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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야쿠닌 러시아 철도공사 사장 

푸른 눈의 철도 외교관, 대륙횡단 철도를 잇다 

글 임채연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오상민 기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인 블라디미르 야쿠닌 러시아 철도공사 사장이 지난 5월 27일부터 29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사장단 회의 참석차 방한했다. 포브스코리아는 28일 오전 기자간담회 직후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야쿠닌 사장과 단독으로 만나 ‘나진~하산 프로젝트’ 등 남북철도와 대륙횡단철도 연결 프로젝트에 관련된 알려지지 않은 비화를 청취했다.

▎블라디미르 야쿠닌. 러시아 연방 내 최대 납세자인 '러시아 철도공사'의 사장을 10년 째 맡고 있다.
“남북 간 철도 연결이 언제쯤 가능할까?” 답하기에 꽤 까다로운 문제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야쿠닌(Vladimir Yakunin, 66)사장은 “시기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남북 간에 ‘정치적인 결정’이 이뤄지기 전에 철도가 먼저 달릴 것”이라고 답했다. 이미 그런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고민했다는 듯 철도 전문가로서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기자간담회장에서 쏟아진 그 어떤 질문에도 별다른 주저함 없이 답했다. “이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사장으로서 내가 한 말은 회사의 입장을 대표한다고 봐도 된다”는 말도 했다.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그의 답변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 중의 한 명이다. 푸틴과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레닌그라드주(州)에 함께 다차(별장)를 두고 가족처럼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1995년 첫 방한을 했을 때도 푸틴과 동행했었다. (당시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이었다.)

러시아 연방 내 최대 국영기업


▎2006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남북러 3국의 철도당국 대표회담을 통해 나진~하산 구간의 시범사업 추진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레닌그라드공과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5년 주UN 러시아대사관에서 2등 서기관으로 일했다. 2000년에 러시아로 돌아간 뒤에는 교통부, 통신부 차관을 지냈다고 한다. 그는 “UN 근무 때 처음 일했던 분야가 미사일 발사 (경로)개발”이었다고 털어놨다. UN본부는 남북한 외교전의 최전선이다. 그의 UN경력은 남한과 북한의 독특한 비즈니스 문화를 이해하고 입장차를 조율하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공대출신의 외교관’이라는 이색적인 경력 또한 철도회사 사장인 그에게 철도 외교(Railway Diplomacy)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게 만든 원인이 됐다.

야쿠닌 사장이 대표로 있는 러시아철도공사(JSC Russian Railways)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 등을 운영하는 국영 회사다. 수권자본금 규모만 1조9194억 루블(한화 약 120조원)에 이른다. 코레일의 수권자본금 규모가 1조원대 수준임을 감안하면 그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러시아 철도공사의 자산도 상당하다. 러시아 연방 소유의 철도기업 987개 조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2003년 설립됐고, 정부(러시아 연방)가 단일주주다. 러시아 연방 내 최대 납세자이기도 한 철도 공사는 2003년 이후 납세액 규모만 2조 루블(한화 약 41조원)을 상회했다. 야쿠닌 사장은 그런 러시아 철도 공사의 사장직을 벌써 4번째 연임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깊은 신임이 없다면 쉽지 않은 일이다.

야쿠닌 사장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유라시아 국가의 철도 모임인 OSJD를 주도하는 야쿠닌 사장은 “제가 코레일과는 11년을 이어온 관계”라며 “고속철도 관련 정보교환과 과학기술 분야에서 많이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방한 때 OSJD 서울 사장단 회의의 공동의 장을 맡은 그는 지난 5월 27일 유라시아 국가의 철도 회사 대표들과 함께 남북 철도 연결을 지지하는 ‘서울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미 수 차례 한-러와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TKR(Trans-Korean Railway, 한반도종단철도)-TSR(Trans Siberian Railway,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연계’ 제안을 이끌어낸 주역이다. 특히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TKR복원 사업, 연계 사업의 첫 번째 단계가 될 것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그는 북한 나진과 러시아 하산 간 철도를 복원해 석탄을 수송하는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주도했고, 최근에는 북한 내 철도 복원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한국과 북한, 러시아 3국이 합의해 추진하는 과정을 밟았다. 2001년 8월 푸틴 대통령은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모스크바 선언서에 서명한 적이 있다. 남북한과 러시아 및 유럽을 연결하는 철도교통 루트를 창설하는 데 ‘합의' 한 것이다. 이후 2006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3국의 철도당국 대표회담을 통해 우선 나진~하산 구간을 시범사업으로 추진하는 데 ‘합의’가 이뤄졌다. 그리고 마침내 2008년 4월, 야쿠닌 사장은 북한 김용삼 철도상과 함께 나진항과 하산을 연결하는 철도 54㎞의 현대화 프로젝트에 공식 서명했다. 야쿠닌 사장은 “우리는 이 순간을 위해 7년을 달려왔다”는 한마디 말로 당시의 벅찬 감격을 함축했다.

