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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ign executives in korean company - ‘파란 눈’ 임원이 한국 떠나는 이유 

 

최은경 포브스 기자 이정현 인턴기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해외 인재는 큰 역할을 한다. 중대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임원이라면 더 그렇다. 한국 기업에 채용된 외국인 임원이 정착하지 못하고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행태는 오래 전부터 문제로 지적됐다. 포브스코리아가 한국 대기업의 외국인 임원 현황과 이와 관련한 문제점, 개선방안을 알아봤다.




장점: 이력서에 좋은 경력을 남길 수 있다./ 헬스장, 보험 등 복지가 우수하다.

단점: 여성에 불합리한 근무방식이 많다./ 경영 방식이 고루하다.

결론: 이 기업은 비추(비추천)다.

미국 취업정보사이트 글래스도어에서 호주 국적의 전 현대자동차 임원이 회사를 평가한 내용이다. 이 사이트에서는 해당 기업의 전·현직 직원만 글을 쓸 수 있다. 인도 국적의 또 다른 전직 임원은 “연봉이 높고 네임 밸류가 좋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글을 남겼다.

그러나 한국 기업의 ‘러브 콜’은 계속되고 있다. 신기술을 보유했거나 경쟁 기업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면 연봉은 특급 수준으로 뛴다. 세계 시장에서 이름이 알려진 인재는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어 더 인기다.

포브스코리아가 국내 30대 그룹(자산 기준)의 외국인 임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생각보다 그 수가 많지 않았다. 가장 많은 외국인 임원이 일하는 곳은 삼성그룹이다. 본지가 파악한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의 외국인 임원 수는 93명. 삼성 측이 자료 요청에 답하지 않아 주요 계열사의 금융감독원 공시 자료를 참고했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가 48명으로 가장 많았다. 대부분 해외 근무자다. 직급은 상무가 28명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왼쪽부터)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사장. 제임스 비모스키 두산 부회장. 나세르 알 마하셔 에쓰오일 대표.
최고 직급은 팀 백스터 미국법인장과 왕통 중국투자유한공사 담당 임원(이하 부사장)이었다. 연령은 40~70대로 다양했다. 다음이 삼성물산 18명, 삼성엔지니어링 8명, 삼성테크윈 6명, 삼성화재·삼성SDI 4명, 삼성전기 3명 순으로 외국인 임원이 많았다. 제일모직, 삼성생명은 각 1명이었다. 삼성전자를 제외하고 부사장 급 이상은 4명이었다.


다음으로 외국인 임원을 많이 보유한 기업은 두산그룹이다. 해외에 근무하는 외국인 임원을 제외하고 12명이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4만3000만 명 전 직원 중 절반가량이 외국인”이라며 “기업문화가 자연스럽게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간다”고 말했다. 2주 연속 여름 휴가, 크리스마스 휴가 등에서 변화상을 찾을 수 있다.

이 관계자는 “소비재에서 중공업으로 주력 사업을 바꾸는 과정에서 영국 밥콕, 체코 스코다파워 등을 인수해 자연스럽게 글로벌화가 됐다”고 설명했다. 제임스 비모스키 두산 부회장은 국내 최초의 외국인 CEO다. 비모스키 부회장은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서 일하다 2006년 두산 부회장으로 영입됐다.

삼성, 두산, CJ 순으로 외국인 임원 많아

CJ그룹은 국내에 근무하는 외국인 임원만 5명이었다. LG그룹은 해외 근무자까지 포함해 4명으로 삼성과 비교해 턱 없이 적었다. LG그룹은 2007~2009년 남용 당시 LG전자 부회장이 맥킨지·IBM 등 글로벌 기업에서 외국인 임원을 대거 영입했지만 3년 뒤인 2010년 초 모두 회사를 그만뒀다. 한화그룹이 3명, 현대차그룹이 2명으로 뒤를 이었다.

