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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혁신을 일군 아시아의 기업인(1)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회장 

도전에 목마른 경영 혁신의 아이콘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야나이 다다시(柳井正·68)는 혁신으로 자수성가한 일본 경영인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2017년 2월16일 현재 야나이 회장의 재산은 160억 달러에 이른다. 일본 1위이자 글로벌 57위다. 그의 재산 원천은 자신이 창업해 키워온 세계적인 글로벌 패스트패션 브랜드인 유니클로(UNIQLO)다.

유니클로는 의류의 제품 기획·생산·물류·판매를 일괄적으로 담당하는 제조 소매업(SPA: 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업체다. 이 업체의 주식을 100% 소유하고 있는 지주회사 패스트 리테일링은 2015~2016 회계연도(8월 결산) 매출이 1조7864억 엔, 순이익이 480억 엔에 이르렀다. 원재료 가격이 오르고 엔화가 강세를 보인 데다 가격 인상 등의 문제로 일본 내 사업이 저조한 게 이 정도다. 2016년 8월 말 기준으로 일본에 837개, 해외에 958개의 매장을 운영하면서 글로벌에서 더욱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일본의 하이테크 탄소섬유업체 도레이와 손잡고 가볍고 따뜻하고 싼 히트텍을 내놓아 세계적인 인기를 끌어왔다. 히트 텍은 섬유가 인체의 땀을 흡수하면서 발열반응을 일으키고 그 열이 섬유 사이에 보관돼 온기를 유지한다.

야나이의 유니클로는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의 하나이자 경영 혁신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일본이 침체됐던 ‘잃어버린 20년’ 기간 중에도 무서운 속도로 ‘나홀로 성장’을 거듭했다. 그 핵심은 혁신이었다. 유니클로의 모토는 “옷을 바꾸고, 상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이다. 야나이 경영철학의 요체다. 말 그대로 그는 온 세상이 사양산업으로 생각하던 의류 사업의 생산과 유통 방식을 바꾸고 상식을 뛰어넘은 뒤 소비자들이 의류를 소비하는 양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제아무리 불경기라도 혁신적이고 신기하고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제품과 마케팅에는 여전히 고객이 몰린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호경기라도 따분한 제품, 답답한 영업방식은 소비자가 외면한다는 의미도 된다. 자신감과 혁신의 의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모토다.

기존의 틀을 깬 창고형 의류매장


야나이는 따분한 의류 유통업을 혁신의 아이콘으로 변화시켰다. 야나이는 어떤 혁신을 했을까. 그는 유니클로 매장을 ‘10대 청소년부터 중년층까지 부담 없이 매장에 들어와 원하는 옷을 눈으로 보고 직접 입어본 뒤 살 수 있는 창고형 매장’으로 꾸몄다. 의류를 패스트푸드처럼, 의류 매장을 셀프서비스 점포, 요즘의 수퍼나 마트처럼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멋진 디자인이라도 금세 싫증내는 젊은 소비자층을 우선적으로 겨냥한 것이었다. 야나이가 히로시마에 1호점을 개업할 당시만 해도 일본에는 이런 매장이 없었다. 옷을 살려면 긴 시간을 들여 여러 가게를 돌며 매장 직원의 도움을 받아 상품을 비교한 뒤 골라야 했다. 야나이는 한 곳에서 모두 구입하고 싶어하는 소비자의 갈증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유니클로는 매장의 진열방식도 독특하다. 스페인의 자라나 스웨덴의 H&M같은 글로벌 SPA 업체들이 정리에 필요한 인력과 수고를 줄이기 위해 의류를 행거에 걸어놓는 방식을 사용할 때 유니클로는 고집스럽게 선반에 옷을 접어서 진열했다. 매장 직원들이 고객들이 입었다가 벗어둔 옷을 다시 접어서 선반에 진열하는 과정에서 고객이 원하는 것과 상품에 대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효율과 비용절약 대신 고객과의 소통을 중시한 것이다. 다른 SPA 업체와 달리 특색있는 경영 철학을 보여주고 있다. 경쟁업체가 1000여 개나 되는 글로벌 납품업체도 100개로 제한하고 있다. 제품을 싸게 빨리 공급해 원가를 줄이는 게 아니라 좋은 품질의 제품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데 무게를 둔다는 야나이의 철학이 돋보인다.