하지만 프로젝트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야쿠닌 사장은 지난해 12월 모스크바 러시아철도공사 본사에서 열린 ‘한-러 대화(KRD) 포럼에 참석한 한국 언론인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러시아철도공사가 지녀야 했던 부담도 매우 컸음을 밝혔다. 그는 “당사자 간 이익을 조율하는 외교관의 역할을 해야 했고 실질적으로 러시아철도공사가 재정적 부담을 담당할 수밖에 없는 고충이 있었다”고 말했다.

야쿠닌 사장의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간의 수많은 노력들이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 나진~하산 구간 시범 사업 추진에 대해 실무자들의 ‘합의’가 이뤄졌던 것은 2006년이었다. 야쿠닌 사장은 당시 자신과 각별했던 이철 전 한국철도공사 사장과 북한의 김용삼 전 철도상과의 친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2006년 3월, ‘한-러 철도협력 양해각서 체결’을 위해 ‘남-북-러 철도 회담’을 성사시켰다. 남북러 3국 철도 수뇌부의 첫 회동이었다. TKR-TSR 연결 사업을 둘러싸고 한국-러시아, 북한-러시아 고위 철도 당국자 간 2자 회담은 있었지만 3개국이 동시에 한자리에서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경직된 분위기를 전환시킨 한 마디


▎위 사진 중앙 야쿠닌 사장의 오른쪽에 있는 인물이 김용삼 전 철도상이다.
야쿠닌 사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남북한 대표들이 처음 모였을 때 얼마나 서로가 낯설었는지 얼굴도 쳐다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자리를 함께 했던 이철 전 사장도 기자에게 “처음에 김용삼 철도상에게 말도 붙이지 못하겠더라고요. 어깨를 꼿꼿이 직각으로 펴고,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딱딱하게 말하더라고요”라고 전했다. 당시 상황은 김 전 철도상이 자율적으로 판단해서 서류에 사인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다고 한다. 젊고 건장한 수행원이 늘 김 전 철도상의 곁을 지키고 있어서 합의서에 서명하는데도 평양에 그 내용을 보낸 뒤 회신을 받아야만 사인을 할 정도였다.

“저로서는 그때 나진~하산 철도를 구상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는데, 컨퍼런스가 끝나갈 무렵에도 그 분위기로 봐서는 절대 성사될 것 같지 않은 분위기였습니다.” 공식적인 컨퍼런스가 끝나고는 회담 관계자를 개인적으로 바이칼로 초청해 대화하는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이때 사장단의 부인도 초청을 받아 동석을 하도록 돼 있었다고 한다. 그때 야쿠닌 사장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여성의 ‘부드러운 힘’을 빌려보기로 한 것이다.

야쿠닌 사장은 “당시 이철 사장의 부인이 한국 만화 회사의 대표를 지낸 분이었어요. 상당히 쾌활하고 마음씨도 착하면서도 지적인 분이라 부탁을 드렸지요.” 라며 당시 이철 코레일 사장의 아내에게 어려운 상황에 대한 해결을 부탁하기로 마음 먹은 배경을 설명했다. 이철 사장의 아내 전명옥씨는 코코엔터프라이즈의 대표이사 사장직을 역임한 여류 기업인으로 워너 브라더스, 디즈니 등 미국 메이저 영화사로부터 주문을 받아 배트맨, 슈퍼맨, 달마시안 같은 만화영화를 한국에 소개한 주역이다.

바이칼 호수를 배경으로 남북러 3국의 철도 수장과 그 부인들이 마주 앉았다. 야쿠닌 사장이 정적을 깨뜨리며 입을 뗐다. “지금 남자들 간에 전혀 이야기의 진척이 없는데, 여성분들께서 어떻게 좀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러자 전명옥 씨가 이렇게 건배제안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가장 연장자를 존중하고 존경합니다. 저희에게는 연장자란 아버지나 아니면 오빠라던가 그런 분들을 연장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장님을 오빠에게 말하듯이 대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야쿠닌 사장이 그 대목에서 흥분하며 말했다. “그렇게 하면서 딱딱하게 굳어있던 북한의 철도상에게도 말을 건 셈입니다.”

