니다. 우리 몸은 감미료를 넣지 않은 막걸리를 잘 받아들입니다. 대부분 감미료로 아스파탐(단맛이 설탕의 200배)을 쓰는데 이는 여자가 화장하듯 재료의 맛과 지역의 특성을 감춰버립니다. 장인의 정교한 맛이 사라지고, 천편일률적인 맛이 되는 거지요.”

특히 일본에서는 감미료가 들어간 술은 고급술로 치지않는다. 요즘 국내에 ‘느린마을 막걸리’나 ‘초가’ 등 무감미료 막걸리가 늘어나는 것은 다행이다. 술은 음식이다. 적당히 마시면 약주가 된다. 하지만 술을 근절해야 할 사회악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각종 사건사고에 단골메뉴로 등장한다는 이유에서다.

“우리에게 술 문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취하는 것이 목적인 밤 문화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지요. 술을 절제하도록 계몽하려면 맛있는 술을 마시도록 권해야 합니다. 술을 맛있게 들기 위해선 인사불성이 되도록 마시면 안 되죠.”

‘싸구려 술’ 이미지 씻으려면 양조장 뭉쳐야

허 교장은 “어릴 때부터 술의 위해성과 문화를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술을 남용하지 않고, 즐길 수 있다면 곡물로 만든 것 중 술처럼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도 없다. “저도주이면서 대중주로 서양의 맥주와 우리의 막걸리가 있습니다. 문명의 대결처럼 지금까지 우리 막걸리는 맥주에 점령돼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 막걸리가 값싼 이미지를 탈피해 대접 받으려면 양조장의 연대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상표의 규격화와 표준화(술 이력서·재료·맛 표기 등), 과학화를 위한 연구소 설립, 무감미료 술 개발, 양조장의 관광자원화, 술병의 디자인, 유통구조의 개선 등이 그것이다. “막걸리 수출 감소를 걱정하기보다 막걸리 문화가 부재하고, 콘텐트가 왜소함을 우려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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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호 (201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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