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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경영의 정석(8) 유연근무가 창의적인 혁신 조직을 만든다 

 

김동호 중앙일보 논설위원 dongho@joongang.co.kr
유연근무는 개인 차원에서는 삶의 질을 높이고 기업 차원에서는 다양한 인재를 확보해 인적자원 활용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는 실업률 증가를 억제하는 긍정적인 외부효과까지 누릴 수 있는 일석삼조의 제도다.

▎지난 8월 유연근무제 선도기업인 하나투어 스마트워크센터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이 유연근무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우연근무제는 국가 차원에서는 실업률 증가를 억제하는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누릴 수 있다. / 청와대 사진기자단 제공
40대 초반 A씨는 자녀 한 명을 키우면서 지금껏 직장에 다닐 수 있었던 원동력은 순전히 외국계 회사에 다닌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이제 일곱살인데 외국계 회사가 아니라면 너무 힘들었을 것같아요.” A씨가 처음부터 외국계에 다녔던 것은 아니다. 국내 회사에 다니다 우연히 외국계로 옮겼는데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훨씬 여건이 좋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 회사에 다니는 B씨는 야근과 회식만 생각하면 온통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낮에 아무리 열심히 해도 퇴근시간은 고무줄처럼 늘어난다. 사무실 구조를 봐도 부장이 책상에 앉아 있는 한 자신만 일을 마쳤다고 해서 자리를 뜰 수 없는 분위기다. 그저 서열대로 사무실을 빠져나갈 때를 기다릴 뿐이다. “아이 한 명까지는 버티겠지만, 둘 이상 되면 버티는 걸 못 봤어요. 아이나 회사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죠.”

외국계 기업이 국내 기업에 비해 우월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LG전자·포스코·SK텔레콤 같은 기업은 글로벌 기업이라 국내에 들어와 있는 올망졸망한 회사보다 규모가 크고 경영능력도 앞서 있다. 더구나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 회사가 무한정 많은 것도 아니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사람은 회사원 100명에 한 명꼴도 안 된다. 하지만 극소수라고 해도 업무 효율은 국내 어느 기업에도 뒤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주식회사라는 제도를 통해 기업문화가 정착된 외국계 기업은 글로벌 경영을 하는 경우가 많아 사무 관행이 아무래도 표준화돼 있을 수밖에 없다.

근로시간 유연화에 박차 가하는 일본 기업


▎일찍부터 유연근무제를 시행해온 LG생활건강 사무실은 유연근무제 참여율이 높아 빈자리가 많다. 유연 근무는 개인 차원에서는 삶의 질을 높이는 기회를 제공한다. / 중앙포토
반면 국내 기업은 해방 이후 불과 수십 년만에 회사 제도가 확립되면서 주먹구구 경영과 사무 관행이 만연돼 있다. 목표 달성을 위해 매니저가 앞으로 돌격을 외치면 다른 팀원은 그냥 ‘묻지마 액션’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런 방식이 한국 기업의 성장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근무시간이 과도하게 늘어지는 문화는 유독 일본과 한국 기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제는 일본도 장시간 근로에서 벗어나고 있다.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면서 노동개혁을 거친 결과다. 연공서열도 사실상 와해됐고 종신고용도 거의 없어졌다.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나면서 고용형태에 대한 경직성도 크게 완화됐다. 이 여파로 일본에서도 이유 없이 사무실에 오래 남아 있는 관행은 현저히 사라졌다. 이제 장시간 근로가 남은 기업은 한국 기업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은 더 나아가 근로시간 유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재택근무 확산이 추진되고 있다. ‘일하는 방식 개혁’을 통해 간병ㆍ육아 부담을 경감하려고 한다. 이는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대응하는 것으로 젊은층의 고용 기회를 늘리고 고령자도 건강하다면 회사를 더 오래 다닐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포털사이트 ‘야후 재팬’을 운영하는 야후 주식회사는 전체 종업원 5800명을 대상으로 주 4일 근무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야후는 일하는 방식을 다양화함으로써 창의성이 번뜩이는 인재를 대거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야사카 마나부 사장은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노동 시간과 생산성의 문제는 중요한 경영 테마로, 과제가 있지만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야후는 현재 일주일에 이틀인 휴일을 토·일요일에 국한하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제도를 주 4일 근무 전 단계로서 도입하려고 한다. 수년 내 1주일에 3일을 쉬도록 근무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다. 주 4일 근무제는 부서에 따라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급여에는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생산성에 비례해 급여를 조정하는 것은 합리적인 방침이다.

야후 직원은 업종의 특성상 젊은 편이다. 평균 연령이 35세 정도다. 하지만 회사형 인간에서 탈피하는 시대가 오면서 젊어도 회사보다 가정이나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점차 더 필요한 시대가 오고 있다. 100세 시대가 되면서 가족을 돌보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있어서다. 일본에서는 늙거나 아픈 가족을 돌보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 이른바 ‘가족 돌봄(개호) 이직’이 골칫거리다.

