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People

Home>포브스>CEO&People

한국 럭셔리 산업의 리더들(2) 이충희 듀오 대표 

명품 대중화에 기여한 나눔 실천가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사진 김춘식 기자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에트로를 수입하는 이충희 듀오 대표는 지난 25년간 국내 럭셔리 산업의 대중화를 위해 앞장서온 인물로 꼽힌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명품업계의 대표적인 기업가인 그에게 성공과 나눔의 비결을 물었다.

▎서울 청담동 듀오 본사 5층에 마련된 ‘백운갤러리’에서 포즈를 취한 이충희 대표. 2010년 설립된 백운갤러리에서는 매년 신진작가들을 후원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1985년 정부가 해외 명품 브랜드의 수입을 허가한 이후 90년대 국내 명품 시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이 해외 브랜드를 입점시키고, 갤러리아백화점에 명품관이 들어선 것도 이때였다. 백화점의 명품 판매율은 매년 20~30%씩 꾸준히 성장했다. ‘물건을 갖다 놓기만 하면 저절로 팔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겨날 만큼 명품업계는 호황을 누렸다.

이충희(62) 듀오 대표는 강산이 두 번 넘게 변하는 세월 동안 국내 명품 시장을 이끌고 있는 명품업계의 산증인이다. 79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면세점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 대표는 91년 버버리를 수입하던 유로통상 영업이사를 거쳐 93년 듀오를 설립했다. 지난 6월 12일 서울 청담동 듀오 본사에서 만난 이 대표는 “신라면세점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지만 그때만 해도 명품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회상했다. “매출 전표가 뭔지도 모르는 어리숙한 사회 초년생이었어요. 업무를 빨리 익혀야 한다는 생각에 3개월간 회사 창고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밥도 거기서 배달시켜 먹고, 창고 한편 비좁은 곳에서 새우잠을 자기 일쑤였죠. 주변에서 모두 일벌레라 부를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1년 정도 악착같이 매달렸더니 비로소 상사들이 인정을 해주기 시작하더군요.”

이 대표의 성실한 자세와 부단한 노력은 입사한 지 불과 10년 만에 신라면세점 점장이라는 위치까지 오르는 밑거름이 됐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12년 만에 호텔리어 생활을 청산한 이 대표는 당시 1세대 명품 수입업체로 이름을 떨치던 유로통상에서 백화점 영업을 담당하며 경험을 쌓던 중에 독립을 결심했다. “명품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쌓이고 자신감도 생기면서 저만의 사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월급쟁이였던 저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사업 자금이었죠. 당시 수중에 있던 전재산을 탈탈 털어보니 800만원이더군요.(웃음) 이걸 들고 에트로의 아시아 판권을 갖고 있던 일본의 한 회사를 찾아갔어요. 에트로는 제가 신라면세점에 있을 때부터 들여오려고 공을 들였던 브랜드였거든요. 그런데 담당자가 처음에는 만나주지도 않더라고요. 이름도 없는 한국의 조그만 회사 대표가 무작정 찾아와 만나달라고 떼를 쓰니 그들도 황당했을 거예요. 그 회사에 매일 같이 출근 도장을 찍으며 수차례 설득을 했고, 마침내 국내 독점 판매권을 따낼 수 있었습니다.”

남다른 판매 전략 창안해 승부수


▎지난 2월 전북 익산에 위치한 육군부사관학교에서 이충희 대표가 ‘성공하는 리더의 길’ 이란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1993년 신라호텔 면세점에 에트로 매장을 처음 연 이후 1995년 롯데백화점 본점, 1996년 현대백화점 본점과 무역센터점에 연이어 매장을 오픈하면서 사업을 확장시켜 나갔다. 면세점 한 곳으로 출발했던 에트로는 현재 전국에 46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중 백화점이 30개, 면세점이 11개, 아웃렛이 5개다. 전세계 에트로 매장을 다 합해봐야 200여 개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은 이제 이탈리아 본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시장이 됐다. 덕분에 최근 명품 브랜드가 직접 한국 시장에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추세와 상관없이 에트로만큼은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듀오가 국내 모든 유통을 도맡고 있다.

