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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스가 성장이다(1) 

‘포스트 차이나(Post-China)’ 시대 열어라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사진 김성룡 기자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으로 휘청거렸던 국내 관광업계가 조금씩 회복세에 들어섰다.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의 빈자리가 크지만 일본인 관광객 회복, 동남아인 관광객 급증 등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면서다. 중국만 바라보던 한국 관광업계가 프로그램 다양화, 관광객 다국화로 ‘균형 관광’으로 전환할 골든타임이다.

▎4월 중순 DMZ 투어에 나선 관광객들이 경기도 파주 제3땅굴 견학을 마치고 나와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만의 특수한‘안보 관광’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꾸준히 늘고 있다.
장면 하나. “남아공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며 한국전쟁과 민주주의 과정을 배웠다. 남아공도 내전과 민주화 과정을 겪은 나라라 한국에 오면 이곳 비무장지대(DMZ)를 꼭 둘러보고 싶었다.”

지난 4월 중순 경기도 파주 제3땅굴 견학 현장에서 만난 루엘 미앙.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한국에서 영어 강사를 하고 있는 그는 고향에 있는 할머니와 부모, 남동생 등 6명의 가족을 초청해 여행 중이었다. 그는 “인터넷에서 상품을 찾다가 외국인 관광객들이 추천한 프로그램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날 루엘 미앙 등 비 중화권 관광객 32명은 외국인 관광 전문여행사 코스모진의 ‘DMZ 반나절 투어’ 상품을 이용해 임진각과 도라산역 등을 둘러보았다. 임진각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태운 대형 관광버스 10여 대가 주차해 있었다. 스페인어를 쓰는 10여명의 페루 관광객은 녹슨 철마와 철로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장면 둘.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세요).” “사왓디 카(환영합니다).” 6월 초 찾은 명동 거리는 중국어 대신 일본어와 태국어 입간판이 눈에 띄었다. 중국 정부가 한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배치 결정을 이유로 한국 단체여행 상품 판매 금지령을 내린 지 3개월 남짓 되면서 ‘중국인 쇼핑특구’ 명동의 전체 관광객 수는 줄었지만 대신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관광객이 거리를 누볐다. 명동 입구 화장품 매장의 매니저는 “유커(중국인 단체관광객) 본 지가 꽤 됐다. 대신 한국 여행사에 직접 예약한 싼커(중국인 개별관광객)와 동남아인 관광객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홍대와 강남, 삼청동 등에도 풍경은 비슷하다.

유커 빈자리 채우는 동남아인 관광객


▎지난 4월22일 대구시 두류야구장에서 열린 부처님 오신날 기념 연등축제에서 외국인들이 스님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724만 명. 이 가운데 중국인이 절반에 가까운(46.8%) 807만 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부터 중국 정부가 한한령(限韓令)을 내리고 올해 3월부터 여행상품 판매를 금지하면서 중국인 관광객은 3월에만 무려 39.4%(2016년 3월 대비)나 급감했다. 급기야 4월엔 중국인 관광객이 지난해 동기대비 70% 가까이 줄었다.

