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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 스완 진(Beh Swan Gin) 싱가포르 경제개발청장 

비즈니스와 관광의 나라, 싱가포르 글로벌 기업 유치로 경쟁력 키웠다 

유부혁 포브스 기자 ·사진 오상민 기자
가장 사업하기 쉬운 나라 1위, 국가 경제 자유도 2위, 국제 경쟁력 2위, 국가 경쟁력 5위. 정부 수립 50년 만에 싱가포르가 이뤄낸 놀라운 성과다. 싱가포르가 비즈니스 하기 좋은 나라가 된 주요 배경에는 리콴유 초대 총리가 설립한 EDB(Economic Development Board, 경제개발청)가 있다. EDB의 역사가 곧 싱가포르 경제사다. 싱가포르 GDP의 40%가 EDB에서 유치한 해외 기업들에서 발생한다. EDB가 해외를 돌며 기업들을 유치한 결과 싱가포르는 생기넘치는 비즈니스 허브로 발전했다. 한국도 BTMICE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포브스코리아는 비즈니스와 관광의 나라 싱가포르를 만드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EDB의 최고 책임자를 만나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든 배경과 전략을 들어보았다.

해외 출장이 잦은 베 스완 진(Beh Swan Gin) 경제개발 청장과 만나긴 쉽지 않았다. 여러 번의 일정 조율 끝에 지난 11월 말, 싱가포르를 찾았다. 대형 쇼핑몰들이 즐비한 노스브리지 로드의 시티홀 타워에 자리 잡은 EDB 회의실. 베 스완 진 청장은 예정보다 길어진 회의 탓에 약속된 시간보다 조금 늦게 나타났다. 싱가포르 GDP의 40%가 EDB에서 유치한 해외 기업들에서 발생하는 만큼 그의 일정은 쉴 틈이 없다. 자리에 앉은 그는 우선 EDB에 대한 간략한 소개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경제 규모가 작고 실업률이 높은 현실을 탈피하고자 리콴유 초대 총리가 1961년 만들었습니다. 설립 초기엔 지금보다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핵심 역할을 ‘다국적 기업 및 투자 유치’로 집중했죠.”

싱가포르는 1819년부터 1958년까지 영국의 식민지였다. 1958년 영국의회에서 독립국가에 대한 법적근거가 마련되자 리콴유가 초대 총리에 올랐다.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의 구성원으로 독립했고, 2년 후 말레이시아로부터도 분리돼 완전한 독립국가가 됐다. 1965년 8월 9일 완전한 독립국가가 되기까지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미래를 수없이 고민했다. 리콴유 총리는 회고록에서 “싱가포르가 독립국가로 살아남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라고 썼다. 말레이시아인이 대부분인 주변국들과 달리 싱가포르는 중국계가 많았고, 자원도 빈약했기 때문에 초대 총리가 느낀 불안감, 외로움은 상당했을 것이다. 고민을 거듭하던 리콴유 총리는 싱가포르의 지정학적 위치의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활로를 열었다. 남아시아와 대양지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해 중개무역항이 발달했다는 강점을 이용했다. 해외 기업 투자 유치. 이를 위해 만든 기관이 바로 EDB다. 베 스완 진 청장은 2014년 12월에 부임했다.

싱가포르 부의 힘은 해외기업 유치


▎마리나 베이만에서 바라본 싱가포르 도심 야경.
베 스완 진 청장은 “EDB의 역사가 곧 싱가포르 경제사”라면서 “처음엔 산업개발 단계였기 때문에 다양한 기능이 있었죠. 지역 개발, 재정, 인력 분야까지 EDB가 관할했습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개발은 JTC, 재정은 DBS, 인력은 폴리테크가 맡게 됐죠. 그 사이에 싱가포르 경제는 노동집약에서 기술집약, 자본집약 경제로 발달했습니다. EDB 초창기에 유치한 기업들 대부분이 제조업이었지만 지금은 바이오, 제약, 에너지, 로봇 분야로 확대됐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는 여전히 제조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바이오, 친환경 산업 분야를 중점적으로 육성했고, 이와 관련된 기업들의 유치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EDB는 새로운 산업, 성장동력을 찾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했다. 외자투자유치 전담 기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온 세계를 누비며 싱가포르의 중장기 경제플랜을 수립하는 역할이다.

싱가포르 정부가 나서서 이토록 발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또 성과를 낼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엘리트 공무원이 그 답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선발돼 국내외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 학생들이 싱가포르로 돌아와 정부의 요직에 포진해 있다. 이들은 국영기업의 임원을 겸하기도 하면서 정치와 행정, 경제 등 자신의 전문 분야를 이끈다. 이들에 대한 대우는 대기업 임원 못지않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대우를 받는 공무원 집단이기도 하다. 인재정책이나 이들을 활용하는 방식은 기업과 같이 운영된다. 이들이 세계 곳곳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을 정부 정책에 고스란히 녹여낸 결과 싱가포르는 해외 기업들이 선호하는 나라가 됐고 인재들이 몰려드는 기업을 유치할 수 있었다.

초창기의 EDB는 해외 기업을 찾아다니면서 유치활동을 벌였다. 리콴유 초대 총리 자신이 재임기간 내내 해외기업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자유무역 활성화를 위해 술, 담배, 기름, 자동차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품목에 무관세를 적용하는 파격적인 정책들을 내놓았다. 싱가포르에서 남편이나 아내가 일할 경우 배우자에게 워크퍼밋을 주기도 했다. 수준 높은 국제 학교를 만들어 자녀 교육에 대한 염려도 해결했다. 싱가포르에 입주하는 기업들의 법인세도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싱가포르 국민을 고용할 경우 일정 기간 정부에서 그 비용을 지원해 주는 혜택도 부여했다. 싱가포르에 진출하는 기업들은 EDB 외엔 어떤 기관이나 단체와 접촉할 필요가 없도록 풀 서비스로 지원했다.

