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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업 위기 셰일가스 올라타 넘는다 

한국 석유화학산업 분야의 리더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이 다시 칼을 빼들었다. 미국 셰일가스 혁명과 중국의 자급제 확대 영향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롯데케미칼을 정상궤도에 올려놓기 위해서다. 

글 최영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 사진 지미연 기자

40여 년 동안 석유화학산업 한 우물을 파 업계의 리더가 된 롯데케미칼 허수영 사장.
한국 석유화학산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 다. 미국 셰일가스 혁명과 중국의 자급제로 인해 한국 유화업계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원 유기반 석유화학제품에 집중했던 한국은 저렴한 셰일가스 공세에 당황하고 있다. 석유화학산업의 위기는 곧바로 한국 경제의 위기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재건을 위해 미국 셰일가스 시장에 직접 진출해 위기를 넘겠다는 이가 있다. 그는 40여 년 동안 석유화학산업 분야에 몸담으면서 ‘석유화학 업계의 맹장’으로 불리고 있다.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아시아·태평양 고성장 기업 50’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롯데케미칼 허수영(63) 사장이 다. 허 사장은 “회사의 탄탄한 재무구조와 현재 추진하는 신규사업에 대한 미래 평가가 긍정적이었던 것 같다”며 선정 소감을 밝혔다.

서울 신대방동 롯데타워에서 2013년 매출 16조4389억 원을 올린 롯데케미칼 수장을 만났다. 석유화학산업은 세계 경제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환율에 민감해 항상 긴장해야 하는 분야다.

허 사장은 1976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이 설립될 때 함께 입사했던 9명의 동기 중 홀로 남아있다. “롯데케미칼의 산 증인”이라며 웃는 이유다. 40여 년 동안 한국 석유화학산업 분야에 몸담은 이로서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지만, 언론 앞에 나서지 않는 CEO로 유명하다. 본지와 인터뷰를 통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허 사장은 “너무 바빠서 인터뷰할 시간이 없다”며 웃었다.

롯데케미칼은 국내에 2개 공장과 말레이시아에 1개 공장이 있다. 롯데케미칼 자회사는 국내에 7개, 중국에 6개, 기타 나라에 7개가 있다. 다녀야 할 곳이 너무 많은 것. 그를 찾아오는 손님도 적지 않다. 하루에 3 ~4개 미팅이 잡혀 있는 것도 다반사다. 해외 출장도 자주 다녀야 한다. 심지어 새벽에 임원이 보낸 서류에 사인하고 확인할 때도 많다. 24시간이 짧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지난 6월 26일 허수영 사장이 참관한 가운데, 전남 여수공장에서 비상안전훈련을 실시했다.

신동빈 회장과 20여 년 인연으로 신뢰 쌓아

요즘은 더 바쁘다. 롯데케미칼의 나빠진 경영상황을 재건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영능력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업계의 리더이기에, 2012년 12월 롯데케미칼 사장에 취임했을 때 많은 이들이 주목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롯데케미칼은 성장보다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롯데그룹에서 중요한 위치와 역할을 하고 있는 롯데케미칼을 이끌어 가기에 부담과 책임감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2012년 12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호남석유화학을 롯데케미칼로 사명을 바꿀 때 “롯데케미칼은 롯데가 2018년 아시아 톱 10 글로벌 그룹을 달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롯데그룹 총 매출에서 약 20%를 차지 하는 롯데케미칼은 백화점·마트 등의 유통부문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또한 신 회장에게 롯데케미칼은 각별 하다. 처음으로 경영 수업을 받은 회사다.

롯데케미칼을 허 사장에게 맡긴 것은 그만큼 신뢰가 높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허 사장을 ‘롯데그룹의 3인자’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롯데그룹의 3인자라는 표현은 사실이 아니다”며 “그룹에서 모든 이들이 맡은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 고 있다”며 손사래를 쳤다.

신 회장과 허 사장의 인연도 매우 깊다. 1990년 신 회장은 경영 수업을 받기 위해 롯데케미칼에 상무로 입사했다. 당시 신 상무에게 롯데케미칼 경영 전반에 대해 프리젠테이션을 했던 이가 사업부장을 맡고 있던 허 사장이다. “그때 느낌이라. 난생처음으로 로얄 패밀리 아들을 만났으니. 허허”라며 웃었다.

신 회장과 허 사장의 인연도 벌써 20년을 넘어섰다. 허 사장은 매월 1회 이상 신 회장을 만나 다양한 보고와 사업 추진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신 회장은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소탈해 대화에 큰 어려움이 없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롯데케미칼은 급격히 성장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부실화된 현대석유화학과 KP케미칼의 인수합병 덕분이다. 여기에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영국 기업과 인수합병을 하면서 규모를 키웠다. “대형 인수 합병 시기가 적절했던 것 같다. 인수 합병 후 적극적으로 증설한 것도 롯데케미칼을 성장시킨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KP케미칼 대표로 있을 때 4년 만에 2조941억 원의 매출을 4조6400억 원으로 2배나 성장시켰기에 허 사장에게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롯데케미칼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냉혹하다. 매출은 지속 성장하지만, 영업이익은 2011년 1조4000억 원에서 2013년 4800억 원으로 3분의 1토막이 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역성장을 했다’는 뼈아픈 평가까지 나온다. 허 사장은 “외 부 시장의 변화 때문에 생긴 결과라도 결과적으로 롯데케미칼 사장이 된 후 영업이익이 대폭 감소했다. 냉혹한 평가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털어놨다.

