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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오너일가 3·4세 전진 배치 

책임경영, 성장동력 발굴 과제로 

오너가 3·4세로의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다. 경영 일선에 나서게 될 젊은 경영자들에게 기업의 활로를 찾는 막중한 역할이 주어졌다.

주요 대기업들의 연말 정기 인사 결과, 30대의 젊은 후계자들이 전무 등 임원 자리에 오르면서 경영 일선에 전진 배치됐다. 기업 홍보실은 승진인사의 배경으로 성과주의, 신사업 발굴, 현장중심 등을 내세웠다. 오너가 자제들이 신규 사업에서 높은 실적을 세웠으며, 젊은 감각을 활용한 현장 경영이 성과를 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들이 경영자로 배치된 부서나 업무 역시 대부분 신규 사업이나 전략기획 분야다.

한 기업체 관계자는 “성과가 예상되는 기존 사업 분야에 주로 승진시켰던 데 비하면 신규 사업에 오너가를 배치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저성장기 장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이 배수진을 친 셈”이라고 전했다.

재계 안팎에선 삼성의 움직임이 영향을 주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재에 따른 삼성의 경영 승계 작업이 다른 대기업에게 일종의 ‘사인’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재계단체 관계자는 “후계자를 미리 경영 일선에 배치해 승계구도를 다짐으로써 경영 공백 리스크를 줄이려는 전략”이라며 “재계 전반의 이러한 움직임에 맞춰 이참에 승진인사를 단행한 기업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기인사 최고의 화제는 신세계그룹이다. 이명희 회장의 딸이자 정용진 부회장의 동생인 정유경(44) 부사장이 신세계백화점부문 총괄사장으로 승진했다. 1996년 조선호텔에 상무로 입사해 2009년 신세계 부사장 자리에 오른 지 6년 만이다. 이마트 사업은 정용진 부회장이, 백화점 사업은 정유경 사장이 총괄하는 ‘남매 경영’이 시작됐다. 정 사장은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 해외 유명브랜드 수입과 생활용품 브랜드 ‘자주’를 성공적으로 론칭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총괄사장은 신세계백화점, 신세계인터내셔널, 신세계사이먼 등을 맡을 예정이다. 당장 내년 2월 백화점 강남점 5개 층 증축을 시작으로 4월 서울 시내면세점 개관, 상반기 백화점 김해점 오픈을 진행해야 한다. 또 하반기엔 신세계의 새로운 얼굴이 될 초대형 복합쇼핑몰을 하남과 동대구에서 각각 열게 된다. 업계에서는 외종사촌 지간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과 유통, 패션 등 소비재 영역에서의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서현, 삼성 패션사업 원톱으로


이서현(43) 삼성물산 사장은 패션부문장으로 격을 높였다. 삼성의 패션사업을 이끄는 ‘원톱’으로 부상한 것이다.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을 졸업한 이 사장은 2002년 제일모직에 부장으로 입사해 패션 관련 업무를 주도했다. ‘빈폴’을 삼성의 대표 브랜드로 키워냈고, ‘구호’‘에잇세컨즈’ 등 차세대 브랜드를 잇달아 성공적으로 론칭했다.

하지만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2015년 3분기 220억 원의 영업 손실을 내는 등 최근 부진하다. 이 때문에 그룹 내에선 패션사업에서 ‘이서현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이서현 사장의 부문장 승진은 유니클로 같은 해외 브랜드가 국내 패션시장을 잠식한 상황에서 패션사업을 부활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인사”라고 설명했다. 삼성물산은 제일모직을 합병하면서 패션부문 매출을 지난해 1조9000억 원에서 2020년 10조 원으로 5배 이상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두산그룹도 4세에게 중책을 맡겼다. 두산그룹 박두병 초대 회장의 손자이자 박용만 현 회장의 장남인 박서원(37) 오리콤 크리에이티브총괄 부사장(CCO)을 올해 사업권을 따낸 면세점 유통사업부문의 전략담당 전무로 앉혔다. 두산은 동대문 두타에 면세점을 만들어 내년 중 영업에 들어갈 예정인데, 새로 진출한 면세점 사업을 그에게 맡긴 것이다.

