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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 

“잘 쉬는 게 1등 비결” 

글 문희철, 김유경 기자·사진 김현동 기자
입사 5년 차는 한 달, 10년 차는 두 달, 임원이 되면 5년마다 2개월씩. 모든 임직원에게 안식년을 주는 회사가 있다. 머리를 비워야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것이 이 회사 대표의 지론이다.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은 한미글로벌의 김종훈 회장을 만났다.

▎1~3월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온 김종훈 회장. 한미글로벌은 최고경영자가 장기간 휴가를 가도 회사가 잘 운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한미글로벌에서는 안식년에 들어간 임직원이 2개 월간 소중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쉬는 중에 책상을 치우거나, 전화를 하지도 않는다. 물론 유급 휴가다. 출산을 앞둔 10년 차 여직원이라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붙여 최장 17개월을 쉴 수 있다. ‘월화수목금금금’을 사는 대한민국에선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건설사업관리(CM) 회사인 한미글로벌에선 10년 전부터 제도로 정착된 모습이다.

“자기 삶도 일만큼 중요합니다. 직원들이 출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어야죠.” 서울 삼성동 한미글로벌 사무실에서 만난 김종훈(68) 한미글로벌 회장은 업무적 성취감 못지 않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가정과 회사, 삶과 일의 균형을 잡는 게 핵심입니다. 일에 너무 매몰되면 창의적인 생각이 나오지 않아요.” 머리를 비워야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은 한미글로벌이 업계 1위를 달리는 비결이라고도 귀띔한다.

건설업계의 ‘피터팬’

김 회장은 임직원에게 안식년을 해외에서 보내라고 장려한다. 현실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회사 사정이 조금 더 좋아지면 직원들에게 세계 일주 항공권을 지급할 겁니다. 젊을 때야말로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죠.” 지난 1~3월 안식년을 다녀온 김 회장은 평소에 타보지 못한 컨버터블·스포츠카 등을 타고 미주 일대를 여행했다. 또 설악산에 칩거하며 논문 집필에 매진하기도 했다. 고희를 앞둔 김 회장은 젊은이 못지 않은 감각과 도전정신으로 건설업계의 ‘피터팬’으로 통한다.

김 회장은 ‘O2O(온라인·오프라인 연계)’ 사업 추진 등 휴식 기간 중 담은 아이디어 꾸러미도 풀어놓았다.

“건설산업에 플랫폼 비즈니스를 처음 시도해 볼 생각입니다. 인테리어·집수리부터 시작해 전자상거래로도 확대해야죠. 플랫폼이 자생할 수 있는 길을 닦아나갈 겁니다.” 김 회장은 온라인 마켓에서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인테리어 컨설팅과 시공사 주선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구상이다. 아직은 밑그림 단계지만, 공구와 목재 등 건설 자재 판매로도 서비스를 확대할 생각이다. 최근 온라인과 지상파 방송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집방’은 KCC와 한샘·LG하우시스 등 대형 인테리어 업체도 주목하는 분야다.

“왜 플랫폼인가?”라고 묻자 김 회장은 “건설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라고 답했다. ‘공급자 중심’의 시장 생태계가 건축 기술 등 질적 성장을 저해한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주택경기가 워낙 좋아 새로운 기술이나 혁신에 관심이 적었죠. 이제 해외와 경쟁해야 하는데 기술경쟁력과 신뢰, 글로벌 능력 모두 떨어집니다. 이 상태로는 살아남기 어려울 겁니다.

