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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럭셔리 산업의 리더들(1) 다니엘 메이란 부루벨코리아 대표 

진정한 럭셔리는 디테일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사진 임현동 기자
명품은 디테일의 산업이다. 단순히 값비싼 물건만이 아닌 특별한 환경에서 최고의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일련의 과정을 포함한다. 한국의 명품 산업을 16년째 이끌고 있는 다니엘 메이란 부루벨코리아 대표를 만나 럭셔리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들어봤다.

# 한국에 럭셔리 산업이 뿌리내린 지도 벌써 30년 세월이 흘렀다. 국내 럭셔리 산업의 역사는 정부가 해외 고가 브랜드의 수입을 허가한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버버리가 주도한 국내 명품 시장은 1990년대 아르마니와 구찌, 2000년대 루이비통과 샤넬·에르메스로 이어지며 전성기를 맞았다. 1997년 3600억원이던 시장 규모는 지난해 15조원을 돌파했다. 포브스코리아가 한국 럭셔리 산업의 비약적인 성장을 일궈낸 인물들을 조명한다. 첫 번째 주인공은 국내 면세업계 대부로 불리는 다니엘 메이란 부루벨코리아 대표다. <편집자 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부루벨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다니엘 메이란 대표. 지난 16년간 한국 럭셔리 시장을 이끌어온 산증인이다.
한국 면세업계의 대부, 명품업계의 산증인, 럭셔리 산업의 개척자, 명품 시장의 숨은 실력자…. 다니엘 메이란(74) 부루벨코리아 대표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다. 화려한 수식어가 증명하듯 메이란 대표는 국내 럭셔리 시장을 선도해온 퍼스트무버다. 1970년부터 30년간 에어프랑스에 몸담은 그는 2002년 부루벨코리아에 합류했다.

메이란 대표가 이끄는 부루벨코리아는 홍콩에 본사를 둔 명품업체 에이전시다. 1960년 한국에 지사를 설립한 이래, 지금까지 57년간 해외 명품 브랜드의 국내 진출을 지원해왔다. 매장 직원의 인사와 교육, 영업과 마케팅, 광고와 홍보 등 해외 브랜드의 성공적인 한국 진출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한다.

현재 부루벨코리아는 루이비통·크리스찬 디올·로로 피아나·펜디·쇼메·발리·마크 제이콥스·클라란스·록시땅 등 패션·의류와 가죽·액세서리, 향수·화장품 분야에서 47개 브랜드를 운영 중이다. 향후 3년간 70개 브랜드로 확장하는 것이 목표이며, 직원도 1600명에서 2500명으로 늘려갈 계획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지난해 10억 달러(1조13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 대비 18~20% 성장한 수치다.

지난 4월1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부루벨코리아 본사에서 메이란 대표를 만났다. 그는 “부루벨코리아의 기업 이념은 ‘브랜드들의 뒤에 있는 브랜드(brand behind the brands)’가 되는 것”이라며 “각 브랜드의 DNA를 파악하고 그에 맞게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하는 일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명품 브랜드들의 조력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이전트로서 시장의 유통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각각의 브랜드가 최고의 위치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지요. 지난 16년간 저는, 한국 럭셔리 업계의 진화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는데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매우 성숙한 시장이 돼가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의 소비자들은 과시형 럭셔리를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아하고 정제된 럭셔리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큰 변화라면, 해외 브랜드에 치중하던 것에서 벗어나 한국 브랜드도 취급할 수 있게 됐다는 거예요. 특히 한국 화장품의 위상이 몰라보게 달라졌는데요.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화장품 기업 10개를 꼽았을 때 그중 4개가 한국 기업일 정도니까요. 디올이나 에스티 로더, 샤넬 같은 유명 브랜드와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졌습니다.”