“유럽이 그동안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고, 중국의 성장 둔화가 롯데케미칼에 악영향을 미쳤다. 특히 중국이 합성섬유 원료인 고순도 테레프탈산(PTA) 공장을 증설해 자급률 100%를 달성한 것이 가장 힘든 점이다. 2011년 PTA 부문에서 대규모 이익을 냈는데, 적자로 돌아서면서 타격이 컸다.”

허 사장은 남미·유럽·아프리카로의 수출 다변화를 적극 추진 중이다. 중국 수출 비중도 낮추고 있다. 이후 고부가 제품을 생산해 경쟁력을 높일 복안을 갖고 있다. 미국 발 셰일가스 혁명, 중국의 석탄화학에 기반한 저렴한 석유화학 제품과 가격경쟁을 벌이는 것도 부담스런 일이다.

신동빈 회장도 미국 셰일가스 대응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직접 미국과 캐나다를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관련자와 면담까지 했다. 허 사장은 “특히 미국 루이지애나 사업을 적극 지원한다”고 했다.

루이지애나 사업은 미국의 액시올(Axiall)과 50대 50 합작사업을 벌이는 프로젝트다. 롯데케미칼과 액시올은 셰일가스 기반의 에틸렌 100만t을 생산할 수 있는 에탄 크래커를 건설하게 된다. 롯데케미칼은 자신들의 몫인 에틸렌 50만t을 원료로 모노에틸렌글리콜(MEG) 70만t을 생산할 계획이다. “올해 연말이면 합작사가 설립된다. 2018년 상반기 완공이 목표다.”

롯데케미칼의 성장기반이 됐던 해외 인수 기업의 부진도 발목을 잡고 있다. 롯데케미칼 파키스탄(2009 년 147억 원 투자), 말레이시아 타이탄케미칼(2010년 자회사로 편입), 영국 화학섬유업체 아테니우스(2009 년 인수)의 부진이 이어지면 롯데케미칼도 힘든 시기를 보내야 한다. 허 사장은 “회복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얼마 전에는 석유화학공장 경험이 많은 김교현 부사장을 타이탄케미칼 CEO로 보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허 사장은 40여 년 동안 일하면서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1988년 당시 엔지니어링 매니저로 일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회사는 두 번째 폴리프로필렌 공장을 건설했다. 하지만 완공 후 상업운전을 할 때까지 문제가 계속 터졌다. 매일 밤을 공장에서 지내야만 했다. 사직서를 낼 만큼 큰 위기였다. 얼굴이 마비될 정도였다. 하지만 회사는 허 사장을 내치지 않았다. “그때가 가장 큰 위기였는데, 나를 믿어준 회사가 고마웠다”며 웃었다. 1993년 학사 출신으로 호남석유화학 연구소 장을 맡은 것도 기억에 남는다. “박사도 아닌데 연구소장 을 맡았으니, 많은 공부를 해야 했다”면서 “연구원들과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게 힘들었지만, 가장 좋았던 기억”이라고 말했다.

40여 년 동안 한 직장에서 일하고 CEO 자리에 오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진인사대천명’이다. “직장 생활을 나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후에는 운도 좋아야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석유화학 분야에만 머문 것은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집안이 가난해 학자가 되기보다 취직해서 돈을 벌어야 했기에 서울대 화공학과를 선택했다.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선배의 권유로 여천석유화학공단(현재 여수산업단지)에 첫발을 들인 것이 평생 직업이 됐다. “여수에 내려가서 일을 해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열심히 일하는 그에게 회사도 많은 기회를 줬다. 심지어 계장으로 근무할 때부터 임원에게 아이디어를 보고 할 정도로 인정받았다. 그는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공장 생활에서 기술, 프로젝트, 연구, 기획까지 경험을 쌓았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가 윗사람에게 인정받았다.” ‘허계장’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모든 일을 꼼꼼히 챙겼고, 앞장서서 끌고 가는 리더십도 허 사장의 무기였다.

허 사장은 “CEO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이익’을 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적자 내는 CEO는 죄인”이라고 말할 정도다. 매출을 올리고 이익을 내는 것이 고객과 주주와 종업원을 모두 만족시키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익을 올리고 세금을 내는 것이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다.”

삶에 후회는 없다. 다만 아쉬운 점은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 것이다. “아내와 좋은 시간을 가졌으면 좋았을텐데, 회사 일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며 웃었다. 아들 3명을 온전히 키운 아내가 고맙기만 하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면 가정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음. 그래도 일에 더 집중할 것 같다”며 웃었다.

민감할 수 있는 이슈를 물어봤다. 제2롯데월드다. 허 사장은 “롯데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대기업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다. 하지만 더욱 노력해서 롯데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한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일이다.”

201410호 (201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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