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th

나를 살린 황금덩어리 청국장 

건강의 달인⑨ 

글 고종관 중앙일보 헬스미디어 대표 사진 오상민 기자
서울 강남에서 손꼽히는 산부인과 의사에서 암환자의 멘토로 변신한 홍영재 박사. 대장암과 신장암으로 죽을 고비를 넘었다. 그를 살린 것은 구수한 청국장이었다. 당연히 청국장 예찬론자가 됐다. 청국장을 주재료로 요리하는 레스토랑도 만들었다.

▎홍영재 박사는 그가 운영하는 서울 서초동의 레스토랑 ‘홍영재 장수 청국장’에서 미루나무 옆자리에 즐겨 앉는다. 그는 “나무에서 전해지는 생명력과 온기가 좋다”고 했다.



2001년 가을, 홍영재(70·산부인과 전문의, 홍영재장수청국장 대표) 박사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병실에서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을 쓸쓸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장암 3기였다. 암포식자는 주변 림프선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전이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진행된 검사에서 또 다른 암이 발견됐다. 신장암이었다.

의료진은 왼쪽 콩팥과 30㎝의 대장을 잘라냈다. 그리고 포식자의 잔당을 박멸하기 위해 항암제를 쏟아 부었다. 피부가 새카맣게 타들어갔고, 입안은 물론 인체 모든 점막이 헐어 염증을 일으켰다. 물 한 모금을 마시려고 해도 통증으로 비명을 질렀다. 18㎏의 몸무게가 빠지면서 174㎝에 80㎏의 건장한 체구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왜소하게 뒤틀렸다.

“당시엔 6일간 항암제를 맞고, 25일 쉬는 방식으로 6개월 동안 항암요법을 반복했어요. 그런데 다섯 번째에서 더 이상 버틸 기력을 잃었습니다. 이러다간 항암제 때문에 죽겠다 싶어 치료를 포기했습니다.”

얼굴은 데스마스크(Death mask)가 됐고, 면역력은 바닥이 났다. 감기만 걸려도 폐렴으로 이행돼 항생제가 무용지물인 상황에 이르렀다. 죽음의 터널 앞에서 그는 어린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본능적으로 어머니가 끓여 주신 청국장을 맛있게 먹던 기억이 났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주 이모에게 전화를 했어요. 며칠 뒤 이모가 직접 만든 청국장을 들고 울면서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수저를 입에 대는 순간 ‘청국장 국물이 헤엄쳐 들어가듯 목 안으로 도르르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정말 ‘입에서 녹는다’는 표현이 맞았다. 먹기만 하면 구토하는 증상도 멎었다. 뱃속이 편해지고 체력을 회복하니 살만했다. 그는 몸을 추슬러 6차요법을 끝냈다. 그로부터 12년, 그는 암 재발 없이 지금 건재하다.

암 극복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5년여가 지난 뒤 암의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자신감이 생길 무렵 자신의 암투병기를 바탕으로 책을 썼다. 『암을 넘어 100세까지』다. 20쇄를 넘겨 지난해 내용을 보완해 재출판했다. 여기저기서 강의요청도 들어왔다. 경험에서 우러나는 진솔한 얘기에 청중은 웃고 울었다.

그는 한 해 200회 가까운 강의를 소화해낸다. 저술 활동도 활발해 『홍영재의 젊은 생각』 『청국장 100세 건강법』 『닛다 임신법』 『오색섭생』 등 여러 권의 책을 냈다. 서울 강남에 문을 연 ‘홍영재 장수 청국장’이라는 웰빙 레스토랑도 성업 중이다.

하지만 본업은 역시 의사다. 그는 연세대 의대 출신이다. 산부인과를 전공하고, 대학병원을 거쳐 서울 강남에 홍영재산부인과로 이름을 날렸다. 30여 년간 3만 명 이상의 아이를 받았다. “언젠가 하와이에서 길을 걷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나를 알아보고 딸을 인사시키는 거예요. 바로 제가 받은 아이였죠.” 이런 일은 그에겐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지금도 병원 문은 열고 있지만 산부인과를 전공한 아들이 협업을 해서 홍 박사는 암환자의 멘토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홍 박사는 대부분의 질병은 물론 암도 자신이 키운다고 생각한다. “대장암은 서서히 자라기 때문에 4~5년에 한 번 정기검진을 받으면 조기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게도 암을 일찍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어요. 건진예약을 하고, 장을 비우는 약까지 먹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때마다 새벽에 산모가 들이닥치는 거예요. 어떤 때는 쌍둥이도 있었어요. 산모하고 씨름하다보면 오전이 훌쩍 넘어가 버리고 다음 해로 건강검진을 미뤘죠.”

의사였음에도 그의 식생활은 모범생이 아니었다. 육류를 좋아했는데 특히 숯불에 구운 직화고기를 즐겼다. 맛있다는 고깃집과 곱창집을 매일 드나들었다. 카자흐스탄에 의료봉사를 가서는 불에 그슬린 양고기를 원없이 먹었다. 그는 탄 고기에 들어있는 벤조피렌이나 아플라톡신 같은 발암물질이 대장암의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암 예방 효과가 큰 청국장과 가지로 만든 레스토랑 메뉴. 청국장 콩과 야채로 버무린 허니 토마토 샐러드(왼쪽)와 가지 샐러드.
청국장·가지가 암예방에 큰 효과

암을 극복하고부터는 식습관을 완전히 바꿨다. 우선 기름기 있는 육류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대신 그는 청국장과 가지를 즐겨 먹는다. 청국장은 그를 살린 식품이면서 사업 아이템이다.