김 회장은 ‘책임형CM’(CM at risk) 사업 확대도 추진한다. CM사가 정해진 공사비와 공사기간에 맞춰 직접 공사를 수행하되, 만약 이를 초과하면 CM사가 나머지를 책임지는 사업 방식이다. 발주자로선 원가와 설계, 자재구입 등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볼 수 있다. 공사비와 공사기간 증가 부담도 덜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이미 신규 발주의 40%가 책임형CM 방식이다. “베트남에서 빈민 주택을 짓는데, 현지 건설사의 건축비는 평당 50만원, 한국 건설사는 200만원입니다. 공사비를 줄일 여지는 많고, 공사기간도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한미글로벌은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하는 ‘패스트트랙(Fast Track)’ 기법을 국내에 처음 적용해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의 공사기간을 4개월 앞당긴 바 있다. 최근에는 이틀에 한 층씩 건물을 올리는 ‘투데이싸이클’ 공법을 특허 출원했다.

올해는 중국과 중동·동남아를 핵심 3대 축으로 해외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미국의 오텍을 인수하면서 중동 시장을 확대할 수 있었죠. 마찬가지로 일본을 교두보로 동남아 시장을 확대할 것입니다.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도 활용해야죠.” 중국 진출을 위해선 중국의 대형 부동산·엔터테인먼트 기업인 완다그룹 등과 파트너십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김 회장은 후계자 문제를 두고는 “아직 물색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미글로벌을 제너럴일렉트로닉스(GE) 같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꾸려나가겠단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혀왔다. “GE처럼 100년 기업을 지향하려면 전문성 있는 사람이 10~20년은 경영해야죠. 사내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을 발탁할 생각입니다. 외국인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경영 형태는 사회복지재단이 기업을 소유한 ‘유한양행 모델’을 지향한다고 했다. “돈 있는 사람들의 진정성 있는 기부문화를 만들어야죠. 그런 저변은 국내에도 이미 깔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회장은 사회복지재단인 ‘따뜻한 동행’에 자신의 지분 6.46%를 넘긴 상태다. 이 재단을 지주회사로 세우겠다는 중장기 계획이다.

김 회장은 은퇴 이후엔 사회공헌 활동에만 매진하겠다는 계획도 펼쳤다. 김 회장은 현재 삼성 출신 CEO가 주축으로 결성된 ‘CEO지식나눔’ 멤버로 활동 중이다. 현재 한양대학교 등 대학에서 ‘행복경영’ 강의를 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행복을 못 느끼고 감사할 줄 모르는 것 같아요. 행복 전도사가 되는 것이 제 꿈입니다.”

다음은 일문일답.

1~3월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왔다. 어떻게 보냈나.

절반은 설악산에 틀어박혀 공부만 했다. 43년의 직장 생활을 정리하는 논문을 쓰고 있다. 평소에는 집중하기 어려워 휴가 때 몰아서 했다. 나머지 절반은 아내와 함께 미주와 남미 여행을 했다. 따져보니 올해가 결혼 40주년이더라. 마우이 섬에서 컨버터블 차도 타보고 머스탱·UV도 몰아봤다. 헤드라이트를 어떻게 켜는지 몰라 밤에 애도 먹었다. 남미의 아루바라는 작은 섬과 미국의 세인트 마틴이 인상적이었다.

안식년 제도를 도입하게 된 계기는.

직장인이 현실을 떠나 휴식을 취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일밖에 모르던 세상과는 달라졌다. 2004~2005년 1박 4일 중동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잠은 대부분 비행기에서 잤고, 굉장히 힘들었다. 한창 바쁠 때였지만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직원들에게 안식 년 중에는 전화기도 꺼두고 회사에 일절 보고를 하지 말라고 한다.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지 업무의 연장이어서는 안 된다.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역할도 그에 못지 않게 신경써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생기기 전엔 직원들에게 2~3개월 동안 세계일주를 다닐 수 있는 항공권도 끊어줄 생각이었다. 회사가 조금 더 건전해지만 계획을 재개할 생각이다. 젊을 때 인사이트를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리더는 머리를 비워야 한다


▎김종훈 회장은 사회공헌에 열심이다. 이순신 아카데미 1기를 수료하고 지난해 3월 아산 현충사를 찾은 김종훈 회장(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
직원들에게 왜 여행을 혼자서 다니라고 독려하나.

