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er

Home>포브스>Adviser

석유난로 세계 1위 파세코 2세 유일한 대표 

B2C 강화로 브랜드·기업 가치 높인다 

조득진 포브스 차장 사진 오상민 기자
석유난로 세계 1위 기업 파세코는 최근 빌트인 가전 브랜드 ‘키친마스터’를 선보이며 소비자와 직접 만나고 있다. 유일한 대표는 파세코의 연구개발(R&A) 역량을 바탕으로 사업 체질개선에 나섰다.

▎유일한 파세코 대표는 트렌드를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비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제품 개발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사 제품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다.
경기도 안산역에서 내려 공단 길을 가로 질러 걷다보니 빨간색 벽에 넝쿨 담쟁이가 무성한 파세코 본사 건물이 나타났다. 공장 한가운데 마당에선 지게차와 화물트럭이 납품할 물건을 바삐 실어 나르고 있다. 사무동 1층 로비에 마련된 쇼룸에 들어서니 파세코의 제품 개발 역사가 한 눈에 보였다. 석유난로에서 시작해 가스스토브·제습기·가스레인지쿡탑·식기세척기·김치냉장고·후드까지 보기좋게 진열돼 있다.

파세코는 최근 B2C 사업을 강화하며 빌트인 가전 브랜드 ‘키친마스터’를 선보였다. 배우 홍은희를 모델로 내세워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10월부터는 빌트인 가전업계 최초로 TV광고를 진행한다. 2층 집무실에서 만난 유일한(45) 대표는 “주로 대기업과 건설업체에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납품하다보니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졌다”며 “우리 회사의 제품력을 소비자에게 직접 선보여 ‘역시 빌트인 가전 명가는 파세코야’ 하는 평가가 나오게 하겠다”고 말했다. 창업자 유병진 회장의 장남인 그는 회사의 체질변화를 주도하며 생활가전업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계절가전·주방가전 투 트랙 전략


파세코는 국내에 몇 남지 않은 석유난로 제조기업이다. 1974년 난로용 심지를 만드는 신우직물공업사로 출발해 난로 완제품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지금은 연간 난로 생산량의 90%를 전 세계 4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미국 시장 45%, 중동 시장 60%, 러시아 시장 40% 등 세계 시장의 35%를 점유하고 있는 글로벌 1등 기업이다.

유 대표는 “1960년대 후반에 난로 심지를 일본에서 수입하던 부친(유병진 파세코 회장)께서 수입이 막히자 직접 심지 제조를 시작했다”며 “제품에 불량이 생기면 심지 탓을 하는 발주업체의 논리에 맞서기 위해 난로를 연구하시다가 직접 완제품을 만드신 게 파세코의 모태”라고 설명했다. 1980년대 중반 정부에선 대기업을 포함해 시장에서 판매되는 모든 제조사의 석유난로를 거둬들여 테스트 했는데 파세코만 합격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대기업들이 석유난로 시장에서 철수하고 파세코의 블루오션이 시작된 계기였다. 파세코의 심지식 석유난로와 산업용 열풍기는 산업통상자원부 주관 세계일류상품에 각각 8년, 3년 연속 선정됐다. 소비재 부문에서 중소기업의 제품이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선정되는 일은 드문 일이다.

파세코의 사업구조는 석유난로 등 계절가전 분야, 빌트인 등 주방가전 분야로 나뉜다. 계절가전은 수출, 주방가전은 내수 중심으로 매출이 발생하는데 지난해 전체 매출(1381억 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5대 55로 엇비슷하다. 유 대표는 석유난로 시장을 ‘새옹지마’라고 표현했다. 국제정세와 기후환경 등에 따라 일희일비할 수 밖에 없지만 꾸준한 캐시 카우(수익창출원)가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이슬람국가(IS)의 테러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이라크 수출물량이 줄었지만 그 여파로 주변국에 난민캠프가 늘어나 UN에 납품하는 물량이 늘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도 남반구 국가의 고온화 현상으로 석유난로 수출이 부진했지만 한파가 몰아친 미국 지역의 시장 점유율이 확대되면서 이를 상쇄하고 있어요.” 올 들어 미국 지역 수출은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그는 “외신이 남의 일이 아니다. 회사 규모에 비해 글로벌 이벤트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석유난로 시장은 제품의 특성상 폭발적인 확장세를 갖기 어렵다. 계절적 영향에 따른 수요 변동도 심하다. 한국 IBM을 거쳐 CJ엔터테인먼트에서 한국 영화 투자파트장 및 제작팀장을 지내고 2008년 파세코에 전무로 합류한 그가 기존 빌트인 사업을 확장하고 생활가전 분야 자체 브랜드를 통한 B2C 사업에 힘을 쏟기 시작한 이유다. 유 대표는 “석유난로의 계절적 변동성을 빌트인 주방가전 사업으로 잡겠다는 전략”이라며 “B2C 강화로 기업의 브랜드와 인지도를 높여 시장 가치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파세코에게 빌트인 가전 사업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초 홈인테리어 전문기업 한샘과 함께 국내에 빌트인 가전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고, 1999년 코스닥 상장 후 식기세척기, 김치냉장고 등 빌트인 가전기기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2003년에는 글로벌 기업인 GE와 국내 중소기업 최초로 완제품 공급계약을 체결했고, 2008년에는 세계 최초로 전기식 빌트인 의류관리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현재 신규 건설용으로는 삼성전자에, 리모델링용으로는 한샘에 빌트인 가전을 ODM 방식으로 꾸준히 공급하고 있다.

