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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혁신을 일군 아시아의 기업인(3)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 

4차 산업혁명 이끄는 글로벌 투자자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한국계 일본인 기업가인 손 마사요시(60)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은 일본을 대표하는 IT기업인으로 고속인터넷, 전자상거래, 통신, 파이낸스, 기술 기업인 소프트뱅크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다. 이제는 일본을 넘어선 글로벌 IT 기업인으로서 입지를 확실히 굳히고 있다.

▎손 마사요시 회장은 ‘벤처 투자계의 골리앗’, ‘아시아의 워렌 버핏’으로 불린다. 글로벌 벤처 투자 시장의 큰 손이다.
손 마사요시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은 일본과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을 상대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경영인으로 꼽힌다. 넓게 생각하고 크게 행동하는 속 깊은 투자가이자 협상가로 이름 높다. 당장의 이익이나 시장점유율 높이기, 경쟁사 따돌리기 등 미니멀리즘 경영에 익숙한 일본의 풍토와는 사뭇 다르다. 같은 회사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동일한 일을 평생 하다 간부나 경영인에 되는 ‘동종교배식’ 기업문화에 젖은 일본 기업 문화와도 차원을 달리한다. 1990년대 이후 일본 제조업이 손쉬운 일본 시장에만 주력하다 세계시장에서 고립돼 발생한 이른바 ‘갈라파고스화’와는 완전히 반대의 길을 간다.

그런 손 회장의 진면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지난해 12월6일 미국 뉴욕의 트럼프 타워에서 벌어졌다. 손 회장은 당시 이곳에서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던 도널드 트럼프를 만났다. 트럼프와 손 회장이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트럼프 타워에서 기자들과 만나고 있는 장면은 전세계 미디어를 장식했다. 면담을 성사한 것만 해도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데 손 회장은 그 자리에서 소트프뱅크가 미국에 무려 500억 달러(약 58조5500억원)를 미국의 스타트업에 투자해 5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찾아간 ‘글로벌 마당발’

손 회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에 상당한 투자를 해왔다. 2013년 220억 달러를 들여 미국의 3번째 이동통신회사인 스프린트를 2013년에 인수했다. 이어 미국의 4번째 이동통신회사인 T-모바일을 인수해 스프린트와 합병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독과점적인 지위로 공정거래에 역행할 것을 우려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손 회장은 오바마 행정부가 했던 결정과는 반대로 가는 것을 능사로 삼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스프린트와 T-모바일의 합병을 재추진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난해에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두고 있는 온라인 대출기관인 ‘소셜파이낸스’에 10억 달러를 투자하는 등 미국에서 IT와 관련한 다양한 사업을 벌이기 위한 포석을 계속하고 있다. 두 사람이 만난 다음날 손 회장이 보유한 주가 총액은 무려 27억 달러가 늘었다. 투자자들이 손 회장의 글로벌 마당발을 높이 산 덕분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손 회장이 이날 투자를 약속한 500억 달러는 소프트뱅크와 사우디 아라비아 국부펀드가 공동으로 조성하는 1000억 달러의 규모의 ‘비전 펀드’에서 투자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비전 펀드는 손 회장이 주동하는 글로벌 미래형 IT투자펀드로 손 회장에게 ‘1000억 달러의 사나이’란 별명을 안겼다.

사연은 지난해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손 회장은 영국의 글로벌 반도체 지적재산권 기업 ARM 홀딩스를 234억 파운드(약 33조7000억원)에 인수했다. 영국 런던 증시와 미국 나스닥에 함께 상장된 이 기업은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설계하고 라이센싱하는 업체다. 일반적인 마이크로 프로세서 공급자와 달리 관련 첨단 기술에 대한 칩 설계 및 관련 소프트웨어 등 지적재산만을 생산해 라이센스를 통해 매출을 올린다. ARM 홀딩스는 캘리포니아 주 새너제이, 텍사스 주 오스틴, 워싱턴 주 올림피아, 인도 벵갈루루, 노르웨이 트론헤임, 스웨덴 룬드, 일본 요코하마, 한국 성남 등 전세계 IT 핫스팟에 지역 사무소와 설계 센터를 두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문제는 자금이었다. 234억 파운드의 거액은 쉽게 마련되지 않았고, 투자자를 확보하는 일도 난관에 난관을 거듭했다. 최악의 경우 모기업인 소프트뱅크 주식이라도 일부 매각해 현금을 마련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손 회장은 도이체 방크 출신 라지브 미스라 이사를 통해 전세계에서 투자자를 물색했다.

