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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호 한길사 대표의 출판 인생 40년 

독서는 반듯한 삶을 구현해 내는 실천이다 

김환영 중앙일보 논설위원 kimwhangyung@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김언호(金彦鎬) 한길사 대표는 41년째 책을 만들고 있는 한국 출판산업의 간판 경영인다. 수많은 밀리언셀러를 만들어낸 ‘고집’ 있는 출판사 사장이자 그 자신이 글을 쓰는 저자이기도 하다. 한국 출판의 현주소를 짚어 보기 위해 김 대표를 3월7일 포브스코리아 회의실에서 만났다.

▎김언호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대선 후보들은 책방에 가야 한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서점에 갈 때는 30분 전에 서점에 연락해 ‘ 준비해 달라’고 알린다고 한다. 왜 우리는 그렇게 못하는가?”
김언호(72) 대표는 1976년 한길사를 창립해 지금까지 3000여 권을 냈다. 『 해방전후사의 인식』, 『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로마인 이야기』, 『혼불』등 수많은 밀리언셀러를 자랑하지만 안 팔릴 책도 좋은 책이면 내는 ‘고집’ 있는 출판사다. 추진력 있는 그는 몸담고 있는 출판계에서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국출판인회의 제1, 2대 회장을 지냈고, 동아시아출판인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파주출판도시 건설에 앞장섰고, 예술마을 헤이리를 구상하고 건설하는 일을 주도했다. 현재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과 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몸 못지않게 마음·정신이 중요하다


▎김언호 대표는 수많은 밀리언셀러를 만들어낸 ‘고집’있는 출판사 사장이자 그 자신이 글을 쓰는 저자다. 지난해 김 대표가 펴낸 『세계 서점기행』. / 한길사 제공
지난해가 한길사 40주년이었다. 올해도 기념 행사·프로젝트가 계속되는지.

40주년이니까 뭘 하고, 41주년이니까 뭘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할 일, 출판의 가치 같은 것을 되새겨보는 계기가 된다. 책에는 정신·이론·실천강령이 담겼다. 삶의 모든 것, 개인·사회·국가와 연결돼 있다. 저는 3000여 권의 책을 만들면서 책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구현해 나가야 하는 지 고민해왔다. 책을 이야기하면 흔히 ‘그게 몇 페이지냐’, ‘값이 얼마냐’고 묻는다. 책 읽지 않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다. 나라다운 나라, 사회다운 사회도 만들 수 없다. 우리는 그런 차원에서 책을 이야기한다.

반드시 책을 읽어야만 행복하고 성공한다면 읽지 말라고 해도 기를 쓰고 읽을 것이다.

요즘 몸의 양식과 마음의 양식의 상호 연관성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된다. 최근 몸의 양식에 대한 지나친 경도 현상이 발견된다. TV 프로그램에 먹는 게 너무 많다. 좀 병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몸에 탐닉한다. 몸은 물질이다. 다르게 보면 기계다. 스마트폰은 현대 물질문명, 기계문명을 상징한다. 스마트폰에 사람들이 매달리고 있는데, 이건 정신이 아니다. 정신으로 위장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이야기하면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이데올로기적 전체주의뿐만 아니라 ‘기계 전체주의’를 이야기한다. 핵무기도 전체주의적인 발상에서 나온다. 전체주의나 독재의 유혹 메커니즘을 해명해 내려면 마음과 정신을 가져야 한다.

마태복음 4장 4절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고 나온다. 참 좋아하는 말이다. 굉장히 과학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몸 못지않게 마음·정신이 중요하다. 사회적인 언어로 말한다면 인문이다. 우리가 앞으로 제대로 살려고 하면, 몸의 양식과 정신의 양식 사이에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신과 마음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마음을 재발견하고 정신을 새롭게 가다듬으면 그게 바로 몸으로 연결된다.

출판사를 경영하면 어떤 좋은 점이 있나.

