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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티. 듀퐁클래식에 새긴 그의 스토리(13) 소리꾼 장사익 

“성숙한 사람은 표현을 잘한다” 

대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정리 유부혁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
소리꾼 장사익은 셔츠에 ‘자연스럽게’라고 새겼다. 인터뷰 중에도 그는 ‘자연스럽게’ 노래를 불렀다. 인왕산이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종로구 세검정로 그의 집 거실에서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과 소리꾼 장사익이 만났다. 인터뷰를 주선한 김영만 사진작가가 “아날로그와 디지털 분야의 인물간 대화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궁금하다”며 동석했다. 장사익은 “차를 너댓번 나눠 마셔야 마음이 통한다”며 아끼던 보이차를 내놓았다. 집 마당에 걸린 풍경이 내는 소리가 차를 마실 때나 인터뷰 중간에 시간의 멋을 더해 주었다.

▎“무엇이든 제맛을 내려면 기술보단 시간을 통해 만들어진 무언가가 필요하다. 숙성된 김치가 맛나듯 사람은 성숙해야 한다. 성숙한 사람은 표현을 잘한다.” 장사익은 그렇게 말하고선 자연스럽게 노래를 불렀다.
송길영(이하 송): 셔츠에 ‘자연스럽게’라고 새기셨다. 어떤 의미인가?

장사익(이하 장): (거실 창문으로 보이는 바로 옆 바위를 가리키며)저 바위는 만들어진지 엄청난 시간이 흘렀을거다. 바위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하루살이다. 자연의 일부인 셈이다. 자연 계절처럼 살면 좋겠다 싶어 자연스럽게라고 적었다. 원래의 때가 있는데 그보다 앞서서 좋을 게 없다는 의미다.

송: 노래는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부를 수 있나?

장: 요새는 기계가 좋으니까 다들 노래를 참 잘한다. 하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노래도 많다. 무엇이든 제맛을 내려면 기술보단 시간을 통해 만들어진 무언가가 필요하다. 숙성된 김치가 맛나듯 사람은 성숙해야 한다. 성숙한 사람은 표현을 잘한다.

송: 매달 공연이 있는 것으로 안다. 선생님의 노래를 듣다보면 위안이 된다.

장: 공연은 꾸준히 하는 편이다. 내가 밝은 노래를 하면 관중석에서 “왜 슬픈 노래를 안하냐”고 말한다. “저 울러 왔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울고나면 마음에 찌꺼지가 내려가는 느낌이 있지 않은가.

한 소절에 꽂혀 좋아하더라


송: 일상에선 눈물이 안 나는데 음악이나 영화 보면서 울고 치유가 되는 것 같다. 선생님의 노래들도 그런 의미로 좋아하는 것 같다.

장: 대개 한 가수를 좋아하는 건 그 사람의 모든 노래가 좋아서가 아니다. 한 곡, 그 중에서도 한 소절에 꽂혀 좋아하는 것 같다.

송: 선생님은 충청도 분 아닌가? 남도 출신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장: 새우젓으로 유명한 광천 출신이다. 서해안 짠 바람, 짠 물 보고 자랐다. 다만 군 생활 3년을 문화선전대로 전라도에서 보냈다.

송: 문화선전대는 노래를 잘해서 들어가셨을 텐데 어떻게 배웠나?

장: 내가 노래 배울 당시엔 교육 시스템이 없었다. 지금의 탑골공원 옆 허리우드 극장 부근엔 작곡가 사무실이 많았다. 당시 남진, 나훈아씨도 거기서 배운걸로 안다. 당시 화신백화점 근처가 내가 상고 나와서 다니던 직장이었는데 저녁마다 낙원동 작곡가 사무실에 가서 월급 탄 거 다 주고 노래를 배웠다. 3년 동안. 그 실력으로 문화선전대에 들어갔다. 하지만 막상 군대 제대하고 나선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갔다.

송: 잘하는 걸 왜 그만뒀는지? 이후 어떻게 음악과 인연을 다시 맺게 됐나?

장: 당시 슈퍼스타는 단연 나훈아, 남진이었다. 난 촌놈이었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1972년에 제대하고 73년 무역회사 들어갔는데 에너지 파동이 왔다. 그때 회사에서 잘리고 다른 직장을 다니다 80년부터 국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태평소, 대금, 피리를 배우면서 직장 15군데를 옮겨 다녔다. 마지막 직장이 옛 도산대로에 있는 옛 앙드레김 사무실 근처에 있는 카센터였다. 계속 노래를 하고 악기를 배우다 우연히 임동창과 함께 사물놀이 하는 김덕수 밑에서 3년을 배웠다. 어느날 사물놀이 공연을 마치고 뒷풀이에서 노래를 했는데, 그게 인연이 돼 기획사를 만나 첫 앨범을 냈다.

