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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대동여지도(2) ‘창업의 메카’ 부산 

18개의 액셀러레이터·VC가 생태계에 활력 불어넣어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서 부산만큼 스타트업 생태계가 잘 갖춰진 곳이 있을까. 창업공간부터 육성, 지원 그리고 투자까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다. 부산은 ‘창업 제1도시’라는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우동의 센텀시티는 종합전시장부터 거대한 쇼핑몰 그리고 고급 아파트까지 모든 것이 갖춰진 부산의 변화를 상징하는 곳이다. 또한 스타트업 관련 육성센터가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 중앙포토
부산역에서 내려 1001번 버스나 택시를 타고 30~40분 정도 가면 부산 우동의 센텀시티에 도착한다. 종합전시장 벡스코를 시작으로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 같은 거대 쇼핑몰과 트럼프월드센텀으로 대표되는 고급 아파트까지 모든 것이 잘 갖춰진 신도시다. 센텀시티는 마린시티와 함께 부산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도심이다. 센텀시티는 라틴어 100이란 숫자를 뜻하는 ‘센텀’과 ‘시티(도시)’ 단어가 합쳐진 것이다. 처음 이곳을 찾는 이들은 건물의 규모와 높이,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놀라게 된다. 센텀시티를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하는 이유가 있다. 스타트업 대동여지도 두 번째 지역인 부산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느끼려면 센텀시티를 찾아야하기 때문이다. 부산시는 센텀시티를 ICT의 본거지로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보육공간과 지원센터를 이곳에 모아놓았다. 센텀동로와 센텀중앙로를 걷다보면 부산정보산업진흥원, 센텀벤처타운, 센텀기술창업타운 센탑(CENTAP), 부산디자인센터,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같은 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모두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기관이 마련한 공간들이다. 이중 센탑은 부산 스타트업 생태계의 현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다.


센탑은 지자체 최초로 팁스(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 프로그램)를 지역에 도입한 곳이다. 2015년 11월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지난해 4월 문을 열었다. 센탑은 부산의 제조기반 중견기업 웹스의 11층 사옥 중 1층부터 4층까지 사용 중이다. 1층에는 창업카페와 1인 창업가 사무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2층에는 부산창조센터가 마련한 시제품 제작실과 3D 프린팅 특화센터가 있다. 그리고 3층에 10개의 스타트업 입주공간을 마련해놓았다. 팁스에 선정된 스타트업만 입주할 수 있다.

4층은 센탑의 역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액트너랩과 웹스, 비스퀘어 같은 팁스 운영사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여기에 롯데그룹이 만든 롯데액셀러레이터와 부산의 중견기업인 선보그룹이 만든 액셀러레이터 선보엔젤파트너스도 이곳에 들어왔다. 쿨리지코너인베스트의 부산 지사와 케이브릿지인베스트먼트 같은 벤처캐피탈(VC)도 4층에 공간을 마련했다. 스타트업이 일할 수 있는 공간부터 인큐베이팅 지원 기관, 여기에 투자사까지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이다.

센탑은 부산시가 전액 지원한다. 부산테크노파크가 운영을 맡고 있다. 남병혁 부산테크노파크 차장은 “서울에 있는 팁스타운을 보고 만든 공간”이라며 “스타트업 관련 지원과 투자가 모두 한 건물에서 이뤄지는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 입주해 있는 액셀러레이터와 VC는 지금까지 100억원 넘게 부산의 스타트업에 투자를 했다. 남 차장은 “센탑을 만든 목적이 투자 활성화였다”면서 “센탑이 투자 유치를 위해 서울에 가야만 했던 창업가의 어려움을 해결했다”고 강조했다.

부산을 본사로 하고 있거나 부산에 지사를 두고 있는 액셀러레이터와 VC는 18개에 이른다. 부산이 수도권을 제외한 ‘제1의 창업 도시’로 불리는 이유는 민간투자가 이뤄지는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 동안 부산의 스타트업 창업가 대부분은 ‘투자를 받으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역에 뿌리를 내린 액셀러레이터나 VC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젠 달라졌다. 부산의 창업 생태계가 민간 투자자들의 적극적인 투자로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수치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2010년부터 2016년 말까지 부산시가 투자한 펀드만 14개에 이르고, 운영규모는 1870억원이다. 이중 스타트업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펀드 규모는 472억원이다.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가 운용하고 있는 100억원 규모의 부산청년창업투자조합, 170억원 규모의 스타트업투자조합, 100억원 규모의 동남권투자조합 등이 대표적인 스타트업 투자 펀드다. 부산시에 투자사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2016년부터다. 그 전에는 관 주도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교육이 주로 이뤄졌다.

