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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CEO를 위한 인문학-역사를 만든 ‘죽은 백인 남자들’(4) 아리스토텔레스 

적을 이기는 사람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이기는 사람이 더 용감하다 

김환영 중앙일보 심의실장 겸 논설위원
신탁(神託)은 “신이 사람을 매개자로 하여 그의 뜻을 나타내거나 인간의 물음에 대답하는 일”이다. 여기서 ‘사람’이란 예언자일수도 있고 무당일수도 있고 철학자일수도 있다. 우리나라 무속의 관점에서 보면 신탁은 ‘아는 소리’와 같은 뜻이다. “철학을 공부하라”를 신탁을 받은 철학자가 있다. ‘만학(萬學)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년)다.

▎17세기말까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 문화와 거의 동의어였다.
정치학이건 논리학이건 생물학이건 미학이건 서양에서 유래한 대부분 학문의 뿌리를 캐다 보면 첫 머리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등장한다. ‘또 당신?’이라는 감탄이 터진다.

이탈리아의 대 문호 단테(1265~1321)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아는 사람들의 마에스트로(il maestro di color che sanno)’라 불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맹자(孟子·기원전 372~289년)와 동시대 인물이다. 어쩌면 학림(學林)의 세계에 전혀 데뷔조차 하지 않은 고수들이 있으리라. 하지만 인류에게 알려진 학자 중에서 가장 종합적인 지식체계를 집대성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다.

서구 지성계에서 삭제됐다 부활한 인물

아리스토텔레스는 서구 지성계를 지배했다. 여러 측면에서 지금도 지배한다. 17세기말까지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서양 문화와 거의 동의어였다. 물론 부침도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 대한 관심은 그의 사후 100년 내로 희미해졌다가 기원전 1세기에 다시 생생하게 됐다. 그의 모교인 아카데미에서는 그의 저작을 가르쳤는데, 529년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482년께~565년)가 아카데미를 포함해 모든 비그리스도교 철학 학교를 폐쇄했다.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6~12세기 서구 지성사에서 거의 삭제됐다. 대신 아랍 철학이 그를 보존했다. 이슬람권의 쟁쟁한 학자들이 그를 ‘첫 스승(The First Teacher)’라고 부르며 흠모했다.

서구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12, 13세기에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다. 토마스 아퀴나스(1225년께~1274년)를 비롯한 중세 신학·철학자들에게 그는 ‘The Philosopher’였다. 여기서 정관사 ‘The’는 ‘유일한 존재, 해당 유형 중 일반적이거나 두드러지는 사람’에게 붙이는 ‘The’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3~17세기 서구에서 ‘유일 철학자’였던 것이다. 마치 다른 철학자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산은 그리스도교를 통해서도 전승된다. 그의 스승인 플라톤(기원전 428년께~347년께) 등과 더불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도 탄생 이전의 그리스도교인들’로 인정된다.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재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약간 미치지 않은 천재는 없다.”는 말을 남겼다.) 분류의 천재였다. 모르는 게 없는 박학다식한 사람보다는 새로운 학문분야를 만드는 게 진짜 천재다. 그는 모르는 것도 없고 새로운 학문분과도 마치 뚝딱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논리학의 초석을 놓았다. 또 ‘모든 사람은 죽는다. 어떤 신도 죽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도 신이 아니다’와 같은 예를 들 수 있는 3단논법(Syllogism)을 개발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문 200편을 저술했으나 그 중 31개만 남아 있다. 대부분 강의록이다. 그가 쓴 대화편은 모두 사라졌다. 출판을 염두에 둔 텍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딱딱하고 거칠다. 플라톤의 저작과는 달리 가독성(readability)가 떨어진다. 그러나 로마의 정치가·학자 키케로(기원전 106~43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을 일컬어 ‘황금이 흐르는 강’이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7세기 과학혁명의 근원이자 동시에 장애물이라는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그는 관찰과 기술을 중시했다. 수학을 상대적으로 경시했고 실험의 방법을 개발하지 못한 게 그의 한계였다.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그리스 북동쪽에 있는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마케도니아 왕의 시의(侍醫)였다. 기원전 367년 17세 청소년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로 떠나 플라톤의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학생·교육자로 20년간 아카데미에 머물렀다. 347년 플라톤이 사망하자 오늘날 터키의 북서쪽으로 떠났다. 떠난 이유가 불명확하다. 예상과 달리 후계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플라톤이 아카데미를 조카에게 물려줬듯, 아리스토텔레스는 리케이온을 아들에게 물려줬다. 요즘으로 치면 ‘대학 총장 자리’를 마땅히 물려받았어야 했을 억울한 제자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스승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껄끄러운 관계였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충분한 근거가 없다.