마침 전체 국가경제에서 석유 의존 비중을 낮추기 위해 경제·사회 개혁을 위한 '비전 2030'을 선언하고 대대적인 혁신 작업을 진행 중이던 사우디 관계자와의 접촉에 성공했다. 지난해 9월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사우디 대표단 500명이 일본을 찾았는데, 일행 중에는 사우디의 실세로 꼽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부왕세자를 비롯해 사우디 국부펀드(PIF)의 최고 책임자인 야시르 알루마얀과 칼리드 팔리흐 사우디 석유장관 등 투자 책임자들이 포함됐다. 손 회장은 이들과 면담 일정을 잡고 먼저 장관급들과 소통한 뒤 마지막으로 무함마드 부왕세자를 만나 설득작업에 들어갔다.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비전 펀드’를 설명했다. 전세계 유망 IT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정확하게 알아보고 이들에게 투자해 돈을 불리겠다는 구상이다.

그의 성공담과 적극적인 자세, 그리고 미래 기술투자에 대한 명쾌한 비전은 사우디 고위 관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면담 뒤 무하마드 부왕세자는 손 사장을 사우디에 초청했다. 사우디가 어떤 나라이고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선 직접 찾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손 회장은 사우디를 찾아 동부 유전지대와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를 방문했다. 그런 다음에 양측은 합동으로 1000억 달러(약 114조원) 규모의 비전 펀드를 공동 조성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450억 달러를 사우디 측이 맡기로 했다. 사우디로서는 세계적인 투자가로 거듭 나고 있는 손 회장에게 투자하는 게 이끌렸던 것이다.

‘스트롱맨’ 푸틴 대통령과도 투자 협의


▎손 마사요시 회장과 마윈. 손 회장은 알리바바 투자로 세계적인 IT투자자로서 안목을 입증했다.
손 회장은 지난해 12월 16일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방일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났다. 러시아에 IT 관련 투자를 하기 위한 협의 목적이었다. 그는 지난 하반기 동안 234억 파운드 짜리 영국 반도체 기업을 인수하고, 사우디 아라비아와 1000억 달러 규모의 비전 펀드 조성에 합의하고, 도널드 트럼프와 만나 미국에 500억 달러 투자를 약속한 데 이어 푸틴을 만나 러시아 투자를 논의한 것이다. 그야말로 ‘올마이티’ 글로벌 경영인이요, 승부사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그는 중동의 자금으로 미국 스타트업, 영국 기술 산업 등에 투자해 미래 4차산업 혁명을 주도하는 인물이 되려고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손 회장이 그리는 글로벌 경영 그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한국, 중국, 러시아, 몽골, 일본 등이 참여하는 동북아시아 수퍼그리드(super grid)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수퍼그리드는 국가 간 전력망을 서로 연결해 여러 나라가 생산한 전기에너지를 공유하는 초광역 전력망을 가리킨다. 생산한 전력은 당장 쓰지 않으면 사라지므로 더운 물 등으로 보관하는데, 이렇게 광역으로 서로 연결해 사용하면 모자라는 지역에 남는 곳의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 전력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손 회장은 이들 나라의 전력망을 연결함으로써 전세계 에너지 절감 프로젝트를 이끌겠다는 구상이다.

