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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AE YES24 HOLDINGS CEO KIM, DONG-NYUNG - “바둑도 사업도 수읽기” 

 

사진 지미연 기자
가로세로 19줄로 이뤄진 바둑판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김동녕 한세예스24홀딩스 회장은 경영 전략뿐 아니라 인생을 알아가는 법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김동녕 회장에게 바둑은 인생의 동반자이자 경영 지침이다.



2009년 어느 날, 김원태 전 대학바둑연맹 회장이 김동녕(69) 한세예스24홀딩스 회장을 찾아왔다. 갑작스런 방문이었다. 김원태 회장은 대학동문전 바둑대회 명맥이 끊기게 생겼다며 김 회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기업이 후원을 끊고 있다며 걱정했다. 당시 예스24가 고교동문전을 후원하고 있었지만 “그의 모습이 너무 절박해 거절할 수 없었다”고 김 회장은 돌이켰다. 매년 예스24는 고교동문전을, 한세실업은 대학동문전을 후원한다.

올해로 8회째를 맞이한 한세실업배 대학동문전은 지난 6월 21일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열렸다. 이번 대회에는 연세대와 조선대, 홍익대를 비롯한 20개 대학이 참가했다. 한국외대와 성균관대가 접전 끝에 한국외대가 우승을 가져갔다. 이렇게 바둑대회를 후원해주는 한세실업과 예스24는 바둑계에서 고마운 기업으로 통한다.

김 회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강명주 지지옥션 회장과 함께 바둑계에서는 유명한 애기가(愛璂家)다. 김 회장이 가로세로 19줄 바둑판에 빠진 건 중학교 1학년 무렵이다. 그때는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은 으레 바둑을 하던 시절이다.

“친구 둘만 모여도 바둑을 뒀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책가방을 들쳐매고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안국기원에서 매일 살다시피 했다. 실력이 부족하다 싶으면 명국 해설집을 정독해 가며 공부했다. 그만큼 바둑이 재미있었다. 김 회장의 바둑 사랑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이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생의 스승을 만났다. 2011년 은퇴한 홍종현 9단이다. “아주 똑똑한 친구”라고 김 회장은 말했다.

홍 9단과 김 회장의 인연은 각별하다. 경기고와 서울대 동문이다. “일본 최고 기사인 기타니 미노루(木谷實)의 문하생이었던 조지훈 기사는 지도대국을 입단할 때와 퇴단할 때 딱 두 번 받았습니다. 이게 일반적이죠. 그런데 나는 홍 9단에게 100번도 넘게 지도대국을 받았으니 특별대우를 받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김 회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지도대국을 많이 받았는데도 이남기나 이윤호처럼 국가대표가 되지 못했다고 ‘기재’가 없다는 핀잔을 받았습니다.” 막역한 사이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렇다고 김 회장의 바둑 실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한창 바둑을 두던 대학 때는 단과대 대표까지 했다. 김 회장의 실력은 아마추어 4단급이다.

한 치 앞을 내다봐라

홍 9단은 특이한 이력으로 바둑계에서도 유명하다. 그는 고등학생 때 프로기사에 입단했다.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한 그는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단증을 기원에 반납했다. 그러나 몇 년 후 프로기사에 재입단했다. 입단을 두 번한 한국기원 기사는 홍 9단이 유일하다. “아마 고시 공부하려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바둑을 놓을 수 없었나 봅니다. 결국 프로 기사의 길을 선택했어요.”

세상사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지만, 앞을 내다보는 건 바둑에서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놓을 자리를 미리 생각하는 걸 ‘수읽기’라고 한다. 지금 당장 놓을 곳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상대편이, 그리고 다음번에 자기가 둘 자리까지 봐야 한다. 그래서 수를 잘 읽는 사람이 이길 확률도 높다. 김 회장은 “보통 프로 기사들은 스무 수나 서른 수씩 앞서 본다”고 했다. 흔히 바둑이 기업 경영과 닮았다고 하는 이유도 수읽기 때문이다. 특히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CEO에게 수읽기는 매우 중요하다.

김 회장은 바둑을 통해서 몸에 밴 예측하는 습관이 실제로 경영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기업을 경영하는 데 있어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 단정 짓고 확신하는 일입니다. 일을 추진할 때 99% 확실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 저는 1%의 가능성은 뭐냐고 되묻습니다.”