과감한 R&D로 혁신 제품 선보일 것


체질개선의 핵심은 자체 브랜드 론칭을 통한 B2C 사업 강화다. 지금까지 유지해온 대기업 납품 위주에서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키로 한 것이다. ODM 방식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부터 주방용 레인지후드의 홈쇼핑 판매 등을 통해 파세코의 브랜드파워 상승에 힘을 쏟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매출 1381억 원 절반 가까운 642억 원을 가스 쿡탑(매립형 가스레인지)과 후드 판매로 거뒀다. 올 들어서도 TV홈쇼핑은 물론이고 전자랜드 프라이스킹 등 오프라인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후드 판매량은 10만대를 돌파하면서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유 대표는 “소비자의 뜨거운 반응은 인식의 변화에 따른 성과”라고 분석했다. “단순한 주방 부속품에서 환경 가전으로 인식이 확대되면서 소비 증가로 연결됐어요. 또 가격을 낮춰 후드도 매년 교체할 수 있는 제품이라는 마케팅 전략이 효과를 보았죠.”

유 대표는 레인지후드의 성공적인 시장 진출을 바탕으로 B2C 라인업을 더욱 강화 한다는 방침이다. 제습기·서큘레이터(공기 순환기)·온풍청정기·의류관리기 등 건강 및 환경가전제품 중심으로 사업군을 확대해 생활가전 전문기업으로 탈바꿈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제품 라인업과 내구성, 기술력에서 결코 뒤지지 않지만 소비자들 사이에 브랜드 파워가 약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것을 개선하는 것이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부동산 경기 장기침체로 리모델링 시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15년 이상 된 리모델링 대상 주택이 960만 가구 정도 된다고 해요. 요즘 건자재업체들이 홈쇼핑에서 자사 제품 홍보에 열을 올리는 이유죠. 우리 같은 빌트인 가전업체에겐 기회입니다. 유럽의 밀레, 보쉬처럼 소비자들에게 뚜렷하게 브랜드를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빌트인 가전 시장도 경쟁이 뜨겁다. 삼성전자가 올 초 ‘셰프컬렉션 빌트인’을 출시하면서 빌트인 가전 사업을 확대할 계획을 밝혔고, LG전자도 시장 공략에 적극적이다. 냉장고와 세탁기를 앞세운 동부대우전자와 전기레인지에 강한 동양매직과 쿠첸도 빌트인 시장에 기대를 걸고 있다. 업계에서는 4500억 원 수준의 국내 빌트인 가전 시장이 3년 내에 1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 대표는 “국내 제조업 분야에서 중소기업이 자사 브랜드로 대기업과 경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품질에 대한 자신감 하나로 밀어 붙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자신감은 파세코의 연구개발(R&D) 역량에서 나온다. 파세코는 2000년부터 기업부설연구소 설립해 매년 매출의 5% 이상을 R&D에 투자해왔다. 직원 중 R&D 인력 비중도 30%에 달한다. 자체적인 금형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어 원가 경쟁력 확보에도 유리하다. 그 덕분에 세계 최초, 국내 최초 개발 제품이 상당하다. 이러한 기술력과 노하우에 마케팅을 제대로 얹혀 승부하겠다는 전략이다.

“부친께서는 늘 ‘사람과 마찬가지로 회사도 시간이 지나면 망한다. 단지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속 변화해야 하고, 변화는 과감한 투자에서 나온다는 게 우리 파세코의 DNA이죠. 난로 심지부터 시작해서 의류관리기, 김치냉장고까지 다양한 제품을 만들며 변화해 온 파세코의 역사는 바로 R&D의 역량 덕분입니다.” 기후 변화야 예측할 수 없는 분야지만 인구 감소, 1인 가구의 증대라는 트렌드는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만큼 그에 맞는 다양한 제품을 개발할 계획이다. 그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로 또 무언가를 저지를 것”이라며 웃었다.

- 글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오상민 기자

201510호 (2015.09.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