기원전 343년에는 훗날 알렉산더(알렉산드로스) 대왕(기원전 356~323년)이 되는 13세의 왕세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최소 2년, 최대 8년을 가르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부왕 필리포스의 어릴 적 친구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드로스대왕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지는 사실 알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341~335년 행적은 알려진 게 별로 없다. 학생들은 야외수업을 좋아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기원전 335년 아테네에서 설립한 리케이온에서 야외수업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창시한 소요학파(逍遙學派·페리파토스학파)는 그가 리케이온 학원 내 나무 사이를 산책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리케이온에서 13년간 가르쳤다. 리케이온은 아카데미보다 더 다양한 과목을 가르쳤다. 일종의 연구소 기능도 수행했다. 상대적으로 수학이 덜 중요했다. 아카데미와 리케이온의 공통점도 많다. 둘 다 토론이 주된 수업 방식이었다. 둘 다 교육 편식 없는 균형 잡힌 전인교육을 이상으로 삼았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사망했다. 아테네 사람들은 해방감을 맛보았다. 알렉산더대왕과 알게 모르게 밀착된 아리스토텔레스를 향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기원전 470년께~399년)와 마찬가지로 ‘무신론자’로 몰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가 철학에 같은 죄를 두 번 짓게 할 수 없다”며 아테네를 떠났다. 기원전 322년 그는 향년 62세로 병사했다.

자기계발서의 아버지, 행복학의 창시자


▎스승인 플라톤 등과 더불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도 탄생 이전의 그리스도교인들’로 인정된다.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재였다. 사진은 라파엘이 그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1509년).
그를 ‘자기계발서의 아버지’라든가 ‘행복학(Science of Happiness)의 창시자’라고 불러도 일면 옳은 말이다. 일찍이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 “사는 동안 행복하게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평가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행복학·성공학으로 통한다. 그는 상식에 기반한 윤리를 표방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정교육이건 학교교육이 건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 동의할만한 상식에서 출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패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성공하는 방법은 한가지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성공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성찰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

쾌락·명예·부를 추구하는 삶도 나름 의미가 있다. 하지만 부족하다. 좋은 삶은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를 추구하는 삶이다. 에우다이모니아는 행복, 웰빙(wellbeing), ‘번성·번창하기’, ‘잘 살기’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말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최고선(最高善·highest good)이다. 최고선은 “인간 행위의 최고 목적과 이상이 되며 행위의 근본 기준이 되는 선”으로 정의된다. 행복은 인간 존재의 궁극적 목표다. 뭔가 다른 것을 차지하기 위해 수단이 되는 목표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하는 이유는 뭔가 다른 것을 위해서다. 단 한가지 예외는 행복이다. 행복 자체가 목표다.”

행복은 이성적인 영혼의 활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행복은 덕에 입각한 영혼의 활동이다.”

행복은 즐거운 감각적인 체험이나 쾌락과는 달리 쉽게 몇 시간 만에 얻거나 빼앗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제비 한 마리나 화창한 날 하루로 봄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잠깐 행복했다고 영원히 행복한 것은 아니다.” 행복은 평생의 작업이다. 행복은 삶의 끝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행복은 일시적인 상태가 아니라 최종적 상태요 목표다. 인생은 관 뚜껑을 덮기 전까지는 모른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입장이 같았다.

