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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혁신을 일군 아시아의 기업인(5) 궈타이밍(郭台銘) 폭스콘 회장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 뛰어든 M&A 승부사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대만 기업인 궈타이밍(郭台銘·67)이 아시아의 떠오르는 글로벌 경영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이제 위탁 가공 수준을 넘어서서 첨단 기술의 확보와 자체 개발, 그리고 브랜드의 신제품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궈 회장 역시 중화권의 글로벌 기업인으로 괄목상대할 인물로 성장하고 있다.

▎궈타이밍 회장은 중화권의 글로벌 기업인이다. 폭스콘 브랜드를 보유한 훙하이정밀공업의 창업주이자 지분 13%를 보유한 대주주다. / 사진 : 바이두 백과
궈타이밍 회장은 폭스콘 브랜드를 보유한 훙하이 정밀공업(鴻海精密工業·Hon Hai Precision Industry Co., Ltd.)의 창업주이자 지분 13%를 보유한 대주주다.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하다. 국제사회에서는 테리 구라는 영문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훙하이 정밀도 애플의 아이폰 등을 주문자 생산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지금까지는 주문자 생산 영역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구축했던 궈 회장이 최근 새롭게 변하고 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공격적인 글로벌 기업 인수다. 궈 회장은 지난해 4월2일 일본 대형 가전회사 샤프를 3888억엔(약 3조9845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1912년 창업한 일본의 종합가전기업인 샤프는 내분으로 자멸했다. 일본 유력 가전회사가 외국기업에 팔린 것은 샤프가 처음이다. 중화 기업인으로서 세계 굴지의 일본 대기업을 손에 넣은 것도 궈 회장이 최초다. 근대 이후 일본의 기술력과 경제력, 국력에 밀려 갖은 수모를 당했던 중화계로서 감회가 깊었을 것이다.

샤프 인수전에서 궈 회장은 과감한 승부사 기질을 보였다. 경쟁사들보다 훨씬 높은 4890억엔을 제시함으로써 초기에 기선을 제압했다. 하지만 궈 회장의 능란함은 그 다음 수에 있었다. 샤프를 인수하기로 합의한 뒤에 그는 샤프의 우발채무를 이유로 내세우면서 인수가의 인하를 요구했다. 한 달여 동안 추가 협상이 이뤄졌다. 그 결과 당초 제시가 4890억엔에서 1000억엔을 줄이는데 성공했다. 궈 회장이 집요한 상술로 1조원 ‘가격 후려치기’에 성공한 것이다. 급한 샤프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엄청난 인수가 제시가 경쟁사들이 기가 질려 물러나면서 샤프 인수 시장은 인수자가 칼자루를 쥔 ‘바이어스 마켓’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를 정확히 파악한 궈 회장이 지독한 승부 근성을 발휘한 것이다. 샤프로서는 악몽이었을 것이고, 궈 회장에겐 꽃놀이패가 됐을 것이다.

