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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경영의 정석 경영도 리셋하자 (1) 

새로운 국제통상 질서에 올라타라 

김동호 중앙일보 논설위원 kim.dongho@joongang.co.kr
기술은 뒤져도 혁신으로 따라잡을 여지가 있다. 하지만 국제통상 질서가 바뀌면 아무리 좋은 기술과 제품을 갖고 있어도 쓸모가 없다. 트럼프 시대는 통상 질서의 급변침을 의미한다. 한국 기업에는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월23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TPP) 탈퇴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아무리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놓아도 ‘트럼프 장벽’을 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되는 시대가 됐다.
바다에서는 계절에 따라 잡히는 어종이 달라진다. 봄에는 도다리, 가을에는 전어가 잡히는 식이다. 이러한 변화는 해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 바다에는 주로 한 가지 해류만 흐르지만, 계절 변화에 따라 서로 다른 성질의 해류가 엇갈리기도 한다. 동해에서도 북한에선 한류가 흐르고, 남한에선 난류가 흐른다. 어종의 변화는 기후온난화 현상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동해안에서 많이 잡히던 명태와 오징어가 희귀해진 것도 이런 여파다. 조류가 바뀌면 어업 도구도 바뀌어야 한다.

기업의 경영환경도 마찬가지다. 영구불변의 산업은 없다. 비약적인 기술발전으로 한물간 기술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다. 더 근본적 변화는 국제통상 질서의 변화다. 국제통상 질서가 바뀌면 아무리 좋은 기술과 제품을 갖고 있어도 쓸모가 없다. 무역장벽 앞에 가로막혀 한 발도 나가지 못한다. 조류가 바뀌면 새로운 어종을 잡기 위해 그물을 칠 장소와 그물의 종류를 바꿔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 기업과 경영인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아무리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놓아도 ‘트럼프 장벽’을 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된다. 지난달 20일 워싱턴 D. C. 국회의사당에서 제 45대 미 대통령에 오른 트럼프는 취임 연설을 통해 재차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보호무역주의의 의지를 천명했다.

트럼프는 “미국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buy American and hire American)”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의 기업과 경영인은 트럼프의 말뜻을 즉각 알아 들어야 한다.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려면 자유무역 대신 보호무역 기조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운동 때부터 확실하게 경고를 했고, 그의 뜻을 따르지 않을 경우 강력한 제재에 직면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트럼프의 몽둥이는 35%에 달하는 국경세(Border tax)가 될 수도 있고 환율조작국 지정과 ‘수퍼 301조’의 발동일 수도 있다.

자유무역 대신 보호무역 기조에 익숙해져야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는 자유무역으로 성장해 온 한국 기업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사진은 한국을 대표하는 수출입항인 부산 감만부두.
취임도 하기 전에 그는 트위터로 글로벌 기업들을 압박해 일자리 수백만 개를 예약받았다. 에어컨 전문기업 캐리어의 멕시코 공장 건설 계획을 주저앉힌 것을 신호탄으로 포드·제너럴모터스(GM)·피아트크라이슬러 멕시코 공장 신·증설 계획을 줄줄이 주저앉혔다.

해외 기업도 트럼프의 주문에 즉각 응답하고 있다.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마윈은 트럼프와 만나 일자리 100만 개 창출을 약속했고,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역시 트럼프에게 거액의 투자와 함께 일자리 5만 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GM이 10억 달러(약 1조1670억원)를 투자해 1500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겠다고 약속하자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도 줄줄이 투자 계획을 밝히고 있다. 도요타는 앞으로 5년간 1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약속했다. 현대·기아차도 31억 달러(약 3조6000억원) 투자 계획을 밝혔다. 미국은 1970년대 자동차 전성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가전 공장 투자를 검토하기로 했다. 독일 화학·제약회사 바이엘도 발 빠르게 미국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미국 종자개발회사 몬산토 인수를 승인받기 위해서다. 지난해 570억 달러(약 68조원)에 몬산토를 인수하기로 합의한 바이엘은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베르너 바우만 바이엘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를 만나 향후 6년간 미국 농업 연구·개발(R&D)에 80억 달러(약 9조4000억원)를 투자하고, 몬산토 직원 9000명의 고용승계와 함께 일자리 3000개 이상을 창출하기로 약속했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줄줄이 미국 투자를 약속하자 트럼프는 “여러분은 지금 대박(big stuff)을 보고 있다”며 성과를 자축했다. 트럼프의 일자리 욕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는 예고편에 불과하다. 그는 미국 밖으로 나간 제조업을 다시 가져오는 데 전력투구로 나서고 있다.

