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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대동여지도(5) 대전 

고급인력 풀 활용한 창업 열기 후끈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대전광역시 유성구 일대에 있는 대덕연구단지는 대전 스타트업 생태계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2014년 기준 6만여 명이 넘는 석·박사급 연구원이 모여 있다. 기술기반의 스타트업이 대전에서 많이 나오는 것은 이들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뛰고 있기 때문이다.

▎카이스트 부설 나노종합기술원에 마련된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 내부 모습. SK와 손잡고 DVS(Dream Venture Star) 와 GVS(Global Venture Star) 같은 스타트업 육성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정 제품의 최저가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추천 제품이 최저가가 아니라면 사람들이 제품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나?” 지난 6월8일 오후 1시, 대전 서구 둔산동에 있는 중기청 산하 창업진흥원 19층 회의장에서 ‘2017년 창업도약패키지 지원사업’ 발표회가 열렸다. 대전에 있는 액셀러레이터 블루포인트파트너스 황희철 이사를 포함해 3명의 심사위원은 서울에서 내려온 창업가를 앞에 두고 속사포 질문을 쏟아냈다. 질문의 형식을 띠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비즈니스 모델의 약점을 이야기하는 뼈아픈 지적들이었다. 미국 콜롬비아대학(컴퓨터과학 전공)을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 크리에이터스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한 이서호 대표는 20여 분 동안 떨리는 목소리로 심사위원의 지적과 질문에 답변했다. 이 대표는 “준비한 것은 다 말했다. 심사위원이 지적하는 것들이 사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서울 서초구에 사무실을 둔 스타트업 창업가가 굳이 대전까지 내려와 기업설명회를 가진 이유가 뭘까? 창업도약패키지 지원사업은 창업 3년 이상 7년 미만의 창업가를 대상으로 한다. 보통 3~4년 차 창업가들이 경험하는 ‘죽음의 계곡(데스 밸리)’을 넘고 도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최대 2년, 최대 1억원을 지원한다. 서울테크노파크, 한국기술벤처재단 등 21개 주관기관이 전국 각지에서 전지·전자·생명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을 선정한다. 대전에서는 ‘연구원 창업 분야’ 심사가 열린다. 그 이유가 있다. 창업진흥원 관계자는 “창업도약패키지 지원사업 심사는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데, ‘연구원 창업 분야’는 대전에서만 실시된다”면서 “대전 하면 대덕연구단지가 떠오를 정도로 대전은 연구기관과 연구원들을 상징하는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창업진흥원을 찾아 심사를 받은 20여 명의 창업가들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이나 민간연구기관에서 경력을 쌓은 후 창업에 도전한 사례다. 크리에이터스 이서호 대표도 민간기업에서 연구원으로 3년 이상을 일한 경력이 있다. 이날 발표회에 참여한 홈쿡 창업가 강주석 대표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대전까지 내려왔다. 강 대표는 “홈쿡은 반조리식품배달 서비스를 하는 푸드테크 스타트업”이라며 “연구원 창업 분야 심사는 창업진흥원에서만 하기 때문에 이곳까지 왔다”고 말했다. 창업패키지 지원사업(연구원 창업 분야) 심사 장면은 대전 스타트업 생태계의 특징을 보여준다. 대전은 석·박사급 이상의 훌륭한 엔지니어를 6만여 명이나 보유한 지역이다.

대전 유성구에 자리 잡은 대덕연구단지가 그 상징이다. 2005년 ‘대덕연구개발특구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된 후 대덕연구단지는 대덕테크노밸리·대덕산업단지 등을 포함하는 대덕연구개발특구로 확대됐다. 특구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를 포함해 정부출연연구기관 24개, 42개의 대기업 부설 연구소, 1300여 개의 첨단 벤처기업, 카이스트와 충남대를 포함한 7개 대학 등 1600여 개가 넘는 기관이 입주해 있다. 2014년 기준으로 석·박사급 연구원만 6만7000여 명이 넘는다.

