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 자주 나와 국악 알릴 수 있어 행복…누구나 쉽게 듣고, 낯설어하지 않는 음악 만들고 싶어

▎송소희는 전통 국악을 넘어서 대중에게 더욱 가까이 가는 국악에 주목한다. 고운 한복 차림과 참한 외모는 그의 노래 실력을 한껏 돋보이게 만드는 매력포인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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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한 얼굴이다. 대중문화계에 ‘송소희’(17)라는 국악스타가 떴다. 첨단 IT상품이 등장하는 이동통신회사 광고에서 우리 민요를 씩씩한 목소리로 부르는 ‘그’ 앳된 소녀 말이다. 요즘 텔레비전에서나 극장에서 자주 보게 되는 광고다. “저 애는 누구지?” 한동안 어른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었지만 요즘은 그 소녀에게 수많은 아빠팬과 삼촌팬이 생겨났다. 정작 광고모델로 더 유명해졌지만 어린 나이부터 국악과 시조에 남다른 소질을 보인 자원이다.송소희는 여덟 살 때인 2004년, KBS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앙증맞은 무대 매너와 함께 제주민요 ‘오돌또기’를 불러 인기상을 받았다. 4년 뒤, 같은 프로그램에 다시 출연해 연말 결선에서 대상을 안았다. 30년이 넘은 이 프로그램 역사상 최연소 대상 수상자다. 그 뒤로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과 KBS <윤도현의 러브레터> 등에 출연하면서 ‘국악신동’으로 자질을 뽐내왔다.국악·시조경연대회에서도 온갖 상을 휩쓸었다. 2004년 ‘전국시조 경창대회’ 대상, 2007년 전국남녀시조경창대회 대상 등 지금까지 시조대회 수상만도 50차례가 넘는다. 유명세를 타면서 국악관현악단과 협연뿐만 아니라, 2009년 한·일문화교류 일본공연, 2010년 한·러수교 20주년 러시아공연 등 해외공연에도 단골로 초대됐다.2012년에는 꿈에 그리던 미국 워싱턴 카네기홀 무대에도 서봤다(하지만 그는 카네기홀 단독공연을 통해 국악의 아름다움을 세계 곳곳에 알리고픈 꿈을 간직하고 있다). 화려한 이력 덕분에 그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최연소 홍보대사, 국민대통합위원회 홍보대사 등 꽤나 어른스런 역할까지 맡고 있다.그에게 쏠리는 수많은 시선이 17세의 소녀에게는 미래의 꿈을 향한 자양분이 되는 듯하다. 바쁜 일정을 쪼개 〈월간중앙〉과 만나는 날에도 송소희는 예의 밝고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나타났다. 자주 보았던 한복 대신 캐주얼 차림이 다를 뿐이었다. 얼굴도 여느 여고생들처럼 맨 얼굴 그대로다. 국악소녀의 ‘행복한’ 꿈 이야기가 시작됐다.
“인기 실감할 시간도 없는 걸요”CF 출연 이후 많이 바빠졌죠?“맞아요, 유명해지긴 했나 봐요. 이곳저곳에서 찾아주시는 분이 많거든요. 예전에는 무대에서 노래만 부르고 내려왔는데, 요즘에는 꼭 인사 멘트를 시키시더라고요.(웃음) 관객분들의 호응이 좋아지니 노래 부르는 맛이 더 나죠. 몇 년 전만 해도 국악 마니아들만 공연장에 오셨거든요. 사회자가 ‘다음 무대는 국악입니다’라고 하는 순간 공연장을 썰물처럼 빠져나가시는 관객들을 볼 때면 늘 마음이 아팠어요. 공연 내내 스마트폰을 쳐다보거나 호응이 전혀 없으신 관객도 많았고요. 그런데 요즘에는 일반 관객들까지 많이 호응해주시니 너무너무 신나게 공연해요.”
국악 하면 보통 나이 드신 분을 떠올리는데 아무래도 소희 양이 하니까 국악도 젊어진 거 같아요?“과찬의 말씀이세요. ‘송소희’ 하면 국악을 떠올려주시니까 감사할 따름이죠. 다만 국악이 예전에 비해 대중적이 되고, 제 또래들에게도 친숙해진 음악이 되어서 기뻐요. 얼마 전 미국으로 공연을 다녀왔는데 K팝 스타들과 함께 무대에 섰어요. K팝 못지 않게 국악을 좋아해주시는 관객을 보며 국악의 높은 장벽이 무너지는 것 같아 뿌듯했어요.”
