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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 사원·주민·은행나무가 하나되는 100년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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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민규 기자
1924년 창업한 삼양그룹은 1976년 서울 연지동에 사옥을 지었다. 정림건축이 설계한 이 건물은 2003년 리모델링하면서 ‘열린 기업’의 이미지를 심기 위해 지역 주민에게 일부 공간을 개방했다.

▎경민호 정림건축 대표는 서울 연지동 삼양그룹 사옥을 리모델링할 때 ‘소통’을 강조했다.




▎리모델링 전인 1976년 완공한 삼양그룹사옥
기업의 사옥은 일반 건물과 달리 그 기업의 정체성을 담는다. 또 주변 환경과 업종에 따라 내부 공간을 꾸미기도 한다. 포브스코리아에서는 이번 호부터 멋진 사옥을 설계한 건축가에게 그 뒷얘기를 들어본다. 그 첫 순서로 삼양그룹 사옥을 리모델링한 정림건축 경민호 대표를 만났다.

넓지 않은 공간인데 건물 앞에 큰 은행나무가 있다. 다가가 살펴보니 보호수(고유번호 ‘서1-5’)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서울 연지동 삼양그룹 사옥[5055㎡(약 1529평)] 입구에 있는 은행나무다. 나이는 498세(2014년 기준).

정림건축은 삼양그룹 사옥을 1976년 설계하고 2003년 리모델링 했다. 리모델링 당시 좁은 로비를 더 확장하려 했지만 은행나무가 문제였다. 리모델링을 맡았던 정림건축 경민호 대표는 “이 건물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 중 하나가 은행나무였다. 보호수였기 때문에 로비 확장에 한계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로비는 기존 건물에서 조금만 확장할 수 있었다.

로비 밖 현관 모양도 은행나무를 감싸듯 둥그렇다. 대신 로비 천장을 높였다. 탁 트여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경 대표는 “리모델링은 새로 짓는 것보다 고려할 요소가 다양하고 복잡하다”고 했다. “기존 구조와 형태에 전기 설비 등을 어떻게 갖출지, 외장을 어디까지 철거해야 효율적일지 등을 따져야 합니다.”

삼양그룹은 1924년 문을 연 대한민국 대표 장수 기업이다. 식품·플라스틱·배합사료·섬유·의약품 사업 등을 한다. 일본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고(故) 김연수 전 회장이 세웠다. 김윤 삼양그룹 회장은 창업자의 손자다.

연지동은 삼양이 1924년 서울 을지로 1가를 시작으로 서울 남대문로와 무교동, 광교 부근 등으로 사무실을 옮겨다니다 1976년 자리 잡은 곳이다. 1974년 기독교방송으로 부터 부지를 매입한 김연수 전 회장은 설계를 맡은 정림건축[당시 대표는 정림건축 창업자인 김정철 명예회장(작고)과 김정식 명예회장이었다]에 특별히 이 같은 당부를 했다. “주변 자연을 고려해서 설계해 주시오. 특히 은행나무와 조화를 이루면 더 좋겠소.”

건물 뒤 공간에 테니스코트를 만들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김연수 전 회장은 뒷마당을 동산으로 만들었다. 도심 속에 휴식공간이 됐으면 하는 뜻에서였다.

사옥 첫 설계 당시 PC판넬로 외벽이 시공됐다. 공장에서 미리 만든 가로 3.75m 세로 3.3m짜리 타일이 붙은 판넬을 공사 현장에서 외벽 골조에 바로 붙이는 방법이다. 기존보다 30% 정도 공사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건물도 이 방법을 사용했다. 건물은 착공 17개월 만인 1976년 완공됐다. 1975년 김연수 전 회장의 아들 고(故) 김상홍 명예회장이 회장직에 오른 시기와 맞물렸다.

삼양은 2000년대 들어 사옥 리모델링을 위해 공모를 했다. 공교롭게도 여러 설계회사 중 정림건축의 제안이 채택됐다. 경 대표는 사옥을 리모델링하면서 ‘개방성’과 ‘소통’의 정신을 담았다. 그는 “삼양의 딱딱한 이미지를 개방적이고 고객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이미지로 바꾸려 했다”고 설명했다.

“삼양 사옥 부지가 사각형이 아니어서 앞·뒷마당이 자연스레 생겼습니다. 그런 공간을 ‘삼양의 공간이고 삼양 사람만 이용할 수 있다’는 것과 외부인에게 개방하는 것은 크게 다르겠죠.” 삼양그룹 사옥 리모델링 실무를 담당했던 박광배 정림건축 설계1본부 이사는 “삼양은 전통적인 제조업 이미지를 갖고 있어 열린 기업 이미지에 초점을 맞췄다”고 돌이켰다.