여행이든 출장이든 혼자 가는 게 좋다. 평소에 묻혀있던 생각이 문득 떠오르게 된다. 개인적으로 생각의 사슬을 놓치지 않고 메모해 뒀다가 실제 회사 운영에 써먹은 경험도 많다. 해외에서는 조금 더 창의적인 생각이 나온다. 정부가 창조경제를 추진하는데 박근혜 대통령도 좀 쉬어야 한다. 리더는 머리를 비워야 한다. 한미글로벌은 최고경영자(CEO)가 장기간 휴가를 가도 회사가 잘 운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한국에서 찾기 힘든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졌다.

미국 등 외국에선 일반적인 업무인데, 한국이 발전 속도가 늦다. 경영컨설팅과 비슷하다. 건설컨설팅으로 글로벌하게 성과를 내고 있다. 사명이 한미파슨스이던 시절, 상암 월드컵 경기장 재개장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적 있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대건설에 있을 때 파슨스와 일을 많이 했다며 반가워했다. 삼성물산·현대건설 같은 대형 건설사가 중동에 가면 벡텔·파슨스 등 CM·PM 회사 아래에서 일한다. CM사는 건설 프로젝트의 A~Z를 담당하며, 건설사는 시공만 맡는다. 올해 한미글로벌의 매출이 2000억원 정도인데, 건설 시공 물량은 총 10조원 가량 된다.

새로 추진하는 사업이 있나.

크게 두가지다. 먼저 건설의 플랫폼 비즈니스를 할 것이다. 요즘 인기를 모으는 인테리어 시장에 온라인 기반의 플랫폼을 만든다. 다음달 초에는 별도의 법인을 차려 IT 비즈니스로 나아갈 것이다. 사실 2000년대 초에 ‘E집’이라는 브랜드로 시도해봤는데, 제대로 안됐다. 그렇다고 온라인 비즈니스를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며, 소규모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O2O 기반 서비스를 시작할 생각이다. 출발은 인테리어나 집 수리고, 모든 건설 자재와 인테리어 소품을 판매하는 전자상거래로 확대할 계획이다. 일반 소비자와 인테리어 업체 간에 다리를 놓는 토탈 솔류션 개념이다.

다른 하나는 뭔가.

책임형CM도 별도 법인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조심스럽게 접근하려고 한다. 한국은 시공사가 건설판을 주무르는데, 투명성이 많이 떨어진다. 책임형CM을 하면 모든 원가를 공개하게 돼 있다. 발주자 입장에서는 정보나 자료를 투명유리처럼 볼 수 있다. 미국은 신규 공사의 40%가 책임형CM으로 진행된다. 선진화된 모델이다. 한국도 글로벌 스탠다드를 접목해 정직·신뢰를 높이겠다. 서울 방배동에 주상복합 프로젝트를 직접 개발하는데, 초기 단계부터 하도급 업체를 참여시켜, 서로의 의견과 기술을 공유하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공과 공사를 함께 진행, 이틀에 건물을 한 층씩 올리는 ‘투데이 싸이클’ 공법으로 실시한다. 특허를 낸 기술이다. 보통 지하 5층, 지상 28층 건물은 3~3.5년 정도 소요되는데, 한미글로벌은 20개월만에 완료할 계획이다. 과거 이런 기술을 건설사에 이전해주고 마진을 나누겠다고도 했는데, 건설사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주택경기가 워낙 좋아 배가 부른 탓도 있지만, 새로운 기술이나 혁신에 관심이 적었다.