같은 또래 중에서도 국악 하는 친구가 많을 텐데 개인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게 돼 부담스럽지는 않나요?“이런 상황이 참 안타깝기도 하죠. 저보다 국악 실력이 훨씬 뛰어난 친구가 많은데 관심이 저한테만 쏟아지고 있잖아요. 제가 특별히 뛰어나서 주목받는 게 아닌데…. 어릴 때 출연했던 방송이 저한테 기회를 줬고, 그 행운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저를 찾는 무대가 많아질수록 사실은 안타까운 마음과 행복한 마음이 교차해요. 저도 그렇지만 국악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불안이 있거든요.”
어떤 불안감인데요?“‘국악을 계속해도 괜찮을까, 내 미래는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죠. 대중이 국악을 찾지 않으니, 배우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친구도 많고요. 많은 사람 앞에 설 수 있어 행복하지만, ‘국악인’으로 롱런할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신이 안 서요.”
그러면 CF나 방송에 출연하는 이유는 뭔가요?“국악이 좀 더 대중적인 음악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예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누가 꿈을 물으면 무조건 ‘무형문화재’라고 답했어요. 공연 무대를 통해서 정식코스를 밟아 성장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국악을 하면 할수록 ‘대중적인 국악’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사람들이 국악을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많아져야 그만큼 국악을 더 많이 찾아주실 테니까요. 방송에 출연하면 국악을 무조건 한 소절씩은 부르게 되니까, 국악을 알리는 데 참 좋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공연을 자주 해와서 무대 울렁증 같은 것은 없겠네요?(웃음)“지금이야 괜찮지만, 일곱 살 때인가 너무 긴장한 나머지 무대에 못 선 적이 있었어요. 머리는 멍해지고 눈앞에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게 되더라고요. 부모님이 그러시길 제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대요. 결국 무대에 오르지도 못하고 내려왔는데 열심히 준비한 노래를 못 불러서 너무나 속상했죠. 그때 치른 호된 신고식 때문인지 지금은 웬만한 무대에서 안 떠는 편이에요.”겉모습은 앳된 소녀지만 말하는 품세가 그의 노랫가락만큼이나 당차다. 학생 신분이지만 ‘자기관리’에서는 여느 예술인 못지않다고 한다. 집에 있을 때도 목관리를 위해 항상 스카프를 매고, 목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피한다(송양은 인터뷰 도중에도 ‘에어컨 바람을 쐬니 목이 칼칼하네요’라며 에어컨을 꺼달라고 부탁했다).공연에 입고 나갈 한복도 자신이 직접 고른다. 한 벌에 200만~300만 원 하는 한복을 매번 살 수 없어 고민했는데 다행스럽게 중학 1학년 때부터 박지연 디자이너로부터 의상을 협찬받게 됐다고 한다. 무대 분위기나 부를 음악을 고려해 자신이 원하는 한복 스타일을 말해주면, 박 디자이너가 그의 나이에 어울리는 한복을 제작해준다.
소희 양은 한복이 참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 평상복을 입은 모습이 색달라 보일 정도인데, 본인은 어떤가요?“저도 이젠 한복이 더 편해요. 집에 한복이 100벌 정도 있는데, 늘 한복을 입고 생활해와서 그런지 평상복을 입으면 왠지 더 긴장하게 돼요. 한복 입은 모습이 예쁘다고 많이들 말씀해주시는데, 막상 한복 벗고 화장 지우고 나가면 아무도 못 알아보시더라고요. 한 번은 목욕탕에서 마주친 아주머니들께서 ‘송소희 맞나? 아니겠지?’ 하고 가신 적도 있어요.”(웃음)
어린 나이 인데도 ‘탁 트인 목소리’를 갖게 된 비결은 뭔가요?“아니에요, 저 정도는 누구나 다 불러요.(웃음) 그런데 저는 뜨거운 물은 절대 안 마셔요. 다른 분들은 뜨거운 물을 마셔야 목이 풀려서 소리가 잘 나온다고 하던데, 저는 반대로 찬물을 마셔야 목소리가 시원스레 잘 나오는 편이에요. 또 보약이 들어간 배즙도 틈틈이 먹고 있어요.”