▎삼양그룹 사옥 뒷마당. 앞마당부터 건물 내 로비와 회의실을 지나 뒷마당까지 연결되는 동선은 개방성과 소통을 의미한다(왼쪽). 삼양그룹 사옥 건물 입구. 보호수인 은행나무를 그대로 두고 제한적으로 확장했다(오른쪽 위). 입구를 넓히는데 제한이 있어 로비 천장을 높여 탁 트여 보이게 했다(오른쪽 아래).
기존 건물의 기초공사 새로 다지다

경 대표는 사옥을 둘러싸고 있던 담과 향나무, 그리고 정문을 없앴다. 사옥 앞마당은 누구나 지나다닐 수 있게 됐다. 1층 로비로 쭉 들어가면 회의실과 휴게 공간이 널찍하게 있다. 회사 직원이 아니어도 아무런 제제를 받지 않고 누구나 출입할 수 있다.

로비 끝에는 정원으로 꾸며진 뒷마당이 있다. 사옥 부지가 넓지는 않지만 이처럼 열린 공간이 많다. “리모델링할 2000년대 초반에는 지금처럼 회의실 등을 전부 열어 놓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때가 아닙니다. 보통 1층에 들어오자마자 사원증을 찍는 등의 게이트가 있죠.”

처음 리모델링을 계획할 때는 건물이 구조적으로 튼튼하다고 판단해 건물 외벽에 또 다른 외벽을 덧입히는 방법을 제안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건물의 개방적 이미지를 표현할 수 없었다. 건축물이 구조적으로 불안할 가능성도 있었다. 여러 차례 협의 끝에 기존 외장재(PC판넬)를 뜯어내고 새 외장재를 붙이자는 결론이 났다. 외벽은 전면 유리로 시공하기로 했다.

개방성과 소통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당시에 유리로 외벽을 시공할 때는 현장에서 알미늄 틀을 만들고 유리를 각각 끼운 뒤 유리와 유리가 만나는 부분을 실리콘으로 마감하는 방식을 따랐다. 76년 사옥을 지을때 외벽을 별도로 제작해 끼웠듯이 유리외벽도 공장에서 일정 규격으로 만들어 붙이는 이 방식으로 빠르게 시공할 수 있었다.

리모델링을 할 때는 첫 건물을 올릴 때와 일부 건축 관련법과 설비 기준이 달랐다. 지진에도 대비해야 했고, 책상마다 컴퓨터를 놓아 건물이 견뎌야 할 무게도 더 늘어났다. 사람으로 치면 몸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발바닥을 더 키워야 했다. 건물의 콘크리트 바닥을 뚫어 기초를 더 다졌다. 배관과 전선은 물론 통신선 등 예전에는 없던 것들을 넣다보니 천장 높이가 낮아질 수 밖에 없었다. 박 이사는 “천장을 몇 ㎝라도 높이려고 궁리한 끝에 결국 3㎝ 늘렸다”며 웃었다.

사실 리모델링 공사는 예정보다 3개월 늦게 마쳤다. 직원들이 리모델링하는 동안 사무실을 옮기지 않고 이 건물에서 일했다. 모든 직원을 수용할 수 있는 사무실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이동 계획과 건물의 어느 부분을 언제 철거하고 공사할 것인지를 세밀하게 짰다. 국내에서 직원들이 근무하면서 리모델링하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 시공사의 현장 소장은 공정 계획을 짜지 못해 한동안 공사 진척이 더디기도 했다.

경 대표는 “공사하는 동안 분진과 소음을 낮추려고 노력했지만 그래도 근무환경이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냉난방 설비는 사용하지 않는 봄가을에 교체하는 등 많은 신경을 썼어요.” 당시 리모델링 공사를 총괄하던 박정철 삼양홀딩스 부동산TF팀 팀장은 “직원들이 많이 불편했을 텐데 잘 참아줬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때는 보통 주 6일 근무였는데 리모델링하는 동안 주5일제를 시행했어요. 주말에 소음이 많이 나는 공사를 주로 했습니다.”

새로 지어진 건물 앞부분의 저층부는 3층에서 5층으로 높아졌다. 5층에는 직원 식당과 피트니스 센터를 만들었다. 직원들은 탁 트인 창으로 밖을 보며 운동하고 식사를 한다. 경 대표는 “이 정도 크기의 사옥에 피트니스센터를 넣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했다. 저층부 옥상에는 정원을 만들어 직원들의 휴식 공간을 마련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무공간의 필수 요소는 편안함·안락·효율성·안정감입니다. 삼양그룹 사옥은 도심에 있지만 건물 앞과 뒤에 공간이 있습니다. 직원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삼양그룹이 따뜻한 기업 이미지를 얻는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201401호 (201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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