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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우의 와인 이야기(14)] ‘코키지 프리’ 음식점마다 왜 다를까 

 

이석우 와인 칼럼니스트 sirgoo.lee@joongang.co.kr
'코키지 프리’를 선언하는 음식점들이 늘고 있다. 와인 매출을 포기하더라도 손님을 더 많이 끌어들여서 음식 매출을 늘리겠다는 계산이다. 음식이 맛있는 코키지 프리 식당들은 그래서 늘 붐빈다.

▎‘코키지 프리’ 식당에서는 와인 반입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이에 따른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와인애호가로서는 쾌재를 부를 일이다.
코키지(corkage)란, 손님이 직접 들고 온 와인을 마시게 해주는 대가로 음식점에 지불하는 서비스료를 말한다. ‘코키지 프리’ 식당에서는 와인 반입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이에 따른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와인애호가로서는 쾌재를 부를 일이다. 특별한 날에 마시기 위해 사두었던 와인, 맛있게 마셨던 기억에 몇 병 사놓았던 와인, 누군가로부터 선물 받았는데 집에 방치해 뒀던 와인. 코키지 프리 레스토랑은 고맙게도 이런 와인들을 추가 비용 없이 갖고 가서 마실 수 있는 특권을 허여해준다.

‘코키지 프리’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다. 평소 가격 때문에 음식점에서 파는 와인을 마시기가 부담스러웠던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한편, 와인 매출을 포기하더라도 손님을 더 많이 끌어들여서 음식 매출을 늘리겠다는 계산이다. 음식이 맛있는 코키지 프리 식당들은 그래서 늘 붐비는 편이다.

고급 레스토랑은 ‘코키지 프리’ 쉽지 않아


▎좋은 와인을 소믈리에와 나눠 마시면서 소믈리에들이 경험의 폭을 넓힐 수 있다면, 소믈리에를 위해서도, 음식점을 위해서도, 그리고 궁극적으로 손님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사진은 인터컨티넨탈 소믈리에.
“그럼 왜 다른 음식점들도 코키지 프리를 선언하지 않을까?” 음식점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선뜻 따라하기 힘들다. 코키지 프리 식당들은 주로 음식에서 대부분의 매출과 이익을 내는 구조다. 등심이나 안심 등 소고기를 파는 구이 전문 음식점들이거나, 셰프 등 인건비가 높은 주방 인력을 쓰지 않는 식당들이다. 이곳은 고객 회전율 또한 상대적으로 높다. 하루 저녁에 한 테이블에 2~3번 손님을 받는다. 그만큼 음식에서 돈을 벌기 때문에, 와인과 같은 주류 매출을 희생하더라도 장사가 된다.

반면, 고급 레스토랑들은 사정이 다르다. 셰프 등 주방 인력과 웨이터 등 서빙 인력의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인 반면, 고객 회전율은 낮다. 하루 저녁 한 테이블에 손님을 한 번밖에 받지 못한다. 음식에서는 인건비, 식재료비, 임대료 등 원가를 건지고, 이윤은 와인 등 주류 판매에서 얻어야 한다. 코키지 프리를 잘못 선언했다가는 수익 악화로 식당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 이런 곳에서는 와인 반입을 아예 금지하거나 병당 3~5만원의 코키지 비용을 부과한다.

이런 속사정을 알면, 와인 반입을 금지하거나 높은 코키지 비용을 물리는 레스토랑들이 이해된다. 그리고 오히려 높은 코키지 비용을 물더라도 와인 반입을 허용해 주는 레스토랑들이 고맙게 생각된다. 하지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무리한 규정을 두거나 가식적인 와인 반입 정책 때문에 와인 애호가들을 짜증나게 하는 곳들도 있다.

코키지 비용을 ‘와인 가격의 30%’로 책정했던 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가져갔던 와인이 다소 고가 와인이었던지라, 항의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실제 구매한 와인 가격은 무시하고, 레스토랑에서 일방적으로 ‘싯가’를 정해서 30%를 코키지 요금으로 부과하는 식이었다. 외견상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런 코키지 정책은 고객과의 시빗거리가 될 뿐이므로, 차라리 와인 반입을 금지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연전에 방문했던 미국의 한 레스토랑에는 이런 친절한(?) 안내문이 메뉴에 붙어 있었다. “저희 레스토랑은 와인 반입이 불가합니다. 왜냐고요? 와인을 가져오는 과정에서 와인이 상처를 입고, 온도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수일 동안 안정화를 시키기 전에는 제대로 와인을 즐길 수 없습니다. 와인을 레스토랑의 셀러에서 손님의 테이블까지 내오는 것조차도 어려운데, 집에서 레스토랑까지 와인을 가져오면 와인은 제 상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와인도 음식과 마찬가지로 합당한 예우를 해줘야 합니다. 적적한 용기에, 적절한 온도에, 제대로 디켄팅을 해서 제공되어야 합니다.”

와인을 최상의 상태로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와인 반입을 불허한다는 취지다. 한 문장 한 문장 따지고 보면, 틀린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가져온 와인을 마시고 싶다는데, 굳이 현란한 이유를 대면서 못하게 막을 필요가 있을까?

최소한의 와인 매출은 보장해주는 에티켓

한편, 코키지 비용을 내건 안 내건, 음식점에 와인을 가져갔을 경우, 손님 입장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도 있다. 우선, 예의상 한 병 정도는 레스토랑에서 파는 와인을 주문해서 마셔주자. 레스토랑은 고객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수익을 위해 운영하는 곳이다. 레스토랑에서 와인 리스트를 준비해서 와인을 판매한다는 것은, 재고의 부담을 안고 고객을 위해 투자를 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곳들이 매출 악화로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도 최소한의 와인 매출은 보장해줬으면 좋겠다.

또한 레스토랑에 소믈리에가 있는 경우, 가져온 와인 가운데 의미 있는 와인이 있으면 한 잔 권해주자. 소믈리에는 고객에게 좋은 와인을 추천하고 서빙하는 직업이다. 좋은 와인을 고객에게 추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와인을 경험해야 한다. 손님들이 가져온 와인을 나누어 마시면서 소믈리에들이 경험의 폭을 넓힐 수 있다면, 소믈리에를 위해서도, 음식점을 위해서도, 그리고 궁극적으로 손님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이석우 - 카카오 공동대표이사를 거쳐 현재 중앙일보 편집국 디지털총괄 겸 조인스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다. 번역서 『와인력』을 출간한 와인 마니아다.

201707호 (2017.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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