무엇보다 맞벌이 부부의 육아에 장시간 근로는 최악의 걸림돌이다. 부부 모두 회사에 다니거나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려면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일본 기업은 이런 니즈에 적극 부응하고 있다. 저출산을 완화해야 기업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어서다.

근무 유연제도는 사회적으로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지만 결단이 쉽지는 않다. 단기 실적에 쫓기는 기업 경영자가 그런 결단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너 기업도 마찬가지다. 경쟁사와 불꽃 튀기는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 주 4일 근무제나 재택근무 같은 유연근무제는 회사의 경쟁력을 일순간 약화시킬 수 있는 패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철학과 결단에 달려 있다. 일상복 브랜드 유니클로를 판매하는 퍼스트리테일링이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창업자 야나이 다다시는 언제나 창의적인 발상으로 유니클로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어왔다. 유니클로의 4일 근무제도는 지방 근무자 1만 명을 대상으로 2015년 10월 도입됐다. 지방에 국한하고 대상자가 전체 직원의 20%에 불과하지만 일본 기업에 미친 영향과 의미는 크다. 대형 유통업체인 이온은 점장도 집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인사 제도를 올해 도입했다.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도요타자동차의 근무시간 혁신이다. 도요타는 세계 최대 자동차 그룹으로 생산량과 판매량 1위 고수에 전력을 기울여왔다. 아우디폴크스바겐과 제너럴모터스의 추격도 만만치 않아 근무시간을 오히려 늘려도 시원치 않을 판에 도요타는 올 8월부터 재택근무를 도입했다. 입사 5년차를 대상으로 사무직과 기술개발직 2만5000명이 사무실 대신 집에서 근무를 하게 됐다.

도요타 직원은 모두 7만2000명이다. 이들 중 30% 이상이 탄력적으로 사무실에 출근하고 있다. 이들은 1주일에 2시간만 회사에 근무하면 된다. 일본 대형 유통업체인 이온도 한 달에 최대 5일간 재택근무를 인정해준다. 일본 위스키·맥주 제조회사인 산토리 직원들은 언제라도 선택적으로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근무하는 유연근무를 하고 있다. 닛산자동차 역시 2006년 육아·간병이 필요한 직원 1만 명에게 재택근무를 도입했다. 2010년에는 생산직을 제외한 전 직원으로 확대했다. 일본 최대의 채용 정보 회사인 리크루트홀딩스 역시 지난해 10월 2000명을 대상으로 시범 도입한 뒤 올해 1월부터 전 직원으로 확대 시행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유연근무 채택 바람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곳은 역시 은행권이다. 일본 3대 은행으로 꼽히는 미즈호은행·미쓰이스미토모은행·미쓰비시도쿄UFJ은행은 재택근무를 확대하고 있다.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은 지난 7월 전체 직원의 3분의 2에 달하는 1만8000명을 대상으로 재택근무를 도입했다. 미쓰비시도쿄UFJ은행 역시 본점 직원을 대상으로 육아·간병이 필요한 직원 4000명에게 재택근무를 허용했다.

보수적인 일본 은행들도 재택근무 확대


▎무엇보다 맞벌이 부부의 육아에 장시간 근로는 최악의 걸림돌이다. ‘일·가정 양립지원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한화그룹은 한화직장어린이집을 통해 전국 7곳에 약 200여 명의 어린이를 돌보고 있다. / 한화그룹 제공
은행은 전통적으로 근무 관행이 보수적이다. 더구나 일본은 ‘회사형 인간’이라는 신조어가 처음 등장했을 만큼 근무관행이 경직적이다. 은행은 그런 근무관행의 대표격인 곳이다. 그럼에도 은행이 유연한 근무체제를 도입했다는 것은 경영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기업경영도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시점에 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일본은 광범위한 차원에서 주 4일 근무 또는 재택근무가 확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기업들은 성과를 봐가면서 아예 근무 시간의 대부분을 집에서 일하도록 재택근무를 파격적으로 확대하는 방안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기업의 유연근무 확대 뒤에는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장시 간 근무 관행 타파를 비롯해 일하는 방식을 개혁하는 것을 주요 정책 과제로 삼고 있다. 일본에선 ‘우머노믹스’라는 명칭이 나올 정도로 여성 인력 고용을 장려하고 있다. 인구 감소 국가로 꼽히는 일본이 창의적인 인재를 풍부하게 활용하려면 여성 인력을 일터로 끌어내야 한다. 하지만 장시간 근로체제로는 여성을 일터로 이끌어 낼 인센티브가 크지 않다.

