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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우의 와인 이야기(11)] 와인의 향기 

고양이 오줌 냄새와 마구간 냄새의 차이 

이석우 와인 칼럼니스트 sirgoo.lee@joongang.co.kr
와인의 다양한 향기를 익히기 위해 아로마 키트(Aroma Kit)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아로마 키트의 향들은 화학적으로 조제되었기 때문에 과신하면 안 된다.

▎호주 와인을 시음하는 와인메이커 킴 슈로터. 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향들을 학습하려면, 평소 주위에서 맡을 수 있는 여러 가지 향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집중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와인에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이유가 여럿 있다. 우선, 와인 레이블에 빼곡히 적혀 있는 외국어를 해독하려면 무슨 박사학위라도 있어야 할 것 같다. 병에 붙어 있는 레이블(프랑스 와인 전문용어로는 ‘에티켓’)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노라면, 영어인 듯 아닌 듯한 꼬부랑 글씨들이 눈을 어지럽힌다. 대체 어떤 것이 이름인지, 품종은 어디에 적혀 있는지 알기가 어렵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간신히 와인을 주문했다고 치자. 혼자 방 구석에 쳐박혀서 와인을 마시지 않는 한, 와인을 시음했으면 품평을 해야 한다. “음… 이 와인 괜찮네.” 이 한 마디로 넘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행 중에 조금이라도 와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끼어 있다면, 뭐라도 한 마디를 더 보태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낀다. 옆에 앉은 사람이 “카시스향이 진하게 피어 오르네요!”라고 하면, 대체 카시스라는 게 뭔지, 그게 어떤 향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럴 때는 벌떡 일어나서 “여기, 여기 와인 다 치우고 소주 한 병 주세요!”라고 소리치고 싶어진다.

화학적으로 조제된 아로마 키트


▎필자가 가지고 있는 아로마 키트들. 화학적으로 조제되었기 때문에, 실제 향과는 차이가 있다.
와인의 매력에 막 빠져들던 시절, 와인애호가들 사이에 끼어서 와인을 시음할 때, 나는 내 후각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주위의 애호가들이 설명하는 향들을 내 코로는 느낄 수 없었다. 한동안 고민을 하다가, 나는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찾아가는 대신에, 거금을 들여서 ‘아로마 키트’(Aroma Kit)라는 것을 장만했다. 엄지 손가락만한 자그마한 유리병에 특정 향이 나는 액체를 담아서 파는 상품이었다. 열두 가지 향들이 담겨 있는 비교적 저렴한 세트를 사가지고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가장 많은 향들이 담긴 54개짜리 세트를 구매했다. 사과, 배, 딸기, 체리 등 과일향과 아카시아, 장미, 제비꽃 등 꽃향들 뿐만 아니라, 트러플, 샤폰, 타임(Thyme)과 같은 생소한 향들이 담긴 54개의 작은 병들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대단한 와인 전문가가 이미 된 듯한 착각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환상이 깨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선, 아로마 키트의 향들은 화학적으로 조제되었기 때문에, 실제 명시된 향과 차이가 있었다. 예컨데, 딸기향이라고 표시된 유리병을 열어서 냄새를 맡으면, 실제 딸기의 냄새라기 보다는 딸기 풍선껌에서 나는 향이 느껴졌다. 게다가, 와인에서 맡을 수 있는 향이 어디 54가지 뿐이랴. 그 모든 향들을 담은 아로마 키트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로마 키트를 산 돈으로 차라리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고, 남은 돈으로 좋은 와인을 몇 병 사마시는 편이 나을 뻔 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향들을 학습하려면, 평소 주위에서 맡을 수 있는 여러 가지 향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집중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과일을 먹거나 길가의 꽃을 지나칠 때, 향을 맡으면서 공부하는 식이다. 그렇게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표현들이 있다. 와인이 서양에서 즐겨 마시는 음료이다 보니,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서양인들의 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표현들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

와인 향기를 표현하는 특이한 용어들


고양이 오줌(cat’s pee): 믿거나 말거나, “고양이 오줌 냄새”는 와인의 향을 설명할 때 실제로 쓰이는 용어다. 그리고 결함 있는 와인을 표현하는 나쁜 뜻이 아니라, 매력적인 향을 표현할 때 쓴다. 프랑스 르와르(Loire) 지방이나 뉴질랜드 등에서 생산되는 소비뇽 블랑에서 특징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향이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꼬롬하면서도 시큼한 향을 말한다. 와인을 표현할 때 고양이 오줌향은 있지만, 개 오줌향이나 소 오줌향은 없다. 왜 그런지는 나 또한 궁금하다.

마구간, 퇴비(barnyard, compost): 고양이 오줌과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표현이다. 잘 숙성된 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쿰쿰한 향을 말한다.

휘발유(petrol, gasoline): “당신이 만든 음식에서 휘발유향이 납니다”라고 말하면, 화내지 않을 요리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와인의 경우에는 특급 칭찬이다. 독일의 리즐링(Riesling) 품종으로 만든 와인 가운데 정말 우수한 와인에서는 휘발유를 연상시키는 향을 느낄 수 있다.

젖은 양털(wet wool): 그냥 양털도 아니고 젖은 양털에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궁금하다고 아내가 아끼는 양털 스웨터를 욕조에 담구지는 말자. 프랑스 르와르(Loire) 지방에서 생산되는 슈냉 블랑(Chenin Blanc)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에서 이 향을 발견할 수 있다. 눅눅한 느낌을 주는 향을 설명할 때 쓰인다. 밀랍(bee’s wax)향과 같이 쓰인다. 때로는 결함으로 인해 생기가 사라진 와인을 표현할 때 부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된다.

젖은 개(wet dog): 견공(犬公)들이 특별히 좋은 향기가 나는 동물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하물며 젖은 개에서 좋은 향이 날 리 없다. 상한 와인에서 나는 역한 향을 표현하는 말이다. 동의어로 젖은 마분지(wet cardboard)라는 표현도 사용된다.

위의 용어들은 특이한 향을 표현할 때 와인전문가들 사이에서 합의된 사례들이다. 이런 특이한 용어들과 더불어, 와인의 향을 설명할 때 전문가들 사이에서 합의된 용어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아로마 휠’(aroma wheel)이라는 것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앤 노블(Ann C. Noble) 교수가 1984년에 발표했다. 아로마 휠은 와인에서 감지할 수 있는 향들을 화학, 꽃, 과일, 채소, 토양 등 12가지의 대분류를 기본으로 하여 백여 가지가 넘는 세부적인 향들을 분류해놨다. 아로마 휠을 사용하면 와인의 향들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아로마 휠 역시 와인을 이해하는 출발점일 뿐이지, 종착점은 아니다. 후각과 이를 통해 습득한 개인의 경험은 대단히 주관적이어서, 아로마 휠에 표현된 향들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경우 역시 많이 존재한다. 와인을 관념의 틀 속에 가두려는 시도 자체가 무모한걸까. 설명을 하려고 해도 정답이 없는 와인. 그래서 자유분방한 와인이 사랑스럽다.

이석우 - 카카오 공동대표이사를 거쳐 현재 중앙일보 편집국 디지털총괄 겸 조인스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다. 번역서 『와인력』을 출간한 와인 마니아다.

201703호 (2017.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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