‘샤프’ 인수 이어 ‘도시바’ 반도체까지 노려


▎지난해 열린 2016 빅데이터 엑스포에 참석한 궈타이밍 폭스콘 회장.
훙하이 정밀은 일본 오사카부 사카이(界)시에서 샤프와 액정패널 공장을 공동 운영해왔지만 궈 회장의 눈은 더 먼 곳을 향하고 있다. 궈 사장이 인수 직후 일본 샤프의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작전에 들어간 것이 그 사례다. 그는 샤프 인수가 단순한 ‘유명기업 컬력션’이 아님을 보여줬다. 샤프에서 확보한 기술을 바탕으로 중국과 대만에 건설하는 액정패널(LCD) 공장에서 생산되는 상품을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에 들어갔다는 것이 닛케이 신문의 보도다. 이를 통해 한국의 LG디스플레이 등 경쟁업체에 대한 열세를 일시에 만회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훙하이 정밀은 2011년 11월부터 자회사 폭스콘의 아이폰 생산 거점인 허난성 정저우(鄭州)에서, 2016년 말부터는 구이저우(貴州)성 구이양(貴陽)에서 각각 액정패널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홍하이 정밀은 잉후이(英慧)와 구이차오광전(貴超光電)이라는 이름의 공장운영회사에 투자하는 형식으로 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2018년 양산체제를 갖출 전망이다. 대만 남부가오슝(高雄)에서도 샤프 인수 직전 새 액정패널 공장의 문을 열었다. 새 공장들은 제6세대 유리기판과 초정밀도 ‘저온 폴리실리콘(LTPS)’ 액정기술을 사용할 전망이다. 모두 샤프 인수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해진 기술이다. 샤프 인수로 톡톡히 시너지를 얻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샤프 인수 작업과 시너지 극대화 전략을 통해 궈 회장은 ‘승부사’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그런 궈 회장이 이제는 ‘전자산업의 쌀’이라는 반도체 산업까지 노리고 있다. 미국의 웨스턴디지털, 한국의 SK하이닉스 등과 나란히 일본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부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궈 회장의 폭스콘이 무려 3조엔(약 30조8664억원) 가량의 인수가를 제시했다고 지난 4월10일 보도했다. 궈 회장이 제시한 인수가는 경쟁사들에 비해서 1조엔 이상 높은 것으로 추산됐다. 말 그대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압도적인 가격을 제시해서 경쟁사의 전의를 상실하게 해 인수전에서 밀어낸 뒤 인수시장이 ‘바이어스 마켓’이 되면 조정을 시도할 가능성도 예상된다.

궈 회장의 파격적인 인수가 제시는 도시바는 물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정부도 뒤흔들고 있다. 아베 정부는 반도체 산업을 국가안보와 직결된 전략 자산으로 여기고 있지만 이 정도 가격이면 자금 압박을 받고 있는 도시바로선 거절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도시바를 직접 도와줄 수 없는 아베 정권 입장에서도 난감한 입장이다. 인수가 성사되든 아니든 간에 궈 회장의 승부수가 빛나는 이유다.

도시바는 지난해 도시바메디컬시스템스를 캐논에, 백색가전 부문을 중국 기업 메이디에 각각 팔아치운 데 이어 주력인 반도체 사업부문인 ‘도시바 메모리’의 지분 매각 절차에 들어갔다. 직원수 18만7800명에 이르는 도시바 그룹은 80여 개의 자회사로 이뤄져 있으며 2016년 3월 결산 기준 매출이 5조66986억엔에 순이익 4600억엔을 기록했지만 알짜배기 업체를 팔아치우고 서서히 가라앉는 분위기다. 그에 비해 궈 회장은 새롭게 떠오르는 아시아 경영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궈 회장은 자신의 기업을 대만에선 훙하이정밀공업(鴻海精密工業)으로, 상하이에선 훙하이과기집단(鴻海科技集團)으로, 런던에서는 폭스콘(富智康·Foxconn Technology Group)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상장했다. 폭스콘은 전자기기 분야에서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EMS)의 최강자로 통한다. 생산 규모에서 세계 최대를 자랑한다. 매출 규모에서도 면에서 세계 3위의 IT(정보기술) 업체다. 사실 그동안 기술도 상당히 확보해 실질적으로는 세계적인 IT기업과 공동 설계 제조나 공동 개발 제조까지 하는 하이테크 업체로 평가 받는다. 2015년 매출이 1361억 달러에 이르며 순이익도 44억 달러나 된다. 총자산 306억 달러 시가총액이 701억 달러에 이른다. 애플의 아이패드와 아이폰을 위탁 제조하면서 명성을 얻었던 이 회사는 애플 외에도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전세계 다양한 전자 및 IT업체의 상품을 주문자 제조 방식으로 생산한다. 블랙베리, 아마존의 킨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X박스 원(One), 위위 등도 위탁 생산한다. 직원이 130만 명으로 중국의 민간기업 중 가장 많은 사람을 고용한다. 대만 타이베이와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생산은 대부분 중국 본토에서 한다. 이렇게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주니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도 대접을 할 수밖에 없다.