그는 청국장을 ‘나를 살린 황금덩어리’로 표현한다. 콩은 ‘밭에서 나는 쇠고기’로 일컫을 정도로 단백질이 풍부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발효과정을 거쳤다는 점이다.

단백질은 우리 몸에 들어가 효소에 의해 분해돼 흡수된다. 이른바 아미노산화 과정을 거친다. 암 환자는 항암제에 의해 효소가 파괴되고, 점막이 망가져 좋은 식품을 섭취해도 흡수율이 떨어진다. 억지로 먹은 음식조차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해 기력과 면역력은 계속 떨어진다.

청국장은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바실루스 균이 콩단백질을 발효시켜 아미노산으로 분해해 놓은 것이다. 청국장에는 우리 몸에 필요한 8종의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하다. 필수아미노산의 하나인 페닐알라닌은 기분을 좋게 하고, 통증을 완화시킨다. 리신은 골다공증과 염증을 개선한다. 아르기닌은 면역력을 높여주고, 혈액순환을 돕는다.

게다가 조직재생을 도와주는 비타민 B군·E·K가 들어있다. 비타민 E의 다른 이름은 토코페롤. 역시 면역체계를 강화하고, 암 발생을 억제한다. 제7 영양소로 일컫는 미량 영양소도 많다. 이소플라본 성분인 디아진과 글라이시틴은 강력한 활성산소를 제공해 암이나 성인병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준다.

홍 박사는 생명의 은인인 청국장을 소재로 식당을 열었고, 말 그대로 대박을 쳤다. 그가 두 번째로 연 홍영재장수 청국장 서초점 메뉴에선 청국장의 화려한 변신을 경험할 수 있다. ‘허니토마토’는 익힌 토마토에 청국장을 가미했다. 서걱거리는 토마토와 아몬드처럼 변한 청국장의 씹는 식감이 일품이다. 세트메뉴 마지막을 장식하는 음식이 바로 그를 살린 청국장이다.

그가 권하는 또 하나의 식품은 가지다. 가지는 웰빙식품으로 보면 과소평가된 대표적인 채소다. 가지의 보라색에는 안토시아닌이 듬뿍 들어있다. 안토시아닌은 대표적인 피토케미칼(Phytochemicals, 식물생리활성영양소)이다. 적은 양으로도 건강기능이 뛰어나다고 해서 ‘미량영양소’ ‘제7의 영양소’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피토케미칼은 식물이 미생물이나 곤충·햇볕 등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방어물질이다. 흥미로운 것은 채소나 과일의 피토케미칼이 고유의 색깔을 갖고 있고, 색깔이 진할수록 기능이 뛰어나다는 사실이다.

“가지에는 안토시아닌계 색소 중 자주색을 내는 나스닌, 적갈색의 히아신 색소가 들어있어요. 이 색소는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을 낮춰 혈관건강을 이롭게 합니다. 강력한 항산화작용으로 세포의 손상과 노화를 막죠. 특히 대표적인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을 제거하는 효과가 브로콜리나 시금치의 2배나 된다고 해요.”

그의 가지예찬론은 끝이 없다. 가지 홍보를 도와준다고 해서 가지생산자조합에서 감사패를 받을 정도다. 그는 가지를 식사 전에 듬뿍 섭취한다. 익힌 가지를 먼저 섭취해 배를 불린 뒤 밥을 먹는 식이다. 칼로리는 낮고, 섬유질이 풍부해 중·노년층의 복부비만을 줄여준다. 이밖에도 가지에는 베타카로틴이 들어있다. 시력 보호와 피부 노화를 막아준다. 각종 비타민에 이뇨작용·항염증 기능도 있다. “아무리 몸에 좋은 식품이라도 편식은 지양돼야 한다”는 것이 홍 박사의 설명이다.

“고기도 먹고 싶을 땐 먹어야 합니다. 직화한 육류라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면 괜찮습니다. 우리의 면역체계가 건강하다면 균형적인 식사는 오히려 인체와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그가 권하는 균형적인 식사란 단백질·지방·탄수화물의 적절한 섭취와 오색영양소를 즐기는 것. 식품마다 다른 빨강·노랑·초록·흰색·검은색의 과일과 채소 그리고 곡류를 섭취해야 한다.

모든 병은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삶의 벼랑 끝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일상의 소소함에도 감사하고, 행복을 느낀다. 평소 사랑하는 마음과 긍정적인 생각이 암을 극복하게 했는지, 아니면 암을 극복한 뒤에 이런 마음가짐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저서 『암을 넘어 100세까지』에서, 홍 박사는 ‘투병 중에 아내에게 한 번만 더 웃어보라’고 했다. 아내가 웃어줘서 행복하고, 아내가 옆에 있어줘서 행복하고, 아내가 행복하니 나도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암선고를 받자 찾아오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가장 먼저 깨닫게 되는 것이 일상의 소중함과 작은 행복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모든 병은 당신에게 달려있다”고 감히 말한다. 병의 발생은 물론 치유까지 95%는 자신이, 나머지 5%만이 의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동안 내가 도와준 암환자가 180여 명됩니다. 그중 절반이 살아남았는데 이들 대부분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을 살고, 웃음이 많은 풍부한 감정의 소유자였습니다. 반면 자신의 병을 한탄하고, 절망과 우울로 보낸 사람들은 일찍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아내의 핀잔을 들으면서도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칠순이면 어떠랴. 마음 건강이 바로 몸 건강을 지배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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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호 (201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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