미국에서 최근 창의적인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여성이 줄줄이 꿰차는 것도 근무관행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 책임자(COO), 수전 워치츠키 유튜브 최고경영자(CEO), 멕 휘트먼 휼렛패커드(HP) CEO, 버지니아 로메티 IBM CEO, 안젤라 아렌츠 애플 수석부사장, 사프라 카츠 오라클 CEO, 루스 포랏 알파벳(구글 모기업) CEO 등이 그 주인공이다. 워치츠키는 구글 역사상 최초로 5명의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18주)를 다섯 번 얻어낸 직원이 됐다.

이같이 출산휴가를 다섯 번 가고도 최고 자리에 오른 것은 유연한 근무관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경제대국 일본과 미국이 이런 점에서는 닮아가고 있다. 한 명의 인재라도 더 영입해야 경쟁에서 살아남는 시대가 된 만큼 그 출발점을 경직적인 근무관행을 버리는 데서 찾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미국과 일본 기업의 이런 흐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마침 한국에선 김영란법이 도입돼 근무 관행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상호부조와 체면 문화가 뿌리 깊은 한국 사회에서는 상대방이 쏘면 나도 쏴야 하는 접대 문화가 뿌리깊다. 여기에 1990년대부터 확산된 법인카드는 저녁이 없는 삶을 만들어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내 돈이 아니라 회사에서 영업을 위해 준 카드로 과도하게 접대하고 접대를 받는 문화가 만연돼 있다. 술 한 병으로 끝날 자리가 세 병으로 늘어나고 1차로 끝날 회식이 2차, 3로 이어지는 것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국식 접대문화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크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김영란법만 제대로 시행돼도 회식이 업무의 연장이 되는 한국적 직장 문화는 크게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서유럽에서도 긍정적인 효과 입증돼


▎일본에서도 이유없이 사무실에 오래 남아 있는 관행이 현저히 사라졌다. 이제 장시간 근로가 남은 기업은 한국 기업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은 LG유플러스의 ‘ 야근타파 기왓장 격파’ 이벤트 장면. / LG유플러스 제공
유연근무는 서유럽에서도 긍정적인 효과가 입증된 근로관행이다. 네덜란드 같은 강소국은 물론이고 독일 같은 경제대국에서도 효과를 보고 있다. 무엇보다 다양한 인재를 기업이 확보하는 효과가 크다. 교육 기회에서 성(gender) 차이가 없는 선진국에선 인력의 절반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유연근무는 여성에게 특히 도움이 된다. 직장에 취업하거나 창업에 나선 젊은 여성은 결혼과 육아로 일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 취업률이 20대와 40대 때 높지만 결혼과 육아가 집중되는 30대에 낮은 M자형 곡선을 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과 무관하게 일과 가정이 양립되려면 유연근무는 강력한 뒷받침이 될 수밖에 없다. 아침 일찍 나와 저녁 늦게까지 회사에 붙들려 있어서는 업무의 효율과 창의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유연근무는 업무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직된 업무환경에서는 업무의 방식이 경직적으로 흐르기 쉽다. 하지만 유연근무를 하게 되면 성과 중심이 될 수밖에 없어서 누구든 조직 구성원은 형식보다는 성과로 가시화되는 실질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창의성이 중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소수의 천재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아이디어와 경험을 가진 다수의 집단사고도 중요하다. 서너명이 내고 검토한 아이디어보다 대여섯명의 손과 머리를 거친 아이디어가 훨씬 균형 잡힌 결과를 도출하기 쉽다는 얘기다. 그래서 일본과 미국의 유연근무 도입 기업들도 생산직보다는 사무직이나 기술개발직부터 유연근무를 도입하고 있다. 직장이란 틀에서 벗어나 생활 속에서 업무를 하다보면 오히려 회사에서 보지 못한 개선점이 떠오를 수 있어서다.

무엇보다 일을 나누는 효과가 크다. 국내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 인위적인 워크셰어링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더 유능하고 일을 더 많이 할 수도 있는 근로자에게 일을 줄이라고 하는 획일적 방식은 통용될 수 없다. 하지만 유연근무는 성과 중심이므로 일 잘하는 사람은 여전히 성과를 많이 낼 수 있다는 점이 워크셰어링과 다르다.

결국 유연근무는 국내 노동시장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을 해소하는 정책카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개인 차원에서는 삶의 질을 높이고 기업 차원에서는 다양한 인재를 확보해 인적자원 활용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는 실업률 증가를 억제하는 긍정적인 외부효과까지 누릴 수 있어 일석삼조의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본의 노동인구가 줄어들고 있어 직원에게 유연한 근무환경을 제공하지 않으면 유능한 직원의 이탈을 막을 수 없다”고 보도했다. 국내 기업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인적자원관리의 최신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김동호 - 중앙일보 논설위원. 경제와 산업에 관한 칼럼과 사설을 쓰고 매주 목요일 페이스북 라이브를 진행하고 있다. 쓴 책으로 『소니가 삼성에 따라잡힌 이유는』, 『대통령 경제사』 등이 있다.

201611호 (201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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