경영인으로서 궈 회장의 삶은 폭스콘의 역사와 일치한다. 이 회사의 경영방식은 구 회장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궈 회장은 중국 본토 산시(山西)성 출신인 아버지와 산둥(山東)성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1950년 대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본토와 대만에서 경찰 공무원으로 일했으며 아들의 성공을 두 눈으로 목도한 뒤 2002년 세상을 떠났다. 구 회장은 대만 사회에서는 ‘산시성에 뿌리를 둔 외성인(外省人)’으로 분류한다. 외성인은 원래 대만 출신이 아니고 1949년 국민당에 본토에서 근거지를 대만으로 옮길 때 함께 이주한 본토 출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실향민인 셈이다.

특이한 것은 구 회장이 해운업계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는 대만 수도인 타이베이시에 있는 중국해사전과학교(현재는 대만해양기술학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를 졸업했다. 한국의 국립해양대학과 성격이 비슷하다. 병역을 마친 다음 해운회사에 입사해 운송 상품에 적합한 선박을 찾는 업무를 맡았다. 그 뒤 무역회사로 옮겨 일하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상품을 주고받는 무역보다 ‘상품’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제조업의 장래성이 있다고 본 그는 1년간의 회사원 생활을 미련 없이 접고 제조업으로 창업에 나섰다.

그가 처음 시도한 사업 아이템은 플라스틱이었다. 1974년 24세의 나이로 어머니가 보태준 10만 대만 달러를 포함한 30만 대만 달러의 자본금을 모아 홍하이플라스틱(鴻海塑膠企業有限公司)을 창업했다. 당시 환율로 미화 7500달러에 해당하는 자본금이었다. 그는 10명의 직원을 데리고 플라스틱 제품의 제조와 가공을 주로 했다. 타이베이의 외곽 신도시인 신베이(新北)시의 서부 지역인 투청(土城)구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임대료가 싸기 때문에 고른 장소였지만 지금도 이 지역에 그룹 본사를 두고 있다. 아시아의 대경영인 궈 회장의 ‘미약한’ 출발이었다.

세 번의 결정적 기회를 모두 움켜쥔 승부사


▎광둥성 선전의 폭스콘 공장 노동자들이 회사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애플 아이폰을 생산하는 이 공장에는 4만여 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시작은 초라했는지 몰라도 젊은 창업자의 꿈은 컸다. 기러기 홍(鴻, 중국어로 훙)에 바다 해(海, 중국어로 하이)를 합친 회사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 중국 송대(宋代) 사서인 통감절요에 나오는 ‘홍비천리 해납백천(鴻飛千里 海納百川: 기러기는 천리를 날고 바다는 백 개의 강에서 물을 받아들인다, 즉 가리지 않고 모든 강에서 물을 거둔다)’라는 대목에서 따왔다. 기업 이름에서부터 불끈불끈 한 야망이 보인다.

그는 텔레비전에 쓰이는 플라스틱 부품을 제작해 전자회사에 납품했다. 그런 그에게 세 번의 기회가 찾아왔는데 이를 모두 움켜쥐었다. 첫 기회는 1980년 찾아왔다. 미국의 게임 회사인 아타리로부터 게임용 콘솔에 들어가는 조이스틱과 게임기를 연결하는 커넥터를 주문 받은 것이다. 지금은 나스닥 상장회사인 아타리(Atari)는 미국 기업인 놀란 부시넬이 1972년에 창업했다. 비디오 게임을 만들기 위해 창업한 세계 최초의 기업으로 분류되는 업체다. 초기 게임 산업을 선도하면서 수많은 아케이드 게임을 개발했으며 핀볼게임기와 가정용 게임기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PC가 대중화하면서 PC게임 산업에 뛰어들었으며 휴대용 소형전자게임기도 만드는 등 초기 게임 산업을 주도했다.

이 경험으로 그는 수출에 사업의 명운이 달렸다고 여기게 됐다. 그는 저돌적이었다. 신규 고객을 찾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 11개월간 미 전역을 돌아다녔다. 낯선 미국에서 무턱대고 잠재 고객을 찾아 나선 그는 인상적이고 공격적인 영업활동을 펼친 끝에 상당량의 추가 주문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미국 출장으로 그는 회사를 수출 주력업체로 탈바꿈시켰다. 찾아온 기회에 만족하기 않고 이를 본인의 노력으로 커다란 전기로 만든 것이다.