손 회장은 2014년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한 중국 IT기업 알리바바의 대주주로도 이름 높다. 이 투자로 그는 세계적인 IT투자자로서 안목을 입증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가 뉴욕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함으로써 이 회사 창업 초기에 거액을 투자해 34.4%의 지분을 보유한 손 회장은 578억 달러를 확보했다. 2000만 달러 투자가 14년 만에 500배가 넘는 투자 수익으로 돌아온 셈이다. 세기의 성공 투자로 불리는 이 투자는 손 회장의 투자 안목을 잘 보여준다.

1999년 5월 중국 벤처기업인 마윈(馬雲·50)이 창업한 알리바바는 초기부터 고민이 많았다. 이미 두 차례 창업에 실패했던 마윈이 세 번째로 창업한 기업으로서 패자부활전에 나선 선수 같았던 마윈은 초기부터 노심초사했다.

마윈은 고향인 저장성 항저우의 20평 남짓한 작은 아파트에 18명을 모아 창업에 나섰다. 마원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e-커머스 모델을 손쉽게 베끼지 않았다. 대신 그는 중국의 수요와 실정에 맞춰 새롭게 창안한 맞춤형 e-커머스를 내놨다. 통상적인 e-커머스는 생산자의 상품을 소비자에게 연결하는 B2C(기업-소비자간 거래)방식이었지만 마윈은 중국의 중소업자를 위한 B2B(기업간 거래)에 주력했다.

그 배경의 하나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 그의 고향인 저장성 내륙에 자리 잡은 이우(義烏)라는 유통 도시다. ‘소상품(잡화)왕국’으로 불리는 이 도시의 도심에는 여의도 면적(840만㎡)의 두 배쯤 되는 1500만 ㎡ 면적의 초대형 도매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도매 점포만 7만 개 가까이 된다. 춘제(설) 연휴 기간에 한 달 가까이 휴무하는 것 외에는 연중 무휴다. 은행도 똑같이 문을 연다. 사회주의 중국의 노동법은 이 지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1982년 개발이 시작된 이우 시장은 스스로 ‘중국에서는 물론 전세계에서 가장 큰 도매시장’으로 자부한다. 취급 상품만 41만 종을 넘는다고 한다. 패션 액세서리, 양말, 반창고, 문구, 화장품, 공예품, 속옷, 지퍼의 경우 중국 전체 거래의 30% 정도가 이곳을 통한다. 양말은 시장 안에 별도의 ‘양말 시장’이 있을 정도다. ‘상품의 바다, 구매자의 천국’으로 불리는 이곳에선 구매자가 상품과 샘플을 직접 체크해볼 수 있다. 진열대에 없는 제품도 사양을 바꿔 주문할 수 있다. 예로 A상품의 소재로 B상품의 디자인을 적용해 C상품의 색상으로 D상품의 기능을 추가해 달라는 식의 주문이 일반적이다.

글로벌 투자의 진수를 보여준 알리바바 투자

알리바바는 이런 지역 특유의 구매방식을 인터넷으로 옮겨왔다. 납품업자나 도소매업자가 소재와 디자인, 색상 등을 결정한 뒤 알리바바 사이트에 접속하면 이를 만드는 공장들과 접촉해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 시제품을 받아본 뒤 마음에 들면 이를 대량 주문하는 방식이다. 중소업체인 주문자와 생산자가 서로 인터넷에서 만나 거래를 할 수 있게 해준 것이 알리바바의 특징이다. 요즘은 영어와 중국어간 실시간 번역도 할 수 있다. 자본·소량생산으로 누구라도 창업할 수 있게 해주는 인터넷 플랫폼이다. 중국뿐 아니라 세계 240여 개국 수출입업체가 이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으니 중국 수출에도 한몫한다. 굳이 무역박람회를 찾거나 제조사를 직접 방문할 필요 없이 마음에 맞는 상품의 생산 의뢰를 가능하게 해준 것이다.