이 대표는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독특한 판매 전략으로 에트로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명품업계에서 아직까지도 획기적인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는 홈쇼핑 진출이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에트로의 홈쇼핑 진출 결정은 제품의 인지도를 높여 판매를 늘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했다. “당시 서울과 수도권에선 우리 제품이 제법 알려졌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인지도 면에서 경쟁업체에 밀리고 있었어요. 그렇다고 대규모 광고비를 책정할 만큼 자금이 풍부했던 상황도 아니었죠. 그때 대안으로 생각해낸 해결책이 바로 홈쇼핑이었던 거예요. 무모한 생각이라며 말리는 사람도 많았지만 제 결심은 확고했어요. 어차피 광고나 마케팅을 못해서 회사문 닫을 거라면 차라리 전국구 홈쇼핑에라도 내보내 보자는 심정이었죠. 명품이란 이미지만 생각해서 백화점만 고집했다면 망해도 벌써 망했을 겁니다.(웃음)”

2006년 4월 에트로가 명품 브랜드 최초로 홈쇼핑에 진출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주위에선 회의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값비싼 명품이 홈쇼핑에서 통할 수 있겠느냐’, ‘괜히 고급스러운 이미지만 깎아먹지 않겠느냐’라는 핀잔도 많았다. 그러나 기우였다. 방송이 첫 전파를 타자마자 그간의 우려는 씻은 듯이 해소됐다. 방송마다 매진 행렬이 이어졌고 당시 내놨던 제품은 1만 개가 넘게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길거리에서 7초마다 볼 수 있다고 해서 ‘7초백’이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였다. 에트로 한국 론칭 25년 역사에 남을 만한 기념비적인 순간이었다.

에트로는 현재 3개의 홈쇼핑 채널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홈쇼핑을 넘어 아웃렛에 뛰어든 것도 에트로가 가장 먼저였다.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과감하게 도전을 선택한 이 대표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이 대표는 “현재 매출 중 홈쇼핑과 아웃렛이 각각 20%, 백화점이 60% 정도 된다”면서 “작은 기업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언제나 리스크에 대비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진행된 백운장학금 수여식 행사에서 이충희 대표가 학생들과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에트로는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그림 같은 브랜드에요. 명품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집스러운 면도 있고 장인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하죠. 하지만 어떨 땐 너무 천천히 바뀐다는 생각도 하게 돼요. 엄마와 딸이 같이 쓸 수 있는 제품, 대를 이어 물려받을 수 있는 제품도 좋지만 시대의 변화에 맞춰 빨리 움직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봐요. 이제는 다양한 연령층에 어울리는 제품도 만들어야 해요. 두 세대에 걸쳐 가방 하나 팔아서는 먹고 살기 힘듭니다. 젊은 층에 어필할 수 있는 세컨드 브랜드를 만들어보자고 본사에 갈 때마다 꾸준히 건의하고 있습니다.”

월세 40만원짜리 12평 사무실에서 책상 두 개 놓고 시작한 듀오를 25년 만에 매출 1000억원대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 대표는 나눔을 실천하는 기업가다. 해마다 전국의 군부대를 돌며 장병들에게 자신의 사업 경험담을 들려주는 재능기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에도 30회 정도 군부대 강연을 했다. 1년에 한 달이란 시간을 오롯이 강연에만 매달린 셈이다. 게다가 강연을 위해 대부분 지방에 있는 군부대를 오가려면 하루가 꼬박 걸린다. 이 대표가 사업가에게 돈보다 더 귀하다는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며 재능기부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뭘까?

