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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듀퐁 클래식에 새긴 그의 스토리(10) 홍성일 지엔씨미디어 대표 

오늘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하다 

대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정리 유부혁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
2000년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의 밀레 그림을 국내에 들여와 한국 대형 기획전시의 포문을 연 사람이 홍성일 대표다. 그는 매년 2개 이상의 대형 전시를 기획·주관하며 국내 전시문화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그가 셔츠에 새긴 문구는 Blissful Life.

▎홍성일 지엔씨미디어 대표는 오르세미술전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 인물이다. 그는 ‘일이 아닌 행복이 목적이 되는 삶’을 강조했다. / S.T.듀퐁 클래식 제공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의 심장이라 불리는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삭줍기>와 빈센트 반 고흐의 <정오의 휴식>이 한국에 왔다. ‘프랑스 국립 오르세미술관전-이삭줍기(밀레의 꿈, 고흐의 열정)’. 2012년 처음 기획한 후 4년 만이다. 한불 수교 30년과 오르세미술관 개관 30년 기념전이자 2000년 10월 한국의 첫 대형 전시회로 이름을 알린 오르세미술관 한국전 이후 다섯 번째 ‘오르세전’이기도 하다.

전시를 기획·주관하고 있는 지엔씨미디어의 홍성일 대표를 오르세미술관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만났다. 그는 오르세미술전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개최한 인물이기도 하다. 한국과 프랑스 간의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엔 프랑스 정부로부터 프랑스 국가 훈장 ‘레지옹 도뇌르(Legion d’Honneur)’를 받았다. 프랑스에 경제학을 공부하러 갔다 그림에 매료됐고, 이후 한국에 들어와 대형 전시를 개척해 25년 넘게 이 업에 매달려 있다.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이 도착하기 전 홍성일 대표가 전시관 이곳저곳을 소개했다. 그러다 밀레의 이삭줍기 앞에 섰다. “일명 이발소 그림이죠. 시골 어디를 가든 이발소나 목욕탕, 식당에 걸려 있던 그림이예요. 사조로 보면 낭만주의, 자연주의지만 사실 이 그림에 낭만은 없어요. 리얼리티죠. 해가 지기 전 이삭을 줍는 여인들과 이를 감시하는 말 탄 관리인. 그림이 가진 상징성이나 위안보다는 그냥 농촌 문화에 익숙한 우리 국민들에 친숙한 그림이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진품 전시로 명성 높은 오르세미술관전


전시장을 돌아 출구 방면으로 가자 조명이 꺼진 그림 하나가 보였다. 조명을 밝히고 본 그림은 반 고흐의 <정오의 휴식>. 홍 대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번 전시회의 주인공이죠. 오르세미술관 30년사에서 반 고흐의 고향인 네덜란드에 잠시 다녀온 것 외엔 해외에 반출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 홍 대표는 “정오의 휴식과 같은 질감과 터치가 두꺼운 작품의 경우 작은 충격에도 물감이 떨어져 나간다. 더욱이 지금처럼 제품도 좋지 않은 물감으로 그린 유명 작가의 작품의 경우는 해외 반출이 어렵다”고 했다. 게다가 매년 1000만 명 이상이 찾는 오르세미술관측 입장에서 ‘오르세의 심장’으로 불리는 <이삭줍기>와 <정오의 휴식>을 6개월이나 해외에 전시하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을 터. 작품의 보호를 위해 전시회장 내부는 조도 50룩스로 설정돼 있다. 전시된 작품은 모두 진품이다.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는 인사는 “이번 전시 작품의 보험가액은 9000억 원으로 이들 작품을 보관한 박스 가격만 수 억원”이라고 귀띔했다. 그림 앞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는 사이 송길영 부사장이 도착했다.

송길영(이하 송 ): 반 고흐의 <정오의 휴식>이다.

홍성일(이하 홍 ): 밀레의 작품을 거의 그대로 베낀 작품이기도 하다. 밀레의 그림을 뒤집어 그렸다 할만큼 흡사하다. 하지만 지금은 이 그림이 더 유명하다.

송: 2000년 이후 우리나라에도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나?

홍: 과거에 비해 관객들이 훨씬 더 그림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엔 초등학생들이 엄마나 선생님과 와서 “이 그림은 반 고흐 작품이야”라며 관련 정보를 주입하는 식으로 그림에 대해 듣고 가는 정도였다. 최근엔 그림 앞에서 “이 그림은 어떤 느낌이야?”라고 묻는 부모님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송: 항간엔 한 시인이 자신의 시를 주제로 낸 수능 문제를 틀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예술과 관련해선 해석자가 어디까지 개입할 것이냐가 관건일 것 같다. 기획자의 입장은 어떻나?

홍: 도슨트가 그런 역할을 할 텐데. 주관을 심어주는 건 준범죄행위라고 생각한다. 요리에 비유한다면 포인트를 짚어주는 정도면 적당할 것 같다.

송: 한국에서 전시회 관람이 점점 일상화되고 있는 것 같다.

홍: 2000년 덕수궁미술관에서 오르세미술관 한국전을 기획할 때만 해도 전시가 성공할 것으로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전시 기획사도 당시 우리가 유일했다. 당시는 IMF 직후라 그림 감상이 꽤나 한가로운 사람들의 취미로 여겨지기 쉬웠고 아직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30만 명이상이 유료로 관람했다. 이후 2003년 정도되니 전시 업체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하더라.

드림웍스전, 스탠리큐브릭전 개최


▎“지금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하다. ‘Blissful Life’가 돼야 한다.” 홍성일 대표의 지론이다. / S.T.듀퐁 클래식 제공
송: 최근엔 대림미술관이 주목받고 있다.