알리바바는 시운을 잘 탔다. 창업 당시 내놓은 중국형 인터넷 B2B 비즈니스는 때마침 일기 시작한 중국의 인터넷 붐과 맞물려 업계와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창업 첫해 미국 골드만삭스로부터 500만 달러를 투자받은 마 회장은 한 달 뒤 손 회장을 만났다. 마윈을 만난 손 회장은 마 회장이 사업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기도 전에 무려 2000만 달러의 투자를 결정했다. 당시로서는 작은 온라인 거래 사이트 알리바바에 이런 거액을 투자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손 회장은 이후 마윈에게 투자자로서는 물론 인터넷 비즈니스 멘토 역할까지 했다. 마윈은 손 회장의 조언에 따라 오픈 마켓 사이트인 타오바오를 개설했다. 손 회장 입장에서는 마윈을 통해 일본 인터넷 기업이 진출하기 쉽지 않은 중국 시장에 진출한 셈이기도 하다. 손 회장은 이듬해에 8200만 달러를 추가로 투자해 알리바바닷컴 지분 34.4%를 확보했다. 손 회장은 현재까지도 알리바바닷컴의 최대 주주다. 야후 창업자 제리 양은 2006년 알리바바에 17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지분을 그보다 적다. 기업을 보는 안목이 좋은 손 회장이 초기 투자의 이점을 톡톡히 본 것이다. 알리바바는 현재 명실상부한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다. B2B에서 시작해 B2C를 거쳐 C2C(소비자간 거래)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알리바바는 마윈과 손 회장의 합작품일 수도 있다.

손 회장의 벤처 투자는 알리바바는 물론 전세계에 걸쳐 1300여 개의 기술 벤처 업체에 투자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는 그런 손 회장을 ‘벤처 투자계의 골리앗’으로 비유했다. 월가에서는 그를 ‘아시아의 워렌 버핏’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글로벌 벤처 투자 시장의 큰 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새로운 일본 경영인의 모델을 만들다

손 회장은 대구에 살다 일본으로 이주한 안동 손씨 집안의 재일동포 3세다. 집안에선 차별을 피하려고 야스모토(安本)라는 일본 성을 썼지만 손 회장은 자신의 선택으로 어려서부터 손씨 성을 사용했다. 일본에 귀화한 뒤에도 계속 손 씨를 고집한다. 그는 1981년 9월 종합 소프트웨어 유통업체인 소프트뱅크를 창업했다. 전세계의 소프트웨어를 필요한 기업에 공급해주는 소프트웨어 은행이나 시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1996년 미국 야후와 함께 야후 재팬을 설립해 일본의 IT혁명을 이끌었고, 2000년대엔 통신사업으로 진출해 일본텔레콤과 보다폰재팬을 인수해 소프트뱅크를 이동통신업체로 탈바꿈시켰다. 그 뒤 애플의 아이폰을 일본에 최초로 도입해 큰 성공을 거뒀다.

손 회장은 대학 시절에 ‘인생 50년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들어갔다. ‘20대에 회사를 창업해 30대까지 1000억∼2000억 엔의 재산을 모으고 40대에 결정적인 승부수를 던져 50대에 사업을 완성한 다음 60대엔 다음 세대에게 사업을 물려준다’는 계획이다. 그는 지금까지 이 계획대로 살고 있다. 비전 펀드를 통한 글로벌 IT 투자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차기 경영자를 찾아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런 손 마사요시의 끝이 어딘지 전세계가 궁금해 한다. 그는 새로운 일본 경영인의 모델을 만들었다. 일본 개화기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이 나아갈 길을 ‘탈아입구(脫亞入歐)’, 즉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사회를 지향한다’고 했다. 손 회장은 ‘탈일입환구(脫日入環球)’, 즉 ‘일본에서 벗어나 글로벌을 지향한다’를 21세기 일본 경영이 가야 할 길도 제시하고 있다. 결단과 행동으로 말이다.

채인택 - 중앙일보 피플위크앤 에디터와 국제부장을 거쳐 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역사와 과학기술, 혁신적인 인물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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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호 (2017.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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