두 번째 기회는 중국 본토 진출이었다. 그는 1988년 본토의 광둥성 선전에 전자 공장을 지었다. 홍콩의 맞은편에 위치한 선전은 중국 개혁개방과 경제발전의 상징과도 같은 지역이다. 당시는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주도로 시작한 개혁개방의 초기였다. 중국은 대만처럼 산업화가 앞선 지역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기업 운영 노하우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지금이야 대만 기업의 중국 진출이 일반화됐지만 당시로선 한국 기업이 평양에 진출한 것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리스크가 컸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했던가. 궈 회장은 중국에 오히려 더욱 과감하게 투자했다. 당시 중국 최대의 공장을 선전에 지었다. 단순히 생산시설만 건설한 게 아니었다. 엄청난 숫자의 종업원이 그곳에서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아예 기숙사형 생산단지를 건설했다. 종업원들의 숙소와 식당은 물론 진료소까지 마련했다. 직원들의 식탁에 공급할 수 있도록 양계장까지 지었다 생산과 생활 시설을 수평 결합했다. 당시 중국에선 혁신적인 시설이었다. 종업원에 대한 배려가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렇게 중국 본토에 일찌감치 거대 생산기지를 확보함으로써 양질의 노동력을 적은 인건비로 사용하면서 전 세계를 상대로 ‘대량생산 저가공급’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폭스콘은 중국에 15개 이상의 공장을 운영 중이다. 선전의 롱후아 공장은 최대 45만 명의 직원이 일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생산기지다. 이곳에는 기숙사는 물론 직원용 풀장과 자체 소방대까지 있다. 시내 중심부에 대규모 식품점. 은행, 식당, 서점, 병원을 갖추고 있다. 폭스콘 TV라는 이름의 자체 TV방송국도 운영하고 있다. 직원의 4분의 1은 기숙사 생활을 한다. 폭스콘은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초대형 최첨단 생산기지를 지어 ‘공장의 공장’으로 기능을 하고 있다. 중국 외에도 중남미에 브라질, 멕시코, 유럽에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 아시아의 인도,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등에 생신기지를 두고 있다. 중국 외의 생산 기지에서 일하는 직원만 45만 명에 이른다. 폭스콘은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자리 기계’다.

궈 회장의 세 번째 기회는 1996년에 찾아왔다. 높은 제조기술을 바탕으로 전자제품 주문자 제조방식으로 전 세계 IT기업의 제품을 본격적으로 위탁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컴퓨터회사인 컴팩의 데스크탑 컴퓨터 제조라인을 만든 것이 효시였다. 이후 미국의 HP(휴렛팩커드), IBM, 애플이 폭스콘을 전자제품 제조공장으로 삼았다. 그는 세심한 생산관리·품질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고객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미국와 유럽, 일본은 IT제품의 개발과 디지안에 주력하고 생산은 폭스콘이 맡는 국제분업 체제를 구축했다. 이제 이 체제에서도 폭스콘을 하이테크 기업으로 바꾸려고 하고 있다.

대만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총통 후보

궈 회장은 일에 정력적으로 몰두하기로 유명하다. 근무일에는 최소한 16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간부들을 자정이 넘은 심야에 불러 보고를 하게 하고 회의를 여는 것으로 악명 높다. 그래서 ‘거친 경영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번 도시바 인수가 성사되면 궈 회장은 사업만 확대되는 게 아니라 2020년 차기 총통선거 출마에도 한걸음 다가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궈 회장은 대만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총통 후보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으로 정계의 눈에 들었다.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 시절부터 현재의 시진핑 주석에 이르기까지 중국 최고지도자와 매년 만남을 갖는다. 정치에도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아시아의 기업 환경에서 궈 회장이 어떤 묘수를 보여줄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채인택 - 중앙일보 피플위크앤 에디터와 국제부장을 거쳐 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역사와 과학기술, 혁신적인 인물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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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호 (2017.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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