흥미있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기자에게 야쿠닌 사장이 물었다. “그런데, 아주 인텔리한 남성분에게 젊은 여성이 ‘오빠~’라고 말했을 때 느낌이 어땠을까요?” 기자가 대답을 하기 전에 야쿠닌 사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전명옥씨는 김 전 철도상에게 ‘제가 오빠라고 불러도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김 철도상이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고 답하더군요. 그것이 남북한의 철도수장이 처음 손을 맞잡고 악수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야쿠닌 사장은 나중에 TKR-TSR 연계 사업의 시작점을 ‘2006년 바이칼 회의에서 남북한 인사들이 악수를 한 시점’으로 밝힌 바 있다. 당시의 감격적인 순간이 이뤄지기까지는 야쿠닌 사장의 이런 노력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야쿠닌 사장은 기자에게 “그래서 저는 이철 전 사장의 부인을 정말로 존경하며, 지금까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김 철도상에게도 3자가 협력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될 수 있게 ‘결정’한 그 용기에도 감사 드리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북한에서 ‘오빠’라는 별칭은 핏줄로 이어진 친혈육이나 형제처럼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해당된다. 대부분의 북한 여성들은 연인이나 남편을 보고 ‘오빠’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김 철도상이 흔쾌히 ‘오빠’라고 부를 것으로 허락해주면서 남북러 3국 간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는 것이다.

남북러 간의 3각 협력에 얽힌 비화


▎2006년 제주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야쿠닌 사장 부부와 이철 전 코레일 사장 부부.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이후 급물살을 탔다. 한국 철도국 수장이 러시아를 방문한 데에 대한 야쿠닌 사장의 답방은 이후 ‘한-러 철도운영자 회의’로 이어졌다. 2006년 7월 중순 제주도에서 열린 이 회의에서는 TKR-TSR의 연계수송 활성화 방안을 비롯해 나진~하산 철도 공사 추진현황 파악, 양국 철도공사간 상호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제주도에서 이철 부부와 우리 부부가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고 추억하던 야쿠닌 사장은 그때를 회상하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같은 달 북한을 방문한 야쿠닌 사장은 김용삼 철도상과도 회담했다. 북한 철도상 부상 등이 맞이했고 북한 철도상은 이날 저녁 러시아 대표단을 위해 연회를 마련했다. 야쿠닌 사장은 당시 인터뷰에서 “이번 북한 방문에서는 러시아가 국제 컨소시엄의 조정자 역할을 하기로 돼 있는 나진~하산 철도공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시킬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후 남북러 간의 3각 협력은 순풍에 돛을 단 듯 보였다. 이런 노력이 헛되지 않아 2007년 5월 17일, 남북은 56년 만에 철도를 잇는 1회성 이벤트를 열 수 있었다.

같은 해 9월, 야쿠닌 사장과 김 전 철도상은 경의선(서울~개성~황해도 평산), 청년이천선(평산~강원도 세포), 경원선(원산~함흥~청진)을 통해 TKR-TSR를 연결하기로 합의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마침내 2007년 12월, 끊어져 있던 경의선·동해선 두 군데 개통식이 진행됐다. 하루에 1편 정도 문산과 개성공단 바로 밑의 봉동역 간 운행(2008년 11월 남북 관계로 인해 운행중단)까지 이뤄냈다. 그리고 2008년 4월 24일. 야쿠닌 사장과 김 전 철도상은 54㎞의 나진∼하산을 연결하는 ‘철도 현대화 프로젝트’에 공식 서명했다.

하지만 북한의 내부 사정이 발목을 잡았다. 2008년 6월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철도협조기구 제36차 장관회의에 참석한 이후 웬일인지 김 전 철도상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998년 9월부터 약 10년 간 철도상으로 일해 온 김 전 철도상이 정책실패 책임 등을 이유로 공개처형 됐다는 외신의 보도가 나올 뿐이었다. 야쿠닌 사장은 2006년 블라디보스톡에서 남북러 3국이 만났던 얘기를 이어가는 중간중간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김 전 철도상이 내렸던) 큰 결정과 용기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제안(오빠라고 불러도 괜찮느냐는)에 대해서도 점잖게 생각해준 것에 대해 고맙다”고 했다.

‘개방적 협력관계’강조하는 CEO


▎한국 전통혼례 복장을 입고 나란히 서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야쿠닌 사장은 러시아 철도공사의 CEO다. 그는 이 거대한 국영기업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을까? 야쿠닌 사장이 철도공사 사장으로 취임했다고 큰 아들에게 설명하자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 러시아 철도공사는 젊은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100대 기업에도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들의 말은 그에게 영감을 줬다. 러시아의 철도산업은 그 산업구조 자체가 경직돼 있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기에 원활한 곳은 아니었다. 야쿠닌 사장의 표현에 따르면 ‘기관의 장만을 바라보는 권위적인 곳’이었다. 그는 변화를 모색했다. 대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한 청년을 인력관리부서에 보내 직책을 맡기며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고 한다. “어떻게든 철도공사를 러시아에서 젊은 이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5대 기업 중에 하나가 되도록 만들라.”