▎송소희는 국악 콘서트 외에도 오케스트라 협연, K팝 페스티벌 등 음악의 범주를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무대에 선다. 4월 8일 연세대에서 열린 ‘지식향연’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는 송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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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을 제일 잘 부르고 싶어요”송소희가 국악을 처음 접한 것은 다섯 살 때부터였다고 한다. 아버지 송근영 씨와 어머니 양복예 씨는 딸에게 어릴 때부터 각종 예술 과목을 접하게 했다. 두 살 때 피아노와 미술을 가르쳤고, 다섯 살 때 “우리 노래를 한 번 배워보라”는 차원에서 동네에 있는 국악학원엘 보냈다. 그런데 유별나게 국악을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국악학원에서는 “송양의 소질이 남다르다”며 국악을 제대로 배워볼 것을 부모에게 권유했다. 국악학원 원장인 박석순 씨를 시작으로, 사물놀이 창시자 이광수 씨, 무형문화재 이호연 씨가 송소희의 스승이 됐다.송소희가 주로 부르는 노래는 경기민요다. 판소리와는 다른 계통으로 ‘아리랑’, ‘도라지타령’, ‘베틀가’ 등 경쾌한 선율이 주를 이룬다. 호흡량이 부족했던 송양은 목소리를 단련하기 위해 박석순 씨에게서 시조를 배웠다. 이후 이광수 씨에게서 사물놀이와 비나리를 사사했고, 이호연 명창 밑에서 경기민요를 익혔다. 송양은 “훌륭한 스승 밑에서 배운 것들을 공연에 나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재미있었다”며 “폭포 앞에서 악을 지르면서 연습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고 말했다.어린 나이 때부터 국악을 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학교 수업 시간 외에는 거의 국악학원에서 살다시피 했죠. 허리를 꼿꼿이 편 상태로 다섯 시간 앉아 연습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오른손을 든 채 노래를 불러야 하거든요. 처음에는 한 시간도 버티기 힘들었어요. 조금만 자세가 흐트러져도 스승께 혼나니 너무 서러웠죠.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누구한테 투정 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참고 버텼어요. 그중에서도 밤잠을 참으면서 연습하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너무 졸리고 눈은 계속 감기는데 밤 열두 시까지 연습해야 했거든요. 그래도 노래 부르는 게 재미있고 좋으니까 다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국악을 그만두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적은 없나요?“거짓말이 아니라, 단 한 번도 국악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없어요. 그런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었다고 할까요? 오히려 국악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 제가 국악에 대해 뭘 알았겠어요. 그런데 노래를 부르면서 뭔가 자부심이 생기더라고요. 국악을 하면 할수록 매력이 느껴지고 점점 더 좋아졌기 때문에, 자연스레 국악이 곧 제 생활이자 제가 걸어야 할 길이 되었어요.”혹시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가 있나요?“아리랑이요. 아리랑만큼은 누구보다 잘 부르고 싶거든요. 대한민국 국민 모두 아리랑 한 소절씩은 부르잖아요. 다른 노래와 다르게 아리랑을 부를 때면 좀 더 조심스러워져요. 국악인이 부르는 아리랑이니까 좀 더 특별하게, 세심하게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경기민요 ‘배띄워라’도 아주 좋아해요. 사랑 노래인데 가사 하나를 곱씹어볼수록 깊은 맛이 있는 노래에요. 무대에 설 때마다 부르는 곡인데, 관객이 희망하는 것들을 배에 띄워 보내는 느낌으로 불러요. 현대적인 감각으로 편곡된 곡이라 관객들도 더 좋아해주시는 것 같고요.”“부모님 덕분에 만난 국악, 제 운명으로 여겨요”예술인은 무대 매너도 좋아야 하잖아요? 혹시 소희 양만의 비결이 있나요?“예를 들어 관객석에서 앵콜 요청이 안 나오면 ‘제가 듣고 싶은 두 글자가 나오지 않네요’라고 말하는데 관객들 호응이 꽤 괜찮더라고요.(웃음) 예술인이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과 소통하는 엔터테인먼트적인 능력도 요구되는 시대잖아요. 저도 관객과 나눌 멘트를 미리 고민해서 준비해 가는 편이에요. 막상 말할 때는 쑥스럽다가도, 좋아해주는 어르신 관객을 보면 기뻐요. 요즘은 공연 사회자가 제게 인사말을 시키는 횟수도 부쩍 늘었어요. 예전엔 노래만 불렀는데.(웃음) 그래서 연습 틈틈이 어떤 멘트를 하면 좋을지도 생각하곤 해요.”