박 전무는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에 재학 중이던 2006년 빅앤트 디자인그룹을 설립했다. 빅앤트는 지난해 두산그룹 계열사로 편입됐고, 박 전무는 두산그룹 광고계열사 오리콤의 CCO를 맡았다. 그는 지난 7월 한화그룹 광고계열사인 한컴을 인수하는 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면세점 사업은 가 그룹 오너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박 부사장의 경영능력을 평가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30대 임원이 탄생하는 등 오너 일가의 초고속 승진도 눈길을 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34) 현대중공업 기획총괄부문장은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지난 2013년 연말 인사에서 부장에서 상무에 올라온 지 1년 만의 승진이다. 정 전무는 해외수주를 책임지는 영업본부 총괄부문장 직함도 달았다. 재계에서는 8분기 연속 적자를 보이며 창사 이후 최대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중공업이 오너 경영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한다. 20년 넘게 이어온 현대중공업의 전문경영인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측도 승진 인사 배경에 대해 “앞으로 정 전무가 영업 최일선에서 발로 뛰면서 수주활동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은 40대 젊은 임원을 배치하는 발탁인사로 정 전무의 입지를 다지는데 주력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33) 한화큐셀 영업실장을 1년 만에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시켰다. 김 전무는 지난 2월 태양광 계열사를 한화큐셀로 통합해 셀 생산규모 기준 세계 1위의 태양광 회사를 탄생시켰고, 이후 구조조정과 생산효율성 개선 성과를 인정받았다. 또 태양광업계 단일계약 최대 규모인 미국 넥스트에라와의 공급계약 등을 통해 올 3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는데 공을 세웠다는 게 한화그룹이 밝힌 승진 배경이다. 재계에서는 김 회장이 아직 집행유예가 끝나지 않아 경영에 나서는 데 제약이 있는 만큼 김 전무의 보폭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디지털팀장과 막내 김동선 한화건설 매니저도 지난 2014년부터 그룹 내에서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의 장남 이규호(32) 코오롱인더스트리 상무보는 1982년생으로 재계 오너가 임원 승진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이원만 코오롱 창업주의 4세로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에 입사해 구미공장에서 1년 동안 근무한 바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코오롱그룹 주력계열사로 의류소재, 산업자재, 화학소재를 생산한다. 재계에선 “이웅렬 회장이 속성으로 경영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 상무보는 레바논 유엔평화유지군에 지원해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가시적 성과 내야 경영승계 원활 전망

하이트진로와 SPC에서도 3세 경영이 속도를 내고 있다.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의 장남인 박태영(39)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2012년 경영관리실장(상무)으로 하이트진로에 입사해 그해 전무로 승진한데 이어 3년 만에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지난해 3월 박문덕 회장이 대표이사에서 물러나자 업계에서는 “하이트진로가 곧 3세 경영에 들어간다”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이트진로 측은 “박 부사장은 올해 턴어라운드(반전) 실적 실현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장남인 허진수(39) 파리크라상 전무도 부사장으로 승진해 SPC그룹의 해외사업을 총괄하게 됐다. 2005년 입사한 그는 2014년 전무로 승진했고 2015년 3월엔 삼립식품의 등기이사에 올랐다. 삼립식품은 SPC그룹의 모태이자 그룹 내 유일한 상장사다. 허 부사장은 허 회장과 같은 미국제빵학교(AIB)를 수료하고 SPC그룹에서 전략기획실과 R&D, 글로벌사업 등을 담당해왔다.

오너가 3·4세의 고속 승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재계에선 경기 불확실성이 갈수록 가중되는 상황에서 책임경영 강화, 세대교체를 통한 경영 쇄신으로 해석하고 있다. 재계단체 관계자는 “면세점 사업권 수주에서 보듯 오너의 신속하고 단호한 결정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라며 “해외 시장 확대, M&A, 모바일 접목 등 시장 변화에 맞춰 3·4세로의 경영승계가 이뤄지고 있다”고 풀이했다. 하지만 경영성과를 통해 내부의 동의를 얻지 못할 경우 기업 경영의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업무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현장 경험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결국 초고속 승진이 뛰어난 경영 능력 때문이었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스스로 노력해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201601호 (201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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