베 스완 진 청장의 말이다. “해외 기업들이 이곳에 진출해 여기저기 다니면서 행정업무로 시간을 낭비하고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도록 했습니다. 한마디로 EDB를 통하면 모든 행정이 가능하도록 한 겁니다. 기업들의 불편사항 역시 EDB가 수렴합니다. 관계 기관과 협의해 도와주고 법률 정비가 필요하면 정부에 대신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기업 현실을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또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EDB의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싱가포르는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많은 다국적 기업 아·태 본부를 유치했다. 기업들이 몰려들자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금융 허브, 세계 3대 원유시장, 세계 2번째 규모의 컨테이너항, 세계 최고의 공항과 노선을 갖춘 나라가 됐다. 지난해 싱가포르 국민 1인당 GDP는 5만6113달러다. 베 스완 진 청장은 환하게 웃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을 하나하나 읊었다. “삼성전자, LG전자, 삼성물산, 현대엔지니어링, 아모레퍼시픽 등 한국 기업도 싱가포르에 1000여 개가 진출했습니다.”

싱가포르는 외국인들이 살기 편한 나라다. 비즈니스건 일상생활이건 기본적으로 영어를 사용하고 의무적으로 2개 언어를 교육하고 있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이 없다. 게다가 교통, 교육, 환경, 치안 등 어느 하나 빠지지 않게 잘 갖춰져 있다. 싱가포르의 별칭은 ‘가든시티’이다. 도시 곳곳이 가로수로 채워져 있고 자투리 땅도 흙이나 시멘트가 아닌 잔디로 채워져 있다. 뿐만 아니다. 고층 빌딩엔 어김없이 나무가 심겨진 가든이 있다. 공기와 교통 흐름을 위해 자동차 대수도 조절한다. 자동차를 소유하려면 운행권리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이 증명서는 경매를 통해 구매할 수 있다. 자동차를 소유하려는 희망자가 많기 때문에 자동차를 운행하기 위해선 상당한 재력이 필요하다. 싱가포르는 매년 예산의 19%를 국방비로 지출한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군대는 아세안 역내 최강 전력으로 평가받는다. 엄격한 공권력이 집행돼 사회 치안 유지도 잘 된다. 베 스완 진 청장은 “안정된 도시 분위기는 비즈니스뿐 아니라 관광하기 더없이 좋은 조건이 됐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을 위한 공항 시설과 다양한 노선은 관광객들에게도 동일한 만족감을 선사했다. 공항에서 도심까지 진입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20~30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일이든 관광이든 더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글로벌 기업인들과 관광객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레 대형 쇼핑몰들도 들어섰다. 베 스완 진 청장은 또 “비즈니스 하러 왔지만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싱가포르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가 비즈니스와 이벤트 그리고 관광객들을 위해 어느 정도 심혈을 기울이는지는 2008년에 열린 F1그랑프리 자동차 경주대회에서도 알 수 있다. 대회 사상 처음으로 야간에, 그것도 싱가포르 도심 도로 위에서 열렸다. 시내 호텔에 투숙한 관광객들도 F1 경기를 즐기도록 고안한 것이다. 여기에 싱가포르 정부는 ‘엄격한 법과 도덕’이란 도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카지노’가 포함된 복합리조트도 건설했다. 미국의 카지노 그룹인 샌즈 그룹이 건설한 ‘마리나 베이샌즈’가 대표적인 예다. 비슷한 시기인 2010년 ‘리조트월드센토사’도 개장했다. 당시 반대 여론도 상당했지만 리콴유 총리는 “싱가포르의 미래를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며 국민을 설득했다. 또 샌즈그룹엔 “세상에 없는 건물을 지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건실한 경제와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도시 정책 그리고 엘리트 공무원 집단의 행정력이 뒷받침 된 싱가포르에 세워진 복합리조트는 회의와 각종 비즈니스를 위해 찾는 비즈니스맨들에게 ‘최고의 일터이자 휴양지’ 역할을 하게 됐다. 베 스완 진 청장의 말이다. “비즈니스 하기 좋은 도시는 발전할 뿐 아니라 업무 전후로 신나게 즐길 수 있는 관광 도시도 될 수 있다는 점을 싱가포르는 증명했습니다.”

여러 산업이 협업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야

비즈니스 천국을 일궈낸 EDB의 최근 관심사는 무엇일까? 베 스완 진 청장의 답은 명쾌했다. “우리는 주변국 변화에 늘 주목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의 변화에 싱가포르의 기회가 숨어있기 때문이죠. 우선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의 개발국들이 추진하고 있는 도시화에 주목하고 있어요. 이들 국가들에 싱가포르의 경험, 그러니까 도시화에 필요한 인프라 및 기술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죠. 두 번째는 아시아 중산층의 욕구변화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제품, 서비스를 계속 관찰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나라 밖에서 일어나는 기업활동에 있어 중립적인 서비스가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에 유념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가 다양한 국가의 기업들을 유치하고 있는 만큼 법률, 재정과 관련한 다양한 이슈를 객관적인 기준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걸 중립적인 서비스라고 한다고 했다. 베 스완 진 청장이 빙그레 웃으며 덧붙였다. 중요한 건 경쟁보다 협업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산업이 함께 모여 협업할 수 있도록 정부가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의 변화가 기회인 만큼 한국에도 동일한 기회가 있을 테고, 그것을 잡고 또 누릴 수 있으려면 말이죠.”

- 글 유부혁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오상민 기자

201601호 (201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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