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People

Home>포브스>CEO&People

김춘호 한국뉴욕주립대 총장 

대학 생태계 변화의 엔진 

김환영 중앙일보 심의실장 kim.whanyung@joongang.co.kr·사진 김경록 기자
‘외래종’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외래종이 긍정적인 생태계 변화를 자극할 수 있다. 송도 글로벌캠퍼스에 있는 한국뉴욕주립대(SUNY Korea)는 우리나라 대학교육 생태계에서 변화의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

▎김춘호 총장은 한국뉴욕주립대의 송도 글로벌캠퍼스를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만들어가고 있다.
정부와 인천시가 3000억을 투입해 송도 글로벌캠퍼스를 조성한 이유는,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고 선진적인 산학협동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2012년 3월 뉴욕주립대의 ‘확장 캠퍼스(extended campus)’로 개교한 한국뉴욕주립대는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와 동일한 학위를 준다. 세계대학랭킹센터(CWUR)의 2016년 발표에 따르면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는 전세계 2만 5000개 대학 중에서 154위를 차지했다. 4월12일 김춘호 총장을 만나 그의 도전과 고민에 대해 들었다.

어떤 일이든 해낸 다음에는 ‘컬럼부스의 달걀’이지만 과정은 어렵다. 한국뉴욕주립대라는 새로운 교육 기관을 만드는 게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

건국대 부총장할 때 일을 시작했다. 고난의 길을 가야하기 때문에 사실 망설였다. 특히 한국뉴욕주립대의 정체성 문제를 두고 많이 고민했다. 이 일을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교육이 갖고 있는 문제들을 기존 시스템에서는 바꾸기 참 어렵다는 사실을 교육 현장에서 체험했기 때문이다. 여기는 새로운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마음껏 대학이 갈 길의 모델을 만들어볼 수 있다. 보람 덕분에 힘든 일 이겨가며 살고 있다.

변화를 무서워하는 대학들, 바뀌어야


▎한국뉴욕주립대 교수들과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왼쪽). 학생들을 위한 리더십교육 캠프 (오른쪽).
기존 시스템에는 어떤 문제가 있나.

변화를 무서워하는 게 대학이다. 한번 생각해보라. 르네상스 이후 대학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 세상은 4차 산업혁명이니 뭐니 이야기하는데 우리 교육은 전혀 못 쫓아가고 있다고 본다. 교육 문제 때문에 사회 병리 현상들이 생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다.

교육에 대해 기업체에서도 불만이 있다. 하지만 나름대로 지켜야할 ‘상아탑’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상아탑 시대는 끝났다. 상아탑 개념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키워야 할 인재들은 이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지금 대학 교육으로 그게 가능한가. 그래서 변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게 평가기준이다. 이 학교가 제대로 된 대학인지 아닌지를 평가할 때 2가지 기준만 만족시키면 된다고 생각한다. 첫째, 훗날 학생들이 졸업하고 올바른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돈 많이 버는 사람, 유명한 사람을 많이 배출한 대학으로 평가받고 싶지 않다. 두번째, 우리 학생들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가로 평가받고 싶다.

더 구체적으로는?

세 가지다. 세 가지만 함양하고 졸업하면 된다. 저는 ‘MAP’으로 요약한다. M(Mission·미션)은 삶의 목적이다.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사업가, 교수가 되겠다고 한다. 된 다음에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한 인식은 아무도 없다. 개탄스럽게도 아직도 우리 학생 중 일부는 대기업 입사가 꿈이다. 대기업 가지 말라는 게 아니다. 대기업 가서 뭘 할 것인지에 대해 답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답을 찾아주는 게 우리 학교 교육의 아주 처음 시작이다.

두번째, A(Ability·능력)를 키워 주기 위해 우리는 ‘역진행 수업(逆進行修業, flipped learning)’을 한다. 철저한 문제풀이형 수업이다. 교수들이 강의내용을 미리 학생들에게 넘겨주면, 학생들이 미리 공부해가지고 온다. 수업시간에 교수들과 같이 토론하면서 문제 풀어가는 훈련을 자연스럽게 한다. 우리가 할 일은 학생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풀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다.

마지막 P는 인성(Personality)과 정열(Passion)이다. 아무리 실력이 있으면 뭐하겠는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돼야 한다. 뒤늦었지만 우리는 인성 교육을 한다. 남이 들으면 웃을 일이다. ‘대학에서 무슨 인성을 이야기하느냐’고 한다. 하지만 제가 이전에 기관장, 연구원 원장을 하면서 똑똑한 연구원을 뽑아봤는데 똑똑한 순서대로 부족한 게 인성이었다. 또 저와 함께 일하는 우리 직원들과 교수들의 특징은 열정이다. 함께 일할 교직원을 뽑을 때도 열정이 기준이다. 학생들에게도 열정을 심어주고 있다.