저는 책을 만들면서 공부한다. 제일 먼저 원고를 읽는 첫 번째 독자다. 책을 적당히 만들 수 없다. 온몸을 다 던져서 만드는 것이 책이다. 독자들을 감동시켜야 되고 또 독자 손에 쥐어져야 한다. 독서는 관념적인 유희에 빠지는 게 아니라 반듯한 삶을 구현해 내는 실천이다. 단순화시켜서 말하면, 책을 읽으면 관용의 정신이 생긴다. 책을 읽지 않고 민주주의자가 될 수 없다. 한쪽에 경도되기 쉽다. 히틀러는 자기 생각만 옳다며 생각이 다르면 절멸시켰다. 전체주의나 권위주의 통치자들은 다 그렇게 간다. 한층 높은 수준의 대화가 가능한 관용주의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야 이 사회도 평화롭게 될 것 같다. 헤겔은 『법철학』서문에서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은 것은 이성적이다’라고 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존재가 돼야 하지 않은가. 현실에 토대를 두는 철학적 사유로 현실을 더 아름답게 개선할 수 있다.

40년 전에도 이 회사는 오래갈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는지.

그때 정말로 책을 내고 싶다, 책 만드는 일을 내 직업으로 삼고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40년 전에는 제가 31~32살밖에 안 됐다. 뭘 알았겠는가. 매사에 일하면서 배우는 것이지 처음부터 목표가 설정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책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어떤 책인가.

다소 민족주의적이고 또 다소 정의로우며 다소 현실을 개선시키는 지혜와 이론을 제공하는 책이다. 창업 전 7년 정도 기자로 있었기 때문에 사회를 이끌어가는 현인들, 민주주의자·민족주의자들을 많이 만났다. ‘어떤 민족 정신을 어떻게 다듬어야 할까’를 고민하는 분들이었다. 그분들에게 배우고 또 그분들의 책을 만들면서 책 내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다듬어졌다.

김 대표는 해직기자 출신이다. 1968년부터 1975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일했다. 기자생활 경험이 자연스럽게 출판으로 연결된 것인가.

해직된 후 취직하려고 해도 취직이 안됐다. 그때 70년대 중·후반에는 사회가 진짜 어려웠다. ‘10월유신’을 처음 보면서 어떻게 세상에 이런 법이 다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속에서 기자 생활하다 결국 해직당했다. 개인적으로 <사상계>라는 잡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때부터 만나게 된 함석헌 선생 같은 분들 생각의 영향을 받았다. 저는 왜 우리 민족, 국가가 해방이 됐지만 왜 자주독립하지 못했느냐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특히 민족주의 역사 정신에 대한 책들을 대학 다닐 때부터 관심을 갖고 읽었다. 그런 것들이 모여서 책 만드는 데 영향을 줬다.

책에 대한 열정 외에 비결·노하우는 없었는지.

책 만드는 방법을 몰랐다. 하지만 신문 기사, 잡지 기사를 써본 것이 도움이 됐다. 교정, 디자인도 할 줄 알았다. 그때 다들 어려운 시절이라 손에 아무것도 없었다.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됐기 때문에 그것이 훈련이 됐다. 저는 그래서 책 만드는 장인이라고 볼 수 있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출판 장인이 되고 싶다. 콘텐트도 중요하지만 책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 책이라는 것은 하나의 내용이지만, 형식도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출판 장인


▎중국은 책 읽기 운동을 전국인민대표대회 공식 의제로 삼아서 결의한다. 사진은 늘 독자들로 붐비는 베이징 만성서원. / 사진 김언호
‘운7기3’이라는데 운도 따라줬는지.

정말로 아주 럭키했다.(웃음) 그때는 책 만드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 정치 상황도 어려웠고··· 어려움 속에서 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오히려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용기와 기회가 생겼다. 사실은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때 조금만 더 열심히 만들면 그렇게 만들 수 있었다.