명품 브랜드들의 숨은 조력자


▎아시아 최초의 명품 전문 교육기관 LBI. 2009년 설립된 이곳에서는 국내 명품 산업 종사자들과 젊은 인재들에게 전문적인 지식을 제공하고 있다(위). 다니엘 메이란 대표는 SK텔레콤과 최근 명품 산업 혁신에 대한 양해각서 (MOU)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정보통신기술(ICT) 이 적용된 혁신적인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아래).
메이란 대표가 추구하는 럭셔리는 단순히 값비싼 물건이 아닌 희소성과 특별함의 가치다. 엄선된 장인이나 디자이너가 창조해낸 각별한 물건을 아주 특별한 환경에서 판매까지 하는 일련의 통합적인 최고의 경험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대량 생산되는 공산품을 팔고 사는 과정과는 차별화되는 특별한 판매 방식까지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인 것이다. 메이란 대표는 “럭셔리가 되려면 그것이 퀄리티이든 소재이든 아니면 특별한 첨가물이든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뭔가가 있어야 한다”며 “제품이 훌륭하다 보니 비싼 가격이 따라오는 것이지 가격 자체가 조건이 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중국을 비롯한 여러 아시아 국가들에선 아직도 럭셔리를 무조건 비싼 제품이라고만 생각해요. 하지만 이는 럭셔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아요. 진정한 럭셔리는 훌륭한 장인이 만들어낸 훌륭한 제품을 훌륭한 환경 안에서 훌륭한 서비스와 함께 제공받는 과정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명품을 둘러싼 총체적 경험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럭셔리가 완성되는 것이죠. 이런 경험은 무척 섬세해서 깨지기도 쉽습니다.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어느 고객이 시계를 하나 장만하기 위해 매장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멋진 인테리어와 격조 높은 서비스를 받으며 아름다운 트레이에 얹어 나온 시계를 보게 됐죠. 그런데 이 고급스러운 시계가 비닐 포장에 싸여 있는 것을 보고 ‘내 꿈이 산산조각났다’며 안타까워했다고 하네요. 이처럼 럭셔리에 대한 경험은 아주 사소한 실수 하나로도 틀어집니다. 진정한 럭셔리를 위해선 어느 것 하나도 놓쳐선 안 됩니다. 이를 ‘셀링 세레모니(selling ceremony)’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메이란 대표의 럭셔리 마케팅 전략은 바로 이런 셀링 세레모니에 근간을 두고 있다. 럭셔리는 일반 소비재와 달라야 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판매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마케팅 방법과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장인들의 창의성과 예술성을 담아야 하는 건 기본이다. 그는 “프랑스 가구 디자이너 알베르토 핀토(alberto pinto)처럼 하나의 가구를 오직 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 파는 것이 진짜 럭셔리”라며 “가장 가치 있는 명품은 문화유산의 가치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박물관에 가보면 오래 전에 만들어진 전통 도자기를 볼 수 있잖아요. 그것들이 지금은 겨우 몇 개밖에 남지 않아 박물관에 보관돼 있지만 당시에는 수백 혹은 수천 개였겠죠. 지금은 희귀하니까 그만큼 중요한 대접을 받는 겁니다. 샤넬 백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은 수천 개나 되지만 처음엔 아주 특별한 한 개로 시작했고, 그것으로 럭셔리가 됐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수천 개의 명품을 판매할 수 있는 럭셔리 산업이 가능한 겁니다.”

인간 존중 철학이 성장 비결

메이란 대표가 럭셔리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20대 시절 루브르박물관이 운영하는 ‘에콜 드 루브르’에서 2년간 중세건축예술을 공부하면서부터다. 대학에서 심리사회학을 전공한 그는 르메르디앙 호텔에서 마케팅 디렉터로 일하면서 럭셔리 브랜드들과 인연을 맺게 됐다. “더 직접적인 계기는 에어프랑스 마케팅 담당 부회장 시절이었어요. 콩코드 여객기 덕분이었죠. 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콩코드는 아주 특별한 존재였기 때문에 기내 디자인 역시 최고여야 했습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하면서 럭셔리의 최고 수준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죠. 그리고 그때의 경험들은 지금까지도 제가 회사를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의 경영 철학은 한마디로 인간 존중이다. 직원들의 가치가 돋보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에는 직급이나 성과에 상관없이 모든 직원에게 똑같은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회사의 좋은 실적은 직원 모두의 노력 덕분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매니지먼트팀이 아무리 일을 잘한다고 해도 현장에 나가 있는 세일즈 직원들이 제대로 하지 못하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직원 상호 간에 존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존중은 인간적인 차원에서 누구에게나 해당됩니다. 운전을 하든, 청소를 하든, 재정 관리를 하든, 모든 직원들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존중의 철학을 가지고 경영에 임하고 있습니다.”