기업이 바라는 인재상의 문제로 돌아가보자. 기업이 바라는 대학교육은 무엇인가.

예를 한가지 들겠다. 한 10여 년 전 대기업 대표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 기업은 ‘강남 출신의 서울대 졸업생들’을 잘 활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굉장한 충격이었다. ‘왜 그렇게 하시느냐’고 여쭤봤더니 ‘회사에 왔으면 뭔가 문제를 풀어내고 창의적으로 도전해야 하는데 과외선생 붙여 줘야할 정도로 능력들이 딸리더라. 그래서 저희들은 안 뽑습니다’라고 하더라.

기업이 바라는 교육은 기업가정신 함양

그러한 기업의 ‘불만’을 대학은 어떻게 해소시켜야 할까.

제가 기업가정신 이야기를 많이 한다. 기업가정신의 구성은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두번째는 도전해야 한다. 도전하다 보면 실패할 수 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불굴의 용기도 키워져야 한다. 누구도 해내지 못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게 기업가 정신의 마지막이다. 이 세 가지를 철저히 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고 있다.

오늘의 현실을 관통하는 문제점은 무엇인가.

정치·경제·교육 현실에서 똑같은 게 뭐냐면 본질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대학교육이 가져야할 본질, 중고등학교의 본질, 언론의 본질, 정치의 본질이 있다. 본질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사회 생활을 올바로 할 수 있는 수준의 올바른 인격과 실력으로 학생들을 내보내는 게 학교에서 해야 할 일이다. 세상이 더 빠른 속도로 바뀌어 갈 것이다. 우리 교육이 아이들을 변화에 맞게 교육하고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본질을 회복해야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본질 회복을 위한 교육에서 인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 학교는 기본적으로 학생들에게 ‘자신의 유익(有益)을 구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나 자신을 위해 살지 마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다 보면, 내 유익으로 결국 되돌아오게 돼 있는데, 너무 자기 위주, 자기 중심으로 학생들이 교육 받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난리가 난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갈등 구조가 그래서 생긴다. 철저히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유도하는 교육과 인성 지도가 한국뉴욕주립대 교육의 핵심 열쇠다.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저는 학생들에게 리더십은 영향력이라고 가르친다. 각자 살고 있는 사회에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로 가는 것, 어느 자리에 있든지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좋은 리더십을 갖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현재 송도 글로벌 캠퍼스에 한국뉴욕주립대, 겐트대, 조지매디슨대, 유타대학이 있다. 앞으로 4개가 아니라 40개 외국 대학이 들어온다면 한국 대학교육이 확 달라지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까지는 보지는 않는다. 교육도 수요와 공급을 맞춰가야 한다. 학생 숫자는 자꾸 줄어들고 있다. 저희도 외국 학생들을 많이 뽑아 키우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 시장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껏 늘려갈 수는 없다. 여기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의 목표는 대학교 10개 학생 수는 1만 명이다. 현재 4개 대학인데 저희가 이번에 뉴욕주립패션공과대학(FIT)을 유치해 5개 대학이 됐다.

대학 1학년의 실력만 따진다면 오히려 우리나라 학생들이 우월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대학들은 학생의 잠재력을 충분히 개화(開花) 시키지 못하는 것 같다. 왜 그런가.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토론하고 문제 풀이하는 교육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미국 교육은 토론식인데 우리 학교 들어온 한국 학생들이 처음에 가장 적응 못하는 것이 그거다. 질문하라고 해도 질문하는 학생이 없다. 그러다가 2학년이 되고 3학년이 되면서 토론에 익숙해지고 그러면서 남들이 갖지 못하는 그런 실력들을 갖추게 된다.

성공이 성공을 낳는다. 현재 어떤 성공 사례가 있는지.

우리 학생들은 감동 스토리가 많다. 첫 졸업생 중에 꿈이 야무진 이란 학생이 있다. 교육 혜택을 못 받는 사람들을 위해 이란에 뉴욕주립대 같은 학교를 만드는 게 그의 꿈이었다. 한국을 배워 한국처럼 이란을 바꿔 놓겠다고 했다. 이 친구가 취직할 때 되니까 입사 제의가 여기저기서 들어왔다. LG전자에 취직해서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 친구는 경험과 네트워크를 쌓아 궁극적으로 자기 꿈을 이룰 것이다.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학생은 초대 학생회장을 했다. 우리는 이 친구가 박사학위를 받게 되면 우리 학교 교수로 쓰기로 본교와 상의를 했다. 그만한 실력이 있는 데다가 태도가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칭찬하는 친구다. 학생들에게 귀감이 되는 행동을 많이 한다. 한국에 올 때 한글도 모르고 왔는데 TV 프로에 나가서 토론을 할 정도로 한국말이 늘었다.