이런 노력과 개성있는 경영을 바탕으로 야나이는 유니클로를 자라, H&M과 더불어 세계적인 의류 분야 SPA 브랜드로 키웠다. SPA의 원조는 미국의 갭(GAP)이다. 갭은 1986년 스스로 제품을 기획해서 자사 브랜드를 붙이고 자사제품으로 위탁 생산해서 자사 체인점에서 판매하는 신개념의 제조소매업을 고안했다. 야나이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일본의 의류업계는 물론 다른 유통업계에도 충격을 안겼다. 일본의 유통사는 야나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야나이의 이런 혁신적인 의류 유통 아이디어의 출발점은 비교적 단순했다. 부친의 남성의류점을 물려받아 운영하던 그는 외국 의류 유통점 견학을 다녔는데 미국 대학 구내매점의 판매 방식을 보고 ‘유레카’를 외쳤다. 대학 구내매점은 손님들이 원하는 물건을 손쉽게 골라 살 수 있도록 품목별로 가지런히 진열만 해 놓았을 뿐 손님을 맞아 물건을 권하고 질문에 답하는 점원이 매장에 없었다. 직원은 오로지 계산만 담당했다. 학생들은 매장을 자유롭게 둘러보며 필요한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아 계산대로 가져가서 돈을 지불했다. 일종의 셀프서비스 판매 방식이었다. 지금의 수퍼나 마트와 동일한 방식인데 당시 일본의 의류나 문방구 유통에선 생소한 방식이었다. 야나이는 수퍼에서 식품을 고르듯 와이셔츠도 그런 방식으로 구입할 수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야나이는 이 시스템을 물건을 파는 사람 입장이 아닌 사는 사람 입장에서 보고 비교하며 고르는 쇼핑 방식으로 받아 들였다. 야나이는 자신이 취급하던 캐주얼 의류도 이렇게 셀프 서비스 매장에서 팔면 장사가 잘 될 것으로 판단했다. 손님이 편안하게 사고 싶은 것을 고르고 살 게 없으면 눈치 보지 않고 그냥 나가도 되는 고객 중심형 유통업이기도 했다. 매장에서 고객을 맞는 직원 숫자도 줄여 경비를 확 절감할 수도 있는 방식이었다. 흔한 외국 유통업 견학에서 눈이 번쩍 띄는 아이디어를 얻은 셈이다.

야나이는 부친으로부터 물려 받은 의류 업체를 운영하다 유니클로를 창업했지만 젊은 시절 그는 이 일을 하기 싫어했다. 유니클로의 모태는 1949년 야나이 회장의 부친인 야나이 히토시(柳井 等)가 야마구치현에서 운영한 남성의류판매점 오고리(小郡) 상사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의 부친은 의류판매점을 기반으로 건설, 부동산 업에 뛰어들었다. 1999년 80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27억 1500만 엔의 유산을 남겼다.

1남 2녀 집안의 외동아들인 야나이 회장은 도쿄에서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잠시 미국 유학을 준비하다 그만두고 고향에서 자스코라는 유통회사에 취직해 잡화 담당으로 일했다. 지금 일본 굴지의 유통업체인 이온의 전신이다. 유통업체에 적응을 못했는지 7개월 만에 그만뒀다. 혁신의 SPA사로 일본 최고의 부자에 오른 경영의 귀재 야나이 회장이 첫 직장에서 보기 좋게 밀려난 셈이다. 그러자 부친이 당장 불러 사업체의 하나인 남성의류점을 맡겼다.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고 싶지 않았지만 일단 일부를 맡게 되자 오기가 발동했다. 그는 밤낮으로 이를 키울 궁리만 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에게 경영 전권을 위임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다. 부자는 서로 믿었다. 이런 믿음이 바탕이 됐는지 야나이는 밤낮으로 일하며 남성의류점의 매출을 기본의 수백 배로 키웠다. 그러다 미국 견학을 갔다가 의류와 세상을 바꿀 혁신 아이디어를 찾은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해외 견학을 갔겠지만 거기서 얻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거대한 글로벌 기업을 키운 인물은 드물다.

고객 중심형 유통업으로 승부수

1972년 오고리 상사를 물려받은 그는 미국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1984년 야마구치현 히로시마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할 ‘유니크 클로징 웨어하우스’라는 이름의 캐주얼 의류 셀프서비스 매장을 개점했다. 바로 유니클로 1호점이다. 그는 주 고객층으로 성장한 젊은이들이 기억하기 쉽도록 매장 이름을 ‘유니클로(UNICLO)’로 바꿨다. 하지만 1988년 3월 홍콩에서 합작 의류 구매사인 유니클로 트레이딩를 설립하면서 현지 파트너가 실수로 회사 이름을 UNIQLO로 잘못 쓰는 일이 발생하자 일본의 점포 이름도 모두 UNIQLO로 변경했다. 더 멋지게 보였기 때문이다. 실수를 신선한 아이디어의 원천으로 활용한 셈이다. 전 세계에서 유명한 브랜드명인 유니클로는 실수에서 얻은 선물이다.

이렇게 승승장구했지만 2003년 사내 교육용으로 출간한 『1승9패』란 책에서 야나이 회장은 “사업에는 성공만 있는 게 아니라 실패가 더 많다”고 털어놨다. 새로운 사업으로 성공한 야나이 회장이지만 유난히 “새로운 사업은 특히 성공하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1승9패했던 어려웠던 자신의 경험담을 솔직하게 반영한 셈이다. 그는 “실패를 통해 학습하고, 학습을 통해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도전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실패하더라도 거기서 교훈을 얻으면 된다”며 “그런 실패가 쌓여 성공으로 가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거기서 끝난다”며 자만을 경계했다. 그는 도전에 목마른 경영인이다.