현재 러시아 철도공사는 2007년 이래로 매년 ‘Youth Meeting’을 매년 개최한다. 참가국만 22개국으로 기업 업무에 대한 해결책(혁신활동 포함) 발견 및 국제적 협력개발을 위해 전 세계의 젊은 인력이 참여하도록 기획하고 있다. 행사 참가자는 업무관련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중간 간부급으로 키워지는데, 실질적 ‘인력양성풀(pool)’로 활용된다. ‘New Link’라는 포맷의 프로그램도 실시하는데 이것은 팀을 구성해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기술 등을 겨루기도 한다. 지금까지 1만 명 이상의 젊은 인재가 참가해 5000여 건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했다.

이런 ‘개방적 협력관계’는 야쿠닌 사장이 추구하는 ‘남북철도협력산업’에서도 핵심적인 가치다. 그는 TKR 재건을 도모하는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이 같은 협력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러시아산 유연탄을 러시아 하산과 북한 나진항을 잇는 54㎞ 구간 철도로 운송한 뒤 나진항에서 화물선에 옮겨 실어 국내 항구로 가져오는 복합물류 사업이다. 야쿠닌 사장은 “나진∼하산 철도망을 깔고, 나진항 터미널을 짓는데 3억5000만 달러를 들였다”면서 “처음 한국과 협상할 때는 공동으로 투자를 하자고 시작했지만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전혀 자금투입이 없다”며 한국의 미온적 태도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북-러 철도 현대화 프로젝트 진행중


야쿠닌 사장에 따르면, 러시아와 북한 관계는 국가적 차원에서 큰 진전을 이뤘다고 한다. 2014년 12월 북한이 구소련에 진 부채 중 약 98억7000만 달러의 부채를 탕감하는 내용의 협정을 비준했다. 러시아 정부가 발표한 비준 내역에 따르면, 채무탕감 규모는 총 채무액인 약 109억6000만 달러의 약 90%로 나머지 10%(약10억 9000만달러)는 20년 동안 6개월마다 분할 상환된다. 채무 중 일부를 북한 영토를 통과하는 남-북-러 가스관 및 철도 건설에 필요한 토지 확보에 사용한다.

현재 진행중인 ‘북-러 철도 현대화 프로젝트’는 기존 철도망을 재건할 뿐만 아니라 남북 양쪽에서 평양 주변을 통과하는 화물 수송용 구간도 새로 건설하게 된다. 프로젝트 실행을 위해 북한의 철도망을 10개 구간으로 구분했고, 사업 추진 비용은 석탄과 비철금속, 희귀금속, 희토류 등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 개발을 통해 조달하기로 했다. 북-러 철도 현대화 프로젝트 추진은 러시아에서, 비용은 북한의 지하자원 개발로 충당하게 되는 셈이다. 극동에서의 대규모 건설 사업에 현장 노무 인력이 부족하게 될 경우 일회적으로 북한의 노동력을 공급받는 방안도 협의됐다. 아직 중국 기업인도 받지 못한 장기 복수비자, 인터넷과 모바일 통신 사용 등 각종 특혜도 러시아 기업인들이 제공받는다고 한다.

이를 두고 북한의 ‘철도 주권’이나 ‘자원 주권’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국내의 여러가지 상황은 녹록지 않아보인다. 러시아산 석탄을 북한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여오는 남북러 3각 물류협력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위해 2013년부터 포스코, 현대상선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했지만, 현재 본계약 협상조차 진행되지 않은 상태다.

다행인 것은 적어도 당분간은 러시아의 대북사업 협력 희망 1순위는 여전히 한국이라는 점이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의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의 세르게이 루코닌 선임연구위원은 e메일 인터뷰에서 “한국-러시아-유럽을 잇는 사업에서 러시아는 적극적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을 여전히 표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대 신범식 교수는 “러시아는 중간행위자(균형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우리는 남북러 협력의 고리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해야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야쿠닌 사장 역시 대륙횡단철도 연결사업에 대해 한국기업의 적극적인 관심을 촉구하며 의미심장하게 “씨앗을 뿌려야 열매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다시 기자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한국 기업은 지금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까?”

- 글 임채연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오상민 기자

201507호 (2015.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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