송: 무언가를 꾸준히 하면서 놓지 않아 가능했던 일인 것 같다. 흥미로운 건 국악이 먼저가 아닌 가요를 먼저 배우신 점이다. 사람들은 소리꾼이라고 하지않나?

장: 나는 엄밀히 말해 대중음악 하는 사람이다. 소리꾼은 과분한 칭찬이라 생각한다. 난 원래 국악을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즉흥적이고 재즈적 요소가 있는 태평소를 다루다 보니 그렇게들 생각하시는 것 같다.

나를 소리꾼으로 불러주는 건 과분한 칭찬


송: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에 나오는 태평소 소리는 선생님이 연주하신 건가?

장: 앨범 녹음은 김덕수가 했고 공연에서 라이브는 내가 불렀다. 그냥 흥에 따라 불렀다.

송: 지난해 수술을 하셨다고 안다. 이제 목소리는 완전히 회복하신건가?

장: 밤이 지나니 다시 낮이다. 2년 전 호흡도 짧아지고 목이 계속 안 좋아 지난해 1월 검사를 받았더니 목 성대에 혹을 발견해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보름 동안 말 한마디 못했다. 무섭더라. 소리가 얼마나 귀한지 알게됐다. 한편으론 수술하게 된 건 건강히 오래 노래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송: 저 역시 강연을 자주 하다보니 소리가 안 나오는 상황을 겪는다. 지금도 성대결절 상태다. 난 목소리만 나오면 되는데 선생님의 경우는 다른 것 같다. 쉽게 이야기해서 악기가 바뀐 것 아닌가?

장: 혹 떼어내고 나서 새 살이 나오니 소리 밸런스가 맞지 않더라. 이제는 많이 잡혔다. 영원히 소리 잃는 경우도 있는데 참 감사하다.

송: 공연을 많이 하시더라. 괜찮으신가?

장: 지난해 단독공연만 12개 했다. 올해도 이미 3차례 했다.

송: 한번에 노래 몇 곡하시나?

장: 20곡 정도한다.

송: 관객이 훌륭하면 나도 모르게 몰입되지 않나?

장: 그렇다. 세종문화회관이 3000석이다. 노래 시작하고 3분이다. 그 시간 안에 관객과 내가 하나가 되면 3001의 힘으로 노래를 한다. 깃털 같은 힘으로 가능한 셈이다. 그게 안되면 너무 힘들다. 강연도 마찬가지 아닌가?

송: 다시 여쭙겠다. 노래는 자연스럽게 하려면 얼마나?

장: 요새는 다들 워낙 잘하니까… 그런데 사시사철 겪은 다음에 씨앗이 열매가 되지 않나. 노래는 매끄럽게 하는 것 보다 깊이하는게 중요하다. 기술이 아닌 표현으로 승부하면 좋겠다. 여름을 보내지 않은 과일은 달기만 하고 제맛을 찾긴 어렵다.

송: 우리는 고음이 안 올라가면 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말씀대로 그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장: 그렇다. 노래의 높낮이, 부르는 톤, 느낌은 부르는 때마다 다르다. 앨범은 기록일 뿐이다. 지금 내 1집 앨범의 노래를 불러서 같은 느낌이 나오겠나. 이젠 주름상도 많고 허리도 굽었다. 이게 내 모습이다. 마찬가지로 내 노래를 듣는 관객도 같이 늙었다. 나만 그대로라면 얼마나 어색한가.

송: 대표곡 중에 <찔레꽃>을 좋아하는데 알고 보니 선생님이 직접 작사하신 곡이더라.

장: 내가 잠실 5단지에 살때였다. 그 동네가 덩쿨장미가 참 예쁘다. 마땅히 하는 일이 없는 백수였는데 버스정류장 가는 길에 향기가 참 좋더라. 향기를 따라 갔더니 화려한 장미꽃이 아니라 같은 장미과 중에 찔레꽃이 소복히 피어있더라. 찔레꽃 향기였다. “저게 나다.” 찔레꽃이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 나가서 깨지고 터지면서 큰소리 하나 못내는 나. 그 마음을 글로 적어 노래를 했다. 한마디로 당시 감정을 토해낸 거다. (장사익은 즉석에서 찔레꽃 노래 몇 소절을 불렀다.) 부르고 나니 온몸이 개운하더라.

