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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Ⅱ] 정태영 현대카드 대표 - “성공요인? 윤리경영이 답이다” 

 

최영진 포브스 차장 사진 전민규 기자
‘누가 옳은지를 다투는 회사’가 아닌 ‘무엇이 옳은지를 다투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정태영 현대카드 대표. 부실투성이 현대카드를 맡아 글로벌한 회사로 키운 것은 정 대표의 능력이다. 재벌가 사위라는 꼬리표를 떼고, 자신의 브랜드를 구축한 정태영 대표를 본지 단독으로 만났다.

▎적자투성이 현대카드를 디자인 경영으로 선두 기업으로 성장시킨 정태영 대표. ‘심플’이라는 키워드로 제 2의 업그레이드를 준비 중이다.
2006년 8월이었다.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회사에서 발생했다. 어느 날 갑자기 팀장부터 팀원까지, 모두 해고된 것이다. 팀 하나가 공중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창 성장기에 팀이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일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여기저기서 직원들이 수군거렸다. 이유를 알고 보니 팀장 이하 팀원들이 회사가 정한 규칙을 어겼다고 했다. 그 팀장과 팀원은 협력업체로부터 백화점 상품권을 받았다. 심지어 술자리에서 부적절한 접대까지 제공받은 사실까지 드러났다. 이 기업의 CEO는 취임 때부터 ‘3대 무관용 정책(ZTP, Zero Tolerance Policy)’을 강하게 추진했다. 고객정보 보안, 담합금지, 협력업체 거래 투명성 등 3가지 항목 중 하나라도 어긴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관용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는 윤리경영 원칙이다. 2006년에 벌어졌던 이 사건은 임직원들에게 회사의 윤리경영 원칙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제로 보여줬다. “2014년에도 이와 비슷한 일로 팀장과 팀원 대부분을 해고한 적이 있다. 나를 포함해서 누구라도 회사의 윤리원칙을 어기면 해고를 당한다.” 정태영(56) 현대카드·현대캐피탈·현대커머셜 대표의 일성이다.

“기업인이 언론에 나오는 것이 좋은 것 같지는 않다. 기업 경영을 잘하는 것이 경영자의 역할”이라며 언론 인터뷰를 꺼렸던 정 대표가 본지의 인터뷰에 응했다. 기업의 사회적인 역할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2014년 11월 한국윤리경영학회는 현대카드를 윤리경영 대상 수상 기업으로 선정했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대표가 오너가의 일원이라고 해서 주는 상이 아니다. 2003년 정 대표가 현대카드를 맡으면서 지금까지 강조해온 윤리경영이 성과를 냈기 때문에 대상을 받았다. 적자투성이의 현대카드를 흑자로 돌리고, 디자인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워 젊은이들이 일하고 싶은 금융기업으로 키운 능력도 함께 인정 받았다.

3대 무관용 정책, 지위고하 막론하고 적용

정태영 대표가 현대카드를 처음 맡았을 때는 정몽구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의 사위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었다. 하지만 지금 그 꼬리표는 사라졌다. 대신 정태영이라는 브랜드가 확고하게 구축되어 있다. ‘디자인 경영’이라는 화두를 한국 사회에 던진 금융계의 스타 경영자, 정태영 대표가 윤리경영을 집요하게 강조하는 이유가 뭘까. “윤리경영은 기업이나 CEO가 선하다는 것을 자랑하는 게 아니다. 기업의 지속성장을 위해서 필수적인 항목이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4년 한국 사회는 이른바 ‘갑질 논란’으로 뜨거웠다. 사회 곳곳에서 ‘을’의 눈물과 울분이 터져 나왔다. 이른바 ‘땅콩 회항’은 경영자의 윤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분출된 시발점이었다. 기업들은 윤리경영을 경영의 중요한 덕목으로 내세웠다. 인터넷에 ‘윤리경영’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대다수의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윤리경영을 지키고 있다는 자랑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윤리경영이 기업 경영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윤리경영의 글로벌 스탠다드로 꼽히는 GE의 잭 웰치 전 회장은 “변하지 않았고,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은 GE의 핵심적 가치인 정직과 신뢰성”이라고 말할 정도다.

기업들은 윤리경영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지만, 소비자들의 체감온도는 그리 높지 않다. 이 괴리감은 왜 생기는 것일까. 기자의 질문에 그는 “나도 예전부터 생각했던 질문”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사회에서 기업에게 요구하는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은 시간이 지나면서 높아진다. 1980년대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대기업은 제대로 하고 있다. 하지만 2010년 기준으로 보면 기업들의 윤리경영 활동은 여전히 모자라다. 물론 현대카드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사회적인 기준보다 한 두발 늦는 것이다.”

