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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의 G(글로벌)와 I(나)사이 HR(13) 

트럼프와 오바마의 리쇼어링, 그리고 혁신 

김기찬 중앙일보 논설위원·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제조업 끌어 모으기(Reshoring) 때문에 난리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게 있다. 트럼프의 정책에 글로벌 기업이 호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게 진짜 무역장벽을 뚫기 위해서일까?

▎혁신의 키워드는 수평 조직이다. 상하의 고압적 분위기가 없고, 격식도 없다. 자유로운 소통을 바탕으로 교류가 활발하다.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이었던 캐러 스위셔, 고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의 수많은 아이디어는 이렇게 탄생한다. / 유튜브 캡처 제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제조업 끌어 모으기(Reshoring) 때문에 난리다. 이른바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 정책이다. 기업도, 학계도, 언론도 그 효과를 두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대체로 무역장벽의 일환으로 해석한다. 여기에 잘 적응해야 한다며 여러 주문을 쏟아낸다. 일각에선 기회라고도 얘기한다. 삼성과 LG가 미국에 공장을 짓는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본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게 있다. 트럼프의 정책에 글로벌 기업이 호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게 진짜 무역장벽을 뚫기 위해서일까. 기업은 생물이다. 살아남아 이익을 내기 위해 움직인다. 트럼프 말 한 마디에 무턱대고 미국에 공장을 지을 리 만무하다. 글로벌 기업은 공장을 지을 때 지난한 협상을 벌인다. 이를 통해 세금혜택 등 최대한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낸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미국에 공장을 지은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도 그랬다. 현대·기아차가 무역장벽 때문에 그곳에 공장을 지은 건 아니다.

미국의 방향 전환에 주목해야


▎2000년대 초 심각한 경영난을 겪던 유니클로는 수평조직으로 바꾼 뒤 승승장구하고 있다. 사진은 유니클로 매장의 직원들. / 중앙포토
따지고 보면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정책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핵심 경제 정책이었다. 그때는 무역장벽 얘기도 없었다. 지금처럼 국내 언론이나 학계가 호들갑 떨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LG가 전기자동차 배터리 공장을 미국에 짓고, 중국 공장에 의존하던 애플은 애리조나에 공장을 건설한다고 했다. 노선이 전혀 다른 두 미국 대통령이 실행 방법에는 차이가 있지만 ‘메이드 인 아메리카’라는 궤를 같이하는 정책을 택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 미국에 공장을 짓겠다고 한 토요타나 삼성·LG의 경영전략을 트럼프 정책 때문이라고만 보기엔 어색하다. 틀림없이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경영상 이득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건 미국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거다. 고용률이 높아지고, 경제가 살아나면서 금리를 인상할 정도다. 전세계가 불황의 늪에 있는데 이보다 좋은 시장이 있겠는가.

또 하나의 답은 어쩌면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이 1989년 발간한 『메이드 인 아메리카:미국 경제재건을 위한 처방』이라는 책에서 찾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이 책은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주요 원동력으로 인적자원과 신기술의 재구성, 효과적인 통합경영을 얘기하고 있다. 미국의 가장 큰 약점으로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시야, 국내 시장에 초점을 맞추는 구식 전략, 협업 부족, 인적자원 소홀, 발견한 제품을 구현하는 기술적 지체를 꼽는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혁신이 더디다’는 얘기다.

혁신이 떨어지는 이유가 뭘까. 여러 요인이 있지만 눈길을 끄는 건 제조공장이 해외로 빠져나간 데 따른 지체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해외공장을 택했는데 이게 부메랑으로 돌아와 혁신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연구하고 발견한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려면 만들어 봐야 한다. 그런데 외국에 공장이 있어서 신속성이 떨어진다. 문제가 발견되더라도 곧바로 수정해 적용하고, 테스트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혁신성의 지체현상이다. 중국은 전세계에서 몰려온 수많은 공장에서 테스트를 곧바로 하고 시행착오를 빠르게 수정하며 혁신성을 높이고 있다. 이게 미국과 중국간의 구현력의 속도차이를 내고, 혁신성의 격차를 낸다.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LG가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미국에 지은 건 그곳에 테슬라가 있고, 빅3 자동차 회사가 있기 때문 아니었을까. 문제를 곧바로 수정하고, 고객의 요구에 맞게 고치는 게 빨라지니까. 비유하자면 평평한 광장에 연구에서 테스트 베드, 심지어 시장까지 갖춰져 있다는 뜻이다. ‘무역장벽을 뚫기 위해서가 아니라 혁신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아이디어를 현실로 끌어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으니 말이다.

수평조직으로 바꾼 유니클로

혁신의 키워드는 수평 조직(flat organization)이다. 수평적이란 건 협업이란 말과 다를 바 없다. 상하의 고압적 분위기가 없고, 격식도 없다. 자유로운 소통을 바탕으로 교류가 활발하다. 이게 혁신의 생명인 속도와 민첩성을 확 끌어올린다.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아이디어는 이렇게 탄생한다. 경영진이라면 실리콘밸리의 생각하는 방식, 구현하는 방법을 누구나 배우려 들지 않는가.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우리 조직엔 광장(수평)은 없고, 엘리베이터(수직)만 있어”라는 말이 나오면 그 조직에 혁신을 기대하기 힘들다. 효율적인 구조가 아니라는 걸 무의식 중에 조직원이 안다는 얘기와 다름없어서다. 보신과 패배주의가 만연하게 된다. 굳이 나서 창의성을 발휘하려고 들지 않는다.

현대 경영학을 이끈 피터 드러커도 MIT가 보고서를 내기 직전인 1988년 “정보와 지식이 기업의 경쟁우위가 되는 새로운 경영환경에서는 수평 조직이 답”이라고 했다<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새로운 조직의 도래(The Coming of the New Organization)」>. 모든 명령의 단계마다 잡음은 두 배씩 불어나고, 메시지의 본뜻은 반씩 줄어든다는 경고와 함께다. 2000년대 초 심각한 경영난을 겪던 유니클로가 수평조직으로 바꾼 뒤 승승장구하는 것도 드러커의 지적을 되새김하게 한다. 고객의 니즈를 빠르게 흡수하고, 이를 제품으로 신속하게 구현하면서 전세계를 휘어잡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그런 면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리쇼어링을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라면 단순히 일자리 때문이라고 생각해선 곤란하다. 기업은 정치권의 행동에 경영을 맡기지 않는다. 경영상 이익, 살아남는 방법의 최일선엔 단순한 이득이 아니라 혁신이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 혁신을 가속화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 있기 때문에 찾아갈 뿐이다. 트럼프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경영과 혁신이란 측면에서 다시 생각해야 하는 까닭이다. 정치권이 생각하는 일자리는 그 뒤에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무조건 올라타고, 흘러가선 살아남기 힘들다. 물 흐르는 대로 흘러가다간 민물고기가 짠물을 만나 죽기 십상이다. 거슬러 올라가야 알을 낳는 법이다. 그 알에 기업의 명운이 있고, 일자리 잉태력이 있다. 거스르지 못하게 하는 조직, 소통이 막힌 체계에선 혁신을 기대하기 힘들다.

김기찬 - 중앙일보 논설위원 고용노동선임기자. 고려대에서 경영학 석사, 코리아텍에서 박사과정 (HRM 전공)을 마쳤다. 한국인사관리학회 부회장(산학협동)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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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호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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