지금도 32살 청년이 출판사를 창업해 성공할 수 있을까.

그것은 능력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그때 밤낮 전력을 다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일한 만큼 소출이 일어난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굉장히 거칠고 서툴렀다. 잡학에 관심이 많아 잡지를 굉장히 좋아했다. 당시 나오는 모든 잡지를 사 모으고 그랬다. 그때 잡지는 모두 인문학적인 내용이었다. 그게 도움이 됐다.

최소한 직원들 월급 줄 걱정하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70년대에는 기본적으로 우리 와이프하고 단 둘이서 했다. 여기 순화동 중앙일보 자리에 방을 하나 얻어 시작했다. 세를 못 내 옮겨갔다. 그때는 원고 대필도 했다. 책이라는 게 내는 것 마다 팔리지는 않는다. 우리는 책 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판매금지도 당했다. 판매금지가 우리의 출판 정신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한길사는 말하자면 ‘문제작’을 냈다. 그러다가 79년에 결정적인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냈다. 아까 이야기했지만 ‘왜 우리는 자주독립을 하지 못했을까’, ‘왜 분단이 됐을까’, ‘왜 통일독립국가를 수립하지 못했을까’ 같은 문제에 대한 관심에서 나온 책이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출간은 기본적으로 나라에서 별로 논의하지 못한 것을 문제의식으로 삼아 시작됐다. 자유민주주의적 관점이 굉장히 많이 담긴 책이다. 80년대가 되면서 젊은이들이 읽으면 ‘나쁜 책’이라고 했다. 검열 요원들을 만나 직접 설득했다. ‘이게 왜 나쁜 책이냐? 좋은 책인데.’ 그러니까 그 사람들도 동의했다.

실제로 우리가 내는 책은 절대 ‘그런’ 책이 아니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나오면서 확 풀리고 8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책을 굉장히 많이 내기 시작했다. 없던 집도 사고 그랬다. 북한에서 나온 책들, 중국 연변에서 나온 책들은 내지 않았다. 가능하면 우리 저자들이 새로 쓰게 했다. 번역 책보다는 우리 저자들이 책을 쓰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고전을 포함돼 번역물도 많이 내지만, 반드시 한국화 작업을 거친다. 해설을 넣기도 하고 해제를 길게 붙인다. 1980년대는 책의 시대였다. 모든 젊은이들의 손에 책이 쥐여져 있었다. 그것이 우리 민주화 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가 우리나라 정신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좋은 책만 생각하고 ‘얼마나 팔릴까’는 고려하지 않는가.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전략이다. ‘한길사에서 내는 책은 좀 믿을 수 있다’는 브랜드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그래도 어느 정도 이 책은 1000부다, 1만 부다 하는 감이 있는 것 아닌가.

『로마인 이야기』의 경우는 직관이 맞아떨어진 경우다. 직관을 믿는 편이다. 책이라는 게 이론적으로 따져서 되지 않는 것 같다. 『로마인 이야기』가 많이 읽힌 이유는 우리 사회가 세계화에 편입되면서 세계적인 시야에서 바라볼 필요가 생겨서다.

대체적으로 진보 쪽 책을 많이 내는가.

책은 너무 한쪽 편에 서있으면 안 된다고 늘 생각한다. 또 책이라는 것은 때로는 이데올로기적이지만 때로는 정보를 주는 것 아닌가. 객관적 정보를 주는 것도 책이기 때문에 너무 한쪽에 서있지 않으려고 했다. 보수·진보가 있다면, 보수면 어떻고 진보면 어떠냐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내가 보수이기 때문에 진보는 안 된다’, ‘나는 진보라서 보수는 안된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학문이나 정신이나 사상은 서로 다른 것이 만나 소통할 때 새로운 어떤 뭔가가 나온다. 우리 사회는 지금 지나치게 ‘이것 아니면 저것이다’, ‘이렇게 선택을 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출판인 입장에서 어떤 대선 후보를 지지할 건가.