그는 바둑이든 경영이든 0.01%의 확률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수를 읽은 다음에는 각각의 경우에 따른 장단점과 문제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김 회장은 바둑의 재미 역시 수읽기에 있다고 말한다. “제가 읽은 수를 상대방이 받아치고, 또 상대방이 읽은 수를 제가 맞받아치는 수읽기야말로 바둑의 참맛입니다.”

바둑과 경영이 닮은 또 다른 점은 포석(바둑 둘 때 중반전 싸움이나 집 차지에 유리하도록 초반에 돌을 벌여 놓는 일) 구상이다. 바둑에서는 초반의 포석이 나쁘면 다가올 중반에 악전고투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경영도 마찬가지다. “일을 추진하기에 앞서 구상하고 계획하는 일이 중요해요. 처음 구상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일이 어그러질 수 있습니다.” 김 회장은 직원들에게 늘 강조한다.

“경영에서 수읽기와 포석은 분리돼 있지 않습니다.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구상이 필요하고, 앞도 내다볼 줄 알아야 하죠. 그리고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대응 방안도 생각해 둬야 합니다. 이 훈련이 제대로 되면 위기가 닥쳐도 크게 흔들리지 않아요.”

바둑이론을 경영에 반영해서일까 김 회장은 ‘경영 9단’이다. 1982년 창립한 한세실업은 이제 매출 1조원(2013년 기준)을 달성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미국 사람 2명 중 1명은 한세실업이 만든 옷을 입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한세실업은 제조자디자인생산(ODM)업체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기업인 나이키, 갭, 랄프로렌 등에 옷을 납품한다.

최근 뜨고 있는 패스트패션(SPA, 제조·유통 일괄 브랜드) 의류업체 H&M, 자라, 유니클로도 한세실업의 고객사다. 2003년에는 인터넷서점 예스24를 인수하며 사업을 다각화했다. 당시 법정관리에 들어간 예스24를 흑자 전환시키는데 1년이 걸렸다. 2009년 한세실업과 예스24, 인터넷 패션쇼핑몰 아이스타일24를 총괄하는 지주회사 한세예스24홀딩스를 출범했다.

김 회장처럼 바둑이론을 경영에 활용하는 CEO가 있다. 정수현 명지대 교수(바둑학)는 저서 『바둑 읽는 CEO』에서 구자홍 LS미래원 회장(김 회장의 경기고 후배)과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대표적인 바둑경영 CEO라고 적었다. 특히 안철수 공동대표는 저서인 『영혼이 있는 승부』에서 부분보다는 전체를 보는 법과 요소(要所) 선점 전략 등 바둑에서 배운 원리가 경영에 유용하다고 밝혔다.

미국인 2명 중 1명 한세실업 옷입어

김 회장에게 바둑과 인생이 닮았느냐고 물었다. 마치 그동안의 삶이 눈앞에 주마등처럼 펼쳐지는 듯 허공을 바라보더니 이런 말을 했다. “바둑은 칸을 채워나가는 겁니다. 칸이 채워질수록 선택의 폭이 줄어들게 돼요. 인생도 마찬가지죠. 갓 태어났을 때나 어릴 때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선택이 조금씩 줄어듭니다. 바둑이나 인생 모두 선택할 게 없을 때 끝납니다.”

그는 더 알찬 삶을 살기 위해 올해부터는 개인 시간을 좀 더 늘릴 계획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 달에 책 두 권을 읽었습니다. 1년에 24권을 읽는 거죠. 나를 위한 시간을 늘리기 위해 올해부터는 3권으로 늘렸습니다.”

김 회장은 일하느라 그렇게 좋아하는 바둑돌을 잡을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대국하지 못하는 헛헛함을 바둑 TV나 기보를 읽으면서 채워나갔다. 기보에 자주 쓰이는 표현 중 김 회장이 유독 좋아하는 말이 있다. “꾹 참아두다”라는 표현이다. “상대방의 공격에 대응하지 않고 견뎌낼 때 꾹 참아뒀다는 말을 합니다. 참는다는 건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입니다.” 김 회장에게는 한 가지 바람이 있다. 다 둔 바둑을 복기(復碁)하듯 인생을 뒤돌아 봤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거다.




201408호 (201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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