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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미 링크샵스닷컴 대표 

호텔리어를 꿈꾸던 유학생 동대문시장 도매업의 샛별 되다 

최영진 포브스 차장 ·사진 오상민 기자
한국 스타트업 붐을 이어가는 요인 중 하나는 벤처캐피탈(Venture Capital) 덕분이다. VC가 투자하는 한국의 스타트업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이를 찾기 위해 ‘벤처캐피탈의 선택(VC’s Choice)’ 연재를 시작한다. 첫 주자는 알토스벤처스가 투자를 결정한 ‘에이프릴’이다.

▎저녁 8시, 동대문시장의 도매상이 활동을 시작한다. 서경미 대표도 이 시간에 맞춰 동대문시장에 나가서 도매업자와 바이어를 만나 링크샵스닷컴을 알리며 영업을 한다.
2015년 9월 실리콘밸리에 본사가 있는 벤처캐피탈 알토스벤처스 관계자는 10월에 열리는 ‘비글로벌 샌프란시스코’ 행사에 참여할 한국 스타트업을 고르고 있었다. 그의 앞에 놓인 수많은 스타트업의 소개서 중에서 ‘링크샵스닷컴’ 서비스가 눈에 들어왔다. 동대문시장의 도매상과 중국·미국 등지의 소매상을 연결하는 플랫폼 서비스였다. 2015년 4월 정식으로 서비스를 론칭했는데도 벌써 동대문시장 670여 개의 도매상이 입점했고, 2만 8000여 개나 되는 상품이 올라온 상태였다. 링크샵스닷컴을 서비스하는 에이프릴 대표의 이력도 흥미로웠다. 2001년, 20대의 젊은 나이에 미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30여 개의 매장을 운영했던 경력이 있었다. 동대문시장에서 3년 동안 직접 도매사업도 했다고 했다. 알토스벤처스 관계자는 페이스북을 통해 링크샵스닷컴 관계자와 연락을 했고, 바로 약속을 잡았다.

알토스벤처스 수석심사역 눈에 띈 플랫폼


11월 24일, 알토스벤처스와 KTB네트워크는 각각 26억원, 4억원 등 총 30억원을 에이프릴을 투자했다. 2015년 4월 10억원을 투자받은데 이어 30억원 투자를 유치하면서 스타트업계는 에이프릴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에이프릴을 이끌어가는 서경미(34) 대표는 여전히 스타트 업 창업가라는 단어를 쑥스러워한다. “엔지니어도 아니고 IT도 잘 모른다. 다만 패션 B2B 플랫폼 사업은 예전부터 해왔던 일이기 때문에 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 대표 이전에도 동대문시장과 남대문시장의 도매업을 온라인 플랫폼으로 끌고 오려는 시도가 많았다.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도매업만이 여전히 미개척 분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링크샵스닷컴 이전에는 성공시킨 곳이 없었다. 이에 대해 서 대표는 “모든 기업들이 도매업 전자상거래 시장의 필요성과 가능성은 알고 있지만 전자상거래 시장에 끌어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도매업을 직접 해본 경험이 있기에, 동대문시장 도매업자를 설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2008년부터 3년 동안 동대문시장에서 도매업자로 일했다. 처음부터 도매업자로 일할 생각은 없었다. “온라인 사업을 하기 위해서 도매업자와 이야기를 하는데, 도무지 그들을 설득하기 어렵더라.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도매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서 대표는 회고했다. 하지만 이때의 경험과 인맥이 지금의 링크샵스닷컴을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은 자명한 일이다.

서 대표가 직접 경험한 도매업의 시장 규모는 생각보다 크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류 도매시장은 크게 미국, 한국, 인도, 중국, 브라질 등 5곳이 꼽힌다. 한국과 미국의 패션 도매 시장은 동대문·남대문과 LA 자바 시장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동대문시장의 도소매 규모는 약 11조원으로 추산된다. “현금결제를 주로 하기 때문에 11조원보다 훨씬 규모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서 대표는 설명했다. 서 대표의 경험에 따르면 동대문 시장 도매업자의 하루 평균 거래액은 1000만원~2000만원 정도. 많이 버는 도매업자는 하루에 1억원을 거래하는 경우도 있다.

서 대표는 이런 경험을 살려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도매상과 소매상을 연결하는 플랫폼 서비스 링크샵스 닷컴을 론칭했다. 매출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서 대표는 “아직 사업 초기라서 정확한 매출액을 밝히기 어렵지만, 2016년 매출 목표액은 500억원이다”며 웃었다. 그만큼 도매업 시장의 미래 성장성은 크다. 링크샵스닷컴의 비즈니스모델은 도매업체의 입점비와 판매 수수료다.

서 대표의 원래 꿈은 호텔리어였다. 미국으로 유학까지 간 재원이다. 그런 그가 패션 도매업에 뛰어든 이유는 ‘교통사고’ 때문이라고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그의 창업은 우연으로 시작해 필연으로 이어졌다.