피터 슈라이어 현대차그룹 디자인 총괄 사장은 아우디와 폴크스바겐에서 일하다 2006년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손에 이끌려 기아차에 자리 잡았고 2012년 사장으로 승진했다.

1명의 외국인 임원을 둔 기업은 신세계, 금호아시아나, 에쓰오일, 효성, 동국제강, 미래에셋, 코오롱그룹이다(효성은 국내 외국인 임원만 포함). 나세르 알 마하셔 에쓰오일 대표는 2012년 3월부터 회사를 이끌고 있다. 30대 그룹에서 현재 한 명의 외국인 임원도 채용하지 않은 곳은 SK, 롯데, 포스코, 현대중공업, GS, 한진, KT, LS, 대우조선해양, 동부, 대림, 부영, 현대, OCI, 현대백화점, 대우건설, 영풍 등으로 나타났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외국인 임원의 영입 비용이 기본 100만~300만 달러에서 요즘은 1000만 달러까지 올랐다”며 “고액 연봉에 비해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기업들이 채용을 꺼린다”고 말했다. 이 담당자는 “기본적으로 국내에 영어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기업이 아직 적고 한국의 기업문화가 외국인 임원들과 맞지 않다”고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한국 기업에서 5년 동안 임원으로 일했던 S씨는 “한국 직원들은 뛰어난 능력을 업무에 쏟지 않고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데 치중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다른 임직원들과 해외 출장을 간 적이 있어요. 현지 임직원들과 회의를 하는데 누가 어디에 앉느냐로 5분을 보냈어요. 같이 간 직원이 상사에게 상석에 앉으라고 자꾸 권하는 바람에 말이죠.”

몇 년 전 굴지의 전자회사에 들어갔다 6개월 만에 그만 둔 재미교포 B씨는 “미국에서는 일할 때 열심히 하고 쉴 때 쉬는데 한국에 와보니 근무시간에 노는 사람이 있더라”며 “팀장들이 마치 보고 받는 것이 주업무인 양 시간을 보내 놀랐다”고 말했다. B씨는 현재 외국계 기업에서 일한다. 그는 동료들의 과한 관심도 부담스러웠다고 덧붙였다. “저의 사생활에 지나친 관심을 보여 불편했어요. 문제는 저도 상대에게 그만큼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자기를 싫어한다고 오해한다는 거죠.”

전문가들이 보는 문제점은 뭘까. 이들은 권한 부여와 업무 방식에 대한 ‘동상이몽’이 가장 큰 문제라고 분석했다. 조기훈 딜로이트컨설팅 전무는 “한국 기업은 설계·디자인 등 특정 분야 기술만 보고 외국인 임원을 채용한다”며 “미래 경영자로서 길을 열어주지 않으면 생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사고방식 차이도 문제다. 조 전무는 “서양은 일의 원인과 결과를 중시하는데 한국에서 이런 방식으로 일하면 ‘뜬구름 잡는다’고 핀잔을 듣는다”고 말했다.

한국에이온휴잇의 컨설턴트 역시 같은 점을 지적했다. 그는 “외국인 임원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에서 앞선 것들을 얘기해주는 사람”이라며 “기업이 조급하게 눈에 보이는 성과만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유럽에서 온 임원이 의사결정 과정이나 회의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면 가볍게 생각하고 무시하는 일이 많습니다. 작은 차이로 경쟁력을 키워 온 선진국에서는 무척 중요한 일인데 말이죠.”

현저하게 다른 업무 방식도 걸림돌이다. 서양은 역량 중심이지만 한국은 직급에 따라 일을 한다. CEO 한 사람의 의견이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오너 경영’도 외국인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방식이다.

