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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의 G(글로벌)와 I(나)사이 HR(12) 

글로벌 기업들처럼 퇴직 관리가 필요하다 

김기찬 중앙일보 논설위원·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한국 기업은 수시로 명예퇴직 카드를 꺼내든다. 그때마다 인재는 우수수 빠져나간다. 하지만 돈(비용)만 생각하는 인적자원관리(HRM)는 가장 후진적인 인사시스템이다.

▎IBM은 직원이 퇴직할 가능성이 엿보이면 곧바로 알아챈다. 직원의 빅데이터를 분석해서다. 사진은 미국 IBM 연구소.
경기가 바닥이다. 대기업부터 자영업자까지 아우성이다. 여기에 법정 정년(60세) 연장 고지서도 슬슬 인쇄에 들어갔다. 65세론(論) 연기가 피어오른 상태다. 언제 배달될지 모른다. 줘도 패고, 안 줘도 물어뜯는 정치판의 요동은 불확실성의 끝판왕이다. 코앞에서 꿈틀대는 4차 산업혁명은 말이 필요 없을 만큼 위협적이다. 나만의 또는 기업의 독특한 특징이 없으면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생존의 기로에서 선택지를 받아든 기업이 먼저 손대는 건 아니나다를까 인력이다. 살아남기 위한 비용절감의 첫 작업은 늘 그랬다. 앞이 안 보이는 지금 상황에선 구조조정 바람이 언제 멈출지 가늠하기 힘들다.

어느새 퇴직은 그렇게 일상화됐다. 희한한 건 ‘환경변화=퇴직(구조조정)’이란 공식이 생겼다는 거다. 그만큼 기업이 변화에 대해 둔감하다는 얘기다. 주변 환경은 늘 변하는데 말이다. 내다보고 준비하는데 서툰 것인지, 소홀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확실한 건 닥쳐서야 움직인다는 거다. 그 첫 움직임은 인력감축이다. 이 공식에 비용 절감과 관련된 축은 선명하게 보인다. 기업의 미래를 따지는 축도 있을까. 지금까지 기업의 구조조정을 보면 갸우뚱하게 된다.

한국 기업엔 ‘퇴직관리’란 단어 자체가 생소하다. 퇴직이란 단어를 때가 된 뒷방 늙은이 환송 정도로 해석하는 걸까. 아니면 적응하지 못한 직원의 출가쯤으로 여기는 것일까. 심하게 말해 그저 부속품으로 여길 뿐인가. 갈아끼우면 그만이란 건가. 그들의 능력을 따지거나 그가 있으므로 인한 미래 부가가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걸 꼼꼼하게 계산할 만한 시스템도 없다. 심지어 혹여 그가 다른 회사로 갔을 때 미칠 영향도 관심 밖이다. 당연히 필요할 때 다시 불러 일을 맡길 수 있는 시스템도 없다.

한국 기업이 퇴직을 대하는 이런 관행은 글로벌 기업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오죽하면 일본 게이단렌(經團連) 대표단이 재작년 한국경영자총협회를 찾아 “한국기업에선 근로자가 50대 초반에 퇴직하는 게 맞느냐? 한창 (기술이나 노하우의) 물이 오른 사람을 내보내고 기업이 제대로 돌아가는가”라고 물었겠는가. 당시 필자는 취재일기에 이렇게 썼다. ‘일본 경영진의 생각으론 50대야말로 업무의 완숙기로 회사에 가장 크게 기여할 근로자다. 30대 숙련 과정과 40대의 업무집행과정을 거쳐 50대에는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검증된 업무능력을 바탕으로 조직을 창조적으로 지휘하고 빼어난 지혜를 발휘할 시기다. 후배를 가르치고 업무의 방향을 잡아주는 것도 50대의 몫이다. 그런 사람이 모두 나이를 기준으로 퇴출당하는 게 일본 경영진 입장에선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이나 정년이 생산성이나 능력이 제대로 검증된 상태에서 정해지고 집행되느냐”는 기업 인력운용에 관한 원초적 질문을 던진 셈이다’라고.

퇴직관리는 중요한 인사전략이다. 구조조정기엔 그 중요성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외부환경이 출렁이고, 4차 산업혁명으로 경제구조가 재편되는 때는 더 그렇다. 괜찮은 인력에 대한 수요는 늘 수밖에 없다. 핵심인재가 중요해질수록 퇴직인력 관리는 인사정책의 주요 이슈로 다뤄져야 한다. 굳이 부연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퇴직하는 개개인은 특유의 경험과 지식을 보유한 알짜 인적자원이다. 이들이 빠져나가는 건 역량유출이다. 고성과자라면 더 그렇다. 고성과자의 퇴직은 기업의 질과 직결된다.