2001년 20살 서경미 씨는 호텔리어가 되기 위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네바다주립대학 호텔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어머니가 입학시험 한 번에 붙으면 보내준다는 조건을 걸었는데, 이 학교가 나를 한 번에 받아줬다”며 웃었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파트타이머로 일하면서 가을학기 입학을 기다렸다. 그러던 중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수업을 듣기가 어려울 정도의 부상이었다. “학교에 사정을 얘기했더니 등록금 3만 달러를 돌려주더라.” 보통의 경우라면 다음 학기를 기다리면서 영어공부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재기발랄한 서 대표는 오히려 “3만 달러로 뭐할까?”를 궁리했다. “한국에서 사온 물건이 라스베이거스 상점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파트타이머로 일하던 가게 사장님에게 좋은 아이템이 있으니 해보자고 했는데 별 관심이 없더라. 그래서 내가 직접 해보려고 등록금으로 물건을 수입해서 팔았다.”

2만 달러 투자해 70만 달러에 되판 사업 본능

2만 달러로 한국에서 네일 관련 상품을 수입했다.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에 입점한 가게의 구석자리를 빌렸다. 상품은 날개가 돋힌 듯 팔려나갔다. 그 일대 지역에 소문까지 났다. 6개월 만에 한 유대인이 70만 달러가 든 가방을 들고 앞에 나타났다. 서 대표는 “한번 성공해보니까, 학교 수업을 듣기기 어려워지더라”며 웃었다.

학업 대신 사업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사업 아이템을 늘려갔다. 그가 운영하는 간이매점 키오스크 숫자가 한 때 30개로 늘어날 정도로 번창했다. 라스베이거스뿐만 아니라 LA와 하와이 등에서도 서 대표를 찾았다. 서 대표는 액세서리뿐만 아니라 주얼리나 옷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규모가 커지면서 도매 사업에 뛰어들었다. 미국 LA의 자바시장에서도 도매를 해봤다”고 서 대표는 말했다. 자바시장의 도매업자 70%가 한국 출신이었기에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도매시장에 뛰어들 수 있었다고 했다.

이때 도매업자와 소매업자를 이어주는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다. 링크샵스닷컴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유학생 신분이라서 내 이름을 내걸고 사업을 하지 못했다. 남의 이름을 빌려서 했는데, 결국은 그 사람과 좋지 않게 헤어지게 됐다”고 회고했다.

서 대표는 ‘집 한 채 살 수 있는 돈’을 벌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2008년 동대문시장에서 도매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보기 위해 직접 장사를 시작했다. 도매업자와 네트워크를 쌓았고, 중국·미국 등지의 바이어도 만났다. 이들이 링크샵스닷컴의 주 고객이 됐다.

링크샵스닷컴은 해외 바이어의 시간과 돈을 절약해 준다. 예를 들면 동대문시장을 찾는 중국 바이어는 보통 오후 5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해 저녁 8시부터 아침까지 물건을 구입한 후 다음 날 아침에 중국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싣는다. “바이어로서는 상당히 피곤한 일이지만, 동대문 도매업자가 IT를 잘 모르니까 바이어가 직접 찾아올 수밖에 없다. 링크샵스닷컴이 이런 바이어들의 수고를 덜어주고 있다”고 서 대표는 말했다. 인터넷을 잘 모르고 전자상거래에 관심이 없는 도매업자라도 서 대표라면 믿고 링크샵스닷컴에 입점하게 된다.

생생한 도매업 경험을 가지고 영업을 하고 있는 서 대표, 그를 뒷받침하고 있는 이들도 에이프릴의 강력한 무기다. 세계적인 온라인 신발 판매회사 자포스에서 일했던 추연진 CTO, 상장기업에서 IR과 M&A를 담당했던 오영지 COO가 서 대표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서 대표는 “그동안 사업하면서 사기를 당해서 모아놓은 돈을 날려먹은 적도 있다. 두 사람이 없으면 링크샵스닷컴 운영을 할 수 없다. 이분들이 있기에 내가 잘하는 영업에 집중할 수 있다”고 서 대표는 말했다. 에이프릴 식구는 어느덧 30명으로 늘었다. 모든 임직원은 스톡옵션을 가지고 있다. “에이프릴의 주인은 우리 세 사람이 아니라 모두라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라고 서 대표는 밝혔다.

보통 스타트업 창업가와 다른 길을 걸어온 서경미 대표. 비록 IT를 잘 모르는 창업가지만, 그가 보여주고 있는 실적은 스타트업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 글 최영진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오상민 기자

[박스기사] 알토스벤처스가 에이프릴을 선택한 이유

전 세계 패션생산 도매시장 ‘Top5’ 중 인도를 제외한 모든 시장은 동대문시장에서 일하던 한국인이 이민·정착해 시작했다. 에이프릴이 동대문을 넘어 세계 도매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강점을 가진 셈이다. 서경미 대표는 도매시장에 대한 이해와 네트워크, 해당 비즈니스를 성공시킬 수 있는 실행력이 있다. 이에 투자를 결정했다.

201601호 (201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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