중소기업은 출연연 파견제도 이용해볼만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한 이들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가 ‘좋은 인재 구하기’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대전은 축복받은 도시다. 대전에 본사를 마련한 액셀러레이터 블루포인트파트너스 황희철 이사는 “대전의 인력풀은 타 지역의 추종을 불허한다”며 기분좋게 웃었다. 황 이사는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을 지원 육성하고 있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엔지니어의 기술력은 최고지만 경영능력은 부족하기 때문에 블루포인트파트너스와 같은 액셀러레이터의 도움이 필수적이다”고 덧붙였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이용관 대표는 카이스트에서 물리학 박사를 취득한 후 2000년 플라즈마트를 창업했고, 2012년 나스닥 상장사인 MKS에 매각했다. 엑시트에 성공한 후 대전에 액셀러레이터를 설립했다. 황 이사 역시 창업과 엑시트 경험을 가지고 있다. 황 이사는 “대전에는 대덕벤처파트너스와 이노폴리스 같은 VC도 있다. 대전의 창업 생태계의 미래가 밝기 때문에 액셀러레이터와 VC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구소 출신의 엔지니어들이 창업에 도전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정부출연연은 창업을 장려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예비창업제도다. 창업을 결정한 연구원은 창업을 앞두고 5개월~10개월 정도 인건비를 지원받는다. ‘아바타 창업제도’도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자체 보유 기술을 외부에 개방해 예비창업자를 선발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여타 정부출연연도 외부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과 협업을 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대표적인 것이 정부출연연에 소속된 연구원을 중소기업에 파견하는 ‘출연연 파견정원제도’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제도인데, 출연연의 연구원과 중소기업을 매칭하는 제도”라며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의 중소중견기업 R&D센터에서 주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전의 한국화학연구원은 얼마 전 정문 옆에다가 디딤돌센터라는 건물을 신축했다. 화학연구원의 도움을 받고 싶은 창업가들이 연구원에 들어가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설치한 공간이다. 대전 충남지방중소기업청 이인섭 청장은 “화학연구원에 있는 연구원들이 디딤돌센터로 나와서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면서 연구원과 스타트업의 협업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대전에서는 카이스트를 중심으로 창업 붐이 일어나고 있는데, 타 대학이나 연구소로 확산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전의 창업 인프라는 중소기업청과 창조경제혁신센터, 카이스트를 중심으로 잘 갖춰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소기업청의 경우 카이스트를 포함해 목원대·충남대 등 14곳에 창업보육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한남대·한밭대·충남대를 창업선도대학으로 선정해 대학의 인프라를 활용해 청년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 외에도 1인 창조기업 비즈니스센터, 스마트창작터, TIPS프로그램 등의 창업지원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창업지원기관은 대덕연구개발특구에 있는 한남대학교다. 한남대는 창업지원단을 운영하면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142개 스타트업을 배출했다. 이들 스타트업은 391억원대 매출을 기록하면서 타 대학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한남대 창업지원단 장수덕 단장은 “한남대는 바이오 분야 스타트업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한남대 대덕밸리 캠퍼스에는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이노비즈 파크와 사이언스 파크 건물이 있고, 제조업 기반의 스타트업을 위해 공장 4동도 중영 중이다”고 설명했다.

넉넉한 인프라가 대전 창업 생태계의 장점

2014년 3월 카이스트 내에 문을 연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는 SK와 함께 스타트업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스타트업 육성프로그램은 DVS(Dream Venture Star)와 GVS(Global Venture Star)이다.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 관계자는 “우리 센터는 기술창업 지원, 중소기업혁신 지원 그리고 해외시장 진출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센터가 문을 연 이후부터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센터는 지금까지 45개의 유망스타트업을 발굴했는데, 이들은 343억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6월 현재까지 25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센터 관계자는 “태그웨이라는 스타트업은 2015년 2월에 유네스코 주관의 ‘세계를 바꿀 10대 기술’에서 1위로 선정된 바 있다”고 자랑했다.

카이스트는 대전의 창업 열기를 대표하는 대학이다. 2014년 설립된 카이스트 창업원을 중심으로 스타트업 창업가 교육과 육성 지원정책을 운영 중이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이 K스쿨이다. 다른 대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창업 전문 교육 기관이다. 학부와 석사 과정에 창업 관련 교육 커리큘럼을 마련했다. 스타트업에 관심있는 재학생의 아이디어를 창업으로 연결할 수 있는 스타트업 빌리지도 운영하고 있다. 실습 중심의 커리큘럼으로 석사 논문을 대신하는 창업융합전문석사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카이스트 창업원 김병윤 원장은 “카이스트는 탄생부터 미션까지 창업을 위한 학교였다”면서 “‘한국의 실리콘밸리’로서 기업가정신을 갖춘 글로벌 과학기술 리더 양상이라는 비전을 실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박스기사] ‘한국의 실리콘밸리’ 카이스트


▎카이스트 창업원이 매년 일반인과 카이스트 재학생을 대상으로 마련하고 있는 스타트업 리쿠르팅 행사.
대전 유성구의 대덕연구개발특구 내에 있는 카이스트는 한국의 창업 생태계에서 큰 성과를 내는 대학이다. 대전의 스타트업 붐의 진원지이자, 대전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끌어가는 대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5월 카이스트 창업원이 펴낸 ‘2016년 카이스트 창업기업 성과’ 보고서를 통해 카이스트의 놀라운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2015년 말 기준으로 카이스트 출신이 창업한 스타트업은 1112개나 된다. 총매출액은 13조6252억원으로 2014년 10조8791억원보다 25%가 증가했다. 기업당 평균 매출액은 207억원으로 일반 창업기업(5억7000만원)보다 37배가 높다. 21년 이상 유지된 창업기업 평균 매출액은 821억원이나 된다. 카이스트 출신의 창업기업의 총 고용규모는 3만2407명, 상장기업 수는 63개사(코스피 1개, 코스닥 51개, 코넥스 11개)로 전체 상장사의 5.7%를 차지한다.

창업가들의 전공별 출신을 보면 전기전자공학부(138명, 15.7%) 기계공학과(128명, 14.6%) 등 공과대학이 649명(71.1%)를 차지했다. 최종학력은 박사가 42.6%, 석사가 40.1%로 석·박사 출신의 창업가가 월등히 많았다. 카이스트 창업원 김병윤 원장은 “카이스트 창업원이 설립된지 올해 3년이 됐는데, 한국의 창업 생태계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스타트업이 곧 나올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일반인이 참여할 수 있는 ‘엔터프리너십 런치 토크’ ‘스타트업 리쿠르팅’ ‘스타트업 에듀 캠프’ 같은 17개의 강연이나 행사도 마련했다.

201707호 (2017.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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