송소희가 국악인으로 성장하는 데는 부모님의 전폭적 지지가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송양이 국악에 재능을 보이자 아예 본업을 접고 딸 뒷바라지에 나섰다. 어머니 양씨는 운영하던 식당을 접었고, 아버지 송씨는 신문지국 사장 자리를 내려놓았다. 어린 송양을 위해 한동안 전국의 유명한 국악 선생님들을 수소문하고 다녔던 부모님들은 요즘 송양의 매니저 역할을 하며 스케줄을 관리한다. 딸의 스케줄이 있는 날이면 직접 차를 운전하며 전국을 누빈다.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 때문인지 그는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할 때는 ‘창부타령’을 효(孝)에 관한 내용으로 개사해서 불렀으며, 방송 출연 때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다”는 말을 빼먹지 않는다고 한다.소희 양에게 부모님은 어떤 존재인가요?“부모님께 늘 감사할 따름이죠. 효도해서 보답해드리고 싶고요. 부모님께서 제 의사를 많이 존중해주세요. 인터뷰할 때도 제가 하고 싶은 말 자유롭게 하라고 일부러 자리를 피해주시거든요. 노래 연습할 때도 조언하거나 코칭을 해주시기보단 연습실에서 자유롭게 연습하도록 배려해주세요. 집에 연습실이 하나 있는데, 방음 처리된 방에서 저 혼자 연습하거든요. 그래도 무대에서 실수하거나 가사를 틀릴 때만큼은 귀신같이 알아차리세요. 제가 노래 부르다 가사를 까먹으면 다른 민요의 가사를 붙여다 부르는 습관이 있거든요. 다른 사람은 속여도 부모님은 못 속여요.”(웃음)혹시 국악 말고 관심 있는 다른 예술 분야는 없나요?“어느 순간부터 ‘다른 음악도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국악만 했으니 다른 음악은 어떤지 궁금했어요. 요즘 기타 연주와 작곡을 배우고 있는데요, 국악을 대중적인 음악으로 바꿔보고 싶어서예요. 전통 국악만 고집하는 건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만약 국악을 안 배웠더라면, 저 역시 국악을 듣지 않는 사람 중 한 명이었겠죠.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국악에 다른 음악의 요소를 접목해서 좀 더 세련된 노래로 바꿔보고 싶어졌어요. 지나치게 퓨전화한 노래가 아니라, 국악 본연의 소리는 지키되 좀 더 세련된 국악이요. 우리 음색을 유지하면서 대중적인 국악을 하는 게 제 꿈이에요. 작곡 실력이 늘면 국악을 특별하게 편곡해보고 싶어요.”

▎송소희는 가야금·피아노·기타 등 다양한 악기를 다루고 작곡 공부도 한다. 그는 “다양한 음악을 배워 더욱 세련된 국악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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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칭찬해줄수록 더 연습해야죠”소희 양에게 국악은 무엇인가요?“국악은 제 운명이죠. 너무 진부한 답변일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부모님께서 재능을 발견해 주신 것, 전국노래자랑에 나갈 수 있었던 것, 국악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연습한 것 모두 운명이라고밖에는 설명이 안 돼요. 국악이 아니었다면 제가 이렇게 인터뷰하고 있지도 않을 거고요.”(웃음)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를 꼽으라면요?“러시아 공연 때였어요. 아리랑을 불렀는데 관객석 맨 앞줄에 앉아있던 백발의 러시아 노신사가 우시는 거예요. 처음엔 깜짝 놀랐어요. ‘우리나라의 한의 정서가 느껴지나?’ 싶어서요. 그분이 감동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노래가 세계인들에게도 매력적인 노래임을 확인했죠. 외국인 관객의 마음까지도 흔들어놓는 국악이라면, 한국 관객에게 사랑받는 것도 가능하겠다는 확신도 생겼고요. 그래서 요새는 영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어요. 우리 국악을 영어로 소개하고 싶거든요. 회화가 자유로워지면 꼭 영어로 우리 음악을 소개하고 싶어요.”인기가 높아지면서 스스로 다짐하는 것이 있나요?“저한테는 늘 이런 불안감이 있어요. ‘지금처럼 남들에게 환호받는다고 해서 자만하면 큰일 나겠구나’, ‘다른 친구들보다 월등히 실력이 뛰어나서 주목받는 게 아닌 만큼, 항상 긴장하고 연습해서 실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요. 국악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만큼의 노래는 할 수 있거든요.그래서 요새는 변성기가 가장 신경 쓰여요. 변성기가 오려는 건지 아니면 이미 왔다 간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목 관리에 더욱 신경을 쓰게 돼요. 국악인에게 목소리는 무엇보다 중요하잖아요. 주변에서 잘 부른다고 칭찬해줄수록 기량을 더 갈고 닦아야죠.”CF출연 이후 송소희는 부쩍 바빠졌다. 방송 출연과 인터뷰 요청이 끊이질 않고, 기업과 지자체의 공연 섭외도 줄을 잇는다. CF 출연 전에는 연 3~4회에 그치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올해는 스케줄이 모두 잡힌 상태다.