3중으로 작동되는 감사 시스템

하지만 현대카드는 다른 대기업에 비해 윤리경영을 앞서서 실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리경영에 대해 정 대표의 집요한 노력을 엿볼 수 있는 게 3중으로 되어 있는 임직원 감사 시스템이다. 사내 감사팀, 고검장 출신의 변호사가 만든 로펌 외부 감사팀, 2004년부터 현대카드와 합작사업을 펼치고 있는 GE의 감사팀까지 사내외 감사시스템이 3중으로 작동하고 있다. 물론 정 대표도 3중 감사에서 예외가 아니다.

정 대표는 “고검장 출신 변호사를 직접 찾아가서 검사로 일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우리에게 써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신입/경력직이 입사를 하게 되면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기업윤리 프로그램) 특화과정 등 교육을 받게 된다. 그는 현대카드의 회계를 담당하는 회계사에게 회계실사를 강하게 해달라는 요청까지 했다. 심지어 회계사 수임료가 너무 낮아서 실사를 정확하게 못한다는 이야기에, 수임료를 자발적으로 올려주기까지 했다.

정 대표는 골프를 즐기지 않는다. “골프는 재미있다”고 말하지만 필드에 나가는 것은 꺼려한다. 규칙을 깐깐하게 지켜야 하는 성격 때문이다. “나는 필드에서도 규칙을 엄격하게 지킨다. 골퍼가 규칙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웃었다. 골프에 대한 그의 생각에서도 윤리경영의 철학을 느낄 수 있다.

현대카드의 윤리경영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가 임직원을 너무 옥죄는 것 아닌가? 반발이 있을 것 같다”는 기자의 지적에 “성희롱이 괜찮은 건가. 아니면 회사 내에서 파벌을 만드는 게 좋은 건가. 뇌물을 받는 것이 회사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되나. 상식적인 선에서 지키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몸에 익숙해지면 절대 불편하지 않다. 윤리경영은 현대카드의 기업문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카드 문화는 초창기와 많이 바뀌었다. 흔한 말대로 늦게까지 이어지는 회식 문화는 거의 사라졌다. 회식때 술을 먹고 노래방에 가는 팀도 없다. 술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임직원들은 모두 법인카드를 가지고 있다. 협력업체를 만나 밥을 먹거나 차를 마셔도 현대카드 임직원들이 법인카드로 계산을 한다. 협력업체로부터 대접을 받지 않는 것이다. “윤리경영은 나를 포함해 임직원 모두 공평하게 적용된다. 이 기준이 사라지면 어느 누구도 회사의 윤리규정을 지키지 않는다”고 정 대표는 강조했다.

윤리경영과 함께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이 CSR(기업의 사회적책임)이다. 현대카드사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금융 소외 계층’의 자립을 돕는 데 집중하고 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드림실현 프로젝트’로 소상공인 사업을 성공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현대차미소금융재단에서 대출을 받은 소상공인 중 자활에 대한 의지가 남다른 소상공인을 선정해 전문적인 사업 컨설팅에서부터 경영개선교육, 인테리어 디자인, 마케팅 등 토털 솔루션을 제공한다. 2010년 10월 과일가게인 햇빛농원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9호점이 활발하게 영업 중이다.

기업 문화가 달라지면서 현대카드의 실적도 놀라울 정도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2001년 다이너스카드를 인수하면서 현대카드가 출범했다. 당시 현대카드는 적자투성이 회사였다. 2003년까지 영업적자 규모가 6000억원을 넘었다. 시장점유율은 2%도 채 안되고, 연체율은 10%에 육박하는 카드사였다. 당시 미수금만 1조원이 넘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부실한 카드사였다.

현대카드에 디자인을 입히다


▎현대카드 사옥 곳곳에는 정태영 대표의 디자인 철학이 숨겨져 있다. 어느 것 하나 튀지 않는 색상과 임직원의 동선에 맞춰 갖춰진 집기 등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
2003년 정태영 대표가 현대카드를 맡았을 때 외부에서는 “현대차그룹에 금융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그만큼 현대카드는 급박한 상황이었고,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도 적었다. 정 대표도 “현대카드가 그런 회사인줄 전혀 몰랐다”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취임 후 2주 동안 실사를 해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계산을 잘못한 줄 알았다. 적자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정 대표는 ‘디자인’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2003년 5월 차별화된 혜택을 탑재한 ‘현대카드M’을 선보였다. 당시 카드 디자인 개발 비용이 평균 20만원이었다.하지만 그는 현대카드M 디자인에 1억원을 투자했다. 출시 1년 만에 가입회원 100만명을 돌파했고, 최종 800만명이 이 카드를 선택했다. 신용카드 단일 브랜드로는 국내 최대 규모의 기록이 쓰여졌다. 이후에도 카림 라시드, 레옹 스탁 등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이 카드 디자인을 맡았다. 국내 최초로 색깔별 VVIP 카드도 선보였다.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세분화된 카드를 마련했다. 타 카드사에서 벤치마킹 할 정도였다.