애플도 중국에 집중된 공장을 미국에 신설할 계획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자유무역으로 성장해 온 한국 기업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국경세로 외국 기업에 엄포를 놓고 특정 기업의 공장 이전을 압박하고 있어서다. 그는 앞으로 취임 연설에서 강조한 ‘바이 어메리칸, 하이어 어메리칸’ 구호를 현실에 착착 반영할 것이다. 트럼프는 “말로만 하지 않고 이제 필요한 것은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앞으로 미국에서 제조하지 않으면 제품을 팔지도 못한다는 보호무역주의의 발로다. 통상장벽은 높아질 전망이다.

이러한 변화는 통상 질서의 급변침을 의미한다. 한국 기업에는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낙오되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좌초할 수도 있다. 그 길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한국 기업들은 1980년 이후 미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1981~89년)의 신자유주의에 올라타 고도성장을 누려왔다. 신자유주의는 자유무역과 규제 완화, 감세를 통한 경제성장을 추구한다. 한국은 이 시기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고도성장을 급가속시킬 수 있었다. 레이건은 금리 인상과 감세를 통해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미국 경제를 부흥시켰다. 자유무역주의는 이후 30년간 글로벌 시장개방의 첨병이 되어 왔다.

그러나 자유무역을 핵심 기조로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는 미국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미국 중산층의 심장부였던 북부 공업지대는 트럼프의 진단대로 생산설비가 녹슬어가는 러스트 벨트(공업 쇠락지역)로 전락했고, 남부 농업지대 역시 저소득·저학력 백인계층의 슬럼화 현상이 가속되었다.

트럼프는 강력한 미국(Make America Great Again)을 내세우며 제조업 부흥과 인프라 재건을 미국 경제 부활의 원동력을 내세우고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의미하고, 고립주의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미국에서 고립주의는 정권과 시대 상황에 따라 거듭 반복됐다. 문제는 한 번 기조가 바뀌면 단기간에 그치지 않고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 넘게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통상 질서의 급변침은 위기이자 기회다


▎한국은 반도체 기반의 3차 산업을 기반으로 4차 산업에서 통상전쟁의 벽을 넘어서야 한다. 사진은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시스템반도체 ‘ 엑시노스 프로세서’.
트럼프의 미국 경제 부흥 계획은 4년 만에 끝날 수 없다.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1930년대 시행했던 뉴딜 역시 10년에 걸쳐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미국의 도로, 항만, 공항, 교량 등 인프라는 사실상 그 때 형성된 큰 틀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이를 새로 보강하려면 10년은 걸린다는 얘기다.

국내 기업의 대응은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이뤄져야 한다. 첫째는 미국 시장 친화적인 경영방침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은 그동안 미국 시장에 대한 배려와 관심은 크지 않았다. 세계 1위 교역상대국이 중국이고 미국은 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시장이었다. 한국 수출에서 중국은 25%를 차지하고 미국은 그 절반 수준인 13%가량이다.

여기서 잘 봐야 하는 것은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제품의 70%가 중간재라는 점이다. 중국은 이를 수입해 조립한 뒤 미국에 상당 부분을 다시 수출한다. 결국 미국이 통상장벽을 높게 쌓아올리면 중국에 대한 수출도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미국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대(對)중국 무역적자를 반드시 시정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무역적자 규모는 3657억 달러(430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쓰일 몽둥이는 환율조작국 지정이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국은 의회 동의 없이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수퍼 301조’를 동원할 수 있다. 레이건 행정부는 1988년 한국과 대만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수퍼 301조를 휘둘렀다. 수퍼 301조는 무역 상대국에 15%의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트럼프는 중국에게 우선 환율조작국 지정 카드를 쓴 뒤에도 대중국 무역적자가 개선되지 않으면 수퍼 301조를 꺼내들 가능성이 있다.

둘째는 미국의 제조업 부흥에 올라타야 한다. 트럼프는 민간 투자에 기반한 1조 달러(약 1200조원) 규모의 사회간접자본(SOC) 재건 프로젝트를 내걸었다. 항만·공항·도로를 정비하고 송전망을 현대화와 함께 차세대 통신망 구축에도 나서게 될 것이다. 외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 기업도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사업 시행자를 모집할 때를 대비해 한국 기업은 총력을 다해 사업 기회를 잡아야 한다. 한국 기업들은 중동 건설 특수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시공 경험도 풍부한 한국 건설회사가 한국 금융회사와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 펀딩까지 공조하면 상당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물론 미국 행정부에 영향력을 미치는 연구기관과의 접점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 금융업계와도 긴밀하게 협력해 상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인프라 사업과 제조업 부흥 사업에도 참여할 가능성이 커진다.