이 대표는 “사회는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장병들이 부대에만 있다 보면 사회 얘기를 들을 기회가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며 “강연에서는 주로 인생 선배로서 군 전역 후에 있을 새로운 미래를 위해 철저히 준비할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제 첫 강연 무대는 2001년 큰아들이 입소한 부대였어요. 당시 부모가 와서 강연을 하면 2박 3일 특별휴가를 주는 제도가 그 시초였죠.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사업을 시작해 그간 경험했던 일들을 담담하게 얘기해 줬더니 다행히도 모두가 귀를 기울여 주더군요. 나중에 들어 보니 제 강연이 장병들 입소문 덕분에 육군본부 명강사 리스트 톱10에도 올랐다고 하더군요(.웃음) 그래선지 요즘 군부대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도 강연 요청이 들어오고 있어요. 제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학군단(ROTC) 15기로 군복무를 마친 이 대표의 후배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대표는 군부대와 자매결연을 맺고 클래식 및 오페라 공연 개최, 미술품 전시, 도서 기증 등을 통해 장병들에게 다양한 문화 체험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국내 명품업계를 대표하는 나눔 전도사로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는 이 대표는 ‘백운장학재단 이사장’이란 직함도 갖고 있다. 그는 사업이 성장궤도에 오른 2002년 중학교 교장을 지낸 선친의 호를 따서 장학재단을 세웠다. 현재 백운장학재단의 기금은 55억원이며, 그동안 중·고교 및 대학생 1200명에게 28억원이 넘는 장학금을 지급했다. 대상은 주로 군인·경찰·소방관·교사의 자녀들이다. 국가를 위해 묵묵히 봉사하는 사람들이 더 대접받아야 한다는 선친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이 대표는 “학창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일곱 번이나 장학금을 받았는데 그때 진 빚을 갚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어린 시절 꿈이 교사였던 만큼 기회가 된다면 작은 학교를 짓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이 대표는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마흔 번째 회원이기도 하다. 지난 2010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비리로 인해 성금이 줄어들면서 복지시설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 1억원을 선뜻 쾌척한 것이다. 지난해부터 국민연금 수령 대상자가 됐지만 그것도 전액 사랑의열매에 기부하고 있다. 이 대표의 나눔 바이러스는 직원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듀오의 모든 직원들은 11년째 매달 5000원을 월급에서 공제해 사우회 이름으로 고아원과 장애인 시설 등을 돕고 있다. 6년 전부터는 연말에 송년회를 여는 대신 그 비용을 연탄은행에 기부하고 있다.

선친 뜻 이어받아 장학재단 설립


▎1968년 탄생한 에트로는 ‘페이즐리’ 라는 독특한 무늬와 대담한 컬러의 조합으로 단기간에 명품 대열에 올라섰다. 사진은 부드러운 양가죽을 구름처럼 디자인한 ‘페이즐리 누볼라 컬렉션’.
이 대표의 나눔 실천과 사회 공헌은 에트로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듀오의 활발한 선행 활동이 자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판단한 주한 이탈리아 대사의 추천을 통해서다. 2008년 4월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수상한 이 대표는 2011년 대통령 국민포장을 수상했으며, 2013년에는 세종대왕 나눔봉사대상 시상식에서 국방부장관상과 나눔대상을 동시에 수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두 명의 자녀를 둔 이 대표는 그들에게 각각 재산의 10%씩만 나눠주고 나머지 80%는 장학재단을 통해 사회에 환원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자식들에게 나눠줄 돈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밑바닥에서 사업을 시작한 나보다 훨씬 좋은 조건 아니냐”며 “좋은 일에 돈을 쓰는 것만큼 큰 행복은 없다”고 말했다. 또 “나눔은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며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하겠다고 미루지 말고 커피 한잔 마실 돈으로 지금 당장 기부를 시작하면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나눔은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더 잘 사는 사회를 만들고,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고 성공해서 이웃을 살피는 일에 동참하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자신에게 그 혜택이 돌아옵니다. 남을 돕는 것은 사실은 자신을 돕는 거라고 생각해요.”

- 오승일 기자 osi71@joongang.co.kr·사진 김춘식 기자

이충희 대표
1955년: 서울 출생
1973년: 서울 휘문고 졸업
1977년: 경기대 관광경영학과 졸업
1979년: 신라호텔 입사
1991년: 유로통상 입사
1993년∼현재: 듀오 대표
2002년∼현재: 백운장학재단 이사장
2010년∼현재: 백운갤러리 이사장

201707호 (2017.06.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