현대카드라는 이름을 소비자에게 각인시킨 것은 ‘슈퍼 시리즈’였다. ‘슈퍼 매치’라는 타이틀을 달고 2005년 9월 열린 마리아 샤라포바와 비너스 윌리엄스의 테니스 경기는 숱한 화제를 몰고 왔다. 이후 팝페라그룹 일디보를 시작으로 빌리 조엘, 플라시도 도밍고, 스티비 원더 등을 초청한 ‘슈퍼콘서트’로 이어졌다. “카드사가 왠 스포츠와 공연이냐는 말이 많았지만, 문화로 소비자를 공략하겠다는 아이디어였다.”

2010년 9월 리노베이션을 마친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사옥은 모든 임직원의 자랑이다. 현대카드의 색깔로 사옥의 색을 통일했고, 사무실 인테리어와 집기도 일하는 사람의 동선과 행동양식에 맞췄다. 벽면은 모두 화이트보드로 되어 있어서 언제든 글을 쓰고 지울 수 있게 되어 있다. 책상 하나, 의자 하나도 모두 임직원에게 맞춰 디자인했다. 사옥을 구경하고 싶어하는 요청이 너무 많아서 2만원을 받고 투어링을 할 정도다. 물론 그 2만원은 사회기부금으로 쓰여진다.

이른바 ‘돈 버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신용카드사의 이미지를 정태영 대표가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다. “카드사에 일하는 분들이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낼 때도 있다. 현대카드 때문에 카드업의 격이 올라갔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요즘에는 카드사에서 일하는 것이 선을 볼 때도 유리할 정도다.”

현대카드는 카드업계에서 2위라고 평가받지만, 정 대표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기존의 평가방식으로 1위냐, 2위냐를 나누는 것이 전혀 의미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카드를 몇 개 더 팔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 현대캐피탈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겠나. 회사 조직을 글로벌하게 업그레이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기업의 가치관을 누가 더 많이 확산시켰는지를 두고 평가하면 단연 현대카드가 1위다.” 2014년 6월말 기준으로 현대카드의 임직원은 1440여 명, 금융자산은 10조1700억원을 기록했다.

디자인 경영으로 현대카드를 본궤도에 올린 정 대표. 2단계 업그레이드를 위해 내놓은 키워드는 ‘심플’이다. 2013년 7월 챕터2(Chapter 2)를 발표했다. 그동안 카드에 적용했던 복잡한 서비스 제공기준을 폐지 또는 단순화했다. 포인트 적립과 캐시백이라는 투 트랙 전략을 발표했다. 출시 10개월 만에 200만 장에 가까운 발급 실적을 올렸고, 고객 1인당 이용금액이 기존 상품에 비해 27%가 증가했다. 다시 한번 카드업계를 뒤흔든 것이다.

정 대표는 “한국의 금융이 답답할 때가 있다. 인도나 터키에 있는 금융권보다 한국이 뒤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앞으로 현대카드가 한국의 금융을 업그레이드 하는데 주춧돌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강조했다.

기업문화도 심플에 집중하고 있다. 쉽게 말해 업무 간소화를 통해 효율성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ZERO PPT’(제로 파워포인트) 캠페인을 벌여 보고에 들이는 시간을 줄였고, 업무상 리스크가 낮은 업무 항목은 결제 과정을 간소화했다. 여러 지점에서 따로 발급받던 서류를 한 곳에서 취합해 효율적으로 발급받는 시스템도 마련했고, 각 본부별로 수십 가지에 이르던 문서양식을 1/3 수준으로 줄였다. 관행적으로 주고 받던 많은 문서가 폐지됐다.

정 대표는 ‘누가 옳은지를 다투는 회사’가 아닌 ‘무엇이 옳은지를 다투는 회사’를 추구한다. “임직원 모두가 의견을 말하고, 받아들이는 문화가 흘러야 한다. 현대카드는 그런 문화가 있다. 글로벌 회사들이 우리를 찾아와 합작을 하자고 하는 이유다.”

정 대표는 경영에 인문학을 접목해서 성공했다. 서울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MIT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한 이유는 “경영인이 되려면 인문학 소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불어불문학과를 들어간 이유이고, 나중에 MBA를 취득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정태영이라는 이름은 금융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대명사가 됐다. “앞으로도 계속 금융업을 경영하고 싶은가”라고 슬쩍 물어봤다. “이것은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다만 카드사 등 금융업을 경영하는 게 나와 잘 맞는다. 열심히 하고 있다”며 웃었다.

- 글 최영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 사진 전민규 기자

201503호 (201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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