고성과자의 퇴직에 무심한 한국 기업


▎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은 퇴직자를 대상으로 서베이와 인터뷰를 반드시 이행한다. 조직의 문제점을 이들보다 더 정확하고 솔직하게 꼬집어내는 사람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사진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 위치한 구글플렉스.
하지만 한국 기업은 수시로 명예퇴직 카드를 꺼내든다. 그때마다 인재는 우수수 빠져나간다. 막을 장치도 없다. 명예퇴직 자체가 일률적이고 획일적인 균등함을 조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인재를 가려내는 명예퇴직이란 없다. 한꺼번에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 돈(비용)만 생각하는 인적자원관리(HRM)라는 게 여실히 드러난다. 가장 후진적인 인사시스템이다.

퇴직 관리는 퇴직의 양이 아닌 퇴직의 질을 관리하는 분야다. 회사를 튼튼하게 하고, 근로자도 대접받는 느낌이 들게 하는 인사시스템이다. 소위 ‘잘릴까!’ 불안에 떨게 하는 근로자 문화를 조장하는 한국 시스템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기법이다. 이런 건 한국적일 이유가 없을 텐데 굳이 한국형이란 포장을 덧씌워 고치지 않는다. 사람이 곧 자본이라는 자원 준거관점(resource-based view) 이론이 등장한 지 꽤 오래됐는데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듯하다. 물론 일정 수준의 퇴직률은 유지하는 게 좋다. 퇴직률이 너무 낮으면 자기계발이 이뤄지지 않고 조직의 긴장감이 떨어진다. 너무 높으면 자본의 유출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삼성경제연구소 인사 조직실이 2015년 구글, P&G, GE와 같은 15개 글로벌기업을 벤치마킹한 결과 적정 퇴직률은 5% 수준이라고 했다.

글로벌 기업의 퇴직관리는 직원을 얼마나 철저하게 관리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IBM의 경우 직원이 퇴직할 가능성이 엿보이면 곧바로 알아챈다. 직원의 빅데이터를 분석해서다. 인사담당자에게 이런 사실이 전해지면 사전면담이 진행된다. 후속으로 그의 욕구와 창의성을 충족할 방안을 찾는다. 이게 자칫 흘려버릴 수 있는 회사 내 잘못된 관행을 잡는 데 큰 기여를 한다. 더불어 새로 진출할 사업에 필요한 인력, 특정 직무에 종사하는 직원의 퇴직률이 높지는 않은지 면밀히 체크한다.

퇴직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관리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은 퇴직자를 대상으로 서베이와 인터뷰를 반드시 이행한다. 조직의 문제점을 이들보다 더 정확하고 솔직하게 꼬집어내는 사람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필요하면 퇴직자를 다시 픽업해서 일을 맡기는 시스템을 갖춘 건 물론이다. 퇴직한 근로자의 빅데이터도 소홀히 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불가피하게 퇴출될 인력에 대해서도 전직지원서비스를 한다. 실리콘밸리에 자리한 중소기업이나 일본의 장수 중소기업, 독일의 강소기업 등은 대체 불가능한 전문인력에게 파격적인 보상을 한다. 오래 붙잡아두기 위해서다. 나이는 문제삼지 않는다. 80세 넘은 장인이 명품회사에서 일하는 사례는 많다.

퇴직자를 대하는 한국과 선진국 기업의 차이는 근로자의 태도와 근로문화, 생산성 차이로 이어진다. 외국에선 자발적으로 퇴직하는 이유가 보상에 대한 불만족, 승진 기회 부족, 과도한 업무량이다. 일과 삶의 균형 추구라는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데 한국에선 동료 또는 상사와의 갈등, 특히 상사와의 갈등이 가장 큰 퇴사이유로 꼽힌다. ‘시키는 대로 하라’는 가부장적 기업문화가 만든 현상이다. 삶과의 균형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런 상태에선 마음의 안정이 있을 수 없다. 심리적으로 쫓기거나 불안한데 생산성이 오를 리 만무하다.

- 도움말 삼성경제연구소

김기찬 - 중앙일보 논설위원 고용노동선임기자. 고려대에서 경영학 석사, 코리아텍에서 박사과정 (HRM 전공)을 마쳤다. 한국인사관리학회 부회장(산학협동)을 맡고 있다.

201703호 (2017.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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