기업 내 ‘정치’에 휘말려 끝내 사표를 쓰는 외국인도 있다. 재미교포 B씨의 말이다. “정치요? 할 수도 있지요. 외국 기업에도 있어요, 정치. 하지만 나쁜 정치 문화에 물들면 임원과 기업 모두에게 좋지 않아요.” 정치는 주로 ‘별’들의 세계에서 벌어진다. 외국인 임원이 성과를 올리면 자신이 뒤로 밀릴까 한국 임원들의 교묘한 ‘왕따’가 시작된다는 것.

임원들은 그나마 업무량이나 업무 시간에 대해서는 불만을 적게 느낀다고 한다. 고승희 커리어케어 이사는 “이미 업계에서 인정받은 능력자들이기 때문에 업무 부담을 크게 느끼지는 않는다”며 “외국인 임원들은 ‘내가 할 일이 있나, 없나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오히려 일이 없는 것을 못 견뎌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식과 야근, 주말 회의 등은 여전히 이들에게 익숙지 않은 문화다.

의사소통도 문제다. 현직 외국인 임원 J씨의 사례를 보자. J씨의 회사는 중역회의를 한국어로 한다. 통역도 따로 두지 않는다. J씨는 2~3시간 동안 임원들 무리에 섞여 가만히 앉아 있는다.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지만 J씨는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회사는 괜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J씨를 신뢰한다. 이렇게 3년을 보냈다. B씨는 통역을 둬도 별로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세세한 뜻까지 제대로 전달받기 어려워서다.

낯선 경조사 문화도 당혹스럽다. B씨는 “중학생 자녀를 미국에 두고 왔다”며 “어차피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하니 한국에 데려올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남편이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한 외국인 부부는 경조사를 챙기는 한국 문화 때문에 곤혹스럽다고 한다. 부인의 말은 이렇다. “별로 친하지 않은 동료가 청첩장을 준 것도 놀라운데 남편 혼자 결혼식에 갔더니 왜 부인이 같이 안 왔느냐고 여러 번 물어봤다고 하더라. 왜 얼굴도 모르는 부인이 같이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러다 보니 기업과 임원 모두 불만족을 느낀다”며 “외국인 임원은 글로벌 기업을 기대하고 왔는데 ‘한국 기업’이 기다리고 있어서, 기업에서는 당장 획기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아서 서로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국인 임원이라고 다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다. 위의 J씨처럼 잘 버티며 적응하는 임원이 있는가 하면 정말 실력이 뛰어나 회사에서 어떻게든 모든 조건을 맞춰주는 경우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신규사업과 관련된 기술자들은 2년 계약이 끝나고 재계약을 안할까봐 회사에서 전전긍긍한다”고 전했다. 반대로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개선책만 잔뜩 내놓는 외국인 임원은 대부분 오래 못 버틴다. 이런 경우 한국 직원들의 반발이 워낙 심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임원들과 전문가들 모두 외국인 임원이 스스로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언어 문제는 쌍방의 노력 없이 어느 한 쪽의 의지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조기훈 전무는 “스스로 선택한 일인 만큼 한국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는 “외국인 임원들은 한국에서 경력을 쌓고 다시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사실 덜 절실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이 느끼는 한국 기업의 장점도 분명 있다. 과거 한국전력공사, KOTRA에서 8년 동안 일한 타드 샘플 씨는 “이미 한국 기업의 실력은 세계적”이라며 “의사결정이 빨라 일하기가 수월하다”고 말했다. 오너 중심 경영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양날의 칼’임을 알 수 있다. 높은 연봉과 복지 수준도 외국인이 만족하는 점 중 하나다.

조기훈 전무는 “외국인 임원에게 기술, 지식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경영, 리더십에 초점을 맞춰 권한을 주고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이들이 잠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회사 소속원으로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것. “처음 영입할 때 특정 기술 때문이었다고 해도 거기서 끝나지 않고 서로 발전을 위한 다음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는 외국인 임원들이 잘 적응할 수 있게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도 좋다고 제언했다. 조 전무는 “비모스키 부회장이나 슈라이어 사장처럼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1408호 (201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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