지자체 최초로 ‘팁스’도입한 센탑 설립


▎부산 센텀시티에 자리잡은 부산센탑 전경. 지자체 처음으로 서울의 팁스타운을 벤치마킹해 만든 공간이다. / 최영진 기자
부산시의 스타트업 붐은 2011년 시작된 중소기업청의 창업선도대학이 시초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교육부터 후속 사업화까지를 창업선도대학이 해결하면서 창업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와 발맞춰 부산시 산하 기관인 부산경제진흥원이나 부산디자인센터 등에서 스타트업 지원에 나서기 시작했다. 부산지방중소기업청 창업성장지원과 이광식 과장은 “부산 스타트업 생태계의 씨앗은 부산중기청이 뿌리기 시작했다”면서 “2015년 이후 부산시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스타트업 생태계가 본격적으로 활력을 띠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 센탑 1층 창업카페에서 VC 쿨리지인베스트먼트와 스타트업 로하의 투자 경험을 공유하는 투자 사례 발표회가 열렸다. / 비스퀘어 제공
문제는 창업 이후였다. 민간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 센탑에 지사를 마련한 VC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의 심사역을 맡고 있는 강민석 과장은 “투자 유치를 위해 서울로 가는 창업가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게 부산시의 당면 목표였다”면서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거점지로 센탑을 마련했고, 센탑 개소에 맞춰 액셀러레이터와 VC를 데려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부산에 있는 VC들은 스타트업 초기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성공한 기업가가 후배 기업가에게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도 차츰 만들어지고 있다. 센탑에 입주한 선보엔젤파트너스가 대표적이다. 선보엔젤파트너스는 부산의 조선 중견기업 선보그룹이 만든 액셀러레이터다. 부산의 중견기업 2~3세가 모여 만든 ‘Founders House 13 Angel Club’도 마찬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VC 입장에서도 부산은 기회의 땅이다. 아직까지 경쟁이 치열하지 않기 때문이다. 센탑에 자리를 잡은 케이브릿지인베스트먼트 이동철 대표는 “이곳에 자리를 잡아보니 열정적인 창업자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면서 “부산의 창업 생태계에서 먼저 자리를 잡으면 기회도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투자 문화로 꼽히는 게 ‘플래시 IR(Investor Relation, 투자자를 대상으로 기업의 설명 및 홍보를 하는 활동)’이다. 불특정 다수가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장소에 모이는 ‘플래시 몹’에서 따온 기업 설명회다. 부산에 자리를 잡은 VC와 액셀러레이터는 단톡방(단체카카오톡방)에 가입되어 있다. 단톡방에 ‘오늘 몇 시에 스타트업 IR을 하는데 관심이 있는 분은 어디로 오세요’라는 공지가 뜨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5~6명 정도가 약속된 장소에 모여서 스타트업의 IR을 보게 된다. 보통의 경우 스타트업이 액셀러레이터와 VC를 찾아가기 마련인데, 부산의 경우는 반대인 셈이다.


창업가를 위한 시설 잘 갖춰진 부산


▎센텀시티에 있는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3층에 있는 1인~4인 스타트업 보육공간. / 최영진 기자
스타트업을 위한 창업 공간은 ‘넘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센탑에서 만난 스타트업 바이맘 김민욱 대표는 “창업을 하고 일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부산은 창업가를 위한 창업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지역으로 꼽힌다. 부경대학교와 동아대학교를 포함한 창업선도대학이 4곳이 마련되어 있고, 부산대학교 등 18개 지역에 창업보육센터가 갖춰져 있다. 이외에도 1인 창업가를 위한 비즈니스센터를 비스퀘어, 해운대구청 등 5곳에서 운영을 하고 있다.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직접 만든 협업공간 패스파인더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부산중기청 이광식 과장은 “1인 창업가부터 팀을 이룬 창업가들이 일할 수 있는 창업 공간은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부산시의 부흥을 이끌었던 제조업을 다시 살리자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는 사물인터넷(IoT) 분야 스타트업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조홍근 센터장은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는 IoT 기술공모전 같은 프로그램을 마련해 제조 스타트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면서 “이와 함께 롯데정보통신은 지역 IoT 창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IoT 개발플랫폼 및 리빙랩을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 창업 생태계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여전히 창업가를 힘들게 하는 어려운 점이 있다. 바로 인력 수급이다. 좋은 인재들은 여전히 대학을 졸업하면 서울로 올라가기 마련이다. 권영철 단디벤처포럼 회장은 “좋은 능력을 가진 이 지역 출신 학생들이 서울에 가버려서 창업을 할 때 좋은 팀원을 구하는 게 어렵다”고 토로했다.