찔레꽃은 박자가 없다. 느끼는 대로 호흡에 맡겨 부른다. (그는 다시 박자가 없이 찔레꽃을 두 소절 불렀다.) 처음 듣는 사람은 이게 노래야, 국악이야 헛갈려 하더라. 10년 정도 지나니 이 호흡을 따라오더라. (장사익은 그 자리에서 다시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불렀다.) 이렇게 유행가도 박자 무시하고 자신의 느낌에 맞춰 불러보면 참 좋다.

송: 마치 시조를 읊는 것 같다. 예측할 수 없으니 몰입하게 된다. 소리를 못 듣는 분도 만났다고 하던데?

장: 지인 중에 이현주 목사님이 계신다. 그분이 한 여성 청각장애인을 모시고 찾아왔다. 11살 때 청력을 잃었는데 연습을 통해 말은 어느정도 하시더라. 그런데 이 분이 내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만난 김에 다시 내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주위를 돌더라. 소리의 음파를 찾는 거였다. 그 모습에 다들 울기도 했다. 그 여성도 내게 연습한 노래를 들려주더라. 아주 어릴적 청력을 잃기전에 배운 찬송가였다. 음은 엉망이었지만 감동이었다. 그때 이현주 목사님이 시를 한편 가지고 오셨다. 제목이 ‘우리는 만나 서로 무얼 버릴까’다. 내용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남과 북을 떼어내니 한강, 큰 강이 되었다. 우리는 만나서 서로의 무엇을 버려야 할까. 이런 내용이다. 이 내용으로 노래를 지었다.

송: 다들 서로 얻으려고 하는데 무얼 버릴까 이야기하는 게 울림이 있다. 다른 주제이지만 질문이 있다. 젊은 사람들이 불안해 한다. 취업도 안 되고 경쟁이 심하니까. 내가 한 강연에서 “좋아하는 걸 꾸준히 하라”고 말한 동영상에 ‘한가로운 이야기’라는 댓글이 달렸더라. 선생님은 40대에 길을 바꾸셨다.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장: 단시간에 승부를 내려고 하면 금방 지친다. 꾸준히 해야 한다. 10년을 하면 된다. 한국인에게 3이 문제다. 3년만 꾸준히 하면 10년은 간다. 그러면 일가를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안 하더라. 20살 친구에게 30살까지 연습하라고 하면 도망간다. 10년을 앞에 두고 준비해야 한다. 금방 승부내려고 하지말라는 말을 꼭 하고 싶다. 난 늙어서도 시작한 일이 몇개 있다. 그 중 하나가 붓글씨다. 꾸준히 하다보니 여기저기서 글씨를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2007년 이상봉 파리 패션쇼에서 쓴 글씨가 내 글씨다.

3년만 꾸준히 하면 10년은 간다


송: 26살에 직업을 고민했다. 이후 10년 정도 하니 길이 조금 보이더라.

장: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 좋겠다. 하지만 과정이 필요하다. 언젠가 보니 노래를 듣다가 궁금하면 금새 핸드폰으로 찾더라.

송: 사운드하운드란 어플이 있다. 쉽게 찾는다.

장: 과거에 연애하려고 편지를 쓰려면 시집을 읽고 찾으며 시 공부를 했다. 요새는 컴퓨터에서 그냥 찾는다. 길을 걷지 않고 목적지까지 가는 세상이 된거다.

송: 초등생에게 꿈이 뭐냐 하면 건물주라고 답한다고 하더라. 과정 없는 결과를 꿈이라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슬프더라. 게다가 학교 내신은 상대평가라 친구들에게 자신이 어느 학원을 다니는지조차 안가르쳐 준다. 대학에선 노트를 안 빌려주고. 경쟁만 배워서 협동이 안 된다.

장: 젊음은 여름이잖나. 여름이 중요하다. 덥고 짜증날 거다. 그런데 열매가 성장하고 익는 건 여름이다. 젊은 사람에게 여름은 필요하다. 산악인 고 박영석씨가 사고를 당한 안나푸르나로 떠나기 전에 우리 집에 찾아왔다. 내가 거길 어떻게 올라가냐고 물었다. 대답이 목적지를 보면서 가지 않고 발 앞을 보며 간다고 하더라. 오늘 하루가 내 10년의 모습을 결정하는 벽돌이다.

송: 일본 작가 무라야미 하루키는 그의 책 『소설가로 산다는 것』에서 좋은 작가가 되려면 체력을 키우라고 하더라.

장: 2009년 중앙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기록은 4시간 12분. 당시 환갑을 맞이해 내 자신의 몸에 선물을 하나 하고 싶었다.

- 대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정리 유부혁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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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호 (2017.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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