한 학생은 한국 학생인데 남미에서 자랐다. 수석 졸업자라 졸업식에서 발표를 했는데 모든 사람을 울렸다. 자신도 울면서 ‘실패의 미학’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겪은 실패, 창업하고 나서 겪었던 쓰라림, 사기 당한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어떻게 그것을 극복해 나갔는지 그리고 어떤 삶을 앞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 이야기하는 데 얼마나 감동스러웠는지 모른다. 그 친구의 목표는 남미의 발전에 기여하는 기업가가 되는 것이다.

총장께서 송도 글로벌캠퍼스를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말씀하셨는데… 가능할까.

가능하다. 졸업생들을 대한민국 대기업에 취직시킬 거면 이 학교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이 학교를 대한민국에 만든 의도가 있다. 글로벌 인재들을 만들기 위해서다. 대기업에 가서도 글로벌 역할을 하겠지만, 저희가 원하는 것은 학생들이 대한민국에서 글로벌 창업을 하고, 글로벌 마켓을 보고 나가는 것이다. 저희들이 개도국 학생들을 키우고 있으니 그 학생들과 손 잡고 그 나라로 갔으면 좋겠다. 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비즈니스를 일으키고 그 나라에서 교수도 하고 그 나라의 정책 전문가가 되야 한다.

글로벌 인재로 육성하고 창업 지원

창업하라는 것은 학생들을 사지(死地)로 내모는 일일 수도 있다.

당장 창업에 대해서는 저도 반대론자다. 어느 정도 경험을 쌓고 창업해야 하는데 그 경험은 대기업에서 하기 힘들다. 배울 수 있는 게 한정돼 있다. 중견기업·중소기업에 들어가서 배우고 익히며 경험 쌓고 자기 실력 발휘하면 좋겠는데 학생들 생각이 그렇지 않다. 우리가 잘못 가르쳤구나. 잘못 훈련시켰다는 생각이 들어 방향 수정 중이다.

현재 직면한 도전은?

우리 학교는 기업으로 치면 스타트업(start-up)이다. 모든 게 새로운 도전이다. 새로운 시도를 하다 보니 신설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외부와 내부의 ‘저항’이 있다. 내부 저항이 더 강하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 괴리가 있다. 이것을 메꿔가는 것이 상당히 힘든 과정이다. 제게는 모금활동보다 더 어려운 과정이다. 교수들과 직원들과 제가 혼연일체가 되게 만드는 것이 지금 갖고 있는 숙제들 중 하나다.

포브스코리아 독자들에게 강조할 말씀이 있다면?

우리 부모들이 착각하고 있다. 좋은 대학 나오면 자녀들의 미래가 보장된다는 대단한 착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버드·MIT·스탠퍼드 나와도 보장이 없다. 우리 자녀들이 앞으로 살아가야할 시대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떠나는 개척자 시대다.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식들이 무엇을 준비해 사회에 나가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의 개념과 방향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명문대를 나왔다고 한들, 우리 자녀들이 사회에 나가서 올바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부모님들이 원하는 꿈을 자녀들이 대신 이루게 만들려고 하지 말고, 자녀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도록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김환영 중앙일보 심의실장 kim.whanyung@joongang.co.kr·사진 김경록 기자

[박스기사] 총장께 직접 들은 한국뉴욕주립대 입학 자격

“미국 대학 학위를 주는 학교이기 때문에 미국 본교에 내는 서류를 그대로 내야 한다. 고등학교 성적, 추천서, 에세이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 학교는 수능하고 전혀 관계 없다. 영어를 사용하는 중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은 경우 TOEFL 점수를 내야 한다. SAT는 의무 사항이 아니다. SAT점수를 제출하는 경우는 (1)학교 성적이 좀 떨어지지만 수학능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2)장학금 신청을 위해서다. 100프로 영어로 수업하기 때문에 영어를 잘해야 한다. 4개 공학 학과는 수학 실력과 과학 특히 물리 실력이 탁월하면, 다른 실력이 떨어져도 뽑는다. 평균적으로 내신 몇 등급이 돼야 한다는 기준은 없다. 미국 대학이다 보니 본인의 경험과 삶의 이야기를 보고 뽑는 경우가 있다. 군 복무를 마치고 공부하는, 나이가 20대말 30대인 학생도 꽤 있다. 잠재력이 있으면 잠재력만 보고 뽑는 게 미국 대학의 특징이다. 3분의 1 정도가 장학금을 받고 있다. 장학금을 받으려면 공부를 잘하든지 아니면 입학할 수준은 되는데 형편이 어렵든지 둘 중 하나다.”

김춘호 총장 - 1957년 경기 이천 출생이다. 서강대(학사)와 존스홉킨스대(석·박사)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했다. 한국전기전자학회장, 전자부품연구원(KETI) 원장, 건국대 대외협력부총장으로 일한 그는 2010년 한국뉴욕주립대 초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201705호 (2017.04.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