-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박스기사] 인터뷰 | 권영철 단디벤처포럼 회장 - “부산을 창업의 메카로 만들 기반 구축”


▎건축자금 대출 P2P 사업에 도전장을 내민 권영철 단디벤처포럼 회장. / 젠픽스 제공
그는 중소 유통업체를 다니다가 2009년 국내 최초 디자인 천장재 제조기업 젠픽스를 창업했다. 당시 중소기업청에서 ‘예비기술창업자 육성사업’을 시작했던 때였다. 여기에 응모해 5000만원의 지원금도 받았다. 하지만 당시 스타트업 생태계는 전혀 없었던 상황이다. 창업은 했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창업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어려움을 해결하면 좋겠다 싶었다. 2013년 4월 그는 단디벤처포럼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서울에서 활동 중인 ‘고벤처포럼’의 형식과 내용을 배워서 부산에 가져온 것이다. 투자자를 대상으로 피칭대회를 열기 시작했고, 투자자와 법률가 같은 특별 연사를 초청해 특강도 열었다. 이 모임은 이제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스타트업 창업가들의 모임으로 성장했다. 이 포럼의 산파 역할을 한 이가 젠픽스 권영철(39) 대표다. 여전히 창업가 정신으로 핀테크 창업에 도전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단디는 ‘단단히’라는 부산 사투리다.

단디벤처포럼을 만든 계기가 있나.

젠픽스를 창업한 후 주변에 있는 창업가와 창업에 꿈이 있는 대학생들과 함께 조촐한 모임을 만들었다. 매달 1번씩 중소기업청장을 모시고 사업하는 데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는 자리를 정기적으로 마련했다. 서울에 고벤처포럼이라는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직접 올라가서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를 배웠다. 체계적으로 모임을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단디벤처포럼을 만들었다.

어떤 사업들이 펼쳐지고 있나.

회원은 370여 명 정도 된다. 현재는 대학생들이 스태프로 일하면서 모든 실무적인 일을 처리하고 있다. 매월 한 번씩 모임이 열리는 데 투자자를 상대로 피칭 대회도 열고, 전문가특강도 마련했다. 투자 상담회도 운영 중이다. 성공한 스타트업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단디벤처포럼의 성과가 있다면.

지금까지 단디벤처포럼을 통해 70여 개스타트업이 IR을 했는데, 이중 20여 개 스타트업이 55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이 포럼을 계기로 부산 기업인이나 투자자가 스타트업을 위한 엔젤클럽을 만들기 시작했다. 부산에만 12개나 설립되었다. 수도권을 제외하면 지역에서는 최대 규모다. 단디벤처포럼이 열리면 투자사와 엔젤투자자들이 자리를 채운다. 단디벤처포럼 덕분에 창업가들은 투자사를 찾아다니지 않고 투자사를 만날 수 있는 셈이다.

단디벤처포럼이 하는 일은?

부산에서 창업을 꿈꾸거나 창업한 이들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도 얻어갈 수 있다. 부산 스타트업 생태계의 흐름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부산의 창업 붐은 어느 정도인가.

대단하다. 대학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단디포럼이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대학가에서 창업이라는 단어가 거의 없었다. 지금은 창업가라고 하면 교수부터 학생까지 모두 반긴다.(웃음) 부산대나 부경대 등 대다수의 대학에서 창업 관련 강좌가 생겼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창업가는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학생들에게 창업가는 선망의 대상

젠픽스 외에도 ‘티끌모아태산’이라는 P2P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젠픽스는 지난해 7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젠 전국으로 사업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올해 매출 목표는 150억원이다. 디자인 천장 사업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 건축 관련 일을 하다 보니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데 그중에 땅은 있는데 건축을 할 자본이 없는 이들이 많더라. 티끌모아태산은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P2P 사업이다. 쉽게 말해 건축자금 대출 P2P 사업이다. 비즈니스 모델도 특허를 받았다. 지금까지 30억원 정도를 대출했고, 투자자들의 이익률이 12% 정도 된다. 이 사업으로 공익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건물을 곳곳에 짓는 게 목표다.

201704호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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