영화는 물론이고 음악이고 미술이고 책을 통해 일어선다. 독서 없이는 문학도 과학도 할 수 없다. 창조의 원천, 창조의 힘은 책에서 나온다. 책과 밀접한 국민이 500만명도 더 될 것 같다. 책 만드는 사람, 쓰는 사람, 읽는 사람, 교육자들, 연구자들, 서점, 종이 만드는 회사들··· 다 책과 연관됐다. ‘가을이 됐으니까 책을 읽자’··· 이거는 후진국에서나 이야기할 수 있다. 영화 산업이 정말 장기적으로 잘되려면 스토리가 좋아야 한다. 스토리의 힘은 책에서 나온다. 그런 것을 우리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물론 시장도 중요하지만 대선 후보들은 책방에 가야 한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서점에 갈 때는 30분 전에 서점에 연락해 ‘준비해 달라’고 알린다고 한다. 왜 우리는 그렇게 못하는가. 대통령이 독후감을 늘 발표하고, 대통령이 서점에 가고 책을 사야한다. 책을 산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행위다. 도서관은 영원한 인류의 자원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개인이 어떻게 책을 다 사나. 우리가 밀리언셀러를 만들어 왔지만, 밀리언셀러는 자연을 파괴하고 학대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다. 100만 권 만들게 아니라 10만 권을 10종 만드는 게 더 좋다.

서점은 도시를 밝히는 별빛 같은 존재

좋은 언론은 좋은 기자들이 있어야 한다. 좋은 저널리스트들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책 만드는 에디터도 마찬가지다. 대학 교수 못지않게 에디터가 중요하다. 우리 사회의 지적 역량을 조직하는 사람들이다. 에디터 요원을 선발해 유학을 보내는 등 국가 사회 정책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문제 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좋은 책을 만든다. 책은 아무나 그냥 만들 수 없다. 훈련돼야 한다. 교육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책에는 국가·사회의 총체적인 생산 역량이 결집돼 있다. 그 콘텐트를 우리 국가 시스템이 구입해 도서관에 비치하는 기능이 필요하다. 또 하나는 서점이다. 2000개 정도 있다고 한다. 10년 전에는 3500개가 있었다. 서점은 도시를 밝히는 별빛 같은 존재다. 종로 길을 가는데 서점이 곳곳에 있다면 길이 달라 보인다. 우리 대학들 앞에 가면 서점이 없다. 교육이 되겠는가. 물론 학교에 서점이 있지만, 학생들이 늘 다니는 길목에 주제별 책방들이 있어야 한다. 개인이 못하면 국가가 나서야 한다. 그게 교육 자산이고 교육의 한 방법이다.

책을 만들 뿐만 아니라 책을 쓰고 있다. 몇 권을 냈나.

한 6권 정도 썼다. 제가 책을 쓴다는 말은 맞지 않고…. 제가 하는 일에 대한 리포트다. 책이라고 할 수 없다. 저는 출판 쪽에 관한 이야기는 설득력 있게 강력하게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지 않을 만한 제 생각이 있다. 우리는 현장에서 책을 만들며 우리 사회를 분석하고 우리 사회가 가야할 방향을 찾고 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실 말씀이 있다면.

약 주고 주사 놔주는 것만 복지가 아니다. 문화적 복지가 더 중요하다. 마음이 건강해야 병도 안 걸린다. 중국은 책 읽기 운동을 전국인민대표대회 공식 의제로 삼아서 결의한다고 한다. 중국 정부가 독서에 예산을 투입한다. ‘왜 국가가 나서느냐’고 반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미국이 오늘날 큰소리치는 것은 정말로 훌륭한 저자가 많고 독자가 많기 때문이다. 좋은 책을 비치한 대학도서관, 공공도서관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렇게 가지 않으면 이 나라를 제대로 세울 수가 없다.

- 김환영 중앙일보 논설위원 kimwhangyung@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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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호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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