국내 건설사들 혁신에 관심 적어

국내 건설사는 왜 기술 혁신에 미온적인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경기 활성화를 위해 부동산 버블을 조장했다. 당시 부동산 개발업자는 아파트 건설에만 집중했다. 깃발만 꽂으면 분양이 다 되던 시기다. 건설사들은 비싸게, 많이 팔 생각만 했지, 싸게, 짧게 만들 생각에는 소홀했다. 서민 아파트임에도 쓸데없는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다. 베트남 정부가 극빈자 전용 아파트를 짓는데, 현지 건설사는 평당 건설비가 50만원 밖에 안 되지만, 한국 건설사가 지으면 200만원이다. 건설 원가를 많이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건설하는데 13.5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국은 잠실 종합경기장을 짓는데 5~6년, 인천 문학경기장을 짓는데 4년이나 걸렸다. 한미글로벌은 28~29개월 만에 이런 사업을 끝낼 수 있다. 상암월드컵경기장이 가장 모범적인 사례다. 사후 운영까지 고민해 현재 전국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종합경기장이다. 이것이 바로 CM의 힘이다.

해외 사업 계획은?

일본은 장기적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가능성이 큰 시장으로 적극적인 제휴전략을 통해 공략할 것이다. 미국 등 해외투자자도 많이 활동하는 곳이다. 중국은 현지화 전략이다. 중국은 현재 건설·부동산 부문에서 압도적인 세계 1위다. 미국의 3배쯤 된다. 현재 완다그룹과 상호파트너십을 맺으려고 노력 중이다. 또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시너지가 나올 것으로 본다.

중동지역은 자회사인 미국의 오텍을 활용해 계속적으로 시장 개척을 할 것이다. 인도도 이머징 국가로서 중시하고 있는 시장 중 하나다. 인도 법인은 한동안 휴면상태였는데, 좋은 사람을 영입한 덕분에 굵직한 프로젝트 2개가 수주선상에 올라있다.

건축물 안전에 관심이 많다.

삼풍백화점 붕괴 5주기 때 전문가 3명에게 삼풍 사고를 조명하는 용역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10주기 때는 『삼풍사고 10년 교훈과 과제』라는 책도 냈다. 지난해 20주기였는데, 전문가들을 모아 세미나도 했다. 삼풍이나 세월호 모두 크게 다를 것 없는 사고다. 한국의 시스템 에러가 부른 사태다. 국민안전처를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안전교육을, 정부과 기업은 안전에 대한 역할과 기능을, 사법적으로는 강력한 패널티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경영권 승계 계획은.

가족에게는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다. 사내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을 발탁해서 최고경영자에 앉혀 10~20년 장기근속 시킬 것이다. 후계자로는 외국인도 고려대상이다. 내 지분은 조금씩 ‘따뜻한 동행’이란 복지법인에 넘기고 있다. 그동안 6~7% 정도 기부했다. 중장기적으론 이 복지법인이 회사 운영의 지주사 역할을 할 것이다. 유한양행 모델을 지향한다.

앞으로 한국 사회가 가야할 길은.

선진화라는 과제가 사회·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하다. 뼈를 깎는 수준의 혁명과 선진화가 필요하다. 국가의 프레임을 새로 짜는 수준이어야 한다. 공감대를 형성한다든가, 산업별로 한다든가, 법을 조금 고쳐서는 될 일이 아니다.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나.

삼성 출신 CEO가 참여하는 ‘CEO지식나눔’이란 활동을 하고 있다. 창업을 하면 존속 가능성이 5~10% 밖에 안 되는데, 이런 기업이 안착할 수 있도록 CEO 출신들이 지식을 공유하자는 차원으로 만들었다. 현재 90명의 CEO가 활동 중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건설산업은 핵심 서비스업종 중 하나인데, 경쟁력을 키우거나 글로벌 역량을 낼 만한 리더십이 없다. 임원·간부를 1년마다 바꾸니 리더십이 생길 수가 없다. 경영 기간 내내 리스크 매니지먼트만 하게 된다. 창업 1세대부터 모험을 안고 진취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앞으로 한미글로벌은 인재, 구성원 중심으로 나아갈 것이다.

- 글 문희철, 김유경 기자·사진 김현동 기자

201606호 (201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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