야나이 회장이 사업에 뛰어든 동기도 독특하다. 그가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 밝힌 내용에 따르면 “와세다 대학 시절 한국의 이병철 삼성 회장이 쓴 『우리가 잘사는 길』(1963)이란 책을 읽고 감명을 받은 것이 사업에 뛰어들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아무것도 없었던 상황에서 세계에 뛰어들겠다고 생각한 이 회장의 진취적인 사고방식이 놀라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야나기 회장은 “우선 일본에서 최고가 되고 그런 다음에 세계로 진출해 제대로 된 글로벌 경영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야나이 회장이 학생 시절부터 창업을 하면 글로벌 기업으로 키울 생각을 한 데서 유니클로의 글로벌적인 속성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실제로 도쿄 신주쿠점을 비롯한 일본 내 유니클로 매장에 가면 외국인 직원을 많이 볼 수 있다.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외국에서 입사해 일본에서 근무하는 정규 직원이다. 유니클로의 본격적인 글로벌 확대 전략의 일환이다. 야나이 회장은 2011년부터 일본에서 근무하는 점장과 본부 임원 전원을 순차적으로 해외로 내보내 현지 근무를 시켰다. 동시에 같은 숫자의 외국인 직원을 일본으로 불러 본사와 매장에서 근무시켜왔다. 무지개빛 다양성이 유니클로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경영자 마인드 강조하는 ‘전원(全員) 경영’

야나이 회장의 경영철학은 ‘글로벌 원(Global One), 전원 경영’이라는 모토로 요약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을 하나로 본다는 의미다. 그는 많은 기업이 ‘현지화’를 외칠 때 이를 강조하면서 ‘글로벌 상품 단일화’를 추구했다. 유니클로가 내놓는 상품이 특정 지역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고루 먹혀야 한다는 원칙이다. 인류가 문화권별로 밥은 서로 다른 종류를 먹어도 옷은 같은 것을 입지 않느냐는 야나이의 철학이 담겨 있다.

2009년, 야나이 회장은 매년 20% 성장을 이뤄 2020년 5조 엔 매출을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이루기 어려운 목표를 세워 거기에 도전하는 게 성공의 동력”이라며 “어려운 목표를 내놔야 이를 이루기 위해 나를 바꾸고 회사를 바꾸는 혁신의 결의가 마구 솟는다”고 설명했다. 이런 발언은 혁신을 경영의 핵심으로 여기는 그의 평소 성향을 잘 보여준다. 아쉽게도 이 목표는 지난해 실적 부진으로 달성 시기가 상당히 미뤄졌지만 그의 도전 정신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그는 글로벌 경영과 기부 철학을 결합한 프로젝트를 벌이기도 했다. 고객들로부터 싫증이 나서 더 이상 입지 않는 유니클로 의류를 기증받아 난민들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2010년 400만 벌을 모으는 것을 시작으로 2015년까지 3600만 벌로 모아 전 세계 난민들 전원에게 한 벌씩 돌아가게 하는 목표를 잡은 적도 있다.

야나이 회장은 인재에 목말라 한다. 직원을 뽑을 때도 자신만의 독특한 경영 철학을 적용한다. 먼저 인간 됨됨이를 살펴 제대로 된 판단력이 있는지를 확인한다. 그런 다음 최고경영자(CEO)를 꿈꾸는 사람인지를 본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유니클로 점장은 적으면 30~40명, 많으면 어지간한 중소기업보다 많은 400~500명의 직원을 데리고 일해야 하기 때문에 경영자 마인드와 CEO가 되겠다는 야심은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야나이 회장의 경영철학인 ‘전원(全員) 경영’의 일환이다. 모든 직원이 경영자 마인드 또는 주인의식을 갖자는 이야기다. 매장에서 마주치는 모든 상황에서 ‘이게 정말 고객에게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접근하자는 이야기다.

야나이 회장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경영인으로 이름 높다. ‘옷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모토도 이와 연관성이 많아 보인다.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하자 회사 돈이 아닌 개인 돈 10억 엔을 기부했다. 기부에서도 공사를 철저히 구분한 셈이다. 그는 후계자 선정과 관련한 독특한 경영 철학이 있다. 자신의 후계자가 가족이 아니기를 바란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일본에서는 드문 일이다. 아들이 둘 있는데 현재 회사에서 경영 관리를 맡고 있다. 그러면서도 후계자 수업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때가 되면 사내외에서 가장 적합한 인물에게 후계 경영인을 부탁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채인택 - 중앙일보 피플위크앤 에디터와 국제부장을 거쳐 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역사와 과학기술, 혁신적인 인물에 관심이 많다.

201703호 (2017.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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