하지만 1~4월 집계만 보면 중국인 관광객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1~4월간 한국을 찾은 관광객 수는 지난해 동기간 대비 5.7% 감소했다. 유커가 107만 명으로 지난해 동기대비 27.2% 줄었지만 일본(14.6%)·대만(23.5%)·홍콩(10.5%) 등 다른 국가의 관광객이 증가하며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관광 통계에서도 동남아인 관광객의 급증은 뚜렷하다. 전체 외국인 관광객 중 동남아인 관광객이 차지하는 비율(12%)은 중국인 관광객(48%)의 1/3에도 못 미치지만 인도네시아·태국 등 고속 성장을 하고 있는 국가들에서 한국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특히 대만·인도네시아 관광객은 전년(2015년)에 비해 50% 이상 증가했다. 중국의 ‘사드 몽니’가 한국 관광시장의 국적 다양화를 촉발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동남아인 관광객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올해 2~4월 강원도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24.8%는 태국, 25.4%는 말레이시아에서 온 것으로 집계됐다.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인 춘천 남이섬은 지난해 말레이시아·태국 관광객이 각각 14만 명, 인도네시아·베트남 관광객이 각각 10만 명씩 찾았다. 부산시에 따르면 3월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23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 늘었다. 일본·대만·태국·베트남·싱가포르 등에서 많이 찾아온다. 유커 감소의 직격탄을 맞은 제주도 역시 관광객 국적 다양화에 힘쓰고 있다. 지난 4월 말 베트남 호찌민에서 열린 관광 설명회에서 현지 주요 5개 여행사와 제주 인센티브 관광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연중 100여 회에 걸쳐 베트남 기업 인센티브 관광객 5000여 명을 제주로 보낸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절반에 육박했던 중국인 관광객의 감소가 국내 관광업계에 주는 타격은 엄청나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5월 발표한 ‘중국 정부의 한국 여행 제한 조치가 국내 소비재 산업에 미치는 영향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한국 여행상품 판매 금지 조치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직·간접적 피해 규모는 5조6000억 원에서 최대 15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지난해 중국인 관광객의 총 여행경비는 18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고, 이 중 쇼핑 경비는 12조8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국내 면세점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지난해 전체 매출 12조2700억원 중 70%인 8조6000억원이 중국인 관광객의 지갑에서 나왔다. 롯데면세점은 5월 한 달 중국인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40% 감소했다.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명동과 강남 일대에 우후죽순 들어선 중저가 호텔 업계에도 울상이다. ‘한류 열풍’을 타고 승승장구했던 화장품 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명동의 의류 매장 주인은 “중국인 관광객과 동남아인 관광객들 사이엔 구매력에서 큰 차이가 난다”며 “관광객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를 쓰고 가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관광업계 안팎에서는 중국인 단체여행객 의존도를 낮추는 대신 질 좋은 관광을 추구하는 중국인 VIP 관광객 비중을 늘리고, 동남아·일본·중동 등 관광객 국적도 다양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다. 그동안 미뤄왔던 국내 관광업계 체질 개선의 ‘골든타임’이라는 지적이다. 이임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급증하고 있는 20~30대 신세대 중심의 싼커(개별관광객) 맞춤형 여행콘텐트 개발을 통해 중국인 여행객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 또 중국 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는 고급화 차별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손형동 건양대 교수(관광학)는 “정치적인 이슈로 예상보다 중국인 관광객 이탈 시기가 조금 이르게 왔을 뿐이지 이전부터 특정 국가 관광객에 편중된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었다”고 전했다.

우선 방한 관광객의 국적 다양화다. 특히 시장규모와 성장률이 큰 동남아 시장에서 적극적인 유치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는 조언이다. 김상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동남아는 한류를 기반으로 한 젊은 여성 관광객의 신규 유입 수요가 탄탄한 시장”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한국관광공사는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베트남 등 3국을 대상으로 항공사와 한국 기업 공동 마케팅을 추진하고 있다. 관광공사 측은 “지난해 동남아 지역의 방한 관광객이 사상 처음으로 200만 명을 돌파했다. 동남아인 관광객 비율을 2020년 2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통역·식당·숙박 등 개선해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내에서 언어 소통과 음식 만족도에서 동남아인 관광객들이 다른 국가에 비해 평균치 이하 만족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무슬림 관광객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무슬림 관광객은 98만 명으로 2015년 대비 33%나 증가했다. 그러나 무슬림들에게 필수인 할랄 인증 음식점과 기도실이 거의 없고, 히잡을 두른 무슬림에 대한 한국인들의 거부감도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쇼핑뿐 아니라 크루즈, 의료관광 등 다양한 상품 마련도 시급하다. 6월 6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16년 외래 관광객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이 방한 기간 중 주로 참여하는 활동 중 가장 많은 것은 ‘쇼핑’이 75.7%, ‘식도락 관광’이 51.0%(복수응답 가능)로 많았다. 이 수치는 해마다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제대로 된 관광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것을 뜻한다.