메이란 대표의 인재 경영은 지난 2009년 설립된 럭셔리 비즈니스 인스티튜트(Luxury Business Institute, 이하 LBI)를 통해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LBI는 명품 산업 인재를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아시아 최초의 명품 전문 아카데미다. 2014년 중국 상하이, 2015년 제주에 이어 올해 3월 부산에도 문을 연 LBI는 개교 이래 지금까지 8000명 이상의 교육생을 배출했다. 올해 말 미얀마 양곤에 설립을 목표로 논의 중이며, 2018년까지 중국 베이징을 비롯해 대만·홍콩·싱가포르 등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메이란 대표는 “이제 성숙 단계에 접어든 한국의 럭셔리 산업 종사자들과 젊은 인재들에게 전문적인 지식을 교육하는 것이 LBI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전했다.

또 “LBI는 세계적인 교육 기관은 물론 국내 대학과 제휴를 맺고 이론 교육과 현장 실습을 병행하는 한편 유명 명품업체에서의 인턴십 기회를 제공해 학생들은 물론 업계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가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갖는 것이라고 말하는 메이란 대표는 최근 SK텔레콤과 명품 산업 혁신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두 회사는 이번 MOU를 통해 여행객들의 쇼핑 편의 증진을 위한 O2O(Online to Offline) 커머스 플랫폼 개발, 매장 인테리어와 유통망 혁신, 정보통신기술(ICT)에 기반한 상품 기획 등 다양한 협력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특히 스마트 사이니지(smart signage, 디지털 정보 디스플레이를 이용한 옥외광고), 위치 확인 솔루션 같은 ICT 기술을 매장과 제품에 도입해 고객 충성도를 높이고 매출 확대를 꾀한다는 복안이다. 메이란 대표는 “그간 명품업계에서는 장인정신에 바탕을 둔 상품 제작에 우선순위를 두고 오프라인 매장 위주의 전통적인 판매 방식을 고수해왔다”며 “ICT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소비의 주축으로 성장하면서 명품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형 럭셔리 정착 위해 힘쓸 터

“최근 명품 브랜드의 온라인 구매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요. 우리 입장에서도 점점 디지털화되어 가는 유통 과정이나 구매 과정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목표 중 하나가 됐습니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 한국 시장의 특성에 대해 발표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주제가 ‘한국의 백화점들이 과연 문을 닫을까?’라는 것이었어요. 물론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당장 백화점들이 문을 닫는 상황도 없겠죠. 하지만 유통 형태나 구매 형태가 온라인으로 많이 옮겨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디지털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인재를 영입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메이란 대표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의 럭셔리 산업이 지금보다 더욱 성장하도록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그가 아직도 의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사명감 때문이다. “한국에는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럭셔리 분야에서 성공할 만한 훌륭한 자산들을 많이 갖고 있죠. 그럼에도 럭셔리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국한된 것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이것을 깨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거듭 강조하지만 럭셔리는 문화의 문제입니다. 한국인들이 매료된 것 역시 프랑스나 유럽의 문화잖아요. 그러니 한국 문화에서 뭔가 특별한 것을 찾아야 합니다. 프랑스나 유럽과 다른 무엇을 찾는다면 그것이 결국 전세계를 매료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럭셔리 산업에 좀 더 투자한다면 앞으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사진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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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호 (2017.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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