홍: 대림미술관은 인터렉티브 아트가 강점인 것 같다. 미술관 주변까지 살아나더라.

송: 대림미술관은 무엇이든 플랫폼화하는 것 같다. 현대카드처럼. 대표가 하시는 일은 콘텐트 자체가 클래식이고 희소성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 것 같다.

홍: 그렇다. 오르세전과 같은 전시는 상당한 자본이 투자되야 하니 위험성이 큰 프로젝트다. 하지만 우리도 상당한 전시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팀버튼, 드림웍스전, 스탠리큐브릭전 등 주변에서 “저걸로 전시를 하다니… 미쳤다”는 이야길 들었지만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송: 열거하신 전시들의 프로모터가 지엔씨 미디어인 줄 몰랐다. 왜 이름을 앞세우지 않으셨나?

홍: 책을 사는 사람들이 출판사를 보고 사진 않으니까. 그게 대답일 것 같다.

송: 하지만 요즘은 다르지 않나? 박진영씨는 JYP노래를 만들 때 곡 가사에 ‘제이와이피’라고 넣지 않나. 현대카드 역시 수퍼콘서트라는 자신들의 명패를 새긴다.

홍: 최근에야 고민하는 사안들이다. 부사장의 이야기를 참고해야겠다.

송: 요즘은 지방마다 특색있는 콘텐트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엔씨미디어가 가진 도록과 레플리카 전시만으로도 상당히 흥미로운 콘텐트가 될 것 같다.

홍: 최근 유명 작품의 레플리카를 몇 곳에 전시하고 있다. 이를 확대할 생각이다.

송: 미술계와의 인연이 궁금하다.

홍: 10년 정도 파리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한국에 돌아와 강의를 했는데 후배 교수한테 발길질을 하더라. 선배 교수들의 삶을 보면서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란 생각도 했다. 그래서 국내 유명 소설과 수필을 번역해 수출하고 반대로 해외 유명 화가의 그림이 담긴 서적을 수입하는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그러다 유명 작가들의 저작권을 사들이게 됐고 전시회도 열게 됐다. 그러다 국내 유일의 저작권 소유 기업을 만들게 됐다. 프랑스 정부가 가진 포토 아카이브 전체를 가지고 있고 이탈리아와 미국의 아카이브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지엔씨미디어는 네이버와 10년 계약을 통해 세계의 명화 디지털 저작권을 공급하고 있다.)

송: 길목 비즈니스인 셈이다. 먼저 보고 투자하고 만들어 선점해 때를 기다리는.

홍: 그렇다. 먼저 시작하면 서두를 필요가 없다. 다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비즈니스 인가에 대해선 꼼꼼이 따져봐야 한다. 특히 저작권 사용엔 인격권이 있다. 피카소 그림을 변기 뚜껑에 새기겠다고 하면 허락을 안하는 것이 그 예이다. 특히 미술 관련 비즈니스에 있어선 “내가 이 비즈니스를 할 권리가 있나?”라는 자기검열도 필요하다.

국내 유일의 저작권 소유 기업 만들어


송: 원서, 저작권, 전시. 호흡이 다른 비즈니스 같은데 어떻게 콘트롤 할 수 있나?

홍: 전시는 저작권 관리를 하면서 얻은 즐거움의 단편이다. 프랑스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괜찮아?”라고 물으면 “좋아요. 놀고 있어요”라고 답한다. 나 역시 즐기고 있다.

송: 나는 소셜 데이터를 들여다 보는 일을 한다. 영화의 경우 4년 전에 준비해 2주 만에 결판이 난다. 소셜 디멘드를 읽어야 가능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자동차는 10년 후를 내다보아야 한다. 대표 역시 4년 후의 상황을 내다보아야 하는 입장인데.

홍: 2020년 봄 프로젝트를 준비중이다. 물론 두려움도 있다. 하지만 기다리는 설레임이 더 크다. 프로모터는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망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25년 동안 은행에서 단 한 번도 대출을 받은 적이 없다. 전시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수입이 없어도 회사 유동성에 문제가 없도록 충분히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송: 업을 계속 하시면서 퀄리티는 유지하면서 비용은 절감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하셨을 텐데.

홍: 작품의 박스값만 몇 억이다. 보험료와 운송료, 대관료까지 하면 엄청난 물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래서 한 곳의 박물관에서 작품을 대여해 올 때 다른 나라의 전시 기획사에 파트너를 제안한다. 우린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상대 나라의 파트너는 유명 전시회를 간단히 열 수 있으니 이득이다. 10년 전, 일본 니혼게인자이신문이 첫 파트너였다. 전세계에서 처음이었다. 그렇게 해서 경비를 50% 절감했다.

송: 그런 경우는 서로가 믿을 수 있어야 하니 프로파일이 중요한데 유명 전시회를 주관한 지엔씨미디어엔 유리한 카드였던 것 같다. 셔츠에 ‘Blissful Life’를 새겼다. 이유는?

홍: “회사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돼야 한다.” 회사에 신입 직원들이 들어오면 꼭 하는 말이다.

송: 나 역시 늘 주장하는 이야기다.

홍: 난 20년 전부터 해 온 이야기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 가는 게 힘들면 회사를 떠나야 한다. 회사를 위해 목숨걸지 마라. 고진감래, 와신상담과 같은 말이 싫다. 왜 싫은 걸 반복해야 하나. 지금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하다. ‘Blissful Life’가 돼야 한다. 불행한 사람이 만들어 낸 행복은 가짜다.

“자고나면 내일이 온다? 자고나면 오늘이다. 오늘이 모이면 인생이 된다.” 나 역시 이 말을 자주 한다. 오늘 행복해야 한다.

- 대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정리 유부혁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

201702호 (201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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