셋째는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서둘러 줄여야 한다는 점이다. ‘G2 통상전쟁’이 본격화하면 한국은 고래 싸움에 낀 새우 처지가 될 가능성이 배제하기 어렵다. 한국은 어느 쪽 편을 들 수도 없고 주먹이 오가는 사이에서 끼어 오도가도 못 하게 될 수도 있다. 노골적으로 중화패권 욕심을 드러내는 중국의 반격도 예상된다. 미국산 제품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거나 비관세 장벽을 통한 미국산 제품 판매 규제에 나설 수도 있다.

중국은 일반 공산품은 물론 자동차와 스마트폰 같은 고부가가치 첨단 제품에 대해서도 ‘기술 굴기’가 끝났다고 자부하고 있어 미국산 제품을 배싱하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중국은 오히려 자국 산업 육성과 수출 강화를 위해 외국산 제품에 대한 통상장벽을 강화하고 있다. 일전을 불사해도 거칠 게 없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중국은 고고도비사일방어(사드·THHAD) 설치에 반발해 한국 제품에 대한 배싱에 나서고 있다. 중국의 통관기준을 내세우며 통관을 불허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롯데 점포에 대해서는 세무 조사를 벌이고, 삼성SDI와 LG화학이 중국에서 제조한 전기자동차 배터리는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다. 자유무역협정(FTA)이 무색할 뿐만 아니라 노골적인 한국 기업 견제라고 할 수 있다.

선진국 기술 모방으로는 승산이 없다


▎해외 기업들도 트럼프의 주문에 즉각 응답하고 있다. 알리바바의 마윈은 발빠르게 트럼프와 만나 일자리 100만개 창출을 약속했다.
이는 사드 보복이면서 동시에 중국의 자국 기업 보호와 한국 기업 배척의 다목적 카드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배터리 생산 역시 이미 세계적인 강국이 되었다. 수입대체의 단계를 지나 이제는 자국 기업의 보호를 위해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을 고사시키려는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한국 기업에 지각변동이나 다름없는 경영환경의 변화를 예고한다. 이 같은 폭풍우를 뚫고 나가려면 한국 기업은 신발 끈을 다시 조이고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다. 통상전쟁이 격화하면 마지막 승부처는 품질이 된다. 그동안 한국 기업은 품질이 뛰어나고 가격은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한국 기업보다 브랜드 파워가 앞서 있는 글로벌 경쟁기업과 제품 차별력이 없다면 통상전쟁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불운을 겪지 않으려면 내부적으로는 과감한 도전과 혁신으로 경쟁우위를 유지해야 한다. 미국, 중국, 일본, 유로존의 경쟁기업 활동 정보를 끊임없이 수집하고 한발 더 앞서가는 능동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보호무역이 강화될수록 한국 기업은 한층 더 글로벌 기업이 돼야 한다는 역설에도 주목해야 한다. 보호무역으로 미국과 중국이 빗장을 걸어 잠근다고 해서 소비자의 선택까지 차단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는 인터넷으로 연결돼 과거 그 어느 때보다 하나의 시장을 통합돼 있다. 품질이 뛰어나다면 세계 어디서도 제품을 찾게 돼 있다. 더구나 중남미와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동유럽과 소련의 옛 위성국가 지역은 여전히 개발 여지가 크다.

이들 지역은 성장성이 무궁하기 때문에 한국 기업은 주요국에도 접근해야 하지만 이들 저개발 국가에도 진출해야 한다. 다른 경쟁기업도 이들 저개발국가에 대한 공략에 속도를 낼 것이다. 결국 어떤 변화의 바람이 몰아닥쳐도 핵심역량만 확보하고 있으면 위기도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개발 능력 강화에도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한국은 이제 선진국의 기술을 모방해서는 승산이 없다. 더구나 지적재산권 보호가 강화되면서 기술의 장벽도 높아지고 있어 독자적인 기술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은 반도체 기반의 3차 산업은 탄탄하다는 점이다.

김동호 - 중앙일보 논설위원. 경제와 산업에 관한 칼럼과 사설을 쓰고 매주 목요일 페이스북 라이브를 진행하고 있다. 쓴 책으로『소니가 삼성에 따라잡힌 이유는』, 『대통령 경제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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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호 (2017.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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