송소희는 현재 충남 당진에 있는 호서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예술계가 아닌 인문계 고교에 진학한 이유는 뭘까? 그는 “국악고나 예술고에 진학하기보다는 일반고에서 더 넓고 다양하게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한 달에 보름 이상은 꼭 학교에 출석한다고 한다.‘시험 기간, 학교 행사에는 빠지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다. 부모님도 시험 3주 전부터는 스케줄을 일절 잡지 않는다. 송소희는 부모님의 자동차를 이용해 지방과 서울을 오가며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낸다. 아버지 송근영 씨는 “소희가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 해서, 서울에서 머물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요즘은 학교 공부를 위해 국악 연습시간을 하루 두 시간으로 줄였단다. 그는 “친구들 수준에 맞추려면 두 배로 공부해야 중간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며 학교생활에 충실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다른 10대 연예인들의 인터뷰를 보면 ‘수학여행 가고 싶다’ ‘친구들하고 못 놀아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던데 저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친구들하고 학교도 다닐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올해 안에 제 새 국악 앨범이 나와요”친구들하고 SNS도 즐겨 하나요?“아뇨, 광고 찍으면서 SNS를 아예 끊었어요. 저는 휴대폰 번호도 없어요. 어느 순간부터 ‘SNS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SNS에는 감성적인 글을 쓰거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기가 쉽잖아요. 요즘에는 모든 것이 기사화되는 세상인데, 미리 조심하자는 차원에서 안 하고 있어요.”
팬클럽도 생겼죠?“얼마 전에 팬클럽에 가입한 회원 수를 들었는데 네이버 팬카페에 6천여 명, 다음 팬카페에 4천여 명 정도 되더라고요. 주로 40~50대의 어른이 많으세요. 어렸을 때부터 저를 응원해주셨던 원로 멤버들과는 공연 끝나고 다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연락도 주고받으면서 지내고 있어요. 팬이라기보다는 가족 같아요. 제가 방송에 출연한 뒤로 학교 친구들도 제 사인을 몇 장씩 받아 가는데, 가족이나 친척들 주려고 그러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는 급식을 담당하시는 아주머니들께서 반찬을 늘 더 주셔서 좋아요.”(웃음)
평소 취미는 뭔지 궁금하네요.“아버지와 공연 보러 다니는 걸 정말 좋아해요. 얼마 전에는 아버지와 함께 판소리 공연을 보고 왔는데 대학로 소극장 공연, 뮤지컬, 연극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즐겨 보는 편이에요. 다른 예술인들이 공연하는 걸 보면서 배우는 게 많거든요. 관객들이 덜 지루함을 느끼려면 예술인이 무대에서 유머러스하고 재치가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저는 국악 무대를 사람들이 좀 더 편하고 재밌게 즐기도록 만들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의 공연을 보면서 국악 무대에 접목하면 좋을 요소들을 찾는 재미가 있어요.”(웃음)
일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꼽으라면요?“부모님께서 제 노래를 듣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실 때요. 저희 아빠는 요즘 인기 연예인도 모를 만큼 참 고지식한 분이세요. 그런데 제 노래를 들으실 때만큼은 눈물을 흘리세요. 십 수 년 동안 제 노래를 백 번 넘게 들으셨을 텐데도 매번 감동하시는 아빠를 볼 때면 저까지도 가슴이 뭉클해져요. 아빠가 제 노래 들으실 때 짓는 특유의 표정이 있는데, 그 표정을 볼 때면 국악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의 계획은요?“올해 안에 제 새 국악 앨범이 나와요. 현대적인 느낌을 살린 국악 곡들을 담은 앨범인데, 누가 들어도 친숙한 음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레코드점에 가도 국악 앨범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부르는 음악이 앨범 차트 순위에 들거나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아요. 누구나 쉽게 찾아 들을 수 있고, 낯설어하지 않는 국악을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