행복은 덕을 쌓고 덕을 행사해야 얻을 수 있다. 덕이란 무엇인가. 덕은 탁월성(excellence)이다. 덕은 훌륭함이다. 덕망 있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요 잘 사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덕을 어떻게 쌓을 것인가. 덕 또한 일종의 기예(技藝)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기예(技藝)는, 그 기예(技藝)를 배우고 난 다음에 우리가 할 일을 미리 해봄으로써 배우는 것이다.” 말장난 같은 말이지만 여러 번 음미해보면 무릎을 치게 하는 탁견이다.

탁월함을 반복이 낳은 습관으로 볼 수도 있다. 미국 철학자 윌리엄 더랜트(1885~1981)는 『철학 이야기(The Story of Philosophy)』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다음 한마디로 요약한다. “우리가 반복하는 게 곧 우리의 존재다. 탁월함이란 한번의 행위가 아니라 습관이다.”

중용은 덕을 달성하는 수단이다

덕은 어디서 나오는가. 중용(golden mean)에서 나온다. 중용은 덕을 달성하는 수단이다. 덕은 두 가지 지나침, 양극단을 피하고 균형을 찾는 데서 얻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개인주의적이다. 극단과 중용은 사람마다 다르다. 상대적이다. 내 중용은 남의 극단, 내 극단은 남의 중용일 수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들은 의지가 약하게 태어난다. 보통은 전쟁에서 도망가는 게 나쁜 것이지만, 양극단이 몰살당하는 것과 자살이라면 도망가는 게 중용이다.

행복을 향한 여정에서 몇몇 덕으로 무장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용기·정의감·절제·관대함·신중함 등 모든 덕을 구비해야 좋다는 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이다. 모든 덕을 구비해야 모든 좋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 건강·부·지식·우정 같은 것들이다.

여러 가지 덕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용기다. 용기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 최고의 자질은 용기다. 용기는 모든 다른 자질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적을 이기는 사람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이기는 사람이 더 용감하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용자(勇者)만이 미인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Only the brave deserves the fair)”를 패러디한 말로 “용자만이 미인으로부터 도망간다(Only the brave deserts the fair)”가 있다. 두 말의 메시지는 같다. 미인 그 자체 혹은 ‘미인’이 상징하는 그 무엇을 넘어서는 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용기다.

용기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욕망의 노예가 되기 쉽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본질적으로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로지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산다.”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용기다.

행복과 이성·영혼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은 합리적·이성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은 이성을 써가며 살아야 행복하다. 영혼은 이성적 부분과 비이성적 부분으로 구성됐다. 이성은 신성(神性)한 것이다. 이성에 따라 사는 인생은 신성하다. 이성에 불멸의 가능성이 있다. 인간 개개인은 필멸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의 사용을 통해 신의 불멸성에 동참하고 불멸성을 공유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그러한 삶은 관조(觀照) 혹은 관상(觀想)을 실천하는 삶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조적·관상적 생활’이 인간에게 최고의 행복한 생활이라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목적론적이다. 목적론(目的論)이란 무엇인가. 우리 표준국어대사전은 “모든 사물은 목적에 의하여 규정되고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이론. 행위의 정·부정은 인생 최고의 목적을 향하는 경향의 여부에 따라 판단된다는 이론”이라고 정의한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삶(The Purpose-driven life)』(2002)도 결국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인연이 닿고 있다.

좀 아는 소리를 하면 폼이 난다. 아리스토텔레스 인용하면 폼 난다. 윤리경영의 시대다. 또 현대‘덕 윤리학(virtue ethics)’ 출현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항상 화려하게 부활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중에서 음미할만한 몇 가지

● 친구들끼리는 정의가 필요 없지만, 정의로운 사람들끼리는 우정이 추가로 필요하다.


● 좋은 통치자가 되려는 사람은 우선 통치를 받아봐야 한다.


● 가난은 혁명과 범죄의 어버이다.


● 만인(萬人)의 친구는 그 누구의 친구도 아니다.


● 같은 생각은 한 두 번이 아니라 무수히 여러 번 세상에 나타난다.


● 젊었을 때 생긴 좋은 습관이 모든 차이를 낳는다.

김환영 - 중앙일보 심의실장 겸 논설위원. 서울대 외교학과, 스탠퍼드대 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 쓴 책으로 『 마음고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 등이 있다.

201606호 (201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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