관광업계 전문가들은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특성을 살려 크루즈 관광상품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방한 크루즈 관광객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연평균 46.6%의 성장세를 보이며 지난해 20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5월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발표한 ‘국내 크루즈시장 체질개선 시급’ 보고서를 보면 아시아 크루즈 관광객은 지난해 325만 명으로 전년 대비 49.8%나 성장했다. 세계 크루즈시장의 2016년 성장률이 4.4%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성장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적 크루즈선사가 없어 중국과 일본, 유럽 선사들이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상황이다. 국적 크루즈선사 육성과 우리나라를 모항으로 하는 크루즈선사 유치를 통해 일본·러시아와 연계한 환동해·북극권 크루즈 노선을 구축하는 것이 근본적 대책으로 꼽힌다.

‘쇼핑’외 체험관광 등 프로그램 다양화 절실


▎새 정부 출범 후 한·중 관계 개선의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인 단체관광객의 발길은 뜸하다. 인천공항의 중국 국적항공사 출국장이 중국 정부의 한국 관광 제한으로 텅텅 비어 있다.
중국·러시아 환자가 급감하면서 타격을 입은 의료관광도 다시 불을 지펴야 한다. 서울 강남이나 명동에선 성형수술 후 커다란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던 유커 등 외국인 환자의 모습을 최근엔 찾아보기 힘들다. 러시아 환자는 루블화 가치 하락 등으로, 중국 환자는 사드 영향과 성형 사고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의료관광객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강남구 병 의원은 동남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리적 요인과 한류, 경제 성장 등의 영향으로 의료관광이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베트남, 필리핀 등에서 활발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중국의 ‘관광 보복’은 일본과 대만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2012년 9월 일본이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였던 센카쿠 열도를 국유화하자 중국 정부는 일본 관광을 금지시켰다. 항공기와 호텔 예약이 무더기로 취소되면서 2012년 10월 일본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은 전년 대비 34% 급감했다. 대만 역시 중국의 ‘관광보복’을 받은 나라다. 독립 성향의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이 당선된 이후 양국의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중국이 단행한 대만 관광 제한 조치였다. 중국의 제재 이후 4개월 연속 대만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30%씩 줄자 관광업계 종사자 2만 명이 총통부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관광보복’일·대만도 다양화가 해법


일본과 대만의 대책 역시 ‘관광객 국적 다양화’였다. 일본은 비자를 완화하고 면세점을 확대했다. 중국에 한했던 투자처도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으로 확산시키면서 관광객의 범주를 늘렸다. 다양한 콘텐트를 개발하고, 외국인 면세 절차를 줄여 면세 품목을 늘린 결과 한국인 관광객도 늘어났다. 그 결과 2014년에는 중국 관광객이 83% 증가해 240만 명을 넘어섰고, 이후 매년 증가하고 있다. 대만은 개별관광객 유치에 집중했다. 15일로 제한된 중국인 개별관광객 대만 체류 기간을 30일로 늘리고, 동남아 국가 등에 무비자 입국을 확대해 새 시장을 개척했다. 대만은 지금도 중국으로부터 경제·무역 종속을 벗어나기 위해 ‘신남향(新南向)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동남아인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제주도를 방문하기 위해 인천과 김해공항에서 환승하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필리핀 단체 관광객에게 비자 없이 5일 동안 제주도 이외 지역에서도 체류할 수 있도록 9월부터 허용하기로 했다. 그동안은 중국인 단체관광객만을 대상으로 이 제도를 시행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까다로운 비자발급 절차와 현지 관광객의 긴 여행기간(6~8일)을 감안하면 가장 큰 신규 수요 창출이 기대된다.

지역의 매력 있는 산업단지를 활용한 ‘산업관광’도 주목되는 프로그램이다. 주로 기업체의 생산 현장이나 홍보시설을 비롯해 재래·전통산업, 과거 산업유산 등을 활용한 관광콘텐트다. 관광객들에게는 호기심 충족 등 배움과 재미가 있는 볼거리나 체험거리를 제공하고, 기업체나 지역에는 브랜드나 지역산업에 대한 홍보를 통해 새로운 소득을 창출하는 기회로 기대된다. 부산 기업 고려제강이 1963년에 건립해 2008년까지 운영하던 공장 건물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꾼 부산 수영구의 ‘에프1963’, 미래 우주항공 산업을 상징하는 전남 고흥군의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 서울 성동구 ‘수제화 거리’, 전북 순창군 ‘장류 체험’ 등이 포함됐다.

-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사진 김성룡 기자

201708호 (2017.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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