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영덕 아미 에우제니 대표 

대한민국 시계산업의 부활을 알리다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사진 최정동 기자
국내 최초의 기계식 시계로 글로벌 무대에 과감히 도전장을 낸 기업가를 만났다. ‘한국의 리차드 밀’을 꿈꾸는 김영덕 아미 에우제니 대표에게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서울 청담동 아미 에우제니 부티크에서 만난 김영덕 대표. 그의 비전은 아미 에우제니가 100년 이상 가는 한국의 명품 시계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이다.
아미 에우제니는 1980년대 이후 사양길에 접어든 국내 시계산업의 부흥을 위해 설립된 기업이다. 반도체 설비 제조로 국내외에서 명성을 쌓아온 (주)화인이 모기업이다. 2014년 국내 최초로 경기도 평택에 시계 매뉴팩처를 짓고, 선진화된 시계 제조 시스템을 구축했다. 시계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무브먼트를 비롯한 시계의 주요 부품을 자체 제작한다. 지난 3월14일 서울 청담동의 아미 에우제니 부티크에서 만난 김영덕(48) 대표는 “시계학교와 시계박물관을 지어 전문가 양성은 물론 국가 경제기반 확충에도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시계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6년 전 아내와 해외 여행 중 우연한 기회에 시계 매장에 들르게 됐다. 그때 처음 기계식 시계를 봤는데 엄청난 가격에 팔리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한편으론 시계라는 아이템이 없어지진 않을 테니 우리도 잘만 하면 100년, 200년 가는 회사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 시계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다. 한국이 1970년대 스위스·일본과 함께 세계 3대 시계 제조국으로 이름을 날렸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에도 뒤처지며 어려운 처지가 됐다. 무너져가는 국내 시계산업을 되살리고 싶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시계를 만들겠다고 본격적으로 덤빈 게 2012년이었다. 당시 종로에 있는 시계 수리 학원에서 시계 구조와 원리, 조립 과정을 배웠다. 그 후 타사 제품의 시계를 분해해 역설계를 시작했다. 초창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 한국에는 시계 제조에 대한 자료가 거의 전무했다. 자료를 구하기 위해 무작정 해외 전시회를 쫓아다녔다. 거기서 얻은 자료를 번역해 부품을 설계하고 가공하고 조립하는 과정들을 수없이 반복했다.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지난해 말 스위스의 한 업체가 우리한테는 장비를 팔지 않겠다고 하더라. 장비를 줘봤자 쓰지도 못할 거라는 게 이유였다. 오랜 설득 끝에 그 업체 엔지니어를 우리 회사에 데려왔다. 그간의 결과물을 보여주자 굉장히 놀라더라. 그 친구가 돌아가서 세일즈팀을 설득한 끝에 장비를 들여오게 됐다. 그 장비는 다른 스위스 시계 업체들도 사용하고 있다. 우리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하다.

김 대표는 고교 시절부터 30년 가까이 기계와 인연을 맺고 있는 전문 엔지니어다. 시계 제조 기술을 연구하기 위해 정밀기계 사업부를 신설하고, 디자인 기획부터 제조 공정까지 전 과정을 총괄하고 있다. 17년간 반도체 회사를 운영하며 체득한 정밀가공 노하우와 다양한 신소재를 활용해 제품의 차별화를 꾀한다는 전략이다.

평택 매뉴팩처는 어떤 곳인가.

무브먼트를 만들 수 있는 최소의 설비만 갖춰 놓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한 달에 생산할 수 있는 무브먼트는 2개 정도다. 당연히 시계도 2개만 만들 수 있다. 앞으로도 소량 생산으로 사업을 운영할 예정이다. 공산품처럼 누구나 다 찰 수 있는 시계는 만들고 싶지 않다.

아미 에우제니의 진정한 무브먼트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자체 개발한 무브먼트는 올 겨울쯤 볼 수 있을 것이다. 평택 매뉴팩처에서 설계를 마쳤고 몇몇 부품은 해외에서 조달할 예정이다. 현재 국내에서 무브먼트에 대해 우리만큼 많이 아는 회사가 있을까 싶다. 우리가 잘 돼 국내에서 시장이 만들어지고 해외에서도 한국산 무브먼트가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롤모델로 삼고 있는 브랜드는?

리차드 밀이나 위블로 같은 브랜드다. 탁월한 기술력으로 단기간에 명품 브랜드의 반열에 오른 부분을 높이 평가한다. 그들은 신생 업체로서 기존 브랜드가 하지 않은 신소재 분야에 도전해 시장에서 인정받았다. 우리의 지향점도 그렇게 돼야만 한다. ‘한국의 리차드 밀’이 되고 싶다.

세계를 사로잡을 명품 시계 제조가 꿈


▎인생을 항해에 비유한 AE ST001 모델. 무브먼트 베이스와 케이스에 티타늄을 적용해 가볍고 단단하다.
현재 청담동 부티크에 가면 완제품과 비교해 품질과 기능 면에서 손색이 없는 시제품을 만날 수 있다. 인생을 항해에 비유한 모델과 손목 위에 그리스 아테네의 신전을 구현한 모델 등 2가지 시계 라인을 감상할 수 있다. 티타늄을 가공해 무브먼트 베이스와 케이스에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제품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브랜드에 색깔을 입히려면 특별한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특히 시계 베젤에 우리만의 정체성을 담았다. 선박의 타륜(배의 방향을 조종하는 바퀴 모양의 장치)을 형상화한 것이다. 인생을 긴 항해라고 봤을 때 인생의 방향을 잡아준다는 의미다.

시계에 담고 싶은 철학은?

도전이다. 기존 사업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 새로운 소재에 대한 도전, 새로운 시장에 대한 도전, 새로운 문화에 대한 도전이라 말하고 싶다.

고급 시계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나.

2014년 기준으로 글로벌 시장 규모가 270조원 정도 된다고 하더라. 그중 한국 시장이 2조3000억원 정도고, 또 거기서 국산 시계 비중이 1300억원 정도다.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시계 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0.1%도 안 된다. 최근 경기 불황으로 전체 시장이 위축되고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 봤을 때 시계 시장은 미개척 분야다. 아직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시장은 무궁무진하다.

스위스 시계들과 경쟁하기 위한 전략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십분 활용할 계획이다. 매뉴팩처 투어, 시계 제작 체험 등 기계식 시계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고객들에게 다가갈 예정이다. 애프터서비스가 빠르다는 것도 우리만의 장점이다.

최종 목표는.

지금까지 사업을 하면서 한 번도 편안하게 안주해본 적이 없다. 시계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또 다른 분야에 뛰어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후대들에게 항